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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1911~1980)은 <구텐베르크 은하계>(1962)에서 15세기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만들어낸 일이 서구 문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분석했습니다. 인류가 문자를 읽고 쓰게 된 시기는 6000년 정도인데, 텍스트를 대량 공급할 수 있게 한 인쇄술은 이중 500년 정도를 지배해왔습니다. 매클루언은 인쇄 문화가 가져온 근대 사회의 본질적인 변화를 ‘구텐베르크 은하계’라는 개념으로 포착해내고, 그것의 파편적·선형적·획일적인 성격을 비판적으로 바라봤습니다.
디지털 문화와 인쇄 문화가 엇갈리는 교차로에서 덴마크 학자 톰 페티트는 ‘구텐베르크 괄호’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지배했던 지난 500년에 괄호를 치면, 그닥 상관없어 보였던 인쇄 이전의 필사본 전파 시대와 현대의 디지털 문화 사이의 연결고리가 좀더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겁니다. “이렇게 훨씬 기다란 역사적 틀로 바라보면 텍스트의 유동성과 협동적 창조, 자유로운 도용 같은 디지털 문화의 측면이 필사본 시대의 전례들과 더욱 면밀하게 닮았다는 것이 분명해진다.”(시몬 머리, <옥스퍼드 출판의 미래>)
‘구텐베르크 괄호’는 인쇄 문화에만 최적화된 것이라 여겼던, 텍스트를 쓰고 읽는 인간의 능력이 디지털 문화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형태로 적응하고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단순한 전환이나 변환이 아닌, 적어도 이 은하계 바깥으로 나아갈 정도의 혁명이어야 한다는 데 있겠습니다. 그동안 생각을 종이라는 매체에 묶어둠으로써만 가능했던, 무언가를 이루고 나눌 수 있던 소중한 역량들은 이제 어찌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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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도 책과 출판산업과 출판문화, 읽기가 과연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고민이 깊습니다. 읽기를 가능케 하는 ‘매체’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인류는 문자에서 인쇄로, 그다음엔 디지털로 변해가는 흐름 위에 서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매체가 아닌 ‘출판’이란 행위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인류는 제작에서 출판으로, 그다음엔 미디어로 변해가는 흐름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운명’과 ‘출판의 운명’은 단단히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달라질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영미권 출판 전문가 20여명이 함께 집필한 <옥스퍼드 출판의 미래>는 이 변화의 흐름 위에서 출판의 역사에서 시작해 출판산업·문화 전반의 주요 쟁점들을 이론적 측면에서나 실제적 측면에서나 두루 점검해보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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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책이 ‘책의 미래’가 아닌 ‘출판의 미래’를 주된 논의 대상으로 못박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저작권’ 개념에서 출발한 출판은, 인간의 창조적인 역량을 이끌어내는 한편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대중을 ‘확장’하는 일을 그 핵심으로 삼아왔습니다. 경제 이론부터 경영 전략, 기술 혁신에 이르기까지, 출판의 모든 요소들은 역사적으로 대중을 확장하는 데에 몰두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책은 출판의 그런 본질적인 측면은 미디어 또는 디지털 시대에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전망합니다. 출판산업에 직접 몸 담고 있는 사람부터 출판·독서에 관심이 많은 애호가들까지, 가까운 곳에 두고 틈틈이 참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정보와 논의를 풍부하게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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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 변화는 ‘읽기’도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압박을 가져옵니다. 미국의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의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오늘날 ‘읽기’란 무엇인지, 그 속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분석한 책입니다.
🔗종이책과 디지털 아우르는 ‘양손잡이 문해력’ 필요
🐟<프루스트와 오징어>로 ‘책 읽는 뇌’의 탄생과 여정을 파고들었던 신경과학자 매리언 울프는 <다시, 책으로>에서 디지털 중독 시대의 ‘읽기’란 무엇인지 탐구합니다.
🔗종이책과 스크린을 다 잘 읽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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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는 정치와 외교, 군사 등의 분야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식재료와 음식 문화에서도 식민 통치의 영향은 뚜렷했죠. 쌀이 부족했던 한반도에서 오히려 일본으로 쌀이 빠져나갔고 그로 인해 식민지 조선인의 체격이 저하된 것은 단적인 사례입니다. 일본 릿쿄대 경제학부 교수 임채성의 연구서 <음식조선>은 쌀과 소, 명란젓, 우유, 맥주 등 아홉 가지 식료 산업과 음식 문화를 통해 일본의 조선 지배가 지닌 경제적 의미를 드러냅니다. 토지 조사 사업을 통해 경작지를 확보한 일본인 지주들은 조선에서 생산한 쌀을 대거 일본으로 빼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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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에는 전체 쌀 생산량의 51.4%가 유출되었고, 그 때문에 조선인들은 만성적인 영양 불균형과 신체 발육 부진을 겪었습니다. 성인 남자의 신장이 1900년대부터 1920년대 중반에 걸쳐 약 2㎝ 커졌지만, 1920년대 중반부터 1945년까지는 오히려 약 1~1.5㎝ 작아졌다는 집계는 그 생생한 증거라 하겠습니다. 출산률이 높고 우수한 암소가 대거 유출됨으로써 “조선 소의 열등화가 진행되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지은이는 이밖에도 주정식 소주 공장 설립과 맥주 생산, 홍삼 전매 등을 통한 총독부의 재정 확보를 거론하면서 식민 시기 식료 산업이 총독부의 통치 기반을 이루었다고 지적합니다. 우유를 거의 먹지 않던 조선인들이 우유와 유제품에 맛을 들이게 되었다든가, 본래 함경도 주민들의 자가용 음식이었던 명란젓이 일본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상품화되었고 전시에는 국가 관리 대상까지 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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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제목 ‘옐로페이스’(원제: Yellowface)는 동양인 분장을 한 백인을 뜻합니다. 소설은 몇 지점에서 기발합니다. 인종차별의 최전선을 앙팡 테리블의 난장처럼 보여줍니다. 돈과 트렌드에 경도된 서구 문학 출판의 생리와 원리를 까발립니다. 살벌합니다. ‘페이지 터너’의 ‘승책감’(책에 올라탄 느낌)을 지속하면서 글쓰기 신화의 거대한 모순을 발견하게 합니다. 소설은 그리고 더 묻습니다. 독자는 다 옳은가, 자유로운가. 이 모든 사안을 추리 양식으로 구현하고 드러내고 묻는 소설 <옐로페이스>는 1996년생 미국인 작가 R. F. 쿠앙이 지난해 현지 출간한 장편입니다. 중국 광저우에서 태어나 4살 때 이주한 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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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화자는 뜻밖으로 27살 백인 여성 주니퍼입니다. 그는 예일대 동문인 중국계 여성 작가 아테나 때문에 콤플렉스에 시달립니다. 그가 이미 문학판의 샛별로 여러 상도 섭렵한 반면, 자신은 “평범한 필라델피아 출신 여자애”로 “아무리 열심히 쓰고 아무리 잘 써도, 결코 아테나가 될 수 없”다고 쥐어뜯습니다. 소설의 몸통은 아테나가 죽은 뒤 그의 미완성·미발표 소설을 도용, 표절하는 준의 심리와 향방을 좇는 추리의 양식입니다. 동시에 아테나의 성공도 기실 아시아계 여성 작가를 제약한 구조 아래 가능하고, 그 맥락에서 준도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고마는 살벌한 문학판, 즉 “작가의 노력은 책의 성공과 아무 관련이 없다. 베스트셀러는 선택되는 것이다”는 정언명령이 지배하는 실태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를 폭로하는 신스틸러가 한국계 여성 출판·창작자라니, 여전히 ‘정전’에서 소외된 아시아계 여성작가 문학의 반전과 반전을 예고하는 도전장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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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스승 플라톤과 함께 서양 학문의 비조 자리에 서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영역은 광활해서 생물학부터 신학까지 거의 모든 문제를 포괄했고, 이 드넓은 연구로 오늘날 통용되는 대다수 학문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 분야에는 ‘논리학’도 있는데, 논리학 저작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히는 책이 <분석론>입니다. 이 책의 첫 번째 권 <분석론 전서>가 우리말로 처음 번역됐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전문가 김재홍 정암학당 연구원이 40여년에 이르는 아리스토텔레스 연구 끝에 산출한 결실입니다. 옮긴이는 조만간 <분석론 후서> 번역본도 내놓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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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주저 <형이상학>에서 학문을 이론적 학문, 실천적 학문, 제작적 학문으로 분류했다. 이론적 학문에는 수학, 자연학, 신학, 형이상학 같은 앎(인식)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 포함되며, 실천적 학문에는 윤리학과 정치학이 포함되고, 제작적 학문에는 시학, 수사학이 배정됩니다. 눈여겨볼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학문 분류에서 논리학이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논리학은 학문 자체가 아니라 학문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예비적 작업, 다시 말해 학문과 사유에 필요한 일종의 도구를 습득하는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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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도 아니고 ‘의료조력사망’도 아닌 ‘단식 존엄사’입니다. 단식을 통한 존엄사라니 낯설게 다가옵니다. <단식 존엄사>는 대만에서 소뇌실조증이라는 희귀병을 진단받은 어머니가 83살 때 ‘단식 존엄사’를 결단하자 의사인 딸 비류잉이 어머니가 임종할 때까지 옆에서 함께하며 그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소뇌실조증에 걸리면 운동을 조절하는 소뇌가 점차 기능을 상실해 말기에는 걷지 못하고 침상 생활을 하게 되며 사지구축이 와 비위관을 삽입해야 합니다. 유전병인 이 병때문에 저자의 삼촌과 사촌 오빠가 와상 생활에 대한 비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비극적인 가족사 속에서 저자와 저자의 어머니는 평소 ‘죽음’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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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딸에게 “중병을 앓아 사는 것이 고생뿐이라면 억지로 치료해 고통을 연장하지 말라”고 말해왔습니다. 사전연명의료서에도 서약했지요. 병의 예후를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죽음’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왔던 저자의 어머니는 ‘단식 존엄사’를 선택하고 가족은 이 뜻을 존중합니다. ‘단식 존엄사’를 어떻게 실행했는지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등을 저자는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죽어간 아버지, 시아버지, 어머니의 사례를 통해 독자에게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죽음’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 실질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라도 죽음에 관해 우리는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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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격>은 환자 넷, 의사 둘을 주인공 삼아 197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조력·안락사의 다단한 쟁점과 흐름을 미시적으로 짚어낸 역작입니다.
🔗비루한 삶도 존엄한 죽음을 말하게 하라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는 지난 2016년부터 ‘의료조력사망’이 합법화된 캐나다에서 ‘의료조력 사망’을 최초로 실행한 장본인으로 그가 만난 여러 환자들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여러 쟁점들을 정리한 책입니다.
🔗‘의료조력 사망’ 합법화 이후 어떤 죽음들이 있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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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의 정서적 지도를 잘 그려내려"
고영범 번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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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가 꿈이었던 아이는 한국 대학에서는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영상제작을 공부하게 됩니다. 다큐를 만들려다가 극영화로 방향을 틀었고,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책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번역가의 길로도 들어섭니다. 문학-연극-영화를 종횡무진해온 고영범 번역가의 이력입니다. 단편소설의 대가 레이먼드 카버의 전기를 번역한 것을 계기로 그의 시집까지 작업했고, 터키와 인도네시아 작품, 현대 희곡 등을 적극적으로 번역하는 등 번역가로서나 작가로서나 “동시대의 공기를 끝없이 포착”하려는태도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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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직접 꼽은 주요 작품들의 표지. 왼쪽부터 인도네시아 작가 노먼 에릭슨 파라시부의 단편소설집 <대체로 행복한 이야기들>(알마), 터키의 작가 O. Z. 리발엘리의 장편소설 <불안>(가쎄), 국내에 처음 소개된 레이먼드 카버의 시집 <우리 모두>(문학동네), 존 레러마이아 설리번의 에세이집 <펄프헤드>(알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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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 판매 문의 전화를 받으면 올해도 봄이 왔구나 실감합니다. ‘파종모종’은 아쉽게도 종묘사가 아닌 1인 출판사이자 책방입니다. 2015년 광주 동명동 오래된 주택 2층에 문을 열었고, 2017년 중흥동 지금의 자리로 이사를 왔습니다. 독립출판 및 지역출판물로 채워진 책방과 함께 출판 업무와 수업 등 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계약직이 종료되고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큰 고민 없이 공간을 준비하며, 당시 ‘파종’(곡식이나 채소 따위를 키우기 위하여 논밭에 씨를 뿌림)이란 단어가 주는 뜻과 어감에 꽂혀 있던 탓에 덜컥 이름으로 붙였던 게 파종모종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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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어울리는 옷 사람
여름에 어울리는 사람아. 여름옷을 입었는데 너는 영 다른 사람 같다. 여름옷을 처음 입어보는 사람일 테니 그 모습이 귀엽고 신기해서 오래 들여다보는데 너는 정말 여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 있군. 이 계절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 있네. 나도 어떤 계절이든 그 계절에 어울리는 사람이 된다면 참 좋을 텐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나를 통해 드러난다면.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하여튼 너는 지금 여름과 여름옷이 되는 사람. 여름 표정이 되는 사람아. 여름 몸짓이 되는 사람아. 여름 풀벌레와 여름 야시장이 되는 사람아. 그렇게 여름이 되어 있는 사람이므로 너는 여름 목소리를 내어 나를 부를 것 같네. 하지만 부르지는 않았는데. 그런데도 나는 웃으며 겨울 목소리를 내어 응답했는데. 나도 오래전의 여름옷을 입은 채 서 있는 사람 같았는데.
📖안태운 시집 <기억 몸짓>(문학동네시인선 216)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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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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