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아버지’는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말입니다. 그의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1852~1931)는 자수성가한 유대인으로,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지배자로서 가족들 위에 군림했다 합니다. 그런 아버지와, 그와는 정반대로 여리고 섬세한 아들의 관계가 바로 카프카라는 문학이 태어난 장소로 지목받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자전적 기록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은행나무)가 최근 개정판으로 나왔습니다.
편지 형식의 이 글에서 카프카는 자신을 비꼬고 윽박지르는 아버지의 ‘교육’ 방식이 힘들었다고 토로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세계를 세 개로 분열시키고 자신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고도 말합니다. 아버지 자신은 지키지 않는 지침을 지키라고 명령받은 자식은 오직 ‘저만을 위해 제정된 법’의 지배 아래에 ‘노예’가 됩니다. 아버지는 오직 “명령을 발령하고 불복종 때문에 분노하는”(‘통치’) 일에만 종사할 따름입니다. 그밖의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게, 명령과 순종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계에 삽니다.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축약해 보여주는 듯합니다.
특히 흥미롭게 읽은 것은 ‘교육’과 ‘사랑’에 대한 카프카의 독특한 관점입니다. 부록 ‘누이동생 엘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사랑하기에 “자신과 자식을 혼동하는” 부모와 “어린아이를 존중하는” 교육자를 냉정하게 구분합니다. 부모의 ‘정신적 패권’에 맞설 수 없기에 어린아이는 대등한 위치에 놓일 때까지 부모 품에서 떨어져 있는 게 좋다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주장도 긍정적으로 소개합니다. ‘지배-복종 없는 사랑’이 그리 어렵다면, 차라리 ‘사랑 없는 교육’이 낫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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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은 A에서Z까지 26개 자모로 이루어진 영문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라틴문자에 글자 몇 개를 추가해 만든 그 문자 체계를 가리키는 말은 로마자. 로마자는 또 그리스문자를 변형해 만든 것이고, 로마자와 그리스문자는 물론 아랍문자와 인도문자, 동남아 문자 등 음소 단위의 음을 표기하는 문자 체계를 모두 가리키는 말이 ‘알파벳’입니다. 미국의 시각예술 이론가이자 역사가인 조해나 드러커가 쓴 <알파벳의 발명>은 알파벳의 기원과 발전 과정에 대한 탐구의 역사를 담은 책입니다. 초기 필사본에서부터 여러 알파벳 형태들을 비교해 놓은 표 작업, 초기 알파벳이 적힌 비석과 도자기 등 유물의 발굴과 연구 등이 두루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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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은 기원전 2000년께 지금의 시리아와 레바논에 해당하는 레반트 지역 연안에서 형성되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최초의 단일한 알파벳이 완성된 상태로 나타났다기보다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여러 개의 알파벳이 병존하면서 발달했고, 그 초기 알파벳 류가 지역과 언어에 따라 변형을 겪으면서 지금의 알파벳 체계로 나아갔다는 것이죠. 지은이는 알파벳 발달사와 그에 관한 연구의 역사를 아울러 소개하며, 알파벳을 둘러싼 언어 헤게모니와 문화제국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를 늦추지 않습니다. 2022년에 원서가 나온 책을 읽다 보면 알파벳의 기원을 연구하는 현장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신뢰가 가는 번역과 완성도 높은 편집, 꼼꼼한 각주와 인덱스는 독서의 만족도를 한층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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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가 아닌 문자 가운데 현재에도 널리 쓰이는 건 한자밖에 없을 거라고, 지은이는 말합니다. 이승훈 서울시립대 교수(중국어문화학과)가 쓴 <한자의 풍경>은 한자가 출현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중국 사회와 문화의 변모와 연결지어 추적합니다.
🐟지은이는 “일본·한국·중국 문자(한자에서 영향 받은 문자)”는 알파벳 문자에서 제외합니다. 옮긴이들은 한글을 “음소문자라는 점에서 알파벳이기도 하지만 다른 알파벳과 발생 계통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알파벳’이 아니기도 한 문자, 역사적 사실로도 발명되었고 개념적 은유적으로도 여러 차례 재발명된 문자”라고 말합니다. 일본의 한국어학자 노마 히데키의 <한글의 탄생>을 함께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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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겨울, 전국 곳곳 광장에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외쳤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였던 최서원(최순실)의 국정 개입 전모가 밝혀지면서 국민은 분노했고, 그 분노는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헌법 제1조’가 단지 종이 위에 적힌 글씨가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빛나고 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76주년을 맞은 제헌절, 최근 정치 상황을 보며 다시금 ‘헌법 제1조’를 떠올린 이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정치는 실종되고 국민의 삶은 방치되고 있는 가운데, 박혁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의 <헌법의 순간>은 ‘헌법’의 정신과 가치를 되새기며 현 정치체제의 문제점과 대안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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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제헌의원들의 숨소리까지 살려냈다 할 정도로 그들의 논쟁을 현재의 무대로 옮겨놓았습니다. 마치 한 편의 연극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바깥에서 저자가 해설사가 되어 저들이 왜 저런 논쟁을 하는지, 현재 시점에서 보면 그때 그 결정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의원들의 발언 가운데 틀린 부분은 없는지 설명해줍니다. 법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하게 여겨지기 마련인데, 이 책을 읽고 나면 헌법이 친숙하게 다가오고 현재 국가 권력 체제의 기원을 명확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제헌의원들의 치열한 논쟁은 단순한 과거가 아닙니다. 헌법을 만든 제헌의원들이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했는지 이해하면서 또 지금 시점에서는 헌법에 어떤 가치를 담아야 할지 참고할 만합니다. 중고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여름방학 동안 자녀와 함께 읽으며 대화를 나눠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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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헌법>은 인권변호사 차병직, 법철학자 윤재왕, 인권변호사 윤지영이 독자들을 헌법의 세계로 이끄는 눈높이 해설서입니다.
🐟<헌법의 상상력>은 역사학자 심용환이 우리나라 개헌의 역사를 살피는 책입니다. 제헌부터 이승만의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박정희의 3선개헌과 유신개헌, 전두환의 국보위 개헌 등을 하나씩 짚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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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학상은 내년 두자리 숫자를 바꿉니다. 30회를 맞습니다. 지난 29회차 대미를 장식한 올해 수상작이 하승민 작가의 <멜라닌>입니다. 유명 IT 회사에서 일하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그래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하 작가는 2020년 이래 장르 소설만 이미 네 권(단행본)을 출간한 경력자입니다. 이른바 순문학에 도전한 작품으로 한겨레문학상까지 거머쥐었습니다.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물었습니다. 이번 책, 잘 나갈 것 같냐고요. 웃음과 함께, 작가의 당당한 출사표가 이랬습니다. “많이 팔릴 것 같아요. 지금 시기 필요한 글이 나오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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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 글’이란 말은 무엇보다 소설 주인공 재일의 삶과 연결됩니다. 구미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란 13살 소년. 공장노동자 아버지가 취업이민 가면서 미국 버지니아 소도시, 저소득층 주로 다니는 셰인빌고등학교에서 유일한 한인 학생으로 새 삶을 시작한 소년이 20대가 되기까지의 성장기. 하지만 여기엔 단 한 줌의 낭만도, 방황도, 신화도 없습니다. 바로 “내 피부는 파랗고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다”는 소설의 첫 문장이 예견시키는 대로입니다. 재일의 타고난 피부색에 일단 놀라고 기피하는 주변 시선이 이내 ‘파란 피부 때문에 동네 집값이…’와 같은 우려와 혐오로 변질된 데가 한국입니다. ‘멜팅 포트’ 미국이 그나마 나으리란 기대가 가난한 노동자 가족에게 없지 않았습니다. 게다 인종, 국적 관계 없이 드물게 파란 피부가 각지에서 태어나는 중이니까요. 하지만 미국에서야말로 재일은 피부, 인종, 부모, 언어, 국적, 성격 등 온갖 소수자성을 ‘열성’으로 접목한 신인류가 됩니다. 소설은 차별의 메커니즘, 차별의 불멸·확장성을 보여주는, 차별 혐오의 성장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겠습니다. 재일은 평이하고 개성 없고, 그닥 ‘소설적’이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멜라닌>입니다. 유구한 ‘차별 서사’에서, 가장 유약한 자의 가장 유연한 꿈을 이 소설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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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1926~1984)는 20세기 후반 이래 소수자 운동을 비롯한 수많은 영역에 영향을 끼친 프랑스 철학자입니다. 푸코의 학문 이력은 지식의 고고학에서 시작해 권력의 계보학을 거쳐 주체의 해석학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 말하기>는 푸코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캐나다 토론토의 빅토리아대학에서 행한 다섯 차례 강연의 원고와 네 차례 세미나 녹취록을 묶은 책입니다. 이 책에는 말년의 탐구 주제였던 주체 해석학의 핵심 개념인 ‘자기 돌봄’(자기 배려)과 파레시아(parresia, 진실 말하기)에 대한 역사적, 계보학적 탐구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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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는 이 토론토 강연이 열리기 전 1982년 전반기에 콜레주드프랑스에서 ‘주체의 해석학’이라는 주제로 일반 강의를 했습니다. 토론토에서 열린 강연과 세미나는 이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를 바탕으로 삼아 그 주제를 더 밀고 나간 것입니다. 이 시기에 푸코는 관심사를 주체의 ‘자기 수양’이라는 문제로 돌려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헌들을 탐구했습니다. 이때 핵심 개념으로 떠오른 것이 ‘자기 돌봄’인데, 토론토 강연에서도 이 자기 돌봄의 역사적 변화를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헌을 통해서 추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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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에 지워지지 않을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인물일수록, 그의 삶과 인간관계 등 세세한 정보들은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위대한 인물에게 위대한 전기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동향인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불세출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를 깊이 연구한 영문학자 이언 심프슨 로스가 쓴 <애덤 스미스 평전>도 그런 책들의 명단에 이름을 올릴 만합니다. 1995년 초판이 나온 이 책은 이후 발굴된 필사본과 서신 등을 포함시켜 2판(2010년)을 내는 등 스미스에 대한 거의 모든 자료를 섭렵해 스미스의 생애와 저작, 연구 주제 등을 망라하고 있는 평전으로 평가 받습니다. 한글 번역본으로 1200페이지가 넘어가는 대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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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고대학 시절 스승인 프랜시스 허치슨, 평생 영향을 주고받은 철학자 데이비드 흄 등 지은이는 스미스와 얽힌 인물들의 삶과 그로부터 받은 영향을 두루 탐문하며, 그것이 그의 주저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에 어떤 자국을 남겼는지, 또 두 책은 어떤 인과관계를 갖는지 톺아봅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정의로 시장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부추긴 것으로 오해받곤 하지만, 지은이는 그의 삶 전체를 두텁게 복기함으로써 그가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 필요하며, 다른 종류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경제적 자유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정의에 주의를 기울이며 행사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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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누리던 따뜻한 온기 없이 홀로 있을 땐 마치 내 안에서 뭔가가 빠져 나간 게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건 혹시 내 마음이 아닐까요? 그림책 <마음은 어디에>에서 일요일 아침 잠에서 깨어 집에 혼자 있게 된 주인공 동수는 딱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빠져나간 마음을 찾으러 집을 나선 동수는 이웃들을 만나 “마음은 어디에 있어요?” 묻습니다. 이웃들은 과연 어떤 답을 줬을까요? 또 동수는 결국 어디에서 마음을 찾아낼까요? 동수의 따뜻한 여정을 함께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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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을 움직이려, ‘평화’로 책방합니다
피스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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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북스’는 평화책방입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 갈등을 화해하는 평화, 다름을 인정하는 평화, 일상을 담아내는 평화…, 평화는 그렇게 지향의 언어이자 그 길을 가는 중에도 존재해야 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지금, 인간에 의해 인간 뒤에 놓였던 비인간 동물, 생명 있는 다른 존재들의 권리를 살피는 일이 포스트 휴머니즘 시대 평화의 담론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평화는 시대를 담는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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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통속 ―명동밥집 12
몇 시간 봉사하고
몇 배를 얻는 길이라면
밥집에 가야 한다
밥집은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밥을 위하여
밥을 찾는 곳
밥을 먹는 사람과
밥을 나르는 사람들이
한통속이 되는 곳
밥집은
밥과 함께
밥이 되어
우리 모두 한통속임을 깨닫는 곳
우리는 밥으로 살고
밥으로 죽고
밥이 되어 떠난다
📖김재홍의 시집 <기린으로 떠난 사람>(현대시학)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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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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