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인간 내면 속 여러 감정들이 등장인물이 되어 사랑 받았던 애니메이션의 속편 <인사이드 아웃 2>가 인기랍니다. 이번에는 1편에는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한다고 하네요. ‘불안’, ‘부럽’, ‘따분’, ‘당황’, ‘추억’ 등인데, 이 친구들은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등 1편의 주인공들에 가세해 사춘기 소녀가 복잡한 감정들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낸답니다.
이 가운데 ‘불안’은 소녀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위기를 만들어내는, 말하자면 ‘메인 빌런’인 셈인데, 한국 관객들에게 유난히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기사보기) 미래에 찾아올지 모르는 예기치 못한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며 다른 감정들을 억누르고 호들갑을 떠는 ‘불안’의 모습에, 많은 관객들이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내몰아온 자신의 모습을 겹쳐본다는 겁니다. 후속편의 새 캐릭터가 그만큼 설득력 있게 잘 만들어졌다는 얘기겠죠.
1편 제작 때 자문을 맡았던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는 <경외심>(2022)에서 <인사이드 아웃>의 후속편을 언급합니다. 다만 새 캐릭터로 ‘불안’이 아니라 이 책의 주제인 ‘경외심’(Awe)을 상상해봅니다. 경외심은 한마디로 “자신 이외의 대상에게 감탄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종알거리는 자기비판적이고 위압적이며 사회 지위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마음 속 자아의 목소리를 잠재움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타인과 협력하고 경이에 마음을 열며 삶의 심오한 패턴들을 알아차릴 수 있는 힘을 얻게 해 준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등장하기엔… 너무 압도적인 감정일 것 같긴 합니다.
|
|
|
“이혼의 경력을 무슨 훈장처럼 가슴에 걸고 남성들의 위선과 이기와 폭력성과 권위주의를 폭로하고 그들과 싸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이혼은 ‘절반의 성공’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된다. 그리고 자못 비장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외친다.” 이런 서술을 담은 소설이 있습니다. 작가 이문열(76)의 1997년작 <선택>입니다. ‘문단 엘리트’의 선구적 백래시라고 해야 할까요, 1990년대 한국 여성문학의 기세를 반증합니다. 이제 여성문학 연구자들은 새 ‘정전’을 만들어 규정하고자 합니다. “1990년대 여성문학은 한국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주변적 위치를 넘어 문학장의 중심부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주 7권으로 묶여 출간된 <한국 여성문학 선집> 얘기입니다.
|
|
|
지난 100여년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을 열고 다지고 이끈 작가 작품을 엄선해 계보화한 대형 기획물로, 남성·주류문학/문단에 의해 주변화해 온 여성문학의 지난 응전을 톺고 이른바 ‘대항 정전’을 표방합니다. 창작도 창작이지만, 연구자들 역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여성문학을 강의실에서 배우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기억을 가진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이 12년 공력을 들여 이번 선집을 완성했습니다.
엄선의 기준, 규모, 완결성에 있어 전례가 없습니다. 작가만 전체 110명(각 권 중복 포함)이 ‘선발’됐고, 시 64편, 소설 63편, 희곡 6편, 노동수기 3편, 평론·시평·기고·기록 등 20꼭지 이상이 구성됐습니다. 당장 근대 여성문학의 원류를 최초 근대 여성소설 나혜석의 ‘경희’(1918)로부터 1898년 황성신문에 두 기혼여성이 투고한 ‘여학교설시통문’으로 앞당깁니다. 황순원이 “동화 같다”고 평가했던 박순녀의 1960년대 소설도 일례가 되겠습니다. 무엇보다 1980년대 노동수기를 쓴 장남수 등을 포함, ‘노동하는 여성 주체적 글씨기’를 계보화하려는 점이 이 선집을 차별화시킵니다. 6할의 지지와 4할의 논쟁을 기대한다는 이 선집. 문학판이 살아 있다면, 지지를 가장한 무관심, 논쟁을 가장한 백래시로 마감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
|
🐟영문학계에서는 1979년 출간된 <다락방의 미친 여자>(The Madwoman in the Attic)를 페미니즘 문학 비평의 주요한 이정표로 봅니다. 그로부터 거의 40년이 지난 2021년, 두 지은이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는 <여전히 미쳐있는>(Still Mad)이란 책을 펴냅니다. 페미니즘 문학의 거대한 줄기를 보여주는 작업입니다.
🐟역사학자 김경미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교수가 쓴 <격정의 문장들>은 조선 후기 상언(上言)에서부터 근대의 신문 투고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공적 발화’를 탐구한 책입니다. 최초의 근대적인 여성 권리 선언인 ‘여학교설시통문’ 이야기도 주요하게 다뤄집니다.
🔗가부장제 봉건 사회에서도…여성들은 발언했다 |
|
|
국정 운영 최고 책임자가 비속어와 욕설이 섞인 말을 서슴없이 하고, 이 말들이 정치적·사회적 문제의 씨앗이 됩니다. <말씨, 말투, 말매무새>란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사건이 있습니다. 저자인 한성우(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2022년 9월 전 국민이 ‘바이든’과 ‘날리면’을 구별하는 듣기 시험을 보아야 했던 날,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그 시점 그 자리에서는 무엇이 되어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았을까?”라는 질문을 품었고, ‘말씨, 말투, 말짜임’에서 답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이 세 가지를 조화시켜 ‘말매무새’를 잘 갖추기 위한 방법을 책에서 제시합니다.
|
|
|
저자는 표준어를 구사하고 어법에 맞는 말을 하는 것이 꼭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상황, 관계, 태도, 내용에 맞는 말과 소통하려는 마음가짐이라고 말합니다. “이 땅의 모든 말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저자는 우리 모두가 ‘말의 주인’이 되고, 아름답고 멋진 ‘말매무새’를 갖추기 위해 어떤 부분을 점검하면 좋을지 구체적 예시를 통해 알려줍니다. 나의 말 습관을 점검해볼 때 참고할 수 있는 책이고,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는 풍성한 한국어의 세계, 우리 말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말’로 인해 자꾸 설화가 빚어지는 대통령이 이번 여름휴가 때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사보기 |
|
|
🐟‘말하기’에 대한 책들이 참 많습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명절 때, 대화하다 갈등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지요. 배우자, 자녀, 부모와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당신에게 대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합니다.
|
|
|
<폐월; 초선전>은 <체공녀 강주룡>으로 2018년 제2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박서련 작가의 신작입니다. 초선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인물이죠. 왕윤의 계략에 따라 절대 권력자 동탁을 제거하고자 그의 수양아들 여포와 이간질하는 데 동원되는 미모의 여성입니다. 박서련의 소설은 삼국지연의의 틀을 대체로 좇지만, 초선을 매우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인물로 재해석합니다.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하는 과정에서도 초선은 적극적으로 계략을 꾸미고 직접 행동에 나섭니다. 초선의 그런 면모는 왕윤을 만나 그의 양녀가 되기 전 성장기에서부터 뚜렷합니다.
|
|
|
모종의 계기로 수양딸에서 가기(집안의 기생)로 신분이 몰락한 뒤에도 초선은 좌절하거나 움츠러들지 않습니다. 전쟁통에 자신을 거두어 수양딸로 삼은 왕윤을 향한 사랑이 그 바탕에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왕윤과 초선의 계략에 따라 여포가 동탁을 처단하고 왕윤이 잠깐 권력을 잡았지만, 동탁 잔당들의 반격에 의해 왕윤 역시 몰락한 뒤 초선은 여포의 첩이 되었다는 것으로 삼국지연의의 초선 관련 서술은 사실상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박서련은 동탁과 왕윤은 물론 여포 역시 죽은 뒤에도 초선은 홀로 살아남아 유유자적 여생을 누렸노라고 적습니다. 자신을 이렇게 저렇게 묘사한 이야기들의 그물에 갇히지 않은 채, 영웅들의 의기와 용맹, 정치적 대의와 명분을 비웃었노라는 그의 자족적 삶은 장자의 양생술을 떠오르게도 합니다.
|
|
|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몫을 분배하는 기준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일을 한 제몫을 주는 ‘노동’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국민’ 등 ‘우리’라는 정체성에 포함된다는 이유로 제몫을 주는 ‘시민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노동’ 대신 날품팔이 같은 불안정 노동이, 이주민이나 난민처럼 ‘시민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의무’를 부과했던 틀이 낡아버렸다면, 그것을 새롭게 만들 기획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인류학자 제임스 퍼거슨은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에서 이런 기획이 어떻게 가능할지 스케치해봅니다.
|
|
|
‘사회적 의무’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그가 주목하는 것은 ‘현존’(presence), 제목 그대로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개념입니다. 비좁은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은 뒤에 탄 다른 승객이 앉을 수 있도록 자기 자리를 내어줍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는 것도, 그들이 ‘우리’이기 때문도, 넘쳐나는 인류애가 있어서도 아닙니다. 그저 자리를 공유해달라고 요구하는 다른 이의 존재 자체가 어떤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죠. 공감이나 연민 대신 귀찮음과 짜증이 거기에 흐르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무의 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낡아빠진 틀 대신 이 ‘현존’을 중심으로 삼아 사회를 새롭게 구성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제안입니다.
|
|
|
🐟제임스 퍼거슨은 전작 <분배정치의 시대>에서 ‘분배정치’라는 개념을 통해 “누가 무엇을, 왜 가져야 하는가”를 새롭게 설정하고자 하는 정치적 질문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
|
|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결정은 ‘합리적’일까요? 전쟁의 참상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합리적인 정복욕에 사로잡힌 악마로 그려내기 쉽게 만듭니다. 다만 그런 가치 판단에 실제 현실은 얼마나 제대로 반영되어 있을까요? 국가의 행위는 개인의 그것과 다르고, 거기에 적용되는 기준 역시 다르다는 점을 따져보면, 국제정치는 쉽게 단순화시키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존 미어샤이머(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국제정치에선 도덕이나 윤리 같은 게 아니 최선의 전략만이 가치를 지닌다고 보는, 이른바 ‘공격적 현실주의’의 대가로 꼽힙니다. 그는 최신 공저작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에서 ‘국가라는 행위자에게 합리적인 것은 무엇인지’ 따지고 들어갑니다.
|
|
|
1차대전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들을 분석하고 유형화합니다. 지은이는 ‘신뢰성 있는 이론에 근거하고, 신중한 결정 과정을 거쳤다면’ 국가 차원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했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뿐 아니라 2차대전 당시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격, 독일의 소련 침공 등의 결정도 합리적이었다고 평가합니다. “국제정치 영역에서 국가가 때로 폭력 행사를 결정하는 것도 그 국가로서는 합리적이었음을 기꺼이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이런 강대국의 합리적 정책결정자들이 “다른 국가들을 다루기 위한 최선의 전략을 알아내려 노력할 뿐” 평화라는 윤리에는 관심이 없다는 지적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나 우리의 입맛을 무척 쓰게 만듭니다.
|
|
|
만회 위한 글이 또 만회를 요청한다
소설가 이승우 |
|
|
소설가 이승우는 등단한 지 6년 뒤에야 첫 창작집을 냈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게 차라리 ‘행운’이었다고 말합니다. 준비가 안된 채 덜렁 등단했기에 자칫 밑천이 드러날 수 있던 상황이었는데, 뒤늦게 갖게 된 습작의 시간이 되레 도움이 됐다는 겁니다. 그는 “전작의 부끄러움을 만회하기 위해 쓴 글이 다시 만회해야 할 글이 되니 글쓰기가 ‘꾸준히’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 정도로 스스로에게 엄정한 태도를 갖고 있는 작가에게, 첫 작품과 첫 책을 돌이켜보는 일은 얼마나 곤혹스러운 것일까요?
|
|
|
이승우 작가가 그밖에 자신의 책들을 꼽아봤습니다. 왼쪽부터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생의 이면>(문이), 프랑스 체류 경험이 담긴 <캉탕>(현대문학), 마흔을 앞두고 마지막 실험 하는 마음으로 썼다는 <식물들의 사생활>(문학동네), 장년이 되어 쓴 <식물들의 사생활> 같다는 <지상의 노래>(민음사)입니다. |
|
|
"제주의 중산간지역인 와산리에 8년 전 터를 잡고 살다가 올해 초에 책방을 열면서 두 딸네의 의견대로, ‘와산’의 ‘누울 와(臥)’자를 풀어 써넣어 ‘누운산책방’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 ‘누운산책방’이라는 이름에는, 손님들이 책방에 머무시는 동안 느끼셨으면 하는 저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상승과 성취를 향해 수직선을 따라 뛰어올라가던 일상에서 내려서서 잠시 멈추어 서기를, 지친 마음을 눕히고 가쁜 숨을 돌리기를, 존재에 대한 답을 찾아 눈을 밝힐 수 있기를, 높이 쌓아 올린 울타리를 거두어 내고 서로 손 내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기사보기 |
|
|
어떤 꿍꿍이
울보는 이목구비가 없는 식물만 키웠다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그는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초저녁이 되자 울보는 냇가와
숲길에 갔다, 식물을 데리고 갔다
처음으로 울보는 울지 않고 말했다
여기는 있잖아, 내가…….
흐르는 물소리의 개입으로
그의 말이 그치자, 식물은
여기서 다음을 기다려야 했다
화분을 조금씩 깨면서
늙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식물은 울보의 깡마른 발목을 잡고
자랐다 무려 십여 년 동안이나
귀가 없어도 들리는 것이 있었다
📖이서하 시집, <마음 연장>(현대문학)에서 |
|
|
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
<한겨레>를 정기구독하시면, 매주 토요일 아침 충실하게 만들어진 북섹션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후원회원 '벗'으로 함께해 주시면,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
|
※ 반복적으로 전달되다보니 반올림(#)책이 스팸메일이나 프로모션함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용하시는 전자우편 서비스에서 반올림책 bookbang@hani.co.kr을 주소록에 추가해주시면 반올림(#)책을 더 쉽게 챙겨볼 수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