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인류세’는 그것을 초래한 인류에게 까다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거대한 존재자 사슬의 정점에 서 있는 듯 다른 사물들을 편의대로 주물러온 인간은 이제 오만한 인간중심주의를 내려놓고 다른 사물들과 동등한 위치로 돌아가야 할 겁니다. 그런데, 버려야 할 그 인간중심주의 속에는 인간이 과거와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한 발판도 포함되어 있는 듯 보입니다.
진태원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율배반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우리 인간을 여느 독특한 실재들 중 하나로 위치시켜야 하고 그런 위치에 걸맞은 윤리와 정치를 실행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책임 있는 윤리와 정치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여느 독특한 실재에 머물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인류세의 정치를 상상하기’, <문학동네 118호>)
지구라는 행성에 끼쳐온 지대한 영향력과 그에 걸맞은 책임과 윤리를 강조할수록, 인간은 되레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크게 존재’하도록 상상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비대해진 인간이 과연 인간-비인간 존재자들을 아우르는 ‘사물들의 동맹’에 함께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들고요.
생태이론가 티머시 모턴은 <저주체>에서 좀 더 단순한 이야기를 던집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인간)가 이해할 수 있기에” 해야 할 일이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당신은 메마른 숲에서 타오르는 담배가 어째서 피워졌으며 어째서 그 자리에 버려졌는지 알 필요가 없다. 당신은 불을 끄면 될 따름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담뱃불을 보고 그것이 무엇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책임이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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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인생을 22년 살아놓고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에세이를 썼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버드걸>을 다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협소한 생각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은 탐조가이면서 환경·다양성 운동가이고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아온 마이아로즈 크레이그가 그의 무지갯빛 삶을 담은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이 어린 소녀가 이런 모든 일들을 할 수 있었는지 놀랍더라고요. 도시 속에서 대체적으로 한국인의 표준적인 삶을 살고 있는 독자들을 이 책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초대합니다. 크레이그가 지나온 삶의 여정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고 다채로우며 역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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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 책에 녹여낸 ‘탐조 가족’의 기가 막힌 탐험 이야기는 한편의 멋진 모험 소설이자 흥미진진한 가족 여행기입니다. 저자의 글은 ‘나는 이렇게 많은 새를 봤다’고 과시하는 글이 아닙니다. 새를 대표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경외하고 자연에 감탄하는 마음이 글 속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또 저자 가족과 저자 자신의 내밀하고 아픈 부분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처절한 기록이면서, 새에 미쳐 일곱 대륙 40개국을 여행한 이 가족이 목도한 세계 곳곳의 자연 훼손 실태 참상을 고발하는 환경책이기도 합니다. 저자 엄마가 양극성 장애라는 정신질환을 가졌고, 엄마때문에 온 가족이 힘들지만, 또 가족은 여행을 통해 서로를 받아들이고 위기도 넘기죠. 탐조책, 환경책, 한 소녀의 성장기, 가족 이야기, 디아스포라 이야기 그 어느 것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책으로 읽는 독자마다 각자의 경험과 관심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을 느껴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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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탐조가이자 조류학자 스콧 와이덴솔의 <날개 위의 세계>는 자신의 직접 경험을 바탕 삼아 철새들의 이동에 얽힌 비밀을 파헤칩니다. 알래스카와 중국 황해 연안, 키프로스, 인도 북동부 나갈랜드 등과 미국 곳곳의 철새 경유지 등을 발로 뛰며 다양한 철새들의 이동 경로를 조사하고 새들의 이동을 가로막는 장애와 문제를 들춰냅니다.
🐟이병우 에코버드투어 대표가 탐조가를 위한 책 5권을 추천합니다.
🐟혹시 수원에 가실 일이 있다면, ‘탐조책방’을 찾아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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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일종의 교통사고”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죠. 비슷한 재난이나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이들은 ‘사고’(accident)라는 말을 앞세웁니다. 그 말에는 더이상 원인을 파고들고 책임을 추궁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자동차 ‘사고’는 그런 프레임이 작동하는 가장 대표적인 영역입니다. 실제론 1920~30년대만 해도 자동차 사고 현장에선 어김없이 “살인”이라고 외치는 군중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시 싱어가 쓴 <사고는 없다>는 여러 실제 역사적 사건들을 추적해 ‘사고’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파고든 탐사 취재를 담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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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사회적 원인을 제공하는 불평등과 차별, 이윤을 앞세워 비극을 만들어내는 권력, ‘사고 유발 경향성’이라며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수작 등을 낱낱이 파헤칩니다. “흑인은 화재로 죽을 확률이 백인의 2배”이고 “원주민은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죽을 확률이 백인의 3배”라고 합니다. 사고는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이처럼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잘못 설계됐거나 붕괴한 결과라는 겁니다. 그래서 지은이는 아예 ‘사고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영미권 공공기관 등에선 ‘사고’란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추세라고 합니다. 지은이는 “단순해 보이는 모든 사고 이면의 권략, 취약성, 고통에 관한 복잡한 이야기를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우리는 매년 수만 명의 목숨을 구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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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숨의 신작 장편 <오키나와 스파이>를 읽는 내내 떠올린 그림이 있습니다. 일본인 화가 아이 미쓰가 1938년 작화한 ‘눈이 있는 풍경’입니다. 내리는 눈(雪)이 아니라, 보는 눈(眼)입니다. 모든 참극을 지켜보고, 보이는 것들 너머를 좇는 눈이 이 소설엔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 속 진짜 살인자는 누구인가, 총검을 든 소년들인가, 군인인가, 인간의 본성인가. 차라리 섬의 운명이라 할까요. 그렇다면 본성을, 섬을 배후 조종한 자는 누구인가, 천황인가, 제국주의인가…. 묻고 응시하는 눈이 소설의 눈인 듯 합니다. 아이 미쓰(1907~1946)는 당시 많은 화가들과 달리 전쟁화를 그리지 않았고, 전장에서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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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또 하나의 그림을 주목하게 합니다. 마루키 이리와 마루키 도시가 그린 ‘구메지마 학살2’입니다. 1983년 작품으로, 일본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김숨 작가가 말하길 이 장편이 시작된 곳입니다. 1945년 4~6월 오키나와에서 죽은 민간인이 히로시마 원폭으로 그해 숨진 이들(14만명)보다 많고, 미군이 상륙해서도, 심지어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미군 스파이’로 내몰아 척살하거나, 집단자결을 명령하거나…. 오키나와와 부속 섬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중 구메지마 섬에서, 소년들과 군인에 의해 미국 스파이로 몰려 죽임을 당한 조선인 일가족이 있습니다. 일왕이 이미 항복선언을 한 지 닷새나 지난 때였습니다. 앞서 섬 주민 13명이 무참히 학살됐습니다. 그 ‘현장’에 김숨이 있습니다. 작가는 극악무도한 살육, 인간의 본성, 비겁하고도 존엄한 생명 따위를 ‘목격’한 대로, 사력을 다해, 씁니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이른바, ‘구메지마 수비대 주민 학살’ 사건을 처음 다룬 소설. 그래서 그림 ‘구메지마 학살2’가 작품의 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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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머시 모턴은 ‘객체지향 존재론’(OOO)과 생태 이론을 독특한 방식으로 하나로 엮는 데 주력해 주목받고 있는 철학자·생태이론가입니다. ‘어둠의 생태학’, ‘자연 없는 생태’ 등 의미심장한 개념들을 내놓기도 했는데, 그중 ‘초객체’(hypersubjects)란 개념이 특히 유명합니다. 초객체란 어떤 범주를 벗어나 시간과 공간에 대량으로 분산되어 있는 것, 이를테면 지구 온난화, 블랙홀, 스티로폼, 항생제, 자본주의 같은 것들을 가리킵니다. 너무 과잉되어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존재자로 인식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그것은, ‘인류세’에 특히 두드러진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지은이는 이런 초객체의 시대를 만드는 데에는 ‘초주체’(hypersubjects)가 큰 몫을 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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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말하면, 인간중심주의를 앞세워 사물을 주무르고 변형해온 인간 종의 어느 측면(예컨대 백인, 남성, 북반구 등등)이 초주체이고 그것이 주로 하는 일은 ‘초월’(transcendence)이란 겁니다. 모턴은 2021년에 내놓은 <저주체>에서 초주체와는 상반되는, ‘저주체’(hyposubjects)의 길을 탐색합니다. 저주체는 사물의 정점에 올라서 통제하거나 지배하는 초주체와 달리 초객체 속에 빌붙어(squat) 다른 사물들과의 상호 연결·침투를 꾀합니다. 지은이는 이것에 초월과는 상반되는 의미로 ‘저월’(hyposcendence)이라 이름 붙입니다. 이밖에도 새로운 상상들이 가득합니다. 난해하지만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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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이라는 제목과 띠지에 박힌 사진만으로도 이 책의 존재감은 뚜렷합니다. 사진의 주인공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로 장애인들의 지하철 승차투쟁을 이끈 이입니다. 노들장애학궁리소 정창조 활동가가 그의 말을 받아 적은 것이 이 책입니다. 출근길 지하철을 멈춰 세우거나 운행을 지연시키는 투쟁으로 그와 동료들은 적잖은 비난과 혐오에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싸움이 “비장애인 모두에게 선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 등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을 통해 얻어낸 성과들은 노인들과 약자들에게 두루 혜택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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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지하철 승차투쟁은 능력주의와 경쟁주의라는 문명의 야만에 제동을 거는 효과 역시 지닌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은 날라리 대학생이었다가 사고로 장애를 입은 그가 장애인운동에 눈을 뜨고 지금까지 그 안에서 활동해 온 과정, 장애인운동의 역사와 현실,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지니는 의미 등을 두루 알게 합니다. 박경석은 말합니다.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존재에 눈을 뜨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우리 사회와 인류의 희망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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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를 중심으로 설계되고 굴러가는 세계에서 태어난 장애인들은 단지 존재하기 위해서 매 순간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삶과 이야기에 더 많은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입니다. 국내외 장애 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만 모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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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좋은 점은 서로를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산다는 것입니다. 편의점에서부터 미용실, 세탁소, 마트, 체육관, 약국…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고파는 등 그저 기능만 있는 곳들이 아니라,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주민이의 동네 한 바퀴>는 서울 강북구 번동에 사는 스물다섯 살 청년 이주민씨가 그림을 그리고 이 작가의 어머니 정재숙씨가 글을 쓴 그림책입니다. 발달장애인인 주민씨가 일상에서 동네 이웃들과 소통하고 어우러지는 모습을 잘 담아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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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5색으로 다채롭게, 웃으며 성장하리
거기,책방다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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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에서 활동하며 만난 다섯 명은 서로를 눈여겨보았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 책과 연결된 공간을 꾸미고 싶은 마음속 작은 소망을 느끼고 있었다. 노노가 옆구리를 찔렀다. “우리 일단 공부를 해봐요. 뭔가 알아야 일도 저지르지요.” 그렇게 지난해 6월 우리는 한배를 탔다. ‘거기,책방다섯’은 노노, 데보라, 앤, 서린, 수수가 함께 운영한다. 올해 4월 정식으로 책방을 열었다. 책방의 슬로건은 ‘5인5색 큐레이션’ 책방이다. 거기에 ‘책 문턱을 낮추는 책방’, ‘여수 여행의 추억을 담는 책방’, ‘책 문화 커뮤니티 공간’이라는 가치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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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법이 없었다
여기, 무릎을 안고 모로 누운
여러 날을 알았으나
모르는 여자
돌멩이의 깨진 얼굴은 영원히 뒹구는 중이어서
처음 있는 헤어짐이 아닌데도 단 한 번의 헤어짐처럼
병원에 가지 마요
나와 같이 아파요
📖오병량의 시집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문학동네시인선 212)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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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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