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부끄러움’에 대한 영화들이라 생각합니다. <플란다스의 개>에는 백수와 다름없는 대학 ‘시간강사’가 교수 자리 하나 얻어보고자 대학 총장에게 1500만원을 ‘뇌물’로 바치러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돈으로 가득 채운 케이크 상자를 들고 지하철을 탄 주인공은 아이를 업은 채 힘겹게 구걸하고 있는 여인에게 몰래 1만원짜리 한 장을 빼 건넵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그렇게라도 만회하려는 듯이. 죄 없는 이를 몰아 죽음에 이르게 만든 형사는 희생자의 피가 묻은 손을 멍하니 바지춤에 닦고(<살인의 추억>), 살인을 하면서까지 아들의 죄를 덮은 어머니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떨쳐내려는 듯 관광버스 안에서 신들린 듯 춤을 춥니다.(<마더>)
따지고 보면, 모든 예술 작품들이 결국은 부끄러움에 대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삶의 세세한 풍경들을 놓치지 않는 문인들은 우리의 부끄러움들을 드러냅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아니 에르노는 ‘임상적 예리함’으로 부끄러움의 실체를 까발립니다. 시인 윤동주는 ‘육첩방’으로 상징되는 ‘남의 나라’에서 “시가 쉽게 쓰여지는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밝은 빛만으로 (…) 세상과 배를 대고” 살아온 “투명의 대명사” 같은 유리창을 부러워하는 ‘부끄러움의 시인’, 김수영도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보다 야멸차고 비열한 인간의 세계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근원적인 부끄러움을 심어놓지만, 이 세계 어디에서도 부끄러움을 가르치진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직 문학으로부터, 예술로부터 부끄러움을 배워야 합니다.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박완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같은 기분과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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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중 관계'라고 하면 갈등과 경쟁만이 떠오르지만, 2000년대까지만 해도 '차이메리카'란 말이 있었을 정도로 두 나라 사이에는 공생과 협력이 두드러졌습니다. 훙호펑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올해 내놓은 따끈한 책 <제국의 충돌>에서 미중 관계가 어쩌다 갈등과 경쟁의 관계가 되었는지 파헤칩니다.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국가 중심의 접근에서 놓치기 쉬운 기업의 구실, 그러니까 '자본 간 경쟁'입니다. AT&T, 엑슨모빌, 보잉 등 미국의 거대 기업들은 90년대 초 세계 자본주의 체제로 진입하려 한 중국의 요구에 따라 우호적인 미중 관계가 이뤄지는 데 핵심 구실을 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중국이 외국 기업들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자국의 수익성을 높이려 하면서부터 미중 관계는 갈등과 경쟁으로 흘렀고, 이제는 '제국의 충돌'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최원형 책기자의 소개로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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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호펑 교수는 전작 <차이나 붐>(2016)에서 중국이 경제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헤친 바 있습니다. 이번 책에서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브레턴우즈 협정으로 만들어진 다자간 경제 기구, 미국의 글로벌 군사 우산이 지배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한 중국의 지정학적 영향력의 투사는 제한적”일 거라고 봅니다.
🐟미국의 외교 정책 엘리트들은 중국이 오래 전부터 미국을 대체하려는 대전략을 수립해왔다고 봅니다.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중국 국장을 지낸 러쉬 도시가 지은 <롱 게임>(2021)은 이에 대한 미국 쪽 분석을 담은 책입니다.
🐟한반도는 미중 관계의 변화에 따라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지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국내 저자가 쓴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2022)은 한국의 입장에서 미중 관계를 분석하려 시도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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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라는 말에는 '무생물로부터 어떻게 인간의 마음 같은 것이 출현할 수 있었나' 하는 의문이 담겨 있습니다. 진화와 언어, 인간의 의식과 마음 등을 연구해온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에서 반 세기 동안 펼쳐온 자신의 연구를 종합적으로 가다듬습니다. 지은이는 "인간의 의식은 많은 부분이 문화적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동물의 의식들과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밈학'(memetics)이라 일컫는데, "유전적 본능에 근거하지 않은 행동방식, 즉 밈(meme)으로 구성된 언어를 공유함으로써 정보의 축적, 재생산, 전달이 가능해 개별적 지능은 물론 문화의 비약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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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국내 출판계에 '노벨문학상 특수'가 실현되고 있습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는 많은 저작들이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 국내 독자들에게도 꽤 친숙한 작가입니다. 사회적 계급 분할이 삶의 가장 깊숙한 곳에 무의식과 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사실을 파헤쳐온 그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문화자본, 상징폭력, 아비투스 같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회학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가 더욱 돋보이는 대목은 글쓰기로 그것을 수행하는 어떤 형식적인 차원입니다. 스웨덴 한림원이 수상 이유로 말했던 "임상적 예리함", 곧 끊임없이 글 쓰는 자신과 글에 등장하는 자신을 분리시키는 엄정함이 그 핵심일 것입니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세계에 대한 문학평론가 한영인의 해설을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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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낸 자료를 보면,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아니 에르노 저작들의 판매량은 직전 1개월에 견줘 28배나 뛰었다고 합니다. <단순한 열정>, <세월>, <빈 옷장>, <남자의 자리>, <집착> 등의 순서로 많이 팔리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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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철학의 최전선을 밀고 나가고 있는 흐름, '신유물론'이란 말을 혹시 들어보셨는지요? 신유물론은 물질을 사유의 핵심에 놓되, 물질을 수동적으로 본 과거의 유물론과는 다르게 물질이 자신의 역량을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발휘한다고 봅니다. 문규민 중앙대 HK연구교수가 쓴 <신유물론 입문>은 마누엘 데란다, 제인 베넷, 로지 브라이도티, 캐런 바라드 등 철학자 4명의 이론을 살펴봄으로써 신유물론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책입니다. 지은이는 존재론적으로 인간과 사물이 동종의 행위자임을 밝히고, '횡단성' 개념을 통해 물질과 의미가 교차하는 차원을 제시합니다. 고명섭 책기자는 이 지점에서 "신유물론은 급진적인 생태학적 상상력을 품은 새로운 윤리학"으로 등장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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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를 떠받치는 필수노동, 그중에서도 돌봄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돌봄에 대해, 그 이론적 뼈대나 실천적 양태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요? 영국의 저널리스트 매들린 번팅이 쓴 <사랑의 노동>은 역사적으로 '비가시화'되고 그 가치가 절하되어 왔던 돌붐을 아주 두텁게 살펴보는 책입니다. 수많은 문헌과 통계를 뒤지는 한편 많은 돌봄노동자들을 만나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 돌봄이 보이지 않는 값싼 노동으로 취급받아온 역사적 맥락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지은이는 돌봄에 대한 "충분한 임금과 적절한 노동조건"은 필수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돌봄을 인간관계의 선물로 보는 문화적 프레임 또한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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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스반테 페보 박사는 DNA 분석 기술을 동원해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 만나 유전자를 교환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 연구 과정이 담긴 책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를 번역한 김명주 번역가는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천생 '이과'로, 통번역계로 삶의 경로를 바꾼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고 하네요. 리처드 도킨스의 팬이기도 한 그는 <신 없음의 과학>, <신, 만들어진 위험>, <리처드 도킨스의 숨 쉬는 과학> 등을 '팬심' 섞어 번역하기도 했답니다. 도킨스처럼 "과학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학서 일기를 좋아하고, 또 그런 책이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 등도 그의 번역작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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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 말고, '이웃'이 소개하는 책, 쩜오책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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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가 소개하는 책 말고 이웃이 소개하는 책을 팔아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책방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다섯이 시작하여 숫자 ‘5’를 붙이게 되었는데 모인 이들이 비(B)급 문화를 좋아하다 보니 ‘1’이라는 완성체가 아닌 ‘.5’가 어울리겠다 싶어서 책방이름 뒤에 ‘.5’를 붙였습니다. 신도시 한 귀퉁이 골목에서 책방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저희도 자신할 수는 없었지만 독서 동아리 책벗과 마을 이웃이 더해져 협동조합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이웃과 함께 만든 협동조합이니 자연스럽게 ‘.5’에는 이웃이 절반을 가져와 ‘1’ 이상의 것을 만드는 공유 플랫폼의 뜻도 담기게 되었습니다.
(…)
내 주변을 돌아보고 함께 작당하고 실험하는 것은 소중합니다. 정신없이 달리느라 놓친 것들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작은 부스러기들이라 외면하지 않고 주변의 티끌을 모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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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멍
이별을 겪은 이에게
멍은 남는 것
때로는 푸른 멍이 아닌
붉은 멍이 생긴다
시간이 흐를수록
멍 자국 더욱 선명해져
아, 내가 이토록 심하게 부딪쳤던가
소스라치게 깜짝 놀라
울게 만드는
📖양광모 시집 <부디 힘내라고>(푸른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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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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