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최후의 인간’은 오늘날 대중문화에서 친숙하기 그지없는 소재입니다. 새로운 역병이든, 핵전쟁이든, 외계인의 침략이든 어떤 이유로 인류 문명이 멸망하고 극소수의 사람들만 살아남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1797~1851)의 소설 <최후의 인간>(1826)은 전염병으로 인해 멸망하는 인류의 모습을 그려, 이런 ‘아포칼립스’ 상상력의 기원이 된 대표 작품으로 꼽힙니다. 최근에는 장-바티스트 쿠쟁 드 그랭빌(1746~1805)이란 프랑스 사제가 쓴 <최후의 인간>(도서출판b)이란 책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작가 사후 출간된 이 책은 메리 셸리 등 당시 영국의 낭만주의 문학가들에도 영향을 줬던, 말하자면 ‘원조의 원조’격인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합니다.
놀라운 점은 이 ‘원조의 원조’ 작품 속에서부터 인간은 세계가 절멸하게 된 데에 오롯이 책임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는 사실입니다. 작품 속에 나오는 ‘운명의 책’은 이렇게 전합니다. “인간들이, 지구가 자신의 품에 안고 먹여 살린 바로 그 자식들이 지구의 축복을 가득 받고 나서는 부모살해를 저지른 것이다. 지구가 너그러운 손으로 내어주었던 풍부한 과실들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했다. 인간은 지구의 골수부터 시작해 생명의 마지막 구성 성분까지를 쥐어짜 내느라 혈안이 되었다. 인간들은 과도한 향락을 즐기다가 자신의 힘을 탕진했고 마침내 활력을 잃어버렸다.”
18~19세기를 살았던 사람들이 이렇게 명확히 지적한 사실을,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과연 언제까지 모르쇠로만 일관할 작정인 걸까요? 우리는 도대체 언제쯤 우리를 둘러싼 ‘유리관’을 깨고 ‘붕괴’를 직시할 수 있을까요?
👉영상보기: 미술관을 습격한 기후행동 활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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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영화나 소설 등에서 이 세계의 멸망이 너무 자주 등장하다보니 우리는 마치 '붕괴'에 대해 익숙한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정말로 붕괴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이 아닌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십니까?
<붕괴의 사회정치학>은 예정된 현실로서 붕괴를 다루는, 이른바 '붕괴학' 책입니다. 우리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열-산업 문명은 너무나 속도를 높인 나머지 자연이 정해준 '한계'의 코앞까지 질주하고 있습니다. 시스템 자체를 파괴할 수 있는 '경계'를 이미 넘어서고 있고요. 문제는 이 시스템은 너무나 강고한 나머지, 바로 그 이유로 붕괴할 것이란 사실입니다. 지은이들은 대규모 붕괴의 기한이 2050년이나 2100년께로 굉장히 가깝다고 점칩니다. 그것도 천천히 평화적인 방식이 아니라 아주 난폭한 방식으로. 이제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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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스템이 강고한 이유는 각 분야들이 서로 단단하고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화석 연료의 고갈 그 자체보다 그와 연결되어 있는 금융 시스템이 먼저 붕괴할 수도 있는 구조랄까요. 금융 시스템을 중심으로 붕괴를 다룬 <붕괴-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러시아 출신 엔지니어 드미트리 오를로프는 소련의 붕괴를 연구해 붕괴를 다양한 특성과 강도에 따라 단계별로 구분한 바 있습니다. <붕괴의 사회정치학>에서도 이 책의 내용이 소개됩니다.
🐟붕괴론은 이제까지와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탈성장 및 전환 논의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관련 논의를 담은 책 두 권을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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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이제 전세계적으로도 멀끔한 도시로 꼽히지만, 그 역사에는 깊은 가난의 흔적이 새겨져 있습니다. '판자촌'의 긴 역사를 톺은 <가난이 사는 집>과 경의선 숲길, 용산 등 비교적 최근에 벌어졌던 재개발 투쟁을 기록한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은 주거를 중심으로 가난의 역사와 현실을 말해주는 책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야 했을까요? 최윤아 책기자가 지적하듯, 중산층의 욕망이 그 배경에 있습니다. "신축 브랜드 아파트, 대형 쇼핑몰, 도심 공원처럼 중산층의 욕망에 이바지하는 많은 공간은, 삶의 터전을 지키고 싶은 가난한 이들의 소망을 제물 삼아 지어졌다." 화려하게 채색된 서울의 표면 아래, 지워지고 뭉개진 사람들의 삶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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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사는 집>을 쓴 김수현 세종대 교수는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 참여했던 도시정책 전문가입니다.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김 교수는 이렇게 써두었네요.
"문재인 정부 기간에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공급이 많았지만, 더 많이 늘어난 수요는 감당할 수 없었다. 어떤 수요가 왜 일어났는가도 중요한 것이다. (…) 좋은 아파트를 더 많이 공급하면 주택순환효과에 의해 장기적으로 저소득층의 주거도 좋아질 것이라는 이른바 주택 필터링 이론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소용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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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다녀간 마지막 기억이 언젠가요? 생애 처음 간 극장은요? 2007년 칸영화제 60돌을 맞아 여러 거장들이‘극장’을 소재로 한 옴니버스 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의 한 단편은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아나’입니다. 눈물을 흘렸던 한 여성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 주변에 묻지요. 흑백영화였냐고. 앞을 보지 못하는 여성의 ‘극장 교감’처럼 극장에선 마법 같은 일들이 제법 일어납니다.
일곱 작가들의 ‘가장 현실적인 꿈’, 그들이 이 세계 조연들의 무대에 불어넣은 36.5도의 온기를 함께 감각하고 추억해보실까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극장은 더 야위고 바투 극장이란 말도 사라지므로 작정하고 꼽은 책 <캐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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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질문은 결국 우주로 수렴됩니다. 우주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우주는 '빅뱅'이란 걸 통해 탄생했다고들 합니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토니 로스먼은 <빅뱅의 질문들>에서 사람들이 흔히 묻는 물음 15가지를 통해 인간이 우주에 대해 지금까지 알아낸 것들을 설명해줍니다.
1929년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부터 팽창의 최초 시작, 그러니까 빅뱅이란 게 주목받기 시작했고, 60년대 우주배경복사 관측은 빅뱅 이론을 정설로 자리잡게 했습니다. 그러나 해명해야 할 것들이 꼬리를 물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이론', '다중우주론' 등의 가설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됩니다. 가장 최근에 주목받는 이론은 '되튕김'(bouncing) 이론이라고 합니다. 우주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는 가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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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쉽게 유전자에 매혹됩니다.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 조지프 헨릭은 <위어드>에서 현대 서구 문명이 번영했던 이유를 문화적 유전자에서 찾습니다. 서북부 유럽국가들과 그들이 이주해 만든 나라들에는 서구(W)의, 교육받은(E), 산업화한(I), 부유한(R), 민주적인(D) 성격이 두드러진다면서, 그 연원을 초기 기독교가 '결혼 가족 강령'으로 친족체제를 해체한 데에서 찾습니다. 친족이 아닌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문화적 유전자를 만들었다는 거죠.
기독교가 금하는 4촌간 결혼 비율과 심리적 성향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해보니 4촌간 결혼 비율이 높은 나라 사람들은 순응과 복종 성향이 높고 개인주의와 독립적 성향이 낮은 등 WEIRD와는 거리가 멀었다나요. 그런데 서구의 번영은 그 무엇보다도 식민 착취에 기대어 가능했던 것 아닌가, 의문을 거둘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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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여행 중 미술관에 자주 들르는 등 미술 애호가였다고 합니다. 라파엘로를 무척 좋아해서, 의자까지 가져다 놓고 <시스티나의 마돈나>를 보려 하다가 미술관 직원에게 혼나기도 했다네요. 조주관 연세대 명예교수(노어노문학)가 쓴 책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한 그림들>은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을 그가 남긴 기록과 작품 세계를 통해 해설해주는 책입니다. <백치> 속 나스타샤가 상상한 그림은 무리요가 그린 <성스러운 가족>일 것이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스메르자코프란 인물은 크람스코이의 그림 <관조자>를 근거로 만들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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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질은 세상에 걷어차인 온갖 것이 잔류하고 남아있는 책방이다. 소형과 중형 가운데에 모호하게 끼어서 낡은 책과 새로운 책이 한데 뒤섞여 있다. 인문사회과학은 자본주의에 걷어차였고, 그중에서도 노동이니 여성이니 환경이니 하는 분야들은 경제, 경영, 자격증에 걷어차였다. 떠밀려서, 혹은 연대하다 보니 여기에 뭉친 아련한 존재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있는 공간이다.
(…)
사실 이 책방 전체가 하나의 큐레이션인데. 세상이 봐주지 않던, 모른 척하던 모든 것이 여기에 가지런히 모여있는데. 여기서 소중하지 않은 책이란 하나도 없는데. 풀무질의 더 깊은 곳으로 안내하기 위한 물꼬라고 자신을 설득해도 마음이 쓰린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살아남고 싶고, 살아남아야 한다. 세상을 향해 너희가 틀렸다고, 우리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외치고 싶다. 악당처럼 끈질기게 남고 싶다. 명륜동 지하에 모인 모든 생각과 글들이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풀무질이 지하에 있는 이유는 결국 세상의 뿌리가 여기 모인 책들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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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짓을 했다 딱 한 번뿐이다 아니다 오전에 두 번 오후에 한 번 잠들기 전에도 그 짓을 했다 반듯이 누워서 했다 서서 했다 엎드려서 했다 반쯤 옆으로 돌아누워서 했다 물구나무를 선 채로 했다 삐걱거리는 간이침대에서도 했다 누에고치 냄새나는 다락방에서도 거실의 닳아빠진 황소 가죽 소파 위에서도 했다 아무도 없는 정원 울타리 나무 밑에서도 했다 하고 또 했다 매일매일 했다 입으로 했다 손으로 했다 옆구리로 했다 몇 시간이고 기어 다니면서 했다 혀를 빼물고 했다 밥을 먹으며 커피를 마시며 전화를 받으면서도 했다 잠들기 전까지 했다 쉬지 않고 했다 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너에게만 말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그 짓을 했다
📖신성희 시집 <당신은 오늘도 커다랗게 입을 찢으며 웃고 있습니까>(민음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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