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아이돌 산업은 흔히 ‘유사연애’를 기반으로 한다고 이야기됩니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일에는 기본적으로 연애 비슷한 감정이 스며 있는데, 다양한 장치들을 동원해 팬덤에 유사연애의 효능감을 주는 등 케이팝 산업이 이를 본격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죠. 오디션 프로그램의 도입 등으로 산업이 더욱 고도화되면서부터는 유사연애가 아닌 ‘유사육아’라는 개념까지 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아이돌 가수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팬덤의 마음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과도 비슷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주로 이성애적 관계에, 또 거기에 뿌리내린 혈연관계에 쓰는 데 익숙해져 왔습니다. 누군가에게 매혹되는 일은 주로 이성애적인 결합으로 풀이하고, 나이 어린 누군가를 아끼고 돌보는 일은 대개 혈연관계를 전제로 삼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것을 초과해버리는 다채로운 사회적 관계들에 대해서까지 저 오래되고 낡은 가족관계에 뿌리를 둔 딱지를 붙이는 데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요?
“사랑으로 팬심과 덕질을 평가하지 말고, 오히려 팬심과 덕질을 통해 사랑을 다시 이해해보자. (…) 덕질이 불완전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불충분한 덕질일 수도 있다.” 케이팝 아이돌 ‘논란’을 통해 공론장을 새롭게 바라본 책 <망설이는 사랑>(오월의봄)에서 봤던, 인상 깊은 말을 다시 한번 더듬어 봅니다. 이미 주어진 관계의 형태가 있어서 거기서 일정한 모양의 사랑이 빚어지는 게 아니라, 언젠가 어디서엔가 나도 모르게 이미 시작되어 버린 사랑이 비로소 관계의 형태를 만들어 나갑니다. ‘역할극’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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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예요. 내가 탯줄도 잘랐고, 자장가도 밤마다 불러줬고, 목욕도 내가 다 시켰어요. 우리 건우는 엄마보다 아빠빠를 먼저 한 애라고!”
얼마 전 종영한 인기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철부지 재벌 3세지만 아들에게만은 따뜻하고 지극정성이었던 홍수철을 기억하시나요? “네 새끼도 아닌 애를 데리고 살겠다고?”라고 묻는 어머니에게 눈을 부릅뜨며 홍수철이 하는 말을 듣다 보면, ‘부모됨’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보게 됩니다. 친자가 아니래도 자기 새끼라 주장하는 게 ‘드라마니까 가능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부모됨의 뇌과학>을 읽고 나면 홍수철의 행동을 뇌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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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부모가 됐을 때 우리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또 아이를 돌보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면 아이를 출산한 엄마가 아니더라도 그 사람의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려줍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다가옵니다. 미국의 건강 및 과학 저널리스트인 첼시 코나보이가 쓴 <부모됨의 뇌과학>을 읽으며 ‘부모됨’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알아가면 어떨까요? 모든 부모는 서툴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또 아이 때문에 힘들기도 합니다. 힘들어하는 자신을 모성애가 부족하다거나 부모로서 자격이 없다고 자책하지 않아도 됩니다. ‘부모됨’은 과정이고 아이와 부대끼며 그렇게 부모가 되어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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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됨의 뇌과학>은 "모든 인간 어른은 보호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말합니다. '부모됨'과 기존의 성별 이분법은 별 관련이 없다는 겁니다. '논바이너리'(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사람) 부모의 경험을 담은 <논바이너리 마더>를 함께 소개합니다.
🔗“남자가 임신한 모양” 수군대도…그러면 어때?
🐟<출산의 배신>은 산부인과 의사가 직접 임신·출산·육아를 하면서 겪은 경험담과 과학적 사실들을 토대로 출산 뒤의 ‘배신감’의 정체를 분석한 책입니다. 생명의 신비로움과 진화생물학적 측면에서 임신·출산·육아 과정을 통해 우리가 ‘관계성’이라는 특성을 형성한다는 사실도 알려줍니다.
🔗산부인과 의사도 임신·출산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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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을 아시나요? 여러 사람들이 농구공을 서로 패스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패스 횟수를 세어보라 합니다. 그러곤 고릴라 탈을 뒤집어쓴 사람이 그들 사이를 지나갑니다. 놀랍게도 패스 횟수를 세는 데 정신이 팔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릴라가 나타났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무주의 맹시'라는 인간의 인지적 약점을 밝혀낸 실험입니다. 이 유명한 실험으로 유명해진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는 새 책 <당신이 속는 이유>에서 속임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가끔 속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접수한 정보를 진실이라 생각하는 '진실 편향'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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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미국 금융가를 들썩이게 한 대형 폰지 사기부터 논문 조작, 거짓된 정치 캠페인 등 다양한 속임수들이 사례로 등장합니다. 지은이는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는 이유를 '습관'과 '후크'라는 두 개의 큰 개념어로 설명합니다. 집중, 예측, 전념, 효율 등 인간의 인지가 작동하는 '습관'은 평소 우리가 사고하고 추론하는 데 필요하지만, "속임수가 뿌리내릴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기도 합니다. 속이려는 사람들은 이 토양에 우리를 매혹시키는 이야기를 심는데, 거기엔 일관성, 친숙함, 정밀성, 효능 등 네 가지 후크가 있습니다. 큰돈이 오가는 미술품 시장에서 사기가 왜 그렇게 흔한지, 논문 속 데이터는 어떻게 조작되는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상품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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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은 인지 능력의 한계입니다. 우리가 언제든 속아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속을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습니다. 지은이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고릴라> 소개도 함께 읽어보세요.
🔗고릴라를 못봤다고요? 확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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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종옥(51)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아홉(2012)에 등단했습니다. 게다 이제껏 단 두 권의 단행본만 펴냈습니다. 지난 12년간 아무렴 많다 할 수 없는 소출입니다. 이번 주 소개해드릴 작품이 그의 두 번째이자 9년 만의 소설집 <개구리 남자>입니다. 2일 전화로 ‘과작이 작업관인가’ 물었습니다. 작가는 “아니”라고 합니다. “부단히 시도하고 있으나 실패한 작품들이 있었다. 그중 장편소설 속 한 꼭지가 이번 단편이 되기도 했다”고 덧붙입니다. 군살이 없네요. 말로는 설명할 도리가 없는, 그러니까 말 너머의 문학주의와 완벽주의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김종옥이 자아내는 호기심이고, 이 호기심은 그의 소설로 극대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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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여러 소설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은 바로 ‘본다’는 행위 자체라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승강기 속 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닌 듯 노골화한 남자의 시선을 세세히 좇는 단편 ‘엘리베이터’나 가출 여고생에 대한 조사 녹화 영상을 집에 가져와 보는 형사(‘골프백’), 학부 조교의 매력에 시선이 붙들려 분열적 심리 상태로 스토킹하는 행정 조교(‘스토킹’) 등의 이야기는 실상 그에게 젊은작가상 대상(2013)을 안겨준 등단작의 첫 문장, 즉 “남우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복도 창틀에 매달려 그 모습을 지켜본 수많은 학생 틈에 그녀도 끼어 있었다”(‘거리의 마술사’)로부터의 다양한 확장이자 ‘응시’의 변주 같습니다. 가장 눈길이 갔던 단편 ‘불타는 아이’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만일 자네가 보지 않으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거야. 거꾸로 얘기하면 자네가 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일을 할 수 있었지.” 👉기사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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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 브라이도티(70)는 21세기 페미니즘 담론의 최전선에 선 철학자입니다. 브라이도티의 이력은 우선 그 광역성으로 눈길을 끕니다. 195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학부를 마치고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8년부터 2022년까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 여성학 교수를 지냈습니다. 사유의 이력도 거주 이력을 닮아 페미니즘 이론부터 신유물론 철학까지 드넓은 영역을 가로지릅니다. 브라이도티의 근년 작업은 ‘포스트휴머니즘’과 ‘페미니즘’의 통합적 사유로 집결됐는데, <포스트휴먼 페미니즘>(2022)은 그 최근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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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포스트휴먼>(2013)과 <포스트휴먼 지식>(2019)을 잇는 포스트휴머니즘 3부작의 완결편이기도 합니다. 브라이도티 논의를 따라잡으려면 먼저 ‘포스트휴머니즘’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포스트휴머니즘은 간략히 말하면 ‘인간 이후의 인간’에 대한 사유를 뜻합니다. 브라이도티가 이 책에서 초점을 맞추는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의 종적 특권을 부정하는 사유, 다시 말해 인간을 인간 아닌 자연물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존재로 보는 사유입니다. 브라이도티는 이 포스트휴머니즘 논의가 올바른 방향을 잡으려면 반드시 페미니즘의 비판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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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친 면의 대화>는 북디자이너 인터뷰집입니다. 그래픽디자인 연구자 전가경이 만난 북디자이너 열 팀(11명)의 작업과 생각이 담겼습니다. 특정 출판사에 소속돼 일하는 인하우스 디자이너와 소속 없이 자유롭게 일하는 프리랜서가 망라돼 있습니다.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소속 출판사의 전통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하고자 노력합니다. 프리랜서는 상대적으로 자기 색깔이 뚜렷한 작업을 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도 편집자나 저자의 주문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북디자이너들은, 인하우스건 프리랜서건, 북디자인의 독립성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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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디자인의 핵심은 표지 작업이고, 속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아울러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표지와 본문을 같은 디자이너가 맡으면 책의 전체적 통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용 문제 등 때문에 본문 디자인은 편집자에게 맡기는 게 일반적입니다. 최근 한국 북디자인의 수준은 전반적으로 높아져서, 대중 단행본과 예술 서적의 북디자인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시피 하답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책’ 선정 등은 여전히 예술 서적에 쏠리는 데 대해 디자이너들은 아쉬움을 표하기도 합니다. 책을 읽고 나면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북디자인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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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공부를 한 뒤 연구원으로 일하던 최성현 번역가의 삶을 바꾼 것은 책 한 권이었습니다. 자연농법의 효시라 불리는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오라기의 혁명>이었답니다. 땅을 갈고 약을 주지 않아도 자연이 준 것 그대로를 수확할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웠을까요. 그렇게 자연농법에 빠져 농사를 짓게 됐으니, 배운 것을 어찌 남과 나누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자연과 생태에 대한 책 20여권을 옮긴 번역가의 길을 걷게 된 배경입니다.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그래서 산에 산다> 등 그가 직접 쓴 책들도 자연의 가르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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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직접 꼽은 주요 작품들의 표지. 왼쪽부터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정신세계사), 야마오 산세이의 <어제를 향해 걷다>(상추쌈), 반야심경 해설서인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불광출판사), 새로운 세상의 비전을 담은 <돈이 필요 없는 나라>(샨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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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쉬’는 인천 ‘책방&문화 거리’ 안 100년 넘은 한옥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언니와 동생이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눈에 보이는 숫자와 목표만 쫓아 ‘쉼’ 없는 삶을 살던 우리 자매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을 놓치며 너무 멀리 도착해 있었습니다. 균형을 잃은 마음은 병들어 가고 있었고, 몸은 큰 탈이 났습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쉼’과 ‘나’를 탐구하는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언니는 그림책을, 동생은 ‘타로와 상담’을 공부했습니다. 마음이 쉬어가는 곳, 마 더하기 쉼표 더하기 쉬, ‘마음 쉬는 시간, 마,쉬’를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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Ⅸ
오월의 바람이 바다에서 춤추네,
기쁨에 들떠 고랑에서 고랑으로
둥글게 돌아가며 춤추고
거품은 날아올라 화환 되어
은빛도 둥글게 공중에 걸쳐 있는데,
내 진실한 사랑 어디에 있는지 보셨나요?
아, 슬퍼라, 슬퍼라!
오월의 바람이 있어 슬퍼라!
사랑은 사랑이 멀리 있어 슬퍼라!
📖제임스 조이스의 첫 책이자 시집 <사랑은 사랑이 멀리 있어 슬퍼라>(아티초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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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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