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철학적 좀비’는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가 1990년대에 제기했던 사고실험입니다. 여기서 좀비는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말하고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 등 물리적·화학적 구성과 기능은 인간과 똑같지만 이른바 ‘내적 세계’만을 결여한 존재를 가리킵니다. 애초 이 사고실험은 인간의 생명 활동을 두뇌의 신경과학적 과정으로 해명하려는 ‘물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제기됐는데, 이후 여러 방면에서 활용되며 다양한 논쟁들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 <우리가 동물의 꿈을 볼 수 있다면>에는 이 사고실험을 존재의 도덕적 근거를 따져묻는 데 활용한 철학자 찰스 시워트의 사례가 소개됩니다. 만약 철학적 좀비가 될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요? 철학적 좀비가 된다면, 운명처럼 우리를 옥죄고 있는 고통이나 슬픔 등으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워트는 바로 그 이유로, 우리 대부분은 철학적 좀비가 되길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것이 대부분 고통과 슬픔일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 닻을 내리고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감정과 감각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증거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와 마찬가지인 존재들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공감할 만한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를 세계에 붙잡아주는 주관적이고, 구체적이며, 정서적인, 즉 한마디로 현상적인 고정임을 뼛속 깊이 느낀다.” ‘내적 세계’는 타인이 어쩔 수 없는 각자의 우주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함께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의 범주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아서, 우리가 신경을 쓸 때(minding)에만 비로소 우리에게 포착될 것입니다.
|
|
|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촉발된 가자전쟁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학살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압도적인 무력을 앞세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살해하고 살던 곳에서 쫓아내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비극적인 사태의 기원으로는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건국에 따른 대규모 실향과 이산을 가리키는 ‘나크바’(대재앙)가 꼽히고는 합니다. 그러나 미국 저널리스트 오렌 케슬러가 쓴 <팔레스타인 1936>은 나크바 이전 1936~1939년의 대봉기가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수난의 진짜 기원이라고 설명합니다.
|
|
|
영국 위임통치 당시 팔레스타인 땅에 유럽의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해 오고 아랍인들로부터 땅을 사들이고 정착촌을 늘려 가면서 유대 국가 수립 움직임이 노골화하자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그에 항의해서 총파업과 시위, 공격 등에 나선 것이 대봉기입니다. 유대인과 아랍인이 보복에 보복을 거듭하면서 3년 남짓 이어진 대봉기로 유대인 약 500명과 영국인 및 경찰 250명 정도가 숨졌고 아랍인 사망자는 5000명에서 8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숨진 아랍인 가운데 최소 1500명은 동족인 아랍인의 손에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봉기가 영국 위임통치 당국과 유대인을 향했을 뿐만 아니라 아랍인들 내부의 분열 및 적대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이죠. 지은이는 대봉기에 관련된 주요 인물들의 행적과 발언을 중심으로 당시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재현합니다. 대봉기가 팔레스타인의 경제적 몰락과 공동체의 훼손으로 이어진 반면, 유대인들은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독자적인 군대를 조직하는 등 1948년 건국을 위한 토대를 놓았다는 결말이 아이러니합니다.
|
|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정파 하마스를 박멸하겠다며 시작한 가자전쟁은 6개월이 넘었는데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휴전 협상이 난관에 처한 상태에서, 미국 대학생들이 시작한 가자전쟁 반대 시위는 유럽으로, 또 교수들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
|
|
동물들도 과연 꿈을 꿀까요? 자기 집 반려견은 꿈을 꾼다고 확신하는 사람도, 문어가 꿈을 꾼다는 말에는 반신반의할지 모릅니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물음이 있습니다. 동물들이 꿈을 꾼다는 건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과학철학, 동물권 등을 연구해온 데이비드 페냐구즈만이 쓴 <우리가 동물의 꿈을 볼 수 있다면>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책의 결론만 먼저 말하자면, 지은이는 "꿈을 꾸는 동물들은 꿈을 꾸기 때문에 도덕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정성과 위엄, 존경심을 갖고 대해야 마땅한 동료 생물"이라 주장합니다. 현대 인지과학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과 의식에 대한 철학적 논의로 이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
|
|
꿈을 꾼다는 것은 쉽게 말해 '내면 세계'라 할 만한 걸 가졌다는 얘깁니다. 동물들이 꿈을 꾼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들은 많지만, 인간만이 내면 세계를 지닌다고 믿는 인간중심주의는 여태껏 이를 단순한 '생리학적 반응'이라 일축해버기 일쑤였죠. 핵심은 비인간 동물들이 인간과는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내면 세계를 지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꿈이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꿈은 꿈꾸는 사람에게 인지적 통제가 빠진 경험적 무대를 제공합니다. 곧 꿈은 주관적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내면 세계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지은이는 이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 핵심 근거가 된다고 주장합니다. 동물들이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과연 동물들을 이전처럼 대해도 될까요?
|
|
|
🐟비인간 동물들이 꿈을 꾼다는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미셸 주베의 (논란 많은) 고양이 연구 등 관련 연구들을 정리한 기사를 함께 공유합니다. <우리가 동물의 꿈을 볼 수 있다면> 서문에는 생물학자 데이비드 실과 함께 사는 문어 이야기가 나오는데, 멋진 영상으로 이를 함께 만나보세요.
|
|
|
지난주 김종옥 작가의 소설집을 계기 삼아 동년배의 ‘스타일리스트’ 남성 작가로 김솔을 한줄 함께 언급했습니다. 마침 기다렸다는 듯 그의 신작 소설이 나왔습니다. 제목은 < 행간을 걷다>입니다. “존재와 존재, 의식과 의식, 기억과 기억 사이에 드러나지 않는 틈새를 들여다보고 싶은 열망에서 선택한 제목”이랍니다. 말마따나 그가 새겨둔 활자만 좇다 보면 독자는 활자의 미로에 갇혀버릴지 모릅니다. 소설의 전통적 구성이 해체되어 있고, 간명한 문학적 진실이란 것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 여러 평자들은 김솔 작품의 ‘비결정론’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기승전 뒤의 결미가 긴요한 독자에게 ‘결정되지 않음’은 그 자체로 불온하겠으나, 그것이 김솔이고 김솔이 쓰는 이유, 김솔을 읽는 이유일 듯합니다.
|
|
|
주인공 ‘나’는 환갑을 앞두고 뇌졸중으로 오른쪽이 마비됩니다. 오른손잡이였던 ‘나’는 “권태와 허무 사이를 오다가다 여생을 소진하게 될 것”이라 비관하지만, 막상엔 본격적으로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화하며 과거를 욕망함으로써 또 다른 자아를 낳습니다. 분열이지요. 주인공이 많아진다는 얘깁니다. 심지어 기억은 기억을 넘어섭니다. “순차적으로 전개되지 않는 인생에서 기억과 망상을 거의 구분할 수 없”는 지경으로서, 그 세계가 바로 또렷한 ‘행’과 ‘행’의 묘연한 사이랄까요. 독자에겐 주인공 주변이 복잡해진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전 ‘비밀의 나’, ‘노동자로서의 나’, ‘걷는 나’ 세 유형의 주인공을 상정해 이 작품을 읽었습니다. 독자들의 주인공은 다를 수있고, 그때 독자가 닿은 결론 또한 달라질 것입니다. 김솔과 독자 사이에 ‘행간을 읽다’가 있습니다.
|
|
|
신유물론은 21세기 세계관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고 있는 철학 이론입니다. 수동적인 죽은 물질이라는 옛 유물론의 물질관을 대체해 능동적인 산 물질이라는 새로운 물질관으로 우주와 인간을 해석하는 것이 신유물론이죠. 토머스 네일(45, 미국 덴버대 교수)은 일군의 신유물론자 가운데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철학자입니다. 네일이 2021년에 펴낸 <객체란 무엇인가>는 ‘객체’(object)를 자신의 신유물론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그 객체에 대한 과학적 탐구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야심만만한 작업입니다. 네일은 우리 시대가 ‘정적 객체’에서 ‘동적 객체’로 객체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라고 진단합니다.
|
|
|
현대 물리학은 미시세계부터 거시세계까지 모든 객체가 운동 중에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아원자 세계는 양자장의 요동으로 가득 차 있고, 우주 전체도 끊임없는 가속 팽창 상태에 있습니다. ‘깨질 수 없는 기본 입자’라는 소립자 상은 깨졌고, ‘부동의 유한한 우주’라는 아인슈타인의 우주관도 무너졌습니다. 객체는 ‘운동 과정 중에 있는 물질의 일시적으로 안정된 구성체’일 뿐입니다. 네일은 자신의 이런 객체론을 ‘운동적 과정 객체론’이라고 부릅니다.
|
|
|
2023년 국내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또 한번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웠습니다. <자살하는 대한민국>을 쓴 김현성 작가는 빠른 속도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공동체 자체가 붕괴되고 있으며, 이는 우리 모두가 “가난으로 가는 고속열차”에 올라탄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대한민국이 소멸하고 있다는 말은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미래에 맞이할 재앙을 ‘가난’이라고 규정해주니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무엇보다 저자는 “한국인들에게 돈이 없다”고 진단하면서 ‘돈이 없음’을 모든 문제의 씨앗으로 봅니다. 흔히 한국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황금 만능주의나 각자도생 문화, 이기주의 등을 꼽거나 특정 정치 세력의 잘못된 정책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
|
|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품성론’이나 정치 세력 탓보다 ‘돈’의 관점에서 현실을 파악해보자고 말합니다. 한국인들은 버는 돈은 적은데 생활하는 데 비용은 너무 많이 들고, 이로 인해 공동체 유지를 위해 돈을 지출하는 것에 모두가 인색하고, 결과적으로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다양한 통계와 데이터, 또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자기만의 시각으로 풀어가는데 꼬일대로 꼬인 한국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각자가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해 논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해법이 좋을지 토론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
|
|
고사리 중에서도 제주에서 나는 고사리는 좋은 품질로 그 명성이 자자합니다. 제주에서는 보통 4월 중순부터 고사리를 캐기 시작하는데, 안개가 많이 끼고 부슬부슬한 봄비가 내리는 '고사리 장마'가 걷힌 뒤가 바로 그때랍니다. 봄이 '온다'가 아니라 '든다'는 표현에서, 겨울 추위가 가시고 봄기운이 찾아오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감각이 느껴집니다. 평생을 제주에서 산 김영화 작가의 <봄이 들면>은 제주의 할머니, 엄마, 아이 3대가 고사리를 캐는 모습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세밀하고 정감 넘치는 그림에서 "봄을 들이고 생명을 들이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
|
|
"협동조합 마중물은 시민단체 ‘시민교육과 사회정책을 위한 마중물’(이하 사단법인 마중물)의 회원들이 주축이 돼 만들었습니다. 2009년 ‘마중물세미나’를 시작으로 시민들이 자기 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온 사단법인 마중물은 마샘을 통해 시민들의 일상 속에 광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기사보기 |
|
|
이야기―차선 긋는 사람들
내가 없어도 된다 미래는
차선 긋는 사람들에게
배웠지 지금처럼 미래는
작은 집에서 큰 집을 상상하고
끼니를 때우고 빨래를 개고
저녁이 오면 몰래 슬퍼하면서
긴 밤이 오길 기다리듯
그래도 된다 미래는
어쩜 저리 반듯하게
선을 그을 수 있을까 나는
부럽다 요란하게
도로 위에 선을 긋는
사람들이 그들의 점거와
그 뒤로 밀려 있는 차량들이
미래는 아니고 그보다
착각에 가깝지 않나 미래는
새로 덧칠한 오래된 선이나
밀려 있는 차량의 운전자들
멀거니 내다보는 차창 밖 노을이
미래에 더 가깝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없어도 된다 미래는
몸을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거나
주린 배를 견디며 침대에 누워보듯
내가 없어도 된다 미래는
하루를 거의 다 보냈다
차선 긋기는 곧 끝날 것이다
📖유희경 시집 <겨울밤 토끼 걱정>(현대문학)에서 |
|
|
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
<한겨레>를 정기구독하시면, 매주 토요일 아침 충실하게 만들어진 북섹션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후원회원 '벗'으로 함께해 주시면,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
|
※ 반복적으로 전달되다보니 반올림(#)책이 스팸메일이나 프로모션함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용하시는 전자우편 서비스에서 반올림책 bookbang@hani.co.kr을 주소록에 추가해주시면 반올림(#)책을 더 쉽게 챙겨볼 수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