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한겨레에 입사해 그분을 ‘선배’라고 부를 수 있게 된 뒤로 줄곧 저의 관심을 잡아끌었던 것은 홍세화(1947~2024)의 ‘당적’이었습니다.
2002년 프랑스에서 귀국해 한겨레에 입사한 홍세화는 그해 12월 티브이토론회에 민주노동당 찬조연설가로 출연해, 회사로부터 “정당에 가입하지 않으며 특정 정당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윤리강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직무정지 당합니다. 안팎으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이 일의 여파는 제가 입사했던 2006년에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막 기자가 된 제게 홍세화는 한겨레 기자와 진보정치 사이의 관계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따져묻는 존재였달까요.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열로 한국의 진보정당 세력이 다양한 부침을 겪는 와중에 홍세화의 당적도 진보신당으로, 다시 노동당으로 그 이름이 바뀝니다. 명망가 정치인들이 떠나버린 진보신당 시절에는 ‘대표’까지 맡습니다. 다만 홍세화가 서 있는 좌표 자체는 변한 적 없는 듯합니다. 진보의 가치를 가장 앞세우지만 그렇기에 범대중적 지지는 받지는 못하는, 바로 그 ‘가장자리’라 하겠습니다. 2022년에는 우리나라 정당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중당적 금지’에 저항하듯 노동당원인 상태로 녹색당에 공개 입당합니다. 신자유주의 폭압에 맞서 적록이 함께하는 생태사회주의가 절실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한편,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진보정치의 역량을 ‘연합’으로 묶어낼 길을 모색하는 나름의 정치적 실천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홍세화 선배의 당적 변천을 되짚으며, “조금 더 낫게 패배하는 자유인이 되자”고 한 말씀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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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에 대한 연구는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되었나 하는 질문을 던지는 일입니다. 연구라는 말 앞에 '비판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려면 그 질문이 비판적이어야, 단순히 말해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연구 행위가 뿌리박은 지식 체계 자체가 현실에 편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경험을 토대로 쌓여 있는 서구중심적인 지식 체계는, 비서구 세계의 지식인들에게 더더욱 모순적이면서도 떨쳐내기 어려운 중력으로 작용합니다.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사상가 왕후이(65)는 이런 모순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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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중국사상의 흥기>는 왕후이의 대표작으로, 서구중심적인 근대성 이론에 대항하여 송나라 때부터 청나라 말기에 이르는 중국 근대성의 경험을 나름대로 종합해낸 책입니다. 대체로 서구중심적인 근대성 이론은 민족국가의 형성과 자본주의 체제의 확장을 선형적으로 구성합니다. 이 이론은 전지구상의 다양한 역사적 경험들을 하나의 틀로 포착하고, 그중 아귀가 맞지 않은 것들은 근대성에 부합하지 않는, 정체된 것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그러나 왕후이는 중국에서는 유럽과는 다른 근대의 경로가 펼쳐졌다고 반박합니다. 무엇보다 서구 이론의 틀에 중국의 사례를 집어넣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다른 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분량에 광대하고 난해한 작업의 내용으로, 전공자에게도 읽기 수월한 책은 아닐 겁니다. 다만 오늘날 민족국가와 자본주의로 이뤄진 세계 체제가 어떤 한계를 맞이하고 있는지, 그속에서 중국이 왜 '문제'를 제기하는 존재로 부상하는지 등 중요한 물음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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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이는 <근대중국사상의 흥기>의 뒤를 이어 20세기 중국의 경험을 종합하는 작업을 펴고 있습니다. 2015년작 <단기 20세기>는 이 '20세기 중국'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왕후이의 비판 이론은 세계 지식계에서도 주목받지만, 시진핑 시대 중국 공산당의 국가 이데올로기와 공명한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한마디로 국제정치의 모순에는 민감하지만 국가 내적 모순에는 둔감하다는 겁니다.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의 글이 이런 지적을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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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는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을 운영하는 24살 유튜버인데, '휠체어를 타는 여자'로서의 일상과 생각을 담은 생기 있는 콘텐츠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는 장애(수식어)+여성(명사)이 아닌 하나의 정체성으로 '장애여성'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는 설명을 듣고, 몸과 삶에 대한 경험을 나눌 '언니'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휠체어 타는 언니들을 찾아가 인터뷰한 기록을 담은 책이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입니다.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6명 장애여성들과 지은이의 이야기 속에는 '내 모습 그대로' 삶을 마주해온 사람들이 품은 용기와 유머, 지혜와 활력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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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누구도 장애가 있는 채로 어른이 될 미래를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언니'들을 찾아나섰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언니'들이 휠체어로 내어 온 길은, 극복하고 성공하고 성취하는 길이 아닙니다. 책의 방점은 그들이 어떻게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고 춤을 추고 소풍과 여행을 떠나며 연인과 사랑을 나누고 어떤 일을 벌이고 성장해왔는지에 찍혀 있습니다. 여행과 스포츠, '19금', 출산, 직업 등 '살아가는' 이야기들 속에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응원하는 말들이 오갑니다. '언니'들은 "내가 할 수 있으니 너도 할 수 있다"고, 지은이는 "'언니'들이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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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때 두려운 마음으로 처음으로 혼자 지하철을 타봤다는 지은이는 지금 대만, 유럽, 호주 등 해외를 누비고 있습니다. 유튜브 '굴러라 구르님' 채널에서 지은이의 근황을 만나보세요. 첫 책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소개 기사, 한겨레와 한 인터뷰 기사도 함께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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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면 악몽을 꾸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에 묘사된 끔찍한 장면들이 꿈속을 들락거리며 잠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노약자들은 특히 조심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르헨티나 작가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의 <육질은 부드러워>입니다. 소설 속 세상은 치명적인 동물 바이러스의 창궐로 동물 고기가 사라진 뒤 단백질 공급을 위해 제한적인 인육 섭취가 허락된 곳입니다. 고기로 먹는 인간은 별도의 사육장에서 사육되고 도축장에서 처리되어서는 정육점을 통해 판매됩니다. 어떤 이들은 집에서 식용 인간을 키우며 수시로 생살을 잘라 먹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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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마르코스 테호는 인간 고기를 도축하는 육가공 공장 직원입니다. 사장의 오른팔로 불리는 그는 거래처에 출장을 다니는 한편 신입 직원의 채용과 교육을 담당하고 있기도 합니다. 독자는 그와 함께 육가공 공장 내의 인육 처리 과정을 지켜보고 사육장, 수렵장, 연구소 같은 거래처를 답사하기도 합니다. 그는 얼마 전 어린 아들을 여읜데다 그 충격으로 아내는 친정에 머무르고 있고, 고령의 아버지는 치매까지 겹쳐 요양원에 가 있습니다. 그의 삶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데, 어느 날 거래처 사장이 그에게 식용 암컷 인간을 뇌물로 보내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채식주의자인 작가는 인육이라는 설정을 통해 인간의 육식 문화를 에둘러 비판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또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상징적인 방식으로 서로를 잡아먹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와 육식 문화는 사실상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끔찍한 설정에 얹힌 묵직한 메시지가 독자에게 둔중한 충격을 가하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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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 후기 최고의 유학자로 꼽힙니다. <여유당전서>라는 이름으로 묶인 다산의 거대한 학문적 성취는 18년에 이르는 기나긴 유배의 세월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다산의 저작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목민심서>이지만, 그 바탕에 놓인 철학 사상을 알려면 <논어고금주>를 보아야 합니다. <논어고금주>는 다산이 오랜 세월 연마한 웅대한 사상이 담긴 <논어> 주해서입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양철학 연구자 김홍경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아시아학과 교수가 쓴 <다산 논어>는 <논어고금주>에 입각해 <논어>를 옮기고 다산의 독창적인 논어 해석을 선명하게 부각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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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고금주> 전체를 영어로 번역해 출간한 바 있는 김 교수는 1200여쪽에 이르는 이 대작에서 다산의 철학사상의 면모를 섬세하고도 장대하게 드러냅니다. 다산의 <논어고금주>는 이 땅에 유교가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나온 ‘완결된 논어 해설서’입니다. 다산이 이 저작을 완성한 것은 강진 유배 생활이 13년째가 되던 1813년이었습니다. 다산 나이 쉰둘, 총기가 정점에 이르렀던 때였습니다. <논어고금주>는 <논어>에 대한 ‘옛날의 주석’(고주)과 ‘오늘날의 주석’(금주)이라는 뜻입니다. 다산은 고주와 금주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주석들을 비판적으로 종합해 새로운 차원의 논어 읽기를 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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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문신 이규보(1166~1241)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사시인 '동명왕편'의 지은이로, 그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으로, 학창시절 시험 공부하며 달달 외던 이름입니다. 강민경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우리가 이름 말곤 잘 몰랐던 이규보의 생생한 모습을 그려냅니다. <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라는 제목에서부터, 천 년 전 인물이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잡힐 듯 다가옵니다. 이규보를 이렇게 잘 살려낼 수 있는 건 그가 거대한 문집을 남긴 데다, 그속에는 스스로 자신의 심정을 진솔하게 담아낸 글들이 많기 때문이랍니다. 과거시험에 합격하고도 벼슬을 못 구해 이리저리 '이력서'를 넣던 모습부터 나오는 배와 빠지는 머리카락을 걱정하는 모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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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는 고려 시대로선 상당히 큰 키인 180cm에 투박한 얼굴을 지녔다고 합니다. "쇠고기만 보면 안 먹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먹는 걸 좋아했고, 당연히 술도 좋아했답니다. 오죽하면 친구가 보내준 술을 "때맞춰 내리는 비"처럼 상쾌하다고 읊었을까요. 문재가 뛰어났지만, "관직을 구하는 내용의 시를 지어 개경의 고관들에게" 바칠 정도로 벼슬길엔 어려움을 겪었답니다. 이규보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 속에서 배어나오는 고려 중기의 세세한 일상사들도 흥미롭습니다. 그가 '생선회'가 등장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던가 등등. 지은이는 이렇게 다채로운 이규보의 모습을 '고려 아저씨'로 형상화합니다. 지은이가 직접 그린 삽화들이 '고려 아저씨'를 더욱 친근하게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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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세계였던 '한국SF', 즐거움 쫓던 그때
작가 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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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 듀나는 90년대 중반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 창작게시판에 단편들을 올리면서 창작작업을 시작했답니다. '한국 에스에프(SF)'라는 말 자체가 낯설던 시절이었습니다. 듀나 작가의 말을 빌리면, "아마추어 한 명이 통신망 게시판에 농담조의 짧은 엽편을 올려도 그게 '한국 에스에프계'에서 제법 중요한 사건일 수 있었던 때"였답니다. 듀나 작가가 첫 책으로 꼽은 <나비전쟁>(<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로 재출간됐습니다) 역시 그런 시대 상황 아래에서 나온 책입니다. '한국 에스에프'가 제법 체계를 갖춘 지금, 올해로 데뷔 30년을 맞은 듀나 작가는 첫 책을 돌아보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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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작가가 그밖에 자신의 책들을 꼽아봤습니다. 왼쪽부터 청소년책 <아직은 신이 아니야>(2013), <너네 아빠 어딨니>(첫 출간 2007), <제저벨>(첫 출간 2012), <평형추>(2021)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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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읽고, 술은 익고, 사람은 있고
책, 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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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술을 마시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생각보다 많아요. 듣고 보니 그래요. 책을 읽을 때는 왠지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거나,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야 될 것 같다는 고정관념이 은연중에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런 이유로 독서 인구가 줄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들었어요. 아직 음주 독서를 경험해보지 못한 분이 있다면 집에서 한번 해보시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적당한 술은 몰입감을 높여주기도 하거든요.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 것처럼요. 좋아하는 술 한잔을 마시면서 책을 읽어보면, 의외의 매력에 빠질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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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옥똑 귀가 트이는
천막 지붕에 또옥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귀가 맑게 트인다
비에 젖어 눈알 빛내는
떡갈잎들 거두며 가을은 깊다
운동장에 무작정 투신하는 빗방울처럼
목숨에 기댄 적 없어도
어머니의 가난과 농성 천막을 물려받았으니
가을을 배웅해도 되겠다는 듯
오목가슴이 쫙 펴진다
강의 들어간 동료들 기다리며
또옥똑 귀가 트이는 빗방울 소리
내 마음에 적힌다
📖이병초 시집, <이별이 더 많이 적힌다>(걷는사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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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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