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출판계에선 ‘팔리는 책을 만들자’는 궁리가 심화되는 모양입니다. 시장 원리에 따르자면, “‘이런 책을 읽고 싶다’는 독자의 수요가 먼저 존재하고 그에 맞춘 상품이 공급”되어야 하겠죠. 하지만 ‘거리의 사상가’라 불리는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74)는 “그런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유유)에서 그는 “책이 먼저 쓰이고 그 책을 읽은 독자가 “이런 책을 읽고 싶었던 거야!”라고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진짜 순서가 아닐까” 지적합니다.
제가 격하게 공감했던 것은 “책은 지금 여기에 없는 필요를 위해 존재한다”는 대목입니다. 일반적인 상품이라면, 책은 그저 그 책이 담고 있는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 팔리면 그만일 것입니다. 그러나 책은 우리를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데려갑니다. ‘지금, 여기’가 아닌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그 예측 불가능함이야말로 책의 본질일 것입니다. 지은이의 말처럼, “책의 본질은 ‘언젠가 읽어야 한다는 관념’ 위에 서 있습니다. 출판 문화와 출판 비즈니스는 이 ‘허’(虛)의 수요를 기초로 존립합니다.”
책이 상품이 아니고 독자가 소비자가 아니라면, 출판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궁리해야 할까요. 지은이는 소비자가 아닌 독자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전도’를 해보라고 말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의 소매를 붙잡고 “잠시만요, 지금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가보지 않겠어요” 설득해보라는 겁니다. 그런 전도 활동에 힘입어 ‘지금 여기’가 아닌 곳으로 떠날 의지를 가진 독자들이 늘어난다면, 책의 빛은 앞으로 오래도록 저물지 않을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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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아파트 공화국'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빽빽한 고층아파트로 이뤄진 대단지 안에서 사는 것이 성공했다는 지위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어버린, 그리고 집이 사는(live) 곳이 아니라 사는(buy) 곳이 되어버린 이 사회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케이 모던'(K-modern), 그러니까 한국형 근대성 같은 게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제1의 탐구과제 아닐까요. 지난해 세상을 떠난 건축학자 고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의 유작 <마포주공아파트>가 바로 그런 작업을 수행한 책입니다. 5.16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이 체제 정당화를 위해 강행한 아파트 단지 건설이 어떻게 우리나라 주거문화를 노정했는지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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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대목은, 마포주공아파트 때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 곳을 공공의 역량으로 제공한다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다는 사실입니다. 지은이는 '주택 공급'이 아니라 높은 건물, 대단지, 현대식 시설 등 '생활 혁명'이 우선이었던 마포주공아파트 이후로, 고층아파트, 대단지, 민간투자 등과 함께 입주자들의 분양대금으로 주택 공급을 해결하는 모델이 정착했다고 짚습니다. 이런 모델 위에서, 집은 사는(buy) 곳인 걸 넘어 이익을 넘겨주는 투기의 대상이 됩니다. 이 이야기는 1980년 당시 최대의 아파트단지로 지어진 둔촌주공아파트가 40년의 생애를 끝내고 재건축되는 과정을 담은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의 중요한 한 축입니다. 둔촌주공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지은이 이인규는 '둔촌주공아파트 단지 생애사'로 서울시립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박철수 교수의 제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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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철수 교수는 한국의 주택건축사와 주거문화를 깊이 연구해온 학자입니다. <한국공동주택계획의 역사>(1999), <아파트의 문화사>(2006) 등 많은 저작물을 남겼으며, 한국 근대의 주택건축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꿴 <한국주택 유전자>(2021)는 온갖 자료를 두루 섭렵한 '작은 아카이브'로 평가 받습니다.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를 쓴 이인규는 둔촌주공아파트의 재건축을 앞두고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인터뷰 등 다양한 자료들을 아카이빙하는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집의 시간들>이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서울기록원의 '둔촌주공아파트 기록 컬렉션'도 함께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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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는 벚꽃 꽃잎들 사이로 환하게 웃으며 ‘셀카봉’을 들고 자신의 모습을 사진찍는 사람들. 벚꽃 명소에 가면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장면이지요. 특히 20~30대 여성들은 남성들보다도 또 다른 연령대 사람들보다도 ‘자기사진’을 많이 찍는데요. 이런 여성들을 사회에서는 ‘셀카족’이라며 자신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과연 이 '젊은 여성'들은 다른 성별, 세대에 견줘 유별나게 과시적인 취미를 지닌 나르시시트인 걸까요? 인류학을 연구하는 황의진이 쓴 <빈틈없이 자연스럽게>는 20~30대 여성들의 사진찍기 문화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왜 사진을 찍는지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저자는 이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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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저자가 만난 수많은 젊은 여성들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또는 에스엔에스(SNS)에서 어떤 반응을 얻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 자기사진을 찍을까요? 책에서 생생한 20~30대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지금처럼 카메라가 대중화되고 사진찍는 문화가 일상화되기까지의 기술 발달 과정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젊은 여성들이 카메라를 소유하고 피사체에서 촬영 주체로 나선 대목에 주목하는데, 새로운 접근 방식이라 신선합니다. 젊은 여성들의 문화에 대해, 또 기술 발달과 여성의 상호작용에 대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재밌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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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자기 사진을 찍는 행위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프로필 사회>는 사진 등 자신의 '프로필'에 집착하는 세태에서 새로운 현대인들의 정체성 구현 방식을 탐구한 책입니다.
🐟10년 넘도록 시간만 나면 자기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는 50대 후반 여성의 경우는 어떨가요? "나이 들어 변해가는 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려는 것뿐"이란 그의 말에서 '자기사진'이란 말의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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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은 대만을 대표하는 작가 궈창성(60)의 국내 첫 작품입니다. 1996년 첫사랑과의 결별에서 착상했다 했으니, 그 아픈 경험이 20년도 훨씬 지나 소설로 겨우 발화한 셈입니다. 어쨌든 계기는 꽤 상투적이지요? 하지만 소설은 욕망과 고통과 상실의 비의적인 고백으로, 정교하고도 정제된 아름다움으로 전개됩니다. 그런 이유에서 철학자 김진영(1952~2018)이 죽음을 앞두고 쓴 일기 ‘아침의 피아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말했었다. 음 하나를 더하면 기쁨이 되고 음 하나를 빼면 슬픔이 되는 것, 그게 인생이야.” 모든 상념을 아울러 ‘자유는 몸과 함께 머무는 행복’이라 갈망하던 ‘아침의 피아노’ 속 통각 내지 통찰의 대만식 장르 변주가 <피아노 조율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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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소설이라 겨우 조금 더 낙관해볼 뿐, 현의 음색만큼이나 묘사하기 어렵고 때로 상충하는 생의 감각이 하나는 에세이로, 하나는 소설로 정교하고도 정제된 아름다움으로 활자화됩니다. 소설 <피아노 조율사>의 원제가 ‘피아노를 찾는 사람’(尋琴者)인 까닭도 미뤄 짐작됩니다. 마흔세살 피아노 조율사와 예순살 사업가 린쌍이 만나면서 서로의 아픈 비밀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기보다 흘러간 과거를 듣는다고 하는 게 맞아. 각각의 건반이 토해 내는 것이 바로 그 순간일 뿐이니까.” 피아노는 과거이고, 피아노를 찾는 자는 과거를 묻는 자라서, 소설은 시간과 화해하려는 몸짓이 됩니다. ‘과거’라는 악보를 찾아 연주해보니, 어떤 화려한 과거도 어떤 누추한 현재보다 화려할 수 없다고, 주인공은 40대가 되어 이제 그 현재를 받아들이려 한다고 한 줄 독후감이 필요하다면 적어볼 요량입니다. 함께 읽어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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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횔덜린(1770~1843)은 19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20세기 독일 현대시의 선구자입니다. 옛 신들이 떠나고 새로운 신들은 오지 않은 ‘궁핍한 시대’를 노래한 영성의 시인이기도 합니다. <생의 절반>은 이 시인이 평생에 걸쳐 쓴 시와 산문을 가려 뽑아 묶은 선집입니다. 횔덜린은 일흔세 해 삶의 절반을 광기의 어둠 속에서 보낸 불행한 시인입니다. 튀빙겐신학교에서 헤겔, 셸링과 함께 공부한 횔덜린은 성직자가 되기를 바란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시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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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 프랑크푸르트 은행가 야코프 공타르 집안의 가정교사로 들어가 그 집 안주인 주제테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 불행한 사랑은 횔덜린 삶과 문학에 지울 수 없는 화인을 남겼죠. 가정교사로 전전하던 횔덜린은 1802년 주제테의 와병과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때 처음 정신에 깊은 균열이 났고, 다시 3년 뒤 두 번째 발작으로 일상의 삶과 영원히 이별했습니다. 광증이 정신을 침범해오던 그 몇 년 동안 횔덜린의 시적 상상력은 최고조에 이르러 수많은 작품으로 영글었습니다. 그러나 횔덜린의 ‘유례없이 독특한 언어’는 당대의 눈을 스쳐 지나갔고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재발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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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나 은행 같은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노인을 종종 봅니다. 카페나 음식점의 무인 주문 기계(키오스크) 또는 마트의 무인 계산대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죠. 노인들은 자주 화가 나 있는 것 같고, 차분하게 설명하기보다는 큰소리로 주장과 요구를 하는 데에 더 익숙해 보입니다. 왜일까요? 일본의 노년 심리 전문가 사토 신이치 오사카대학 명예교수가 쓴 <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는 얼핏 보아 이해하기 힘든 노인들의 심리와 행동 배경을 설명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필요한 요령과 조언을 제공하는 책입니다. 나이 든 부모와 사사건건 부딪히는 아들딸,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하는 노년 독자, 몸과 마음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돌보는 요양 보호사 등이 두루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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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은 실제 나이보다 자신을 훨씬 젊게 생각한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실제 연령과 주관적 연령의 격차가 크다고 하네요. 노년 운전자들이 사고 위험에도 불구하고 운전대를 놓지 않으려 하는 건 자신이 여전히 젊고 운전에 자신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랍니다. 노인들은 보이스 피싱에 유난히 취약한데, 그것은 자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수익을 올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랍니다. 나이가 들고 몸과 마음이 쇠약해지면 돌봄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 노인을 반드시 자식이나 가족이 돌봐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답니다. 공적인 지원을 받는 쪽이 좋고, 가족이 돌보는 경우에도 돌보는 이 자신이 지치지 않도록 여유를 챙겨야 한다고 책은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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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쌓으며 삽니다. 어제까지 쌓은 것이 오늘 무너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휘청이는 높은 성취의 탑을 전전긍긍 보살핍니다. 그림책 <특종! 쌓기의 달인> 속 두 아이도 집안의 잡동사니를 끊임없이 쌓아올립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처럼 전전긍긍 어두운 표정이 아니라 천진하고 해맑은 표정입니다. "좋아하니까요." 쌓는 이유가 달라서일까요? 게다가 이렇게 물건을 쌓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답니다. '툭'이란 소리와 함께 알게 되는 그 진짜 이유에 후련한 해방감마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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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너무나 명분에 치우쳐서 서점을 지키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인류의 자산이자 유산이므로, 책이 있는 공간은 절대 멸종되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논리로 말이다. 진정으로 내가 지키고 싶어 했던 건 책이라든가 서점 그 자체이기보다는, 책을 매개로 한 이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리라. 취향도 취미도 외모도 성격도 그 모든 것이 다 다른 타인이던 우리가 ‘책’이라는 공통된 매개체 하나로 이 공간에서 만나서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애정을 나누었다. 그네들의 마음이 서점을 7년간 살아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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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하나가
돌멩이 하나가
무심코 집어 든 돌멩이 하나가
무심코 던져버린 돌멩이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진 돌멩이 하나가
강심(江心)으로 파고드는 돌멩이 하나가
저렇게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줄이야
저렇게 조용한 아우성으로 흔들릴 줄이야
나는 몰랐네
아무도 몰랐네 강물만이
온갖 더러움 바닥으로 깔고
온갖 역겨움 옆구리로 감추고
밤으로 모르게 흐르는
강물만이 알았네
그 혼자만이 알았네
📖김남주, '김남주 시인 타계 30년' 특집 <푸른사상>(2024 봄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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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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