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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쓴 ‘반성문’이 최근 화제가 되었습니다. 미시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득과 행복, 빈곤과 불평등 등 거시적인 주제들을 다뤄온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79) 이야기입니다. 디턴은 지난달 ‘나의 경제학을 다시 생각한다’는 글( 👉기사보기)에서 “주류 경제학자들”이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는 기술관료일 뿐”이라 일갈하고, “50년 넘게 경제학을 연구한 사람으로선 불편한 과정을 겪으며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자유롭고 경쟁적인 시장, 외생적인 기술 발전의 미덕을 강조합니다. 이런 미덕을 전지구에 퍼뜨린 ‘자본주의 세계화’ 덕분에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경제성장이 가능했고, 그 결과 대다수 인간 삶의 질이 좋아졌다고도 주장합니다. 이념과 정치, 사회운동 등은 이런 자동장치-시장경제 메커니즘-를 방해하는 부정적인 요소로 취급받기 일쑤였죠. 디턴은 이처럼 효율성에 매달려온 주류 경제학의 태도가 “가격과 임금을 결정하고, 기술 발전의 방향을 선택하고, 게임 규칙을 바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소득에 기반한 공리주의”에만 기대어 ‘철학과 윤리’를 외면해왔다고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전지구적으로 사회복지가 무너지고 불평등이 확대되는 현실 앞에서, 이 대가가 느꼈던 경제학의 한계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효율성이 상향식 부의 재분배를 동반할 때, 우리(경제학자)의 권고는 종종 약탈을 위한 면허증에 지나지 않다”는 그의 말이 다른 데도 아닌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행하는 잡지에 실렸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위기가 얼마나 심원한 것인지 다시 새겨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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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찾아오면 온 국민의 머릿속에는 그날의 장면이 자동 재생됩니다. 학생들을 태운 큰 배가 서서히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모습. 그해 그날의 기억은 선명한데 벌써 10년이 지났고,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기획된 책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습니다. 먼저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는 세월호 참사 관련 공간과 그 공간을 지키고 가꿔온 연대자들을 조명한 책입니다.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목포 신항만,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매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4·16기억교실에서 시작해 단원고, 4·16기억전시관,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인 화랑유원지를 지나 다시 기억교실까지 걷는 ‘기억과 약속의 길’, 인천에 마련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희생자들의 유해가 수습됐던 팽목항에 마련된 ‘세월호 팽목기억관’ 등 세월호와 관련된 ‘기억 장소 10곳’을 작가 10명이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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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가 공간을 중심으로 ‘세월호 기억’을 꽃피웠다면, <월간 십육일>은 매달 16일에 ‘그해 그날’에 대한 글을 써 ‘기억과 연대의 울타리’를 마련한 책입입니다. 정보라, 은유, 이슬아, 정세랑 등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들뿐만 아니라 나희덕, 오은, 성동혁, 서윤후 등 다수의 시인들과 인권운동가인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 정혜윤 라디오 피디, 삽화가 임진아, 사진가 이훤 등이 참여해 세월호와 관련한 에세이를 썼습니다. 2016년 ‘세월호, 그날의 기록’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토대를 놓은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지난 10년 동안 쌓인 조사 결과와 각종 기록과 자료 등을 정리해 새로운 관점으로 참사를 분석한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세월호 참사 피해자 유족과 이들을 옆에서 지원한 변호사들이 지난 10년간의 자료들과 수천장에 이르는 판결문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검토하고 정부의 책임에 대해 다루는 <책임을 묻다>도 나왔습니다.
세월호 관련 책은 너무 슬퍼서, 또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해서 애써 외면하려는 분들도 있지요. 그러나 이 책들을 읽어보시면 슬픔의 힘과 기억의 힘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안고 우리 곁에 서 있는 이웃들의 구체적인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답니다. 세월호 10주기가 다가오는데 세월호 관련 책들을 손에 쥐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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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는 본래 손가락이 다섯개였는데 진화 과정에서 손목의 종지뼈가 엄지로 바뀌었습니다. 육식이었던 판다가 대나무 채식으로 식성을 바꾸면서 대나무를 쥐는 데 필요한 ‘여섯번째 손가락’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판다의 진화 경로가 예정된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엄지손가락이 있는 상태로 설계되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신체구조를 변형해 새로운 필요에 부응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판다의 엄지손가락은 “진화적 땜질”의 결과라 하겠습니다. 이탈리아의 진화생물학자 텔모 피에바니(파도바대학 생물학과 교수)가 쓴 <불완전한 존재들>은 불완전함이라는 열쇠말을 통해 생물의 진화를 들여다본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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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복잡한 진화의 역사를 거느린 생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완벽하다는 선입견과 달리 숱한 오류와 시행착오를 간직한 실패와 적응, 모험과 타협의 결과물이라고 책은 설명합니다. 자연이 처음부터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진화 경로를 밟은 대신, 우연과 환경에 맞추어 임기응변의 적응 방식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완전함이 결함이 아니라 가능성의 원천이라는 통찰에 책의 핵심 메시지가 있습니다. 가령 인간의 아이는 영장류 중에서도 가장 미숙하고 무력한 상태로 태어나지만, “학습, 모방, 놀이를 통해 생각과 기술을 물려주는 능력”이 그런 한계를 보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완전함은 “진화적 혁신을 만들어내는 능력”이자 “모든 덧없는 것들의 기원”이라는 지은이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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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와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가 김사과의 새 소설이 출간됐습니다. 김사과를 수식해온 저 말은 어쩌면 작가가 ‘현실 부적응’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가는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에서 왕왕 해외 체류하며 글 써온 자신에 대해 “이국에 머물며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언뜻 그럴듯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상 자청해서 부적응자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 씁니다. 부러 길을 잃고 수상해짐으로써 현실을 적중하려는 작가관 같습니다. 그때의 현실이란 게 뭘까요. 김사과의 작품엔 이런 형상과 어감들이 박혀 왔습니다. 소비를 갈망하고 소비로 대변되는 정체성, 도취와 환상, 그중 특히 ‘중상층’의 양태, 나아가 언어와 도시를 교차하는 글로벌 귀족 내지 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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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가 가치관이고 상품이 감성이며 가격이 인격이 되는 세태를 김사과가 탐험해온 방식과 이유 모두 독창적이라 할 것인데, 새 소설집 <하이라이프>는 더하여 중산층‘다워’지려는 이들의 욕망, 진심과 위선과 비애를 신랄하게 들춥니다. 욕망이 한 가지 색, 하나의 양상일 수 없고, 좋다 나쁘다 양단될 수도 없습니다. 작가가 4일 한겨레에 남긴 말이 참고가 될 법합니다. “미국에서 머물다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거품이 많은 느낌이었어요. 부동산에 비트코인에…. 실제 삶이 어떤지 많이 궁금했어요. 어디서 돈이 나 저렇게 쓰는 건지도요. 꼭 자본주의적 욕망뿐 아니라 더 고귀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는데 풍요로워진 만큼 우리 삶은 고급스러운지, 고급스러운 삶이란 또 뭔지 궁금했어요.” 말하자니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서 얘기되는 2019년께부터 자고 나니 후진국이 되었다고들 하는 지난해까지 발표한 9편이 이 소설집에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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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유교 문명의 기축을 이루는 경서 가운데 하나가 <주역>입니다. <주역>은 '역경'과 '역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역전'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책이 '계사전'입니다.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가 쓴 <도올 주역 계사전>은 이 계사전의 우주론을 치열하게 논구한 책입니다. 지은이의 석사 논문과 박사 논문이 모두 <주역>에 관한 것이었으니,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역을 붙들고 탐구한 결과물이 여기에 담긴 셈입니다. 계사전은 기원전 4세기 이전 춘추전국시대의 사유와 교양이 집약된 ‘천하제일의 명문’이자 장엄하고도 심오한 우주론(코스몰로지, cosmology)이 펼쳐진 저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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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점서에 지나지 않았던 역경을 유학의 성경으로 일으켜 세운 것이 바로 이 계사전입니다. 계사전이 없었다면 유학은 철학으로 발전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계사전은 역경만큼이나 난해한 텍스트여서 그 해석을 놓고 2000여년 동안 무수한 주장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은이는 고대 동북아 사상 지형을 시야에 넣은 채로, 위진시대 왕필에서부터 명말청초의 왕부지까지 주요한 학설들을 두루 검토해 일관성 있는 해석의 틀을 제시합니다. 특히 송대 신유학의 계사전 해석을 논박하는 데서 지은이의 고유한 관점이 두드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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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이 섬기는 것은 신도, 이념도 아닌 '팩트'인 듯합니다. 여기저기서 '팩트로 승부'를 벌이고, '팩트폭력'만큼 아픈 것이 없습니다. 근데 과연 이 팩트는 도대체 어떤 팩트일까요? 팩트를 숭상하는 시대라는데, 왜 진실은 중요하지 않은 '탈진실'의 시대이기도 한 걸까요? <핑커 씨, 사실인가요?>는 스티븐 핑커, 한스 로슬링 등 팩트를 앞세우는 이른바 '신낙관주의자'들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며 '팩트물신주의'를 비판하는 책입니다.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지금 다시 계몽> 등으로, 한스 로슬링은 <팩트풀니스>로 전지구적으로 큰 명성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정조준한 책의 지은이는 놀랍게도 국내 한 대학의 인문학부에 재학중인 학부생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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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신낙관주의자들이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며 제시하는 대표적인 통계들을 하나씩 파고들어 갑니다. 이 '팩트체크'는 '그들이 틀렸고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는 반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팩트는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사회적 결정의 산물"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무언가가 팩트냐 아니냐 따지는 것보다,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진 팩트인지 묻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신낙관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되레 팩트가 아니라, 팩트를 둘러싼 복잡한 의미구조를 모두 생략함으로써 일관된 서사로 엮여지는 하나의 관점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지은이의 작업은 팩트 자체보다 팩트 너머의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또 이를 위해 우리가 팩트 앞에서 겸허해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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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핑커, 한스 로슬링과 함께 역사학자 요한 노르베리, 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 등이 '신낙관주의자'로 분류되곤 합니다. 이성, 진보, 시장경제 등을 옹호하는 이들의 작업은 대중들의 호응을 얻었지만, 이들이 팩트들을 '취사선택'하는 데 기대고 있다는 비판도 거셌습니다. 핑커의 대표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겨냥한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는 그런 비판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무엇을 위해 ‘폭력이 줄었다’ 주장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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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번역은 없다, 다만 아름다움을 옮길 뿐
신유진 번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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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진 번역가는 연극에 빠져서 대학을 중퇴하고 프랑스로 훌쩍 떠났었다 합니다. 어쩌다 그곳에서 만난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의 책 <사진의 용도>에 반했고, 이를 시작으로 에르노의 작품들을 줄줄이 번역한 번역가가 되었습니다. 2022년 에르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팬심' 담긴 그의 번역이 국내에서 다시금 주목받기도 했죠. 대신 그 이후로 에르노 번역은 거절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작가를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번역을 해왔는데, 이젠 다른 '덜 알려진' 작가들을 소개하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고 싶다고 합니다. <열다섯 번의 낮>과 같은 산문집, 소설집 <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라고> 등 작가로서 신유진의 글들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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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직접 꼽은 주요 작품들의 표지. 왼쪽부터 포르투갈 출신 극작가 티아구 호드리게스의 희곡 <소프루>(알마),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브라질 여성 소설가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산문집 <세상의 발견>(봄날의책), 아니 에르노의 인터뷰집 <진정한 장소>(1984BOOKS), 에르노의 대표작이자 번역가가 가장 좋아한다는 <남자의 자리>(1984BOO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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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있어’ 보려 합니다, 어딘가의 독서인을 위해
최선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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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책방이 있었습니다. 독서를 하는 것이 결코 내세울 만한 활동이 아닐 만큼 심심풀이로 책방에 들르고 일상 소일로 책을 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은 우리 독서인-이 글을 읽고 있으면 아마 독서인이겠지요-으로 가득했고 번성했습니다. 어딘가 있을 생존자-라 쓰고 독서인이라 읽습니다-를 염원하며 벙커에서 전파를 잡는 마음으로 책방을 지킵니다. 갖은 통신 연결 시도 끝에 정부군으로부터 간간이 받던 보급품도 신묘한 이유로 올해부터 끊겼습니다. 그것에 기대진 않았지만 그마저 없는 현실이 암담합니다만, 그래도 여기 있습니다. 아직."
👉기사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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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지간
만약 좌파가
자신이 좌파라는 이유만으로
우파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독선에 빠져서
어느새 다시 우파가 된 거다
만약 우파가
자신이 우파라는 이유만으로
좌파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독선에 빠져서
어느새 극우가 된 거다
그런데 나는
우파와
극우에 반대하므로
나는 자신이
우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좌파에
반대한다
나는 그들에 반대하므로
이따금 생각한다
그래도 내가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할 권리가 있다고
📖에리히 프리트(1921~88)의 시,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 독일 대표시선>(창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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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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