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문학을 잘 모르는 제게, 지난주에는 '2022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기사로 써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 루이즈 글릭, 페터 한트케, 올가 토카르추크, 가즈오 이시구로…. 발표날을 앞두고 역대 수상자들을 거슬러 올라가보니 겁이 덜컥 나더군요. 도무지 읽어본 작가가 없는 것입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후보를 일절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박 사이트의 배당률 순위로 후보들을 점치곤 하는데요, 이쪽 사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응구기 와 시옹오, 마거릿 애트우드, 옌롄커, 조이스 캐럴 오츠…. '전통의 강호' 후보들 역시 제겐 그닥 친숙하지 않은 분들이었습니다. 그나마 최근 후보로 많이 거론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올해 갑자기 주목을 끌었던 장르문학의 대가 스티븐 킹, 작품보다는 작품이 불러일으킨 논쟁으로 기억하고 있는 미셸 우엘벡 정도가 친숙한 편이었달까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수상자는 제가 '읽어본' 작가였습니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82). 군 복무 시절, <아버지의 자리>(책세상)(<남자의 자리>(열린책들)로 재출간)를 읽고 당시로선 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부르주아로 살아가고 있지만 노동계급 출신으로 몸에 밴 것들을 의식하지 못하는 부모와, 그런 부모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된 '나' 사이의 비참한 거리. 문체는 건조하고 냉담하지만 저 아래 들끓고 있는 불 같은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던, 고통스럽고도 새로웠던 책 읽기 경험이.
오직 자신이 겪은 것만을 글로 옮기는 에르노의 글쓰기 방식 때문에 언론의 수상 보도에는 "자전적 글쓰기"라는 말이 주로 언급되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썼고요. 그러나 나중에 되새겨보니, 더 중요하게 부각되었어야 할 건 스웨덴 한림원이 정확히 지적했던 대로 에르노의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the courage and clinical acuity)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대상 및 독자와 거리를 두고 객관화할 수 있는 치열함을 놓지 않았기에, 단지 '일기'에 그치지 않은 '거장의 문학'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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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검사에서 별 문제가 없는 아이들이 몇 년째 잠에서 깨어나지 않습니다. 10대 소녀들이 낯선 사람이 자신을 데려가려 한다는 환시를 보거나 발작을 일으킵니다. 증상은 있지만 원인을 규명할 수 없는 질환이 집단적으로 발병하는 이런 현상은 전세계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스웨덴, 카자흐스탄, 니카라과, 콜롬비아 등을 찾아다닌 영국의 신경학자 수잰 오설리번은 자신의 책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에서 이를 '집단심인성질환'(MPI·mass psychogenic illness)이라고 봅니다. 심리적 원인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심인성질환이 특정 지역이나 소규모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서 집단으로 발병했다는 것이죠. '집단'이라는 말은 사회·문화적 배경이 핵심이란 것을 짐작케 합니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난민 아이들의 '체념 증후군'처럼. 최윤아 책기자는 "뇌에는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여러 질병이 코드화되어 있고, 이 코드는 때에 따라 신체 증상으로 발현된다"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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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잰 오설리번은 첫 책 <병의 원인은 머릿속에 있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치부되는 신체적 증상들 상당수가 심리적인 원인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들과 함께 드러내어 주목받은 신경학자입니다. 주제와 관점이 비슷해 "제2의 올리버 색스"라 불리기도 한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체념 증후군의 기록>(Life Overtakes Me)은 스웨덴에서 나타난 '체념 증후군'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미국 컬럼비아대 정신의학 교수 켈리 하딩의 <다정함의 과학> 역시 "한 사람의 건강 상태는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맥락의 결과"임을 말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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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해방 운동이 21세기에 실패하고 있다." 영국의 유명 작가 올리비아 랭은 자신의 새 책 <에브리바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들끓는 혐오가 지난 세기 민권운동과 페미니즘이 만들고 축적해온 것을 허물어뜨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동성애규제가 있던 시기 동성애 가족에서 성장했기에, 랭은 몸이 "가치의 위계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피부색이나 성적 특질 같은 속성에 따라 그 자유를 제한"당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 혁명'을 말했던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1897~1957)를 길잡이로 삼아, 20세기에 진행됐던 몸에 대한 전복적인 투쟁들을 살펴보는 여정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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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쓰지 않음의 문학'을 고뇌했던 김연수 소설가가 신작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로 찾아왔습니다. "더 나빠지는 세계"를 버텨야 할 까닭에 대해 깊이 회의했었다는 그는, 최근 임인택 책기자와의 통화에서 "한결 낙관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소설 속 작품들과 말미에 담긴 '작가의 말' 등에서 그 변화의 양상이 나타납니다. 책에 실린 작품 8편에는 여전히 상실과 죽음 등 비관하지 않을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곳에선 거센 바람이 불었고, 기억은 선택될 수 있다는 작가의 바람이 그 바람에 실려, 시간을 보듬"(임인택 책기자)습니다. '빛으로 가득 찬 이 몸'이 되기 이전 '어두운 시간들'이 가득했다는 것을 응시하는 시선이 우리의 삶을 바꿀 이야기를 길어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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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맞아 국어학자 김병문이 쓴 <'한글 마춤법 통일안' 성립사를 통해 본 근대의 언어사상사>를 소개합니다. 우리말을 글로 담기 위해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 마춤법 통일안'에서 제시한 원칙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그 핵심은 '표준어', '소리대로', '어법에 맞도록' 세 가지입니다. "먹다"의 변형인 "먹어"를 "머거"처럼 '소리대로' 쓰지 않고 '어법에 맞춰' "먹어"로 쓰게 된 과정은, 언어에 대한 서로 다른 사상들이 부딪히는 현장이었습니다. 이는 우리말과 글이 '근대의 언어', 곧 '균질된 단일언어'로 주조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균질된 단일언어를 만들기 위해 “계층과 지역, 세대와 젠더에 따른 수많은 변이와 변종”이 지워졌음을 기억해야, 우리는 비로소 더 나은 말과 글을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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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다가 '저렇게 얇은 땅에 저런 건물이?' 하고 놀라셨던 적이 꽤 있을 겁니다. 건축가 신민재는 이런 건물들을 찾아다닌 기록을 페이스북에 연재해왔는데, 이번에 이를 묶어 <땅은 잘못 없다>를 펴냈습니다. 지은이는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고군분투, 아이디어가 돋보인다"는 의미로 이런 건물에 '뜨아'(뜨거운 아키텍처)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보통의 건물이 들어서기 어렵게 조각나고 변형된 땅들은 철거와 택지개발 등 그렇게 된 나름의 역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은이는 땅은 잘못이 없고, 오로지 사람들의 욕망과 탐욕만이 도시의 모습을 낯설게 만들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런 땅 위에서 지어진 '얇은 집'들의 생명력에 감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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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소개된 '뜨아' 건물들의 위치를 지도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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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들어오는 신간들을 검토하다 보면 곽재식 소설가의 책이 자주 눈에 띄어 놀라곤 합니다. 소설뿐 아니라 과학 작가로서도 활발한 활등을 펼치고 있는 그가 이렇게 다작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궁금했죠. 이번 '나의 첫 책' 코너에서 궁금증을 풀 수 있었습니다. "성공한 작가와 망한 작가 사이에 어중간하게 책이 팔린 작가가 되면 글을 꾸준히 계속 많이 쓰게 되는 듯하다." 특이하게도 곽 작가는 공식 출간되지 않은 <곽재식 단편선>을 '첫 책'으로 꼽았는데요, 독자들이 만들어준 책이라 그 의미가 더욱 깊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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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공정을 뒤로 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책방토닥토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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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듯, 책방을 찾아주는 당신들 또한 그러길 바랄 거라는 기대로 책방이라는 소규모 자영업자의 삶을 시작했다. 5년 전 나와 짝꿍이 가족들에게 3평 남짓한 공간에서 책방을 하겠다는 터무니없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세상에 대해 어렵게 얻은 믿음 때문이다.
(…)
공정 이후의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건 나를 품어주는 공동체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를 귀여워하고 때론 안쓰러워해야 한다. 평등하고 안전한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에게 쑥스럽게 손을 내밀어 서로를 돌보려 할 때 비로소 가능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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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
안쪽으로
날이 휘어지고 있다
찌르지 못하는
뭉툭한 등을 너에게 보이면서
심장이 있는
안쪽으로 구부러지고 있다
팔처럼
날은 뭔가를 껴안으려는 것 같다
푸르고 둥근 줄기
핏줄 다발이 올라가는 목이
그 앞에 있다
뜨겁고
물렁한 것이 와락 안겨올 것 같아
날은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리고 있다
📖김기택 시집 <낫이라는 칼>(문학과지성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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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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