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책에 대한 제 나름의 이론들이 있습니다. “책은 빚이다”라는 게 그 하나입니다. 세상에는 읽은 책보다 읽지 못하거나 않은 책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사실 존재하는 거의 모든 책들이 ‘읽지 못’하거나 ‘않은’ 책들입니다. 책을 읽은 상태를 완성태로 보면, 제 현실태는 늘 아직 읽지 못하거나 않은 책들을 빚으로 인식합니다.
또 다른 이론은 “책은 책등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책장은 늘 읽지 못하거나 않은 책들로 가득합니다. 책이 제게 책등을 보여주고 있지 않으면, 그 책의 존재를, 그리고 제가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항상 읽지 못하거나 않은 책들의 책등이 눈에 들어오도록 신경 씁니다. 그렇게 책들로 하여금 갚지 못한 빚을 독촉하게 하도록 만드는 것은 느슨해진 일상에 긴장감을 줍니다. 조급하진 않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세상에는 언제나 읽지 못하거나 않은 책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존재하는 다채로운 책등들은 결국 하나의 목록을 이룹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 나를 즐겁게 만드는 것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너무 드물지 않게 연락을 해볼 친구들…. 무엇이든 자신과 관련 있는 목록을 만드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 역시 그렇습니다. 반올림(#)책이 꼭꼭 씹은 내용과 함께 매주 꼽아드리는 책들이 님의 목록에 차곡차곡 쌓이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는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를 기회로 삼아 저도 제 목록에 문학 작품들을 대거 추가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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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책 사용설명서
- 매주 월요일 아침 7시 전자우편함에 들어온 반올림(#)책 뉴스레터를 열어봅니다.
- 지난주 나온 신간 가운데 반올림(#)책이 추천하는 5권(이번 주의 반올림)이 무엇인지 확인합니다.
- 어떤 책들인지 대강 파악한 뒤, 👉기사보기로 더욱 풍부한 책 소개를 만나봅니다.
- 미처 책을 볼 여유가 없다면, 책 소개만으로도 어떤 책인지만 파악할 수 있습니다.
- 매주 반올림(#)책 챙겨보는 습관을 들여 여러분의 지성을 반올림합니다.
※ 반복적으로 전달되다보니 반올림(#)책이 스팸메일이나 프로모션함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용하시는 전자우편 서비스에서 반올림책 bookbang@hani.co.kr을 주소록에 추가해주시면 반올림(#)책을 더 쉽게 챙겨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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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은 인간에게 '풍요'를 가져다주는 기술로 주로 홍보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핵폭탄이나 원전 사고 등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낳는 기술이라는 본질이 있습니다. 풍요와 재앙이 한 몸에 있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도대체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어떻게 벌어진 걸까요? 미국 역사학자가 쓴 <저주받은 원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핵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독보적인 핵기술을 갖고 있던 미국이 자국의 패권 구축과 유지 등을 위해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라는 선언을 내걸었고, 그렇게 시작된 원자력 홍보는 핵기술에 대한 '가지지 못한' 나라들의 열망들과 만나 지난 70년 동안 수많은 갈등과 분쟁을 낳았습니다. 최원형 책기자는 "각기 다른 맥락으로 핵기술이 가져다주는 풍요에 매달리고 있는 한반도 남쪽과 북쪽에서 특히 되새겨봐야 할 내용"이라고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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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소련은 '동서'로 갈라 서서 냉전을 벌였지만, 핵기술을 보유한 최강대국으로서 같은 이해관계를 지녔으며 실제로 서로 놀랍게 닮기도 했습니다. 케이트 브라운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학 교수는 2013년 저작 <플루토피아>(푸른역사)에서 '원전 도시'로서 라이벌이면서도 서로 닮은 미국의 리치랜드와 러시아의 오죠르스크 두 도시에 대한 연구로 이를 풀어낸 바 있습니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 프로그램을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받아들인 나라는, 역설적이게도 미국에 의해 원자폭탄 피해를 입었던 일본입니다. 경찰 관료, 언론 사주, 유력 사업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쇼리키 마쓰타로(1885~1969)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합작이 그 배경에 있었는데, 2011년 일본 원전 사고 이후 이런 사실들이 집중 조명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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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면 침팬지와 닮긴 했지만 조금은 다른, 두 발로 서서 걷고 숲속이 아닌 초원에서 살았을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랫동안 가장 오래된 인류의 조상으로 여겨져온 '루시'(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그랬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두 발로 걷게 되며 자유로워진 손의 발달이 뇌의 발달로 이어지는 등 챔팬지와 다른 길을 걷게 됐다는 식의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루시보다 100만년 앞선 440만년 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류 화석이 발견되면서, 상황이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화석의 주인 '아르디'(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는 직립보행과 나무타기 양쪽에 모두 적응해 있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화석맨>은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아르디 발굴팀을 쫓아다니고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이 문제적인 화석의 발굴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두텁지만 흥미진진하게 써내려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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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시인 정호승이 돌아왔습니다. 등단 50주년을 맞아 펴낸 새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와 함께. 14번째 시집입니다. 출간 기념 북토크에서 시인은 그 50년 동안 "15년 넘게 시를 한 편도 쓰지 않은 기간이 있다"며, "어떤 의미에서 (나는) 시를 버렸는데, 시는 날 버린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세월의 깊이 때문에 임인택 책기자는 이번 시집에서 "종착을 향한 탐찰의 기운이나 온도", 특히 "기다리고 용서하고 슬픔도 비극도 품어내며 스스로 길이 되려는" 태도를 읽어냅니다. 또 연달아 실린 두 시로부터 시인이 걸어온 길을 추려보기도 합니다. "사람은 지는 꽃을 따를 때/ 가장 아름답다"('꽃을 따르라')-"꽃이 질 때 너도 나와 아름다워라"('매화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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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의 시는 인터넷에도 널리 퍼져 있는데, '강변역에서'가 강변옆에서', '밥그릇'이 '개밥그릇'으로 되어 있는 등 '언어 파괴'가 무척 심하다고 합니다. 시인은 "진정한 독자는 원문을 찾아 읽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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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출판계에서는 올해를 독일 관념철학의 대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의 해(👉기사보기)로 꼽습니다. 그동안 헤겔 권위자인 고 임석진 명지대 명예교수의 번역에 주로 기대어 헤겔의 대표 저작들을 읽어 왔는데, 새로운 번역 출간 프로젝트가 많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김준수 부산대 철학과 교수가 헤겔 청년기를 종합하는 주저 <정신현상학>(1807)의 새로운 번역본을 펴내면서 그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습니다. 가독성을 앞세웠던 임석진본과는 달리, 원문에 충실한 직역을 번역 원칙으로 세웠다고 합니다. <정신현상학>이 난해한 책으로 꼽히는 것은 이 책이 만들어진 과정, 그러니까 절반의 내용을 먼저 마감한 뒤 헤겔의 생각이 크게 달라진 데에서 비롯합니다. 무엇이 핵심인지, 고명섭 책기자의 해설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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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백인 남성이 "왜 아무도 나와 섹스하지 않느냐"며 자신의 '섹스할 권리'를 주장합니다. 아마 사람들은 "누구도 당신과 섹스할 의무는 없다"고 하겠죠. 그런데 백인 남성이 아닌 트랜스젠더여성이나 장애 여성, 아시아 남성이 이런 주장을 한다면 어떨까요? 인도계로 미국인 철학자 아미아 스리니바산(1984년생)의 첫 책 <섹스할 권리>는 '미투' 운동 이후 '동의'와 '취향'을 기준으로 삼는 세상을 겨냥한 논쟁작입니다. 그의 사유는 안전하고 편안한 대답 대신 불안전하고 불편한 질문들을 향합니다. 최윤아 책기자는 "동의되지 않는 측면도 있지만, 정치·사회적 백래시에 포위된 오늘날의 페미니즘에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곳곳에서 돌파구처럼 느껴지는 문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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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달팽이들과 달리 헨리는 몸에서 끈적한 점액질이 나오지 않습니다. 줄기를 타고 저 위로 올라가고 싶은데, 점액질이 없는 헨리는 미끄러져 땅에 떨어지기만 할 뿐이었죠. 제 몸보다 무거운 나뭇잎을 들고 가는 개미를 본 헨리는 열심히 운동을 해서 힘을 키웁니다. 과연 헨리는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열쇠가 된다"는 메시지가 담긴 그림책 <달팽이 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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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강구안 골목에 사람 꽃이 피었습니다,
봄날의책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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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던 2014년. 우리도 전혁림미술관 옆 폐가를 사들여 ‘봄날의책방’을 열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없어서 4평짜리 방 한 칸만 책방으로 꾸미고 나머지는 북스테이 공간으로 운영했는데 3년 후 우리는 20평 집 전체를 책방으로 바꾸었다. 그 후 많은 작가들이 책방에서 독자들을 만났고, 책방 인근에 작은 가게들이 문을 열면서 카페 하나 없던 오래된 마을은 사진가와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번역가가 함께 사는 ‘핫플레이스’로 변화했다. 우리도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결과였다.
(…)
“마을을 살리고 싶으면 그곳에 책방을 열어라.” 어떤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가 칼럼에서 쓴 이 문장은 사실이었다. 우리뿐 아니라 대한민국 곳곳에서 책방이 마을을 바꾸고, 골목 상권을 살리고, 새로운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가 힘을 잃으면서 지금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책 축제의 중심에는 그 지역의 대표 책방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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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서
슬그머니 볕이 그늘로 들어온다
팔월 목전에는 볕도 버거운가보다
그늘은 기꺼이 자리를 내주고
처지와 사정을 서로 묻고 답하며
처음 만난 사이에도 알록달록한데
지나가던 바람이 어디 길을 묻길래
책을 덮고 내가 먼저 가르쳐준다
📖전욱진 시집 <여름의 사실>(창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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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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