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먼 미래에 광활한 우주 공간을 건너 외계인과 마주치게 된다면, 우리는 가장 먼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악학자 이미경이 쓴 <음악, 밀당의 기술>( 👉기사보기)을 본 뒤, 저는 당황하지 않고 일단 춤을 함께 춰보자 권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케이팝 댄스처럼 복잡한 동작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단순한 박자에 맞춰 함께 몸을 까딱까딱 흔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습니다.
지구상에도 인간처럼 ‘박에 맞춰’ 행동할 수 있는 동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합창하는 개구리 등 외부 자극에 ‘동조’하는 것 자체는 가능해도 주기적인 외부 자극으로부터 박을 추출하고 거기에 자신의 행동까지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앵무새와 바다사자 정도에서 그런 모습이 발견되긴 했다지만, 아직까진 인간만이 갖춘 능력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형태도 습성도 예측조차 하지 못할 외계인이라도, 우리와 함께 박자를 탈 수 있다면 적어도 인간에게 적대적인 존재는 아닐 거라고 한숨 놓을 수 있을 듯합니다. 기왕이면 외계인이 ‘그루브’를 타는 모습까지도 기대해 봅니다. 기계처럼 정확한 것만을 추구하지 않고 상대의 눈치를 보며 적절하게 ‘밀당’도 할 줄 아는, 그러니까 상대와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란 얘기일 테니까요.
이런 상상을 하다보니 한편으론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입때 인간이 인간에 대해 밝히고 축적해온 지식들은 하나같이 인간이 번성한 핵심 역량을 ‘공감’과 ‘사회적 협력’에서 찾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전쟁과 폭력, 그로 인한 불평등을 천형처럼 안고 살아갑니다. 함께 그루브를 탈 수 있는 존재에게, 사랑과 평화는 왜 이다지도 어려운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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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 별 그리고 무한한 창공…. 광막하고 신비로운 우주는 인류에게 줄곧 경외감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신화적 상상력을 동원하든 신앙과 교리의 체계 안에 욱여 넣든 인간은 늘 우주를 관찰하고 해석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고 그 결과를 글과 그림, 건축과 조각 등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현대의 과학 지식에 비추어 모자라거나 그릇된 인식을 담은 것이라 할지라도 옛사람들이 표현한 우주의 형상을 만나는 일은 신기하고 즐겁습니다. 미국의 작가 겸 전시 기획자 마이클 벤슨의 <코스미그래픽>은 바로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드문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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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 구리 조각과 양피지 책자에서부터 최신 컴퓨터 시뮬레이션 그래픽까지 인류가 상상하고 파악한 우주의 형상을 300여 개의 도판으로 보여줍니다. 무지와 독선으로 사태를 호도했던 인류가 과학 기술과 지식의 발달에 따라 우주의 실체에 접근해 간 과정이 일목요연합니다. 때로 당대의 과학 수준을 뛰어넘는 것처럼 보이는 그림들이 있는가 하면 현대미술 작품을 연상시키는 그림들도 있습니다.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1845년의 나선은하 그림, 20세기 러시아 화가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을 떠오르게 하는 300년 전 영국 우주론자 로버트 플러드의 천지창조 이전 상태 그림, 잭슨 폴록의 추상화를 연상시키는 우주배경복사 시뮬레이션 그림 등은 우주의 신비와 함께 그 우주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해 온 인간 상상력의 신비 역시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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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벤슨은 예술과 과학을 융합하는 작가, 프로듀서로, 특히 우주 공간 속 행성들의 풍경을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한 전시 작업들을 해왔다고 합니다. 그의 작업이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는 영상 몇 개를 함께 공유합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우주 탐사 작업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대중이 우주를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과학 대중화'에 힘썼던 인물입니다. 그가 출연했고 그의 아내인 앤 드루얀이 작가로 참여했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는 오늘날 인간들이 우주를 생각하기 위해 기대는 현대의 고전이라 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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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그림 <키스>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클림트의 이 그림은 화려한 황금색과 어지럽고 아기자기한 도상들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이 "인간 발생 첫 3일 동안의 과정을 보여준다"고 하면 어떨까요? 해부학자 유임주 고려대 의대 교수는 첫 책 <클림트를 해부하다>에서 클림트가 살았던 19세기 말 빈, 그리고 클림트의 작품 세계를 통해 과학과 예술이 긴밀하게 상호작용했던 현장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유 교수는 2021년 동료들과 함께 <키스>를 의학적으로 분석한 논문을 발표해 세간의 이목을 끈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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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가 살았던 19세기 빈은 새로운 지식과 예술이 태동하던 곳이었고, 당시 지식인들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 등 새롭게 발견된 과학적 사실들에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진화론을 독일어권에 소개한 에른스트 헤켈은 자연의 여러가지 형상들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클림트의 작품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키스>에 그려진 노란색 둥근 원 도상은 난자의 모습을, 둥그런 원들이 뭉쳐 있는 모습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생긴 접합자가 세포분열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작품들을 두루 살펴봐도 이런 생물학적 도상들이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지은이는 클림트가 당대에 밝혀진 의학적 사실을 통해 인간의 생로병사, 개체는 죽어도 인류의 생명력은 유전된다 등의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고 풀이합니다.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현장이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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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신경과학자 에릭 캔델은 <통찰의 시대>(2012)란 책에서 19세기 말 빈을 무대로 과학과 예술이 어떻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인간의 무의식을 파헤치기 시작했는지 살펴본 바 있습니다. 유임주 교수는 2006년에 강연에서 캔델의 아이디어를 접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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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모로코로 가봅니다. 북아프리카 지중해 국가, 유럽과 이슬람 문화가 접목된,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 나라엔 카사블랑카만 있지 않고 셰프샤우엔, 페스, 탕헤르, 메케네스, 깊고 광활한 사하라도 있지요. 그리고 그 나라가 버렸던 한 작가가 있습니다. “모로코 문학을 현대화한 작가” “믿을 만한 모로코인 캐릭터를 처음 창조한 작가”로 평가받는 데도 말이죠. 드리스 슈라이비(1926~2007). 국내 첫 소개되는 그의 첫 소설 <단순한 과거>의 몇 구절만 보면 알 만합니다. 작중 아버지는 말합니다. “…이 아이들은 성스러운 종교를 배우게 하시오. 애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애들을 죽이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내가 묻으러 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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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과인”이라 칭하는 아버지는 가족의 율법이요, 일상의 관습이자 공기입니다. 화내지 않는 ‘군주’를 자처합니다. 하지만 복종만 해야 하는 주인공의 처지는 다릅니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19살 청년 드리스는 라마단 뒤 외칩니다. “세상에! 29일 동안 허리띠를 졸라맸습니다. 술도 마시지 않고, 섹스도 안 하고 지랄 같은 전통을 지켰습니다. 선하고 선하신 알라시여, 이제 먹고, 마시고, 섹스하겠습니다!” 위선과 억압, 폭력이 가득한 기성세대와 국가는 이렇게 이해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쳐서 잠에 빠져 내일을 잊어버렸다. 부유한 상인들은… 그 돈으로 특별히 처녀임이 보장된 열세 살의 매력적인 소녀를 살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 옆에서는 네다섯 명의 부인들이 가슴을 드러내고…. 우아! 꿈이 넘쳐 났다.” 그래서 드리스는 이제 ‘반란’을 도모합니다. ‘살부’하고자 하는 반역의 욕구가 바로 이 소설입니다. 그의 반역은 성공할까요. 작가는 어쨌건 20년 넘게 모로코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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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1864~1920)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비롯해 수많은 저술로 현대 학문에 심원한 영향을 준 독일 사회학자입니다. 베버의 저작 가운데 일반인에게 가장 널리 읽힌 것으로 <직업으로서의 과학/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꼽을 수 있는데요, 국내에도 여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습니다. 이 저작은 두 편의 강연문을 묶은 책입니다. 두 강연 가운데 앞엣것(‘직업으로서의 과학’)은 1917년 11월 뮌헨에서 열렸고, 뒤엣것(‘직업으로서의 정치’)은 1년여 뒤인 1919년 1월 같은 곳에서 열렸습니다. 이 두 편을 묶은 저작이 베버 전문가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의 새 번역 작업을 거쳐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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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영 교수가 번역하고 도서출판 길에서 펴내는 ‘막스 베버 선집’ 네 번째 권입니다. 이 번역본에는 본문 분량에 육박하는 상세한 옮긴이 주석과 베버 학문 세계 전체를 조망하는 가운데 강연 내용을 해설하는 긴 해제가 달려 있습니다. 두 강연문을 읽어 가는 데 길잡이 노릇을 합니다. 옮긴이는 그동안 ‘학문’으로 번역돼 오던 말(Wissenschaft)을 ‘과학’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런 변화를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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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김덕영이 번역하고 길 출판사가 펴내는 '막스 베버 선집' 출간은 2021년 시작해 이제 네 권째로 접어들었습니다. 첫 출간 당시 김덕영의 인터뷰에서, 뚝심 있게 자기 갈 길만 묵묵히 가는 학자의 힘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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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의사가 저자인데 제목은 <출산의 배신>입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임신·출산·육아에 관한 글을 쓴다면, 신비로운 아이 탄생의 과정과 숭고한 모성의 힘 또 산후조리나 신생아 돌봄에 관한 이야기를 장광설로 늘어놓을 법도 한데 이 책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자 오지의는 진료실에서 “왜 애 낳는 게 이런 거라는 걸 아무도 말을 안해줬을까요?”라고 말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보며, 각종 지식이 풍부한 자신은 임신·출산 과정에서 당황하지도 않고 억울함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산산이 깨집니다. 산부인과 의사에게도 임신·출산 과정은 배신의 연속이었고, 그는 수시로 억울함을 느꼈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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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의학적 지식을 잘 버무려 '배신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석합니다. 자궁의 용량이 최대 1000배까지 느는 등 급격한 신체적 변화는 물론이고 모든 것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고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지니 여성들은 존재론적 위협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요. 또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 임신·출산 과정에는 많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는 모성을 거부하거나 폄훼하는 대신 임신·출산·육아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힘듦을 줄여나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짚습니다. 생명의 신비로움을 일깨우고, 진화생물학적 측면에서 임신·출산·육아라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관계성’이라는 특성을 형성한다는 사실도 주지시킵니다. 임신·출산·육아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솔직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저자의 서술 방식에 배꼽 잡고 깔깔깔 웃으며 볼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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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신음 아래 영근다"
문학평론가 김병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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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현역인 문학평론가 김병익(1938년생)은 기자 출신으로서 한평생 "기자처럼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해왔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그는 군사독재 시절 계간지 <문학과지성>을 발간하고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를 설립하여 한국 현대 지성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죠. 그의 첫 책은 1973년 말 출간된 <한국문단사>인데, 그는 1908년 신문학 형성부터 1970년까지 우리 문단의 사람과 사건들을 다룬 이 책이 "억압의 만연과 독재의 횡포 속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자유와 탄압, 그 공포와 보신의 승강이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말합니다. "젊고 소심"했던 그 기자는 이제 "세상은 밝고 세월은 자유로움을 향하고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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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익 문학평론가가 이후 쓴 자기 책들을 꼽아봤습니다. 왼쪽부터 <지성과 반지성>(1974), <상황과 상상력>(1979), <페루에는 페루 사람들이 산다>(1997), <글 뒤에 숨은 글>(2004)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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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 안에 책방 있어요, 재미 찾는 책방!
아직독립못한책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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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을 이렇게까지(?) 할 줄 모르고 초반부터 책 리뷰를 너무 많이 올렸더랬다. 세상에… 그게 아독방의 정체성이 되어 지속적인 리뷰 압박을 받을 줄이야. 책을 읽고 나서 내 방식대로 리뷰를 올리는 게 좋았다. 내가 생각하는 책방이란, 책을 소개하는 것이 가장 주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시작했고 가볍든 무겁든 책 이야기를 하게 됐다. 내가 읽고 나서 좋았던 책을 소개하면 그 책이 좀 더 팔리는 현상도 발생했다. 아마 광고가 아니라 진심으로 읽고 올린 글이란 걸 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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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나무 밑의 사랑
한 나무가 있는데…그 나무 아래에는 작은 난장이들의 왕국이 있거든…그곳에도 법이 있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고랑이 있고…해도 해도 끝없는 일감이 있는 거라…그 나라에 햇빛은 또 그렇게 늘 반짝거려서…구름을 닮고 싶은 잎사귀들의 가파른 눈빛…그런 것도 있기는 있을 거라…제 속의 허기를 견디지 못해 움켜쥐는 뿌리와 그 사무치는 잎, 잎의 눈 먼 사랑 따위…그래, 그런 거겠지…한 나무 아래…아주 흔들리지 않는 아래, 더 아래…태연한 얼굴로 어제의 사소한 바람은 불고…세 그루의 후박나무, 그 아래…작고 작아서 없는 듯 아주 없는…그런 말없음표 따위
📖장옥관의 시, <시사사>(2023 겨울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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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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