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0: 해방 공간과 "아무도 아닌 자"들

2023. 12. 3.

2023년 12월4일 월요일

님,

역사학자 정병준은 <1945년 해방 직후사>(돌베개)에서 해방 직후 미군정이 집행했던 정치자금의 규모를 따져봅니다. 한국에 임시정부를 수립할 목적으로 열린 미소공동위원회가 무기한 휴회된 1946년 5월, 미군정은 김규식과 여운형의 ‘좌우합작운동’을 지지한다고 했지만 각 정치인들에게 건넨 미군정의 정치자금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한다는 겁니다.

당시 친일파 중심의 ‘대한경제보국회’라는 단체는 대출을 받아 이승만에게 1000만원의 정치자금을 건넸는데, 이는 미군정청 사령관 존 하지의 특별명령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는 ‘좌우합작운동에 쓰라’며 김규식에게도 정치자금을 건넸는데, 그 금액은 이승만에게 건넨 돈의 3분의 1도 못 되는 300만원에 그쳤습니다. 좌우합작운동의 다른 일방이었던 여운형에게는 한푼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기 미군정은 조선공산당원들에게 위조지폐 240만원어치를 찍어냈다는 누명을 씌워 탄압한 ‘조선정판사 위폐 사건’을 일으킵니다. 정리하자면, “미군정은 이승만에게 +1000만원, 김규식에게는 +300만원, 김구와 여운형에게는 0원, 박헌영에게는 -240만원을 제공”한 셈이란 겁니다.

미군정이 정치세력마다 다르게 줬던 정치자금 규모의 차이, 그러니까 정치권력을 불하(拂下)했던 원칙은 오늘날 한국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제는 거기서 과연 어떤 합리성을 찾을 수 있는지, 더 나아가 광범위한 인민 대중의 뜻과 일치하는지 여부이겠습니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아무도 아닌 자”들에게 규정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일제의 패망이 곧 한국의 해방과 독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둘을 연결지은 것은 한국인들의 열망이었습니다. 몽양 여운형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건준)의 활동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조선총독부로부터 '치안 유지' 협조를 부탁받은 여운형과 건국동맹(건준의 전신)은 정치범 석방, 집회결사의 자유 보장 등을 확보받으며 '해방 공간'을 창출해내고, 총독부로부터 실질적으로 행정권을 이양받아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알다시피 당시의 거대한 희망과 열망은 거대한 충돌과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역사학자 정병준(이화여대 교수)의 <1945년 해방 직후사>는 해방 뒤 몇 개월, 더 나아가 1년여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고드는 책입니다.

책은 새로운 사료와 주장들을 담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미군정-한민당-이승만이 해방 직후부터 한국에 대한 국제 사회의 합의(다자간 국제 신탁통치)를 거스르고 '독립적인 과도정부'를 세우려 시도했다는 주장입니다. 지은이는 이를 "알려지지 않은 반탁운동"이라 부르는데, 이런 시도는 무엇보다 해방 공간 속 한국인들의 열망을 배신했다는 점에서 '현대 한국의 원형'이라 할 만합니다. 이밖에 건준에 참여하지 않은 채 밖에서 건준을 흔들기 위해 집요하게 공격한 한국민주당(한민당) 계열의 행태, 조선총독부의 공작, 미군정의 '문고리 권력' 등 해방 공간을 비틀어댄 적나라한 힘들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확인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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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은 새로운 사료의 발굴을 통해 역사를 보는 눈을 새롭고 입체적으로 가다듬어 온 역사학자로 꼽힙니다. 몽양 여운형, 우남 이승만 등 한국 현대사 속 인물들을 깊이 탐구해왔고,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역작을 펴낸 바 있습니다.

🔗이념에 묻힌 한국전쟁의 진실 캐다

🔗“현대사는 문서 한 장의 힘이 폭발적…끈질기게 매달려야 행운오죠”

🔗“집안 독립운동 지원하다 노상객사한 이기종 삶 복원했죠”

🐟현대 한국을 만든 (미군정으로부터) '불하받은 권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해방 공간 속 별다른 검증이나 자격시험 없이 이뤄진 공직 불하일 것입니다. 법학자 김두식 경북대 교수는 <법률가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창비)를 통해 한국 법조계의 탄생 과정을 복원한 바 있습니다.

🔗‘법조 엘리트’의 허약한 뿌리를 캐다

‘남성중심 사막’에서 ‘정희진이라는 오아시스’를 만났습니다. 이 오아시스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이라는 언어로 앞으로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현실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실천 전략을 명료하게 말해줍니다. 2005년 <페미니즘의 도전>을 통해 남성 언어로 길들여진 한국 사회에 균열을 내며 여성주의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이 18년 만에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으로 페미니즘의 최전선에 섰습니다. 게임회사의 홍보 애니메이션을 두고 최근 일부 이용자들이 '여성 캐릭터 손 모양이 남성혐오(남혐)를 상징하는 집게 손'이라는 주장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페미니즘 사상검증'이라 할 정도로 한국 사회가 얼마나 남성 중심으로 짜여진 사회인지 드러내어 줍니다.

‘광각 렌즈’를 달고 한국 사회를 넓게 조망하되, 신자유주의적 구조가 공고화되면서 달라지고 변화된 여성들의 현실과 여성주의 담론에 대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각 사안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주는 점에서 이 책은 ‘페미니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성운동 진영이 기대어온 피해자 중심주의, 여성성 자원화, 성적자기결정권 등도 매섭게 비판합니다. 이 책은 남성 중심 사고방식과 남성 중심 언어에 익숙해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남성들이 우선으로 읽어야 할 책입니다. 또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겼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두루뭉술하게만 알고 있는 여성들도 읽어보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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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소개한 책이니,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성차별을 '젠더 갈등'으로 둔갑시키는 사회 아래에서, '능력주의 신화'에 포획된 여성들은 자신을 둘러싼 구조적 차별을 말하는 대신 자신을 더 갈아 넣는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하는 현실을 짚은 책 <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봄알람)를 함께 읽어보세요.

🔗‘능력주의’ 사로잡힌 당신…오늘도 갈아넣고 있나요?

2019년 발생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산불은 가히 공포스러웠습니다. 북반구까지 질식될 듯한 느낌, 산불이 과연 잡히기나 할까 싶은 의심으로 지켜보는 세계인들은 함께 속을 태워야 했습니다. 화마가 잡히기까지의 8개월 동안 지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그 재앙적 산불에 가까이 있었을 작가들의 고통은 또한 어땠을까요. 상대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유마힐의 태도가 문학의 시대 윤리라면, 어떤 작가들의 가슴 속에서 불은 여전히 진화되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들끓는 꿈의 바다>는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리처드 플래너건(62)이 당시의 대규모 산불을 모티브 삼아 쓴 소설입니다. 하지만 ‘산불=기후위기=디스토피아’라는 도식이나 날렵하게 형상화해보려는 건 아닙니다.

이야기의 몸통은 죽음을 앞두고 이제 그만 보내달라 간구하는 80대 프랜시와 그를 살리겠다며 연명치료에 매달리는 40~50대 자식들이 구성합니다. 그 둘이 갈등하는 시각, 오스트레일리아는 불타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자연은 소멸 중이거나, 사실상 이미 ‘죽은’ 뒤에야 살리겠다 붙잡는, 하여 돌봄도 폭력이 되고 마는 사태 따위가 중층의 의미로 전개됩니다. 이 지능적 소설이 목표하는 바는 명확해 보입니다. 무력한 이들끼리의 처절한 대립을 통해, 마침내 죽이려는 자들의 세계를 자각시키고 감각시키려는 것이지요. 2014년 부커상을 받았던 작가가 산불 뒤 내놓은 신작의 속내입니다. 읽히는 소설이 아니라, 읽어야 하는 소설의 무게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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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보들레르(1821~1867) 이후 19세기 후반 프랑스 시단은 스테판 말라르메, 폴 베를렌, 아르튀르 랭보 같은 빼어난 시인들을 배출했습니다. 불문학자 오생근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프랑스 현대 시 155편 깊이 읽기>는 보들레르에게서 출발하는 프랑스 현대 시를 소개하고 해설한 두 권으로 된 책입니다. 첫 권에는 보들레르부터 랭보까지 19세기 시인들의 시와 해설이 담겼고, 둘째 권에는 프랑시스 잠에서 시작해 폴 발레리와 기욤 아폴리네르를 거쳐 초현실주의 시인(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루이 아라공)을 지나 근년에 타계한 이브 본푸아와 필리프 자코테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시인 14명의 시와 해설이 실렸습니다.

시로 읽는 프랑스 현대 시 역사라고 할 만합니다. 17살에 첫 시집을 내고 20살에 시 쓰기를 그만둔 랭보의 짧고도 강렬한 창작 이력은 ‘견자의 시학’을 탄생시켰습니다. 견자(le voyant)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자를 뜻합니다. 상징주의가 보들레르에게서 시작됐듯이 견자의 시학도 보들레르에게서 비롯했습니다. 1871년 랭보는 편지에서 “시인은 견자가 돼야 한다”고 단언했습니다. 또 이 편지에서 보들레르야말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고 들리지 않는 세계를 듣는 ‘최초의 견자’라고 찬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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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에 차나 커피 한잔을 즐기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초콜릿과 사탕, 또는 와인을 포함한 이런 기호 식품들은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삶에 여유와 윤기를 더해 주죠. 그런데 이 식품들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입에까지 도달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지요? 경북대 지리교육과에 재직하고 있는 조철기 교수의 책 <기호와 탐닉의 음식으로 본 지리>는 기호 식품의 생산과 소비 과정에 도사리고 있는 모순과 불합리를 일깨웁니다. 차나무와 홍차, 사탕수수와 설탕, 카카오와 초콜릿, 기름야자와 팜유, 바나나, 새우, 포도와 와인 등 일곱 가지 식재료 및 식품을 대상으로 삼습니다.

가령 소비자가 바나나를 구입하기 위해 지불하는 돈의 43% 남짓은 소매업자가 가져가고, 플랜테이션 농장 소유주가 17% 가까이를 챙기며, 숙성업자와 운송업자가 각각 13% 남짓을, 도매 및 수입업자가 10% 정도를 확보하는 데 반해 바나나 재배와 수확, 세척, 분류, 포장 등에 관여하는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3.3%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게다가 기호 식품 생산 현장에서는 아동노동과 노예노동 같은 끔찍한 관행이 유지되고 있고, 대규모 환경 파괴 역시 수반됩니다. 책을 읽을수록 그동안 별 생각 없이 즐겨 왔던 기호 식품을 더는 편한 마음으로 즐기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호 식품을 완전히 끊어야 하는 것일까요? 지은이는 조금 비싸더라도 생산자의 몫을 더 챙겨 주고 환경에도 덜 해로운 방식으로 생산된 공정무역 식품을 소비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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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무책임하게 바다에 버린 그물에 걸려 죽을 뻔한 아기 바다거북이 간신히 어부에게 구조됩니다. 어부는 바다거북에게 '행운'이란 뜻의 일본어 '요시'를 이름으로 주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쿠아리움에 데려갑니다. 요시가 그곳에서 20년 사는 동안, 인간들은 요시를 바다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다시 바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요시를 강하게 훈련시키는 것이 먼저였죠.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책 <지구 최고의 수영 선수 바다거북>(보물창고)입니다. 다시 바다로 나간 요시는 26개월 동안 쉬지 않고 무려 3만7천킬로미터를 헤엄쳐 고향인 호주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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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는 책을 채우는 나와 너, 우리

책방공책

🏠서울특별시 구로구 연동로 287 (항동, 그린빌라상가동) 2층

🔗instagram.com/bookroom_note

"책방 이름에 관해 물어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공책은 ‘비어 있는 책’으로 아무것도 없던 종이에 누군가의 이야기가 채워져 그것이 책으로 만들어진다는 뜻입니다.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가 책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방공책에서는 고객들의 작은 책을 만들어 드립니다. 바로 ‘미니공책’인데요, 책을 사면 북멤버십공책을, 북카페를 이용하시면 음료쿠폰북을 만들고 그것을 책방에 비치해 둡니다. 북멤버십공책에는 구매하신 책의 목록과 날짜를 적어드리고, 음료쿠폰북에는 드신 음료와 날짜를 적어드립니다. 중간중간의 혜택들까지 모두 적어둡니다. 처음에 출근카드로 만들어 드렸던 북멤버십공책은 현재 500권이 다 되어갑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분들이 북멤버십공책을 만들고 이용하고 계십니다. 또한 이분들 중 몇 분은 ‘스페셜책방지기’가 되어 책방지기가 없는 요일에 책방을 열고 닫으며 책방공책이 유지되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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