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도살 직전에 있던 축사에서 구조된 6명의 홀스타인 종 남성 소들은 강원도 인제군 ‘달 뜨는 마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었다.”
김도희 변호사의 책 <정상동물>을 읽는 내내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인용한 문장이 보여주듯,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언어 습관에 수시로 제동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언어 표현과 형식 차원의 불편함은 오히려 약과였습니다. 맛이 있어서, 또는 영양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고기’를 즐겨 먹는 제 식습관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일을 힘들게 했습니다. 육식이란 영양학적 근거가 미약한 한갓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기후위기의 주범이기도 하다고 지은이는 주장합니다.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채식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저와 망설임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요.
“자연의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고, 먹고 먹히는 행위는 일종의 생태계 순환이므로, 어떤 삶의 시작에는 반드시 어떤 죽음이 선행된다”고 지은이 역시 쓰고 있습니다. 육식을 중단하고 채식으로 바꾸더라도 식물이라는 생명체를 죽여서 섭취한다는 본질에는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대로 육식은 살생이고 채식은 살생이 아닌 걸까요. 고통을 느끼고 죽음을 인식하는 데에서 동물에 비해 식물이 열등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식물의 놀라운 능력과 지혜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지금 이 순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물과 식물을 차별하는 일은 인간과 동물을 차별하는 일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요. 아무래도 육식에 대한 미련을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이겠지요. 육식의 매혹과 채식의 당위 사이에서 수시로 흔들리며 책을 읽고 기사를 써야 했습니다. 님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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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동물>의 지은이 김도희 변호사는 먼저 우리가 습관적으로 쓰는 말부터 바꾸자고 제안합니다. ‘종평등 언어’를 지향하자는 거죠. ‘물고기’가 아니라 ‘물살이’이고, ‘수컷 돼지 다섯 마리’가 아니라 ‘남성 돼지 다섯 명’, ‘도축’이 아니라 ‘도살’ 또는 ‘살해’라 써야 한답니다. 언어는 인식의 표출이며 실천의 근거가 되는 것인데, 동물을 대상화하고 한갓 식재료로 간주하는 언어 습관을 고치는 데에서부터 동물권은 출발한다는 겁니다. 책의 앞부분에서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의 한계를 지적하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싱어의 1975년 저작 <동물 해방>은 동물권 논의를 촉발시킨 선구적 작업인데,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지난 현재의 동물권 운동은 그만큼 진화하고 발전했다는 뜻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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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특히 육식 문화를 비판하고 채식주의를 권장하는 데에 공력을 쏟습니다. 공장식 축산은 동물을 학대·착취할 뿐만 아니라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함으로써 기후위기를 가속화합니다. 육식은 영양학적 근거를 지닌다기보다는 하나의 신념 체계이자 동물-산업 복합체가 주도하는 소비주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지은이는 봅니다. 대체육과 동물복지농장 같은 것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그것들 역시 육식주의에 면죄부를 주며 종차별적 태도를 온존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비판합니다. 세금을 통해 육식을 제어하는 육류세, 공공 영역에서부터 채식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의 정책 변화 등이 지은이가 제시하는 대안입니다. 인간과 동물과 지구의 안녕을 두루 보장할 수 있는 것은 비거니즘뿐이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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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로 태어나서>(시대의창)를 함께 소개합니다. 2013년부터 닭, 돼지, 개를 사육하는 식용 동물농장 9곳에서 일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사육, 수송, 도살’로 나뉜 식용동물의 삶 가운데 책은 ‘사육’에 집중했습니다. <정상동물>과 맞물려 본다면, 그것이 '정상동물'이 비정상적으로 감당 중인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고기가 몸에 이로운 건 사실일까요. 그또한 이데올로기란 주장과 그에 대한 반박은 이 주제에서 필시 동반됩니다. 동물 억압과 여성 억압은 연루되어 있기에 “나는 동물을 먹지 않는다”는 선언은 주체성의 선언이자 동물과 자신의 연관성을 선포하는 일이라는 설명부터 들어보실까요. <육식의 성정치>(미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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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상드를 아시나요? 들어는 보셨다고요? 그가 한때 수녀원 기숙사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곳에서 “신성과의 완전한 일치”를 경험했다고 고백하는 조르주 상드, 새의 힘을 신뢰한 낭만주의자 조르주 상드는요? 맞습니다, ‘아망틴 오로르 뤼실 뒤팽 드프랑쾨이유’라는 긴 이름을 본명으로 가진 그 조르주 상드(1804~1876). 일찌감치 여성해방을 외치고, 남장을 하고, 문학살롱을 드나들고, 당대 명사들과의 숱한 스캔들을 일으킨 소설가이자 비평가. 그가 쓴, 아니 남긴 책 한권은 “가장 강력하고 성스러운 방식으로 그리고 직접 몸으로 낳”은 엄마 이야기로 먼저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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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상드의 자서전 <내 생애 이야기>입니다. 국내 번역서로 무려 7권입니다. 알려진 바, 오해하고 있는 바, 알아야할 바들로 가득하여 7권이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1~3권은 가족 이야기, 유년기 겪은 나폴레옹 시대의 막전막후, 4~7권은 작가로서 혹은 사회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은 물론 삶의 순간마다 조우했던 사람들 이야기까지,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떤 자서전은 자신의 삶에 대한 찬양, 혹은 다소간의 과장으로 가득하지만, 상드의 자서전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여러 편의 편지와 당시 상황에 대한 적확한 묘사 덕분입니다. “타인에게는 따뜻하게, 나에게는 엄격하게, 신 앞에서는 진실하게, 이것이 이 책을 쓰기에 앞서 내가 하고 싶은 제언이다”는 상드의 말과 함께, 책은 여자 상드, 염세주의자 상드, 쇼팽의 반려자 상드, 작가 상드를 넘어 인문 역사학자 상드가 되는 양 “19세기 프랑스 사회를 총체적으로 반영한 역사 기록물”로까지 읽힐 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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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코맥 매카시(1933~2023)를 미국 평론가 해럴드 블룸(1930~2019)은 미국 현대소설 4대 작가 가운데 한명으로 꼽습니다. 데뷔 후 20년 넘게 인세 한번 받지 못했다고 토로한 작가가 이후 남긴 족적입니다. 작품성과 대중성의 거리를 짐작게 합니다. 그가 올 6월 우리 나이 아흔살로 타계하기 한해 전 남긴 유작이 이번 소개해드리는 연작소설 ‘패신저’와 ‘스텔라 마리스’입니다. 미국 출간 전 국내 계약이 이뤄졌으니 책이 나오기까지 1년 넘게 걸렸고, 매카시가 한국판을 볼 기회는 없어졌습니다. 당연히 한국 독자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만날 기회도 없겠군요. 그 작별인사가 이 작품에 담겼다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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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두 권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구성된 이야기라서 사건이 없진 않습니다. 그런데 두 권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 안에서도 그 사건들이란 게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뛰어난 과학자 집안의, 한때 서로 사랑했던 웨스턴 남매입니다. 1권 ‘패신저’가 오빠 보비의 지금이라면, 2권 ‘스텔라 마리스’는 10년 전 죽은 여동생 얼리샤의 그때입니다. 보비는 “시간이 선형적이라기보다는 점증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를 통해 ‘지금’이 ‘그때’로 증폭됩니다. 물리학도에서 이제 심해 잠수부가 된 보비는 뭐든 사라진 것을 찾아 들어가는 잡니다. 다만 그조차 사라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또, 남매의 사랑은 지난 것입니다. 다만 보비는 ‘지금’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다만 여동생이 죽어있는 것입니다. 불확정적인 삶과 죽음의 함수를 통찰하려 사력을 다한 작품, 그래서 사건이나 인물보다 인물과 인물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로 소설을 가득 채운 이 작품을 두고 누군가는 말로의 압축적 결정체인가 놀랄 테고, 누군가는 말로의 장광설인가 물을 것 같습니다. 여러 통찰의 문장으로 당신은 무엇에 동의하는지 묻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작별 메시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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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근대 학문 분과의 원형을 창출한 사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탐구영역은 형이상학에서부터 논리학·자연학·윤리학·정치학·수사학에 이르기까지 광대하게 뻗어 있습니다. <시학>은 이 드넓은 탐구영역 가운데 ‘시 예술’에 관한 통찰이 담긴 저작입니다. ‘인류 최초의 문학이론서’로 불리죠. 이 저작의 새로운 번역본이 고대 그리스 철학 전문가 이상인 연세대 교수의 노고를 거쳐 나왔습니다. 원문과 번역문을 나란히 배치한 그리스어-한국어 대역본입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 텍스트에 대한 역사적·분석적 연구를 담은 장문의 옮긴이 해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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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이상인 교수는 그동안 문학창작론으로 통용돼온 ‘시학’을 알파라비, 아비켄나, 아베로에스 같은 중세 이슬람 철학자들일종의 논리학 저작으로 재해석합니다. 왜 이 철학자들이 왜 시학 텍스트를 논리학 저술로 분류했는지 그 이유를 옮긴이는 상세히 이야기합니다. 시학은 필연성에 가까운 개연성을 따라 펼쳐지는 행위의 논리학, 삶의 논리학이라는 것입니다. 삶의 논리학이라는 새로운 이해의 빛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다시 읽으면, ‘시학’은 창작의 비밀을 알려주는 지침서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성을 탐구하는 철학적 텍스트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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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7일 가자에 기반을 둔 군사 집단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것이 불씨가 되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됐고 이 참혹한 전쟁은 지금까지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제거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숨지고 난민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벌이는 전쟁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마스에 대한 보복 차원일뿐일까요? 이번 소개해드리는 책은 유대인이면서 20년 넘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꾸준히 보도해온 독립 언론인 앤터니 로엔스틴이 썼습니다. <팔레스타인 실험실>이라는 제목대로, 세계에 ‘점령 기술’을 팔면서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민낯을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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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재난 자본주의>의 감독이기도 한 저자는 이스라엘이 주민을 통제하고 분리하는 방법을 실험하는 현장으로서 팔레스타인을 활용하고 있으며, 각종 신무기를 사용해본 뒤 ‘전장에서 시험한 무기’라고 홍보하면서 세계 각국에 신무기를 판매하고 있는 현실을 객관적인 자료와 인터뷰 등을 통해 보여줍니다. 지금의 이스라엘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리고 세계 시민들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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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패스, 소설 등단 그리고선 과학책에 빠진
번역가 이한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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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 대학을 졸업한 뒤 고시를 준비했는데 연이어 낭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지방고시(행시로 통합)에도 합격하고 신춘문예에도 당선된 거죠. 평소 끄적거리던 습작 실력은 <경향신문>에 단편소설 ‘해부의 목적’이 당선되면서 재능을 인정받았고, 안정된 공무직으로 일할 기회도 열렸죠. 그 결과, 환경직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에스에프 소설가’로서의 꿈을 펼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공무원은 일찌감치 그만뒀고 소설가는 부업, 본업은 ‘과학전문 번역가’가 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번역한 책의 권수를 묻자 “10년 전에 세어봤을 때 300여권이었는데 그 뒤로는 안 세어봤다”며 “아마 400∼500권 정도 되지 않을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이한음 번역가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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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직접 꼽은 주요 작품들의 표지. 왼쪽부터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지은이인 빌 브라이슨의 우리 몸 안내서 <바디>(까치), 세계적 신경과학자이자 수면 전문가인 매슈 워커의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열린책들), 사회 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월슨이 인류 문명의 근간이 되는 도덕, 종교, 철학, 예술, 과학의 기원에 관한 <지구의 정복자>(사이언스북스), 종양학자가 지극히 인간적으로 서술한 그래서 울컥하기까지 한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까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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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 하려다 16년째, 이상한 세상의 이상하지 않은 책방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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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사람들은 묻곤 했습니다. “‘이상한 나라’라고요? 사회에 불만 있어요?” 제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서점에서 일한다고 할 때마다였어요. 그리고 이제 2023년. 3년만 해보려던 것이… 자그만치 16년입니다. ‘원더키디’가 우주선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풍경은 딱히 기대하지 않았지만 요 몇 년 사이 세상은 정말로 ‘원더(wonder)’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여러 사건을 겪었습니다. 책방까지 못오시는 분들 위해, 그 이야기 먼저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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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歸路)
국화는 샛노란 과거를 잊어도
백 년 전에도 십 년 뒤에도
지난날은 다시 살아와 광화문 네거리에
목도장에 이름 새겨 오래 살자던
내일은 거짓되어 사라지고
옛사람은 웃는구나 하늘 보며 웃는구나
한 올 풀린 금사(金絲)처럼 연인들은 빛나는데
이렇게 잊어도 되나요 궐 밖에서
코피처럼 후드득 떨어지던 목숨을
어떤 날은 하고많은 서정도 미안해
손바닥에 손톱자국을 내며 돌아갑니다
📖신미나의 시,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문학동네시인선 200 기념 시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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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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