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유준은 ‘광절교론’에서 우정을 크게 소교(素交·순수해서 변함없는 우정)와 이교(利交·이익을 좇는 장사치의 우정)로 나누고, 이교를 다시 다섯 종류로 나눕니다. “권세 있는 사람에게 딱 붙는 세교(勢交)와 재물 있는 자에게 결탁하는 회교(賄交), 입만 살아서 한몫 보려는 담교(談交), 궁할 때는 위하는 듯하다가 한순간에 등을 돌려 제 잇속을 차리는 궁교(窮交), 무게를 달아서 재는 양교(量交) 등”(정민,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입니다.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가치라지만, 우정은 이다지도 어렵습니다. 키케로는 “사랑이 없이도 유지되는 친족과 달리 벗은 사랑이 없으면 될 수 없기에 벗이 친족보다 귀하다”고 했다던가요. 하늘이 맺어주는 관계와 달리 벗은 인간 스스로 수평적인 만남 속에 맺는 관계라, 그 관계의 양태가 일견 자유로울 것 같지만 되레 더 까다롭습니다. “벗은 한 영혼이 두 몸에 사는 것이다”, “벗의 물건은 모두 공유해야 한다” 등 옛 금언들이 강조하는 우정의 높은 경지는 과연 평범한 우리 인간들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탄식마저 불러일으킵니다.
과연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가 소교와 이교를 구분하고 진정한 벗이란 뭔가 따지고 들었던 옛 사람들처럼 우정에 ‘진심’일 수 있을까요? 연령이건 지역이건 취미이건 대체로 같은 환경과 조건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반자동적으로 맺어지는 관계들에 익숙해지고 때론 매몰되어가는 오늘날, 그래서 되레 ‘다른 것’들에는 위계와 차별을 손쉽게 들이대는 오늘날, 우정이라는 오랜 가치를 다시금 발굴하고 새롭게 제련해내는 일은 그만큼 절실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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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 와이드 웹’을 아시나요? 예. 월드 와이드 웹이 아니라 우드 와이드 웹(Wood-Wide-Web)입니다. 캐나다의 삼림학자 수잰 시마드가 1997년 과학 전문지 <네이처>에 표지 기사로 발표한 논문을 두고 이 잡지에서 쓴 표현입니다. 시마드 논문의 핵심은 미송과 자작나무가 땅속의 진균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물과 양분을 서로 주고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식물들이 경쟁을 통해 살아남거나 도태된다는 유구한 진화론의 자연선택 이론과는 달리 나무들 사이의 상생과 협력, 공존을 확인한 획기적인 논문이었습니다. 시마드가 2021년에 낸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는 이 논문을 중심에 놓고 자신의 학문적 여정과 개인사를 포개 놓은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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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두 딸을 두었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대학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일과 양육을 병행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 가던 무렵 그가 발견한 것이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어머니 나무’의 존재였습니다. 어머니 나무는 숲에서 가장 큰 나무로, 주변의 다른 나무들에게 물과 양분을 나눠 주는 나무입니다. 기후위기 국면에서 어머니 나무의 존재는 특히 중요합니다. 어머니 나무는 어린 나무들에게 물과 양분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탄소를 보존함으로써 지구의 건강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오래된 나무를 무차별적으로 베어 내고 그 자리에 단일 수종을 식재하는 식의 삼림 정책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시마드는 강조합니다. 유방암을 이겨낸 뒤 그는 ‘어머니 나무 프로젝트’(mothertreeproject.org)를 출범시켜 자신의 발견을 사람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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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고정관념과 달리 식물과 균류, 바이러스도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이를 폭넓게 '바이오커뮤니케이션'이라 부릅니다. 숲 속에서 이뤄지는 바이오커뮤니케이션을 다룬 책 <숲은 고요하지 않다>(흐름출판)을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수잰 시마드의 이론에 대해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과장됐다'며 우려와 의심도 제기합니다. 이에 대한 최근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칼럼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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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이 벌인 '로젠한 실험'은 그리 길지 않은 정신의학사에 가장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실험으로 꼽힙니다. '가짜 환자'를 만들어서 정신병원에 보내봤더니, 가짜임을 밝혀내지 못하더라는 것이 이 실험의 핵심 내용입니다. 당시 정신의학이 제멋대로 설정한 기준 아래 환자의 인권과 자유를 속박한다는 '반정신의학'의 확산 아래 이 실험은 정신의학의 문제점을 규탄하는 여론에 불을 붙였습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수재나 캐헐런은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에서 이 실험이 갖는 함의와 그 허실을 추적합니다. 지은이 역시 20대 중반 정신과 의사의 오진으로 인해 정신병동에 보내어진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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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한 실험을 파고든 지은이는 로젠한이 연구 결과를 왜곡하고 조작했던 정황을 발견합니다. 별다른 설계나 안전장치 없이 실험이 이뤄졌고, 한 사례자는 되레 정신병원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는데도 로젠한은 이 기록을 삭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점이 있었다고 해서 로젠한 실험 자체가 무의미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까지 정신의학은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핵심적인 질문을 풀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울증, 공황장애, 조현병 등 이전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정신질환들이 만연하는 지금, 이는 더욱 놓쳐선 안될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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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정신의학은 정신질환을 치료와 돌봄, 곧 의료적 조처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사월의책)는 일본 사회에서 우울증이 정신질환이 되는 과정에 대한 탐구를 담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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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폴 오스터(76)의 장편소설 <4 3 2 1>을 소개합니다. 2017년 작품으로 그해 영국 부커상 최종후보에까지 오른,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방대한 소설입니다.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일단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마지막 문장까지 끌려가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겁니다. 또 조심하셔야겠습니다. 구성된 순서대로만 읽다 보면 혼선에 빠지기 쉽습니다. 구성 형식 때문입니다. 작가 자신의 실재한 삶과 미국 현대사라는 팩트를 바탕삼은 한 인물의 삶이 네 개의 시나리오로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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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3월 미국 뉴어크에서 태어난 아치볼드 아이작 퍼거슨이 그 주인공입니다. 20대로 성장하기까지의 격동적 삶이 퍼거슨 1, 퍼거슨 2, 퍼거슨 3, 퍼거슨 4의 경우로 전개됩니다. 다만 네 퍼거슨의 네 가지 유년시절, 이후 네 가지 학창시절, 이후 네 가지의 20대가 한꺼번에 소개되는 식이지요. ‘퍼거슨 1’의 생애를 먼저 추려본 뒤 다른 퍼거슨을 만나보는, 그러면서 그들의 삶은 언제 어디서 갈리는지 견줘보는, 독법을 번역자부터도 1년 넘게 따랐던 까닭이겠습니다. 소설 속 이 소설을 쓰는 퍼거슨 4의 마지막 말이 그 의미를 짐작게 합니다. “…선택받은 길과 선택받지 못한 길들을 같은 사람이 같은 시각에 걷고 있다는 그 평행성을 감지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 그들의 그림자 같은 사람들, …현실은 일어날 수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들로도 이루어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를 위해 자신의 과거에 대한 섬세하고 치열한 관찰자로서 견지하는 폴 오스터의 자세와 그렇게 발굴해낸 ‘유약한 삶’의 의미들이 실로 도드라지는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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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는 선교를 위해 중국어로 여러 책을 썼는데, <교우론>(1599)은 그가 가장 먼저 냈던 중국어 책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 등 주로 서양 고전 철학자들의 금언 가운데 우정에 관한 것을 100가지 추려, 마치 <논어>처럼 읽히도록 쓴 책입니다. "나의 벗은 남이 아니라 나의 절반이니, 바로 제2의 나"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중국뿐 아니라 조선, 일본 등 유교문화권이랄 수 있는 동아시아에서 지식인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서학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정민 한양대 교수의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는 <교우론>과 그 후배격인 마르티노 마르티니의 <구우편>을 우리말로 옮기고 역주와 해제를 단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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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인 우정을 내세워 동양 지식인들의 경계심과 거부감을 줄이고 서양의 학문과 믿음을 전파하겠다는, <교우론>과 <구우편>에 담긴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면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왜 그토록 이를 열렬하게 환호했던 것일까요? 특히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은 여러 곳에서 <교우론>을 인용하는 등 '우정론'에 '진심'이었다는데요. 정 교수는 '오륜' 가운데 '붕우유신'이라는 가치가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던 조선의 봉건 체제에서, 서양 선교사가 불붙인 우정론이 '국경을 넘어선 우정'(천애지기)과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다는 의식'(병세의식)으로 확장되어 나아갔다는 가설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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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아픔을 보듬는 연구자’ ‘사회적 약자의 비명과 신음소리를 사회적 언어로 해석하고 그들을 위한 탄탄한 데이터와 논리를 제공하는 사회 역학자’….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부교수를 수식할 수 있는 어구는 이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2017)을 통해 질병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문제의식을 명확하게 보여줬던 그가 이번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라는 책을 내놨습니다. 그는 서문에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숱한 시행착오와 길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도 계속 질문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과 만나 나눴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이 책으로 한국 사회에서 대중을 상대로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마무리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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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감사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우리 사회 주류 가운데 김 교수처럼 바른 마음과 진중한 태도로 공부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되던지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란 제목이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그가 어떤 질문으로 어떤 연구방법으로 사회적 약자 문제에 접근했는지 공유해줍니다. 책상이 아닌 현장에 바탕을 둔 연구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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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 교수는 첫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냈을 때, 한겨레에서 만들던 책 관련 영상 프로그램 '#책'에 출연한 적 있습니다. 김 교수를 직접 만나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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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카페 가수 되려다 동생 권유로 쓴 소설
작가 천명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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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인 팔방미인 작가 천명관은 올해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쇼트리스트)에 올랐습니다. 그를 세계적인 문학상 무대로 불러올린 작품은 뜻밖에도 출간한 지 20여년이 지난 그의 첫 장편소설 <고래>(문학동네)였습니다. 이 작품 속 "기괴하고 엉뚱한 상상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작가는 작품을 썼던 당시 라이브 카페에서 가수를 하려 준비하고 있었다 합니다. 마침 동생이 그 나이에 뭔 라이브 카페 가수냐고, 소설을 쓰라고 했던 말이 그를 글 쓰는 세계로 인도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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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작가가 첫 책 이후에 쓴 자기 책들을 꼽아봤습니다. 왼쪽부터 첫 번째 단편집인 <유쾌한 하녀, 마리사>(2007), 두 번재 장편인 <고령화 가족>(2010), 이야기꾼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나의 삼촌 브루스 리>(2012), 인천 변두리 건달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2016)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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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과 집을 합쳐 작은 주택을 짓기로 결정한 뒤, 1년6개월의 공사 기간 동안 두 팔 걷어붙이고 책방 밖으로 나섰다. 면허를 따고 경차를 장만해서 트렁크에 나무 책장을 짠 뒤, 이동식 책방인 ‘찾아가는 버찌책방’을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책으로 맺어온 관계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와 책으로 마음을 나누고 싶은 간절함이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일본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는 “어떤 사람을 만날지는 그가 가진 ‘생명의 그릇’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책방이라는 안전지대 밖에서 쌓은 우연한 만남의 시간들을 통해 ‘시즌 2’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다정함’이 좁았던 나의 ‘생명의 그릇’을 보다 넓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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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식(閉架式) 도서관에서
쥐들에게 사랑이 있다잖아.
실험을 해봤대.
그렇다면 인간에게도 사랑이 있을지 모르지.
사랑은 인류를 위협하고 통제하는 오래된 책일지 몰라.
읽어봤어?
어쩌면 삶에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 책은 공개하지 않는대. 어디 있는지 사서들도 모를걸.
나는 겹낫표처럼 생긴 귀를 움직이며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을 받아 적는다.
📖김이듬의 시집 <투명한 것과 없는 것>(문학동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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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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