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노마드 션’이라는 30대 초반 유튜버가 만드는 여행 채널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중국의 오지부터 스리랑카의 어촌 해안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상을 만드는데, 어떤 ‘장소’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만나려 하는 태도가 보는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누구하고나 대화를 나누고 어울리는 그의 태도에는 자신이 겪지 않은 것을 미리 재단하려는 편견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영국의 과학 작가 가이아 빈스가 기후 위기와 이주를 주제로 쓴 책 <인류세, 엑소더스>에서 인용한 팩트 하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영국에서 이민에 대한 우려는 이번 세기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결과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보면, 이민자가 영국에 미치는 영향을 ‘부정적’이라 보는 응답은 ‘브렉시트’ 논의가 불붙었던 2014~2015년 정점에 달했다가 그 뒤로 꾸준히 줄어듭니다. 2021년 7월 기준으로 ‘부정적’ 응답은 28%에 그친 데 반해 ‘긍정적’ 응답은 46%에 달했다고 합니다.
팩트 하나만으로 브렉시트로 불거졌던 영국의 반이민·반난민 정서가 현재 어떠한지 종합적으로 평가할 순 없겠습니다. 다만 지은이의 지적처럼, 이미 전세계적으로 강화된 연결망 속에서 살아가는 밀레니얼 세대가 기성 세대만큼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하고 불필요한 적대를 만들어내는 데 열중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만합니다. 이들은 민족, 애국 같은 가치보다 ‘생존’이란 가치를 가장 중시한다고 했던가요. 기성 세대가 이들에게 ‘적대가 아닌 협력이 생존의 지름길’이란 걸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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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가 현실화되면, 지구 온도 상승과 해수면 상승, 폭염, 화재, 홍수 등의 영향으로 어떤 땅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럼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에서는 2100년까지 지구온도가 4도까지 상승할 것이라 보고, 적어도 30억명의 인구가 '기후 이주'를 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땅도 안전하지 못하거니와, 설사 우리 스스로 이주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이주민들과 함께 모여서 살아가야 한다는 미래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주란 것은 기후변화에 뒤따르는 재앙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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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작가 가이아 빈스는 <인류세, 엑소더스>에서 이에 대해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주장을 내놓습니다. 이주는 기후 위기의 문제가 아니라 해결책이란 겁니다. 지은이는 인류가 애초 '이주하는 종'으로 진화해왔으나 농업과 정주에 점차 익숙해진 반면 체제 내 불평등을 키워왔다고 말합니다. 지은이는 '4도 상승' 시나리오 아래 지구 어디어디가 살기 어려운 지역이 되는지 짚어내고, 사람들이 내륙, 북반구, 고위도 중심으로 도시 형태로 모여서 살게 될 것이라 전망합니다. 그러나 '글로벌 거버넌스'를 수립해 이 대규모 이주를 관리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지금의 불평등과 폭력이 더 확산하는 결과만 낳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지은이는 아주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안합니다. 적어도 이 주제에 대해 시급한 논쟁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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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앞에서 서로 부딪히는 두 가지 태도는 '탈성장'과 '지구공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구공학이 과학기술에 기대어 인위적으로 기후를 다스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쪽이라면, 탈성장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산과 소비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보는 쪽입니다. 몇 가지 도움 될 만한 책들을 함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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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여성들은 학교에서 성별을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고 배웠고, 실제로 가정 내에서도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덜 받은 세대입니다. 그러나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순간부터 ‘젠더 장벽’을 느낍니다. 취업 시장에서 여성에게 능력의 범주는 학력, 자격증, 일 경험뿐만이 아니라, 마른 몸, 애교 있는 말씨와 꾸미는 솜씨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뿐인가요. 여성의 일자리 참여, 전문직 및 기술직 비중, 동종 업무 간 임금 격차, 간부급 진출 등을 평가한 직장 내 양성평등 지수에서 한국은 아시아 태평양 국가 중에서도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은 공고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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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의 지은이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이 책에서 노동유연화와 함께 우리 시대 일터를 장악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자본주의가 여성들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좌지우지하는지 설명합니다. 누구라도 학력, 외모, 사회적 영향력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능력을 향상시키면 자신의 경제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능력주의 신화’에 포획된 여성들이 구조적 차별을 말하는 대신 자신을 더 갈아 넣는 방식으로 사회생활을 한다고 지적합니다. 변화를 위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 여성들이 어떤 위치에 놓여있고, 어떤 구조적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겠지요. 정확한 차별 실태와 여성들이 느끼는 문제점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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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여성 연구 분야 권위자 우에노 지즈코는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챕터하우스)에서 모두를 경쟁으로 몰아넣은 신자유주의 개혁이 여성혐오 현상을 만들어낸다고 분석합니다. 그는 이런 시대에 여성이 살아남기 위한 조건으로 ‘다양성’과 ‘연대’를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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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안보윤(42)의 새 단편집 <밤은 내가 가질게>엔 2020~23년 발표한 7편이 수록됐습니다. 이중 3편이나 주요 문학상을 받은 이 단편들은 연작이 아니지만, 인물과 사건이 서로 중첩되면서 증폭됩니다. 한권으로 만나 8번째, 9번째 이야기를 더해내는 격이지요. ‘진심’이란 것의 실체를 끊임없이 의심함으로, 어떤 진심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진달까요. ‘엄마의 진심’마저도 부단히 해체하려는 데서 안보윤의 진심에 대한 진심이 올돌해집니다. 진심의 오염은 상대를 속일 때가 아니라 스스로를 속일 때의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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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어떤 진심’에선, 위선과 무책임조차 진심의 표정을 갖다 짓습니다. 구원하겠다는 말로 가스라이팅을 합니다. 피해자의 진심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합니다. 이게 현실이지요. 하지만 ‘구원’은커녕 아주 소소한 ‘구조’의 손길이, 안녕을 물어주는 아주 작은 기척이 절실할 때 그 흔한 진심들은 죄다 어디 갔는지 작가는 묻습니다. 사회, 공동체는 물론이거니와 가족의 진심도 마찬가지이지요. 작가는 ‘진심의 부재’ 상황을, 과연 현실적인가 할 만큼, 가혹하게 들춥니다. 그는 한겨레에 ‘식상한 주제’란 “결국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라며 “문학이 해결책을 제시하진 않지만, 해결의 의지는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소설 쓰는 자신의 자리를 얘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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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마투라나(1928~2021)는 ‘자기생성’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칠레 생물학자입니다. 마투라나가 초기 연구에서 얻은 중요한 논문 두 편이 있는데요, 1969년 발표한 ‘인지생물학’과 1972년 동료 생물학자 프란시스코 바렐라와 함께 쓴 ‘자기생성: 살아 있음의 조직’입니다. 1980년에 출간한 <자기생성과 인지>는 이 두 편의 논문을 묶은 책입니다. 간결하고도 밀도 높은 저작입니다. 이 책에 실린 논문들은 1970년대 이후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이 마투라나 생물학에 자극받아 사회체계이론을 확립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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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문에서 마투라나는 대학에 들어간 이후 두 가지 핵심 물음이 줄곧 자신을 따라다녔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생명체의 고유한 특성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었고, 다른 하나는 ‘생명체는 주위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였습니다. 첫 번째 물음은 후에 ‘자기생성’ 논문으로 귀결했고, 두 번째 물음은 ‘인지생물학’ 논문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뒤에 마투라나는 자신의 생물학 이론을 생물사회학으로 확장했는데 그 간략한 내용도 이 책의 서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전체주의에서 아나키즘으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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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한국인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딴지일보> 출신의 작가 홍대선은 <한국인의 탄생>이란 제목의 새 책에서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시도를 합니다. 단군 이래 한국사를 돌아보며 한국인과 한민족의 특성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보여주겠다는 겁니다. 예컨대 한국인은 왜 재앙을 맞닥뜨릴 때마다 '산성'을 쌓고 전쟁을 벌이는 걸까요? 어디에서든 '책임자 나와'라 큰소리를 치는 버릇은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걸까요? 한국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어딘가에선 '이걸 이렇게 풀이하다니' 갸웃하다가도, 또 어딘가에선 '그렇지!' 하며 무릎을 치게 만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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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입담과 촌철살인은 책을 직접 보시는 것이 백번 낫고, 지은이가 주장하는 뼈대만 짧게 소개드리겠습니다. 지은이는 오늘날 한국인의 원형(原形)을 만든 이로 세 사람을 지목합니다. 건국신화 주인공 단군, 거란과 싸워 물리친 고려 현종,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입니다. 단군은 한국인이 살 터를 잡은 이인데, 하필 70퍼센트가 산악지형으로 척박한 땅을 고르는 실책을 범했습니다. 게다가 옆에는 지나치게 힘이 센 나라 중국이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생존 투쟁을 벌이는 것이 한국인의 운명인 셈이지요. 이런 토대 위에서 거란의 '외침'에 맞서 벌인 전쟁은 '한민족'의 탄생으로, 조선 통치 체제를 떠받치는 철학으로 선택된 유교는 이들의 윤리관과 국가관의 정립으로 이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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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벌어졌을 때, 하와이에서 일본의 공격을 받은 미국은 일본계 미국인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던 서부 해안 지역을 군사지역으로 선포하고, 12만명에 달하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수용소로 '강제 이주' 시킵니다. 미국 당국은 이 조처가 "인도적이고 질서정연하게 이뤄졌다"고 홍보하고 싶어했지만, 과연 그랬을까요? <지운, 지워지지 않는>(너머학교)은 당시 사진을 찍었던 3명의 사진작가의 사진들을 토대로 전쟁과 인권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미국이 '지운' 역사는 무엇이고, '지워지지 않'고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달된 역사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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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뻗은 대로보다 들쭉날쭉한 골목길이 더 재밌게 느껴지는 것은 그 길가에 있는 집, 계단, 담장, 대문, 화단 등이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웃들과 서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성팔경 중 8경인 ‘마산봉 설경’으로 유명한 백두대간 자락의 산골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책빵 심심해서(書)’는 해발 600m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 동네책방이다. 21평 협소한 공간이지만, 가족 넷이 30여년 가까이 각자 읽고, 듣고, 보고, 만들고, 모아온 것들로 꽉 채워져 있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오간 흔적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는 골목길처럼. 골목 한 자리를 차지하고 주변 마을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문·사·철 중심으로 예술, 건축, 시사, 마케팅, 어린이 등 관련 서적 3천여권이 진열돼 있고, ‘책빵’ 간판에 어울리게 ‘책지기’ 남편과 ‘빵지기’ 아내가 60년 넘게 살아오면서 배우고 익힌 것들로 만드는 다양한 먹거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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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마술
다들
말이면 다냐고 할 때
말이면 다라고 했다
누구도
말로는 다 못 한다고 할 때
말로는 뭘 못 해, 라고 했다
그들이
말을 타고 담장을 뛰어넘는
마술을 선보이자
다 같이
오리발을 내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순식간에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늪에 빠진 말은 허우적거리고
📖고찬규의 시집 <꽃은 피어서 말하고 잎은 지면서 말한다>(걷는사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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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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