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요새 ‘작가’란 말 대신 ‘커뮤니케이터’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글을 써서 출판물 등을 통해 독자와 만나는 일에만 종사하지 않고, 다른 방면에서도 사람들을 만나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을 담았겠지요. 강연을 한다거나, 티브이나 유튜브 등에 출연해서 특정 주제에 대해서 지식과 의견을 전파한다거나…. 일방적인 ‘발신’이 아니라 ‘소통’을 한다는 강조의 뜻도 들어 있을 것입니다.
‘커뮤니케이터’란 말이 보편적으로 정착한 것은 아니라서, 아직까진 특정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이 용어를 주로 쓰시는 듯합니다. 눈에 가장 많이 띄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과학 커뮤니케이터’입니다. 오랜 ‘과학 대중화’ 노력의 결실인지 과학이 대중의 폭넓은 관심사로 자리 잡으며, ‘과학 커뮤니케이터’란 이름으로 영상물이나 출판물을 가리지 않고 지식과 의견을 전파하는 분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역사 커뮤니케이터’는 주로 영미권 저자들에 대한 소개에서 봤었는데, 최근에는 국내 저자 소개에서도 보입니다. 드물지만 ‘철학 커뮤니케이터’, ‘문학 커뮤니케이터’를 자칭하는 분들도 있고요.
출판문화가 존중받던 시절에는 아마도 ‘작가’라는 명칭이 영상 매체 등 출판이 아닌 다른 플랫폼으로 진출하는 데 유리했을 것입니다. ‘작가’가 조금씩 ‘커뮤니케이터’로 대체되어 가는 지금, 출판문화의 위상은 과연 어느 지점에 와 있는 걸까요? 요즘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내리는 여러 책의 저자 이름은 본명이 아니라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이름에서 따온다는 홍순철 BC에이전트 대표의 칼럼( 👉기사보기)을 읽으며, 시대의 변화를 새삼 벅차게 느낍니다. 부질없는 피해의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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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은 2차 대전 뒤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과 소련이 서로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경쟁하고 대립했던 시기로, 강대국 사이의 전면전이 없어 ‘장기 평화’라고도 불립니다. 그러나 실제론 이 시기에 일어난 전쟁과 학살은 2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가져갔고, 10명 중 7명은 아시아 지역에서 죽었습니다. 미국의 역사가 폴 토머스 체임벌린의 <아시아 1945~1990>은 ‘장기 평화’ 아래 아시아에서는 왜 전쟁·폭력·학살이 잇따랐는지 파고듭니다. 중국 혁명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의 대학살, 방글라데시 해방 전쟁, 이란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중동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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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이들 전쟁과 폭력은 강대국들의 ‘대리전’이라 풀이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은이는 식민주의 이후 아시아 지역 사람들이 해방을 위해 어떤 투쟁들을 벌였는지 주목하고, 이 투쟁들이 강대국들의 무책임한 지정학 게임과 상호작용하며 어떻게 비극을 만들어냈는지 보여줍니다. ‘공산주의 총공세’를 두려워한 미국은 민주주의가 아닌 반공주의를 후원하며 여기저기 개입했고, 소련과 중국의 분쟁은 한때 포스트식민주의 대안으로 떠올랐던 공산주의 운동을 꺾어놓았습니다. 그 결과 제3세계의 투쟁은 세속적인 정치 이념에서 벗어나 인종적이거나 종교적인 차원의 투쟁으로 바뀌어 갔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입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공산주의를 물리치라’며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이슬람 전사들이 오늘날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 용의자로 지목되는 현실은 이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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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이라는 말 자체에 서구 강대국 중심의 시각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중요한 냉전 연구들은 이런 관점 자체를 해체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을 탐구해온 인류학자 권헌익의 <또 하나의 냉전>(민음사)을 함께 소개합니다.
🐟냉전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오드 아르네 베스타의 <냉전의 지구사>(에코리브르)도 함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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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제작되었다가 왜구에 의해 약탈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불상이 일본 쓰시마의 한 사찰에 소장되어 있다가 도난당해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달 26일 이 불상의 소유권이 일본의 해당 사찰에 있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불상의 유출 경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으며, 일본의 사찰이 20년 넘게 문제없이 소유했기 때문에 ‘취득 시효’ 법리에 따라 소유권이 이 사찰에 넘어간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1911년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가 도난당해 다빈치의 조국인 이탈리아로 갈 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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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건에서 보듯 약탈과 도난, 구매 등으로 원산지를 벗어난 문화유산은 종종 소유권 분쟁에 휘말리곤 합니다. 문화재청에서 오래도록 국외문화재 환수 업무를 담당했던 김병연이 쓴 책 <모나리자의 집은 어디인가>는 이렇듯 문화유산을 둘러싼 갈등의 역사를 되짚고 국외 반출 문화재들의 환수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관련 법규와 법리에 의거해 논의를 진행하지만, 식민 지배 과정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문화유산을 약탈해 놓고 합법이라 주장하는 강대국들의 자의적 법 적용을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합니다. 해외로 유출된 문화유산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를 선결해야 하는지, 책을 읽으면서 궁리해 보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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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 작가를 대표하는 한명을 꼽는다면 이창래 작가 아닐까요.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가 우뚝 서 있고 이후 2,3세대 젊은 작가들의 독창적 작품들이 이어지며 지평을 넓혀왔지만, 작품 자체로만 본다면 이창래에 대한 문학계의 여전한 주목도를 따르기 어려워 보입니다. 9년 만의 신작 <타국에서의 일 년>은 여러모로 기존 작품과 차별화됩니다. 이창래는 주지된 과거로부터 인물을 오늘로 데리고 오곤 했습니다. 그가 천착한 ‘정체성’ 또한 과거형 서사일테고요. 3살 때 이민 가 영어로 소설 쓰는 이창래를 미국 문단에 수직 착륙시킨 <영원한 이방인>(1995)의 한국계 이민자 헨리 박,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생존자>(2013)의 한국인 전쟁고아 준 등이 대표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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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소설 ‘타국에서의 일 년(My Year Abroad)’은 오늘의 인물을 미래로 떠밀어 보내는 모양새입니다. 당도하지 않은 때, 누구도 점유하지 않은 ‘내일’로 저 자신을 투사함으로써 자아, 소속, 정체성을 확립해가(려)는 아주 느린 성장기로 달리 표현해볼 만합니다. 다만 ‘성장 없는 성장기’라고 말을 뒤집어 보겠습니다. 소설의 맛은 그 전복과 유머에서 나올 것 같습니다. 정체가 흐릿한 당대 청춘의 설익은 환멸과 부유는 때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물들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인종, 자본, 문화적 차별과 착종이라는 실로 거대한 미국사회에서 결코 양상도 결과도 같을 수 없는 방황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거대담론의 이민사 프레임으로는 조명될 수 없는, 한국계 피가 8분의 1 섞인 유사 백인, 유사 중산층, 유사 성년 틸러를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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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컬러스 스파이크먼(1893~1943)은 20세기 영미 지정학(geopolitics)을 대표하는 학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강대국 지정학>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에 스파이크먼이 자신의 지정학에 입각해 미국의 세계 전략을 그린 책입니다. 이 책은 전후 미국이 국제전략의 틀을 짜는 데 바이블과도 같은 구실을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마키아벨리적인 현실주의 전략을 조언하는 이 고전적 저작이 우리말로 처음 번역돼 나왔습니다. 스파이크먼은 국제관계에서 언제나 ‘힘의 정치’(power politics)가 지배한다고 주장합니다. 국제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도덕이나 정의가 아니라 힘이라는 것, 도덕적 가치는 수단일 뿐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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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먼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의 안보와 국익을 최우선에 놓고 논의를 이어갑니다. 스파이크먼이 제안하는 국제전략은 고전적인 ‘분할 지배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스파이크먼의 안중에 한반도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을 견제하려면 일본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만 두드러집니다. 이런 맹목의 관점이 전후 미국의 국제전략 설계에 지침이 돼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의 근본 원인이 됐을 것입니다. 미국의 국익과 한국의 국익이 일치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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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먼은 '주변지대'(rimland)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현대 지정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영국의 지리학자 해퍼드 존 매킨더가 말한 '심장지대'(heartland)을 둘러싸고 있는 유라시아 대륙의 연안지대를 가리킵니다. 매킨더의 <심장지대>에 대한 소개 기사도 함께 읽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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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카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정보나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온라인 공간입니다. 그런데 최근 맘카페 관련한 뉴스들을 보면 ‘갑질’ ‘마녀사냥’ ‘조리돌림’ 등과 같은 단어들과 결합해 무시무시한 공간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맘카페’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문제 있다고 매도하기보다, 이 공간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그 안에서는 어떤 문화가 있는지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바로 <맘카페라는 세계>라는 책입니다. 책을 쓴 정지섭 작가는 국책은행에서 10년동안 일하다 전업주부가 됐습니다. 지역 맘카페 운영자 역할을 5년 정도 한 경험이 있으며,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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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무지와 몰이해에서 비롯된 증오와 낙인찍기는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인데 맘카페에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고 말합니다. 책을 읽어보면, 작가는 맘카페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여러 부작용도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부작용만을 부각시키며 맘카페 회원들을 고립시킬수록 문제는 더 커진다고 봅니다. 맘카페의 부작용이 나타나도록 만든 여러 사회적 요인 등을 놔둔채 맘카페만 공격하면 안된다는 것이죠. 맘카페가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아는 작가가 때로는 내부자 시선으로, 때로는 외부자 시선으로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맘카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상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지 정 작가와 함께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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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세계를 찾아 구도하듯 해온 번역
번역가 이균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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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 지브란, 오즈 라즈니쉬, 크리슈나무르티 같은 '영적 스승'들이 10~20대 독자들에까지 친숙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80년대 중반, 이균형 번역가는 명상과 요가를 배우다 회사를 그만두고 '구도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정신세계를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영적 스승들의 영문 원서들을 보고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 이릅니다. 지난 35년 동안 <상처받지 않는 영혼> 등 40여권의 책을 번역했고, 최근에도 마이클 싱어의 <삶의 당신보다 더 잘 안다>(라이팅하우스)를 번역해 펴냈습니다. 이 번역가는 영성에 대한 탐구를 "이 세계를 잠시 놀러 온 '가상현실 게임 사이트'라는 걸 깨닫고 진정한 집을 찾아가는 과정"에 비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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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직접 꼽은 주요 작품들의 표지. 왼쪽부터 데이비드 소로 등 13명의 유명 작가들의 글을 모은 <어떤 고독은 외롭지 않다>(인플루엔셜), 주목받는 캐나다 작가 미리엄 테이브스의 <위민 토킹>(은행나무), 앨리스 오스먼의 그래픽 노블 <하트스토퍼>(위즈덤하우스), 블록버스터급 판타지 그래픽 노블 '불의 날개' 시리즈(김영사) 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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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책방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열려 있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자 동네주민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소개할 수 있는 코너인 ‘50인의 책방’이라는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개된 책들은 참여하신 분들의 이름을 넣어 ‘영수가 연 책방’, ‘유진이 연 책방’이라는 제목의 콘텐츠가 되어 책을 읽는 즐거움, 책을 고르는 기준 등 책과 관련된 다양한 이들의 경험과 생각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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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에서
팔레스타인에서는 올리브나무로 기름도 짜고 묵주도 만들고 반찬도 해먹는다고 한다 팔레스타인에 가야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이유는 딱히 없다 운이 좋으면 가장 오래된 올리브나무를 볼 수도 있겠지 그 나무를 꼭 봐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누구든 자신보다 오래 산 나무를 보면 하고 싶은 말이 한두 마디쯤 생길 수 있고 올리브 비누로 손을 씻고 너를 만나러 갔는데 그래도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지는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요즘 같은 때에는 조심해야지 요즘 같은 때라니, 이 장면 속에서 나는 너를 지우고 우리가 마주앉아 있는 이곳 심야 식당을 지우고 가짜 벚꽃 인테리어 소품을 지우고 풋콩과 생맥주를 지우고 마스크와 손 소독제도 지우고 말씀과 믿음을 지우고 탱크와 대포를 지우고 올리브나무만 기억할래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올리브나무는 어쩌면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핸드폰을 꺼내어 팔레스타인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찾아본다 비행기로 열두 시간 십오 분,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팔레스타인에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만나지 못할 나무는 아무렇게나 상상해본다 두꺼운 껍질과 줄기들 아무리 팔을 넓게 벌려도 품에 담기지 않는 나무둥치 빼곡한 이파리들과 작은 연노란색 꽃들 푸른 앞치마를 두른 알바생이 하품을 하며 가게 안 텔레비전을 껐다 그래도 자꾸만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었고 우리는 말없이 메뉴판을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한여진의 시집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문학동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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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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