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입 닥치기의 힘>(한빛비즈)은 제목 그대로 말을 아끼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말해주는 실용서입니다. 방송뿐 아니라 유튜브와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말 많은’ 세상인지 떠올려보면 새삼 아득해집니다. 누구든 한마디씩 거들려고 안달이 난 가운데 정작 그 말들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적습니다. “팟캐스트에 업로드된 콘텐츠는 200만 개 이상이고 4800만개의 에피소드가 제작되었지만 그중 절반은 다운로드 회수가 26번 미만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 몸 자체가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더 적합하게 설계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일단 말을 시작하면 우리 뇌에선 기분 좋게 해주는 물질인 도파민이 다량 분비되고, 우리는 그것이 계속 분비되길 바라며 말하기를 지속합니다. 문제는 “도파민이 생성되는 동안 당신은 상대방이 코르티솔을 분비하게 만든다는 사실”일 겁니다. 흔히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불리는 코르티솔은 생존과 관련 없는 것들을 모두 차단하고 혈압과 심박수, 혈당 수치 등을 급격히 올려 당신이 위험 상황 아래에서 더 잘 생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런 상태가 만성화되면 우리 몸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주죠. 그러니 ‘수다 중독’을 끊는 것은 얼마나 어려우며, 게다가 귀까지 여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이겠습니까.
힘든 일은 힘든 만큼 더 가치 있고, 또 결국엔 우리를 ‘이롭게’ 해줄 거라 생각해봅니다. ‘이청득심’(以聽得心), 곧 귀 기울여 들어야만 다른 이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다는 옛말도 있지 않습니까. ‘나의 말’은 잠시 내려놓고 다른 이에게, 또 자연에게, 귀를 좀 더 아낌없이 열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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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은 레이철 카슨의 뒤를 잇는 ‘자연 작가’라는 평을 듣습니다. 그의 첫 두 책 <숲에서 우주를 보다>와 <나무의 노래>는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많은 독자에게 읽혔지요. 학자다운 예리한 관찰과 시적인 문장이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그가 새로 낸 책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자연 작가로서 해스컬의 능력을 유감 없이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소리, 특히 동물들이 의사소통을 위해 내는 야생의 소리입니다. 원제가 ‘야생의 부서진 소리들’(Sounds Wild and Broken)인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이 그 일부를 이루는 야생의 소리가 얼마나 풍요롭고 소중한 것인지, 그러나 인간의 필요와 욕구가 그 야생의 소리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세계의 이곳저곳을 오가며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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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소리를 발생시키고 듣는 능력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관한 통시적 설명, 인간이 만든 최초의 악기에 관한 이야기 등도 흥미롭습니다. 소리 다양성, 소리경관, 소리지리 같은 생소한 용어들은 생물들과 인간의 삶에서 소리가 지니는 의미를 알게 합니다. 부서진 야생의 소리는 파괴된 생명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부서진 소리들을 되살리려는 시도 역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거듭 강조합니다. 야생의 소리는 인간과 자연을 매개하고, 인간 역시 더 큰 생명 공동체의 일부임을 알게 하는 것인 만큼, 부서진 야생의 소리를 온전하게 되살려야 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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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스컬의 전작 <숲에서 우주를 보다>(에이도스)와 <나무의 노래>(에이도스)에 대한 서평을 함께 공유합니다.
🐟일본 환경성은 1996년 소음 공해를 퇴치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남기고 싶은 일본의 소리 풍경 100선'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저수지에서 흘러나오는 시냇물소리, 성 안에 울려퍼지는 종소리 따위의 소리들입니다. 우리나라 환경부도 2001년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을 선정했습니다. 유튜브에서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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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시대인데, 그것을 바라볼 때 동원할 수 있는 프리즘도 다종다양합니다. 영국의 미술사학자인 잭 하트넬은 <중세 시대의 몸>에서 제목 그대로 '몸'이라는 소재를 통해 중세를 탐구합니다. '야만의 시대' 등 중세에 대해 왜곡된 시각이 많기 때문에, 지은이는 몸을 통해 무엇보다도 중세인의 사고방식과 그것이 반영된 삶과 예술을 왜곡 없이 보여주려 노력합니다. 예컨대 중세 사람들은 아프리카 대륙의 끝에 길 잃은 여행자를 잡아먹는, '머리가 없는 인간들'이 산다고 믿었습니다. 과연 이런 중세인의 상상이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현대인의 상상과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후대 사람들도 우리 시대를 '암흑기'라 부르진 않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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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머리, 감각 기관, 피부, 뼈, 심장, 피, 손, 배, 생식기, 발 등 구체적인 기관들을 하나씩 파고들어 갑니다. 중세 사람들의 인식처럼 '머리에서 발꿈치로' 내려가는 것이죠. 중세 의사들은 피부를 진찰하면서 "도덕성 또는 영성의 결함까지 한눈에 파악"하곤 했답니다. 손과 거기서 파생되는 촉각은 중세 사람들에게 시각, 청각, 후각 등에 견줘 천하게 여겨졌다고 하네요. 불편할 정도로 기다란 신발은 딱히 고된 일을 하거나 오래 걸을 필요가 없는 높은 계급을 과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이처럼 의학, 미술, 음악, 정치, 철학, 종교, 역사를 한데 아울러 중세를 좀 더 잘 알 게 해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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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등단한 작가 한정현(38)의 작품 방향은 매우 선명합니다. 막상 소설의 범주는 그 이상이기에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만, 작가 스스로도 “역사소설”이라 말하곤 합니다. 이때 역사는 ‘바로 세워’지는 것이라기보다 ‘더해 세워’집니다. 중요하게 증축되어야 할 것은 견고한 공적 역사에 대비되는 문학적 역사이고, ‘우리’의 역사 이전 ‘나들’의 역사이겠죠. 언어로써 가능한 일이며, 소설이 해야 하고 소설이 할 수 있다고 믿는 소설가가 한정현입니다. 등단 이래 지금껏 그가 표명 중인 좌표라 하겠습니다. 이번 소설집 <쿄코와 쿄지>는 1980년 오월의 광주에서 부산, 마산,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강남, 2009년 공권력 참사가 발생한 용산을 무대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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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이 되진 않을까요? 왜 이처럼 험한 문학적 소명을 떠안은 것일까요. 전화로 만나본 한정현은 소설의 가독성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더 반가워할 독자들이 많다”고도 말합니다. 자료를 들이대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따로 톺고 감수받는 일도 이 소설가에겐 흔한 일입니다. 전남 구례 출신 한정현은 ‘젊은 정지아’라고 할 만큼 가족사가 유사합니다. 개인사와 문학적 삶을 떼는 일은 자석을 떼는 일보다 어려울 것입니다. 이 당당함 때문이라도, 정보와 의미로 때로 과중한 이 책을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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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현은 문화사적 접근법으로 소수자의 잊힌 삶을 복원하는 데 능한 작가"라는 평가로 시작하는, 그의 두 번째 장편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문학과지성사)에 대한 소개 기사를 함께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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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 해러웨이(79)는 전복적 상상력으로 페미니즘 이론을 혁신한 미국의 학자입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언어와 사유로 페미니즘 이론의 새 국면을 열어젖혔죠. 해러웨이의 대표작으로는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1991)가 꼽히는데, 이 책이 21년 만에 재번역돼 나왔습니다. 이 책은 1978년부터 1989년까지 발표한 글 10편을 묶은 논문 모음입니다. 서문에서 해러웨이는 이 10여년 사이에 자신이 ‘백인 여성의 정체성을 지닌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에서 “여러 낙인이 새겨진 사이보그 페미니스트”가 됐다고 말합니다. 글의 순서가 해러웨이 자신의 이론적 성숙 과정을 보여준다는 얘기인데요, 이때의 성숙은 원만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도발성과 전복성이 커진다는 뜻으로 새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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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책의 제3부에 실린 ‘사이보그 선언문’(1985)은 해러웨이 사유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이 글은 망치 같은 언어로 페미니즘을 넘어 학문 전반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해러웨이는 선언문의 마지막에 이렇게 씁니다.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해러웨이의 유명한 말들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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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웨이의 선언은 '사이보그 선언'(1985)에서 '반려종 선언'(2003)으로 나아갑니다. <해러웨이 선언문>(책세상)은 이 두 번의 세기적 선언을 함께 담은 책입니다. 해러웨이의 근작으로는 2016년작 <트러블과 함께하기>(마농지)가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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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세상을 뒤엎은 팬데믹의 공포 속에서 바이러스는 마치 전쟁을 벌이듯 싸워서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됐었습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그저 "번식과 복제, 그리고 대량 생산"이라는 자신의 일에 충실할 뿐이고, 이 과정에서 극히 일부의 바이러스만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따름입니다.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생물학자이자 백인 게이 남성인 조지프 오스먼슨 미국 뉴욕대 교수는 자신의 에세이 <바이러스, 퀴어, 보살핌>에서 퀴어의 눈으로 본 바이러스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줍니다. 마치 '코로나 일기'처럼 자유분방하게 쓰여진 이 책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무엇보다 1980년대 HIV라는 위기를 맞이했던 퀴어들의 삶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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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를 빌미로 세상은 동성간 성관계에 '죽음'이란 낙인을 찍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가운데, 퀴어들은 침묵 대신 '생존할 권리'를 요구했고 처절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보살폈습니다. 지은이는 '모든 이'를 보살피지 않고 되레 소수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미국 사회 속 '백인성'을 비판합니다. 자신이 타인에게 끼칠 해악은 보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 허락된 자유만을 중시하는 백인성. 바이러스로 가득한 행성에서 "인간의 몸을 하고 안전하게 살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서로를 돌보는 일뿐이며, 그것은 퀴어들이 여태껏 해왔던 일이라고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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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이론가 호세 에스테반 무뇨스는 단일하고 선형적인 이성애적 시간에 붙들리지 않는, '퀴어의 유토피아'가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조지프 오스먼슨의 글에는 그가 말한 퀴어성에 대한 사유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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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지으려면 쌀알들 속에 섞여 있는 돌알들을 골라내야 합니다. "돌알만 골라내라"는 말에 '불량'으로 찍혀 쫓겨나는 돌알이 던진 말 한마디가 쌀알들의 세상에 파문을 일으킵니다. "너희 중엔 불량이 없을 것 같냐!" 크기가 작은 쌀알, 흠집 있는 쌀알, 금이 간 쌀알 등 불량 쌀알을 가르는 기준은 점점 엄격해지며 의심과 갈등을 키우는데…. 편견과 차별이 어떻게 확산되는지 보여주는 벼레 작가의 그림책 <쌀알 돌알>(사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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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올시다’는 독서를 파는 책방이에요. 대학원에서 독서학을 공부하며 독서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독서가 한 사람의 생을 어떻게 바꾸는지 더 많은 이에게 알리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독서를 팔기로 했죠.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독서라고 부를 순 없었어요. 책을 선택하는 것부터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고, 사유하고, 자신을 알아가며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까지 나아가야 독서라고 배웠으니까요.
하지만 이를 서점에 적용하기 쉽지 않았어요. 책방을 찾아주는 손님 한 분 한 분께 “독서란 이런 거구요. 여기서 이렇게 저렇게 독서를 즐겨주세요”라며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을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재밌는 독서 활동들을 곳곳에 비치하기 시작했어요. ‘아, 이올시다에 가면 참 재밌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라는 말을 듣는 걸 목표로 삼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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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내내
사과나무 아래서 책을 읽었습니다, 책 제목……, 기억나지 않네요, 사과가 아주 작을 때부터 읽기를 시작했는데, 점점 책 종이가 거울처럼 투명해져서 작은 사과알들을 책을 읽으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점점 책 종이가 물렁해져서 책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던 사과알들이 책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활자도 사과알을 따라 책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책은 물렁해졌고 물처럼 흐르려고 했어요, 물처럼 흐르는 책의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요, 사과알이 흐르는 책을 여름 내내 읽고 있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사과알들이 다 사라지고 난 뒤, 나무가 책의 물 회오리로 들어왔습니다, 집과 새와 구름이 들어왔습니다, 해가 그리고 내 위의 하늘조각도……, 책은 무거워지고 더 거세게 흐르고, 여름 내내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사과나무도 구름도 해도 하늘조각도 사라지는 자리에서
📖허수경 시선집 <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문학과지성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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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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