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이야기를 최근 자주 듣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정치 이론을 논한 조엘 웨인라이트·제프 만의 <기후 리바이어던>(앨피), 벨기에 출신 기술철학자 마크 코켈버그의 <그린 리바이어던>(씨아이알)이 국내 출간됐습니다. 최근 방한한 영국 정치학자 존 던은 칸트가 아닌 홉스의 ‘평화’ 개념을 강조하더군요. 허물어지는 국제질서, 기후위기·인공지능의 위협 등 혼란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 상황에 빠져들지 않도록 우리를 제어할 정치공동체에 대한 상상이 새삼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겠죠.
<기후 리바이어던>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치적 경로를, 주권과 자본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삼아 네 가지로 가릅니다. 기후변화에 대해 행성적 차원의 주권을 조직해 대응하는 한편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려는 경로는 ‘기후 리바이어던’, 전지구적 차원에서 기후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만 비자본주의적·권위주의적 경로는 ‘기후 마오’, 자본주의에 매달리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없는 경로는 ‘기후 베헤못’ 등입니다. 리바이어던, 베헤못, 마오 같은 이름들만 봐도 어떤 체제인지 감이 온달까요.
다만 마지막 경로의 이름에는 별다른 표상이 없습니다. 경제구조 측면에서 ‘자본주의’, 정치구조 측면에서 ‘국가’ 등 오래되고 익숙한 길을 거부하는, 아직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서 ‘엑스’(X)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혼란이 커질수록, 오래되고 익숙한 길은 미래를 더듬어나가기 위한 출발점이 됩니다. 다만 그 대척점에 항상 ‘엑스’를 남겨놓는 일의 중요성도 함께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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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오늘날의 국제질서 흔히 '신냉전'이란 말로 풀이됩니다. 강대국들이 블록을 만들어 대치하던 냉전 시절과 같은 갈등과 분쟁이 새롭게 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죠. 다만 신냉전이란 말 속엔 어떤 체제나 이념 같은 게 서로 대립한다는 뜻이 강하기에, 의문도 제기됩니다. 오늘날 국제정세 속에 과연 어떤 체제나 이념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는가? 현대 중국과 세계체계를 깊이 탐구해온 사회학자 백승욱(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은 <연결된 위기>에서 신냉전이란 개념이 적절치 않다고 비판합니다. 두 체제 간 대립이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과잉된 의지를 담아 '뻥튀기'처럼 부풀린, 허구적인 상상에 가깝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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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얄타체제'로부터 2차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형성과 붕괴를 설명하는 독특한 풀이를 시도합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도해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 소비에트연방의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이 나치 독일의 패전 이후를 관리하기 위해 모인 '얄타회담'은 비록 냉전 시대의 시작점으로 평가받지만, 회담이 이뤄질 당시에는 '단일한 세계'에 대한 합의점이 있었다는 겁니다. 여기서 단일한 세계란, 강대국들이 유엔이란 제도 아래 서로 전쟁과 영토 확장을 억제하는 가운데 탈식민 국가들이 발전주의의 길을 걷는 체제를 말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부터 대만 해협의 위기, 북한 핵도발의 위협 등은 '연결된 위기'로, 모두 이 얄타체제의 붕괴로부터 시작된다고 지은이는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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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욱 교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했을 무렵부터 이 위기를 중국의 대만 침공, 북한의 핵도발 등과 '연결된 위기'라 주장했고, 만약 그것이 현실이 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이에 대한 박민희 한겨레 논설위원의 인터뷰가 이번 책을 쓰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우크라이나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역사학자 세르히 플로히는 전후 세계질서 재구축의 결정적 계기였던 얄타회담을 그 준비과정부터 종결까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얄타: 8일간의 외교 전쟁>(역사비평사)을 쓴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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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출신 미국 과학자 존 폰 노이만(1903~1957)을 아시나요? 그는 아인슈타인이나 쿠르트 괴델 같은 희대의 천재들과 같이 프린스턴대 고등연구소에서 근무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노이만의 두뇌가 이 두 사람보다 뛰어났다고 증언합니다. 최근 영화로 잘 알려진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요청으로 핵무기 개발 계획에 합류했는데, 전쟁이 끝난 뒤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한 반면 노이만은 그 계획에 적극 참여합니다. 그는 냉전 시기에 소련을 상대로 한 선제 핵공격을 주장할 정도로 호전적 반공주의자였지만, 오펜하이머가 소련 스파이로 몰려 고초를 겪을 때에는 나서서 그를 적극 변호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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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만의 삶에서 핵무기 개발을 전후한 전쟁 관련 업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수학자로 출발해 일찍이 십 대 시절에 수학의 여러 난제를 해결했고 이십 대 초에는 양자역학의 중요한 정리들을 발견했습니다. 2차대전 중에 폭탄의 운동 방정식을 연구하던 끝에 컴퓨터의 원리를 개발했고, 게임이론을 개척해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과 동물행동학의 발전을 도왔습니다. 인간 두뇌와 컴퓨터의 연관성을 파고들면서 오토마타라는 자기 복제 기계 이론을 수립해 인공지능과 분자생물학의 기초를 놓은 것 역시 노이만이었습니다.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아난요 바타차리야가 쓴 <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은 이렇듯 다채롭고 역동적인 노이만의 삶을 담은 평전입니다. 그가 이룬 업적들과 함께 20세기 초중반 과학계의 풍경과 과학자들의 분투가 생생합니다. 아인슈타인이나 오펜하이머에 비해서는 덜 알려졌지만,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학자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노이만과 그의 시대 속으로 빠져 들어가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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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진영(42)이 2023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뒤 처음 독자에게 내놓은 장편소설의 제목은 <단 한 사람>입니다. 소설을 계약하고 완성하기까지 10년가량이 걸렸다고 합니다. 흔히 있는 일인가 기자가 물으니 작가는 웃어버립니다. 작가도 출판사도 애가 탔을 듯합니다. 대신 그 기간 붙든 질문을 더 많은 질문으로 완성합니다. 작가는 한겨레에 “이번 소설에서만큼 죽음이란 주제에 몰두해본 적이 없어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0년여 죽음을 그만큼 더 보았고, 죽음에 더 가까워졌으며 특히 있을 수 없는 사회적 참사들을 보아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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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예지몽처럼 술한 이들의 임박한 죽음을 꿈에서 목도하되 오직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는 여성들을 주인공 삼습니다. 모계로만 이어지는 기이한 운명을 열여섯살에 고통스럽게 인지하는 목화가 그의 외할머니, 엄마와 달리 어떻게 제것으로 받아들이는지, 독자들은 목화처럼 삶과 죽음에 관한 숱한 딜레마와 더불어 지켜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삶에 대한 낙관도, 죽음에 대한 비관도 아닌, 판단중지(에포케)로서 새로운 유형의 연결자(‘중개인’)가 되고자 하는 목화를 만납니다. 그 과업은 바로 “산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고, 이는 삶의 행색이나 가치에 대한 판단조차 중지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최진영에게 소설은 위로의 다른 말입니다. 그럼에도 기존 작품들에 견줘, 작가의 품은 가장 넓어졌다 해야겠습니다. 소외된 이들, 상처받은 이들의 구체적인 슬픔을 넘어 “살아있는 사람들의 한 존재로서의 고통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최진영과 지금의 최진영은 같은 작가일까요. “한 편의 소설을 쓰고 나면 나는 쓰기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는 그의 고백대로라면, 변화의 마법은 하루 단위 시나브로 전개되는 것이겠지요. 단 한 사람의 오늘 단 하루들을 작가가 보듬는 이유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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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은 19세기에 급진적 혁명운동의 주도권을 놓고 마르크스주의와 맹렬히 다투었습니다. 그 아나키즘 운동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 독일 철학자 막스 슈티르너입니다. 본명이 요한 카스파어 슈미트인 슈티르너는 자신의 아나키즘 사상을 한 권의 저작에 집약했는데요, <유일자와 그의 소유>가 바로 그 책입니다. 이 책은 주장이 워낙 극단적이고 과격한 탓에 오랫동안 외면받다가 근년에 다시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슈티르너의 이름과 등치되는 이 저작을 아나키즘 사상을 소개해온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가 번역했습니다. 앞서 지난 2월 슈티르너 전공자 박종성 건국대 교수가 옮긴 번역본과 비교해 읽어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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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티르너는 1842년부터 ‘청년헤겔파’ 사람들과 어울렸습니다. ‘자유인’이라는 이름의 급진주의자 모임이었는데, 맥주홀에서 열린 그 모임에는 슈티르너보다 먼저 마르크스가 참여했고, 마르크스가 떠난 뒤 엥겔스가 동참했습니다. 엥겔스는 슈티르너를 침묵 속에 시끄러운 논쟁을 지켜보는 인물로 묘사한 그림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슈티르너가 청년헤겔파의 토론을 들으며 써 내려간 책이 바로 <유일자와 그의 소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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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이 즐겨 쓰는 대학생활 관련 플랫폼 '에브리타임'은 이른바 오늘날 '청년' 세대들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창구로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두드러지는 것은, "청소노동자, 여성, 지방대, 분교, 장애인, 성소수자, 비건 등에 대한” 도를 넘은 공격이 “일종의 ‘놀이’ 형태로까지” 확장된 모습 뿐입니다. 문화인류학자 나임윤경(연세대 교수)과 '사회문제와 공정' 강의를 함께 수강한 13명의 학생들은 '에브리타임에서 썰리고 퇴출당하며 벼려낸 청년들의 시대 감각'을 모아 <공정감각>이란 책으로 엮어냈습니다. 에브리타임 속 주류를 이루는 시각과는 '다른' 시각으로 썼다가, 신고 등에 의해 게시판에서 삭제됐거나 삭제될 글들을 모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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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계기는,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의 집회 소음이 수업권을 침해한다며 일부 학생들이 청소노동자들을 경찰에 고소(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혐의)하고 청소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일입니다. 이른바 '청년'들이 강조하는 '공정'이란 잣대는 왜 청소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만 향하는지, 그리고 과연 그 공정이란 잣대가 오늘날 청년 세대 전체를 대변하는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는지, 손쉬운 '타자화'에 맞서 용기 있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 20대 청년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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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시작된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대학생들의 고소는 2022년 12월, 올해 2월 각각 경찰과 검찰에서 '혐의없음'으로 최종 결론 났습니다. 이 사건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도록 도움 주는 기사들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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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이 소설이 '종교' 코너에…
소설가 이기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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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기호는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자랐고, 친한 친구들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빠져들어 신학대학교 진학까지 생각했다가, 문예창작과로 진학한 뒤 문학으로 다시 '개종'하는 등 꽤나 굴곡진 '신앙' 이력을 지녔다 말합니다. 문학으로 개종했을 때, "한국 시의 무덤은 불교요, 한국 소설의 무덤은 기독교"라는 말을 새기게 됐다나요. 한국 기독교와 교회의 부정적인 면모가 자꾸 눈에 든 결과, 한국 교회와 불화할 삐딱한 이야기들이 잔뜩 담긴 <최순덕 성령충만기>가 그의 첫 책이 되고 맙니다. 책 제목 때문에 교보문고 '종교' 코너에 진열되기도 했다는, 우습고도 씁쓸한 이야기와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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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작가가 첫 책 이후에 쓴 자기 책들을 꼽아봤습니다. 왼쪽부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2006), <김 박사는 누구인가?>(2013), <차남들의 세계사>(2014), <눈감지 마라>(2022)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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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생일 같은 작가, 어떤 세계를 열어줄까
읽을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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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감사할 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를 두어야 했던 지난 시간에, 나는 포장할 일 없이 마음껏 책을 읽으면서 ‘울면서 책 포장하는 호사를 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가끔씩 슬슬 울어야 하나 고민도 하게 됐으니 여기까지 잘 왔다고 생각한다. 집 앞 슈퍼 사장님은 내가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같은 속도로 어슬렁어슬렁 야채를 나르고, 옆집 라멘집 사장님은 문 연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육수를 끓이고, 앞집 이자카야 사장님은 새벽같이 나가 횟감을 받아 오고 아이들 등원을 시킨다. 서점도 장사하는 곳이니 그만큼 부지런해야 하는 게 사실 마땅하다.
잠시 눈을 들어 책방 문을 바라본다. 책방 문 맞은편으로 예쁜 음식점이 보인다. 책방이 처음 이 골목으로 이사왔을 때는 건강원이었던 자리다. 배즙을 만들 배나 김장을 할 배추가 쌓여 있었고, 가끔은 염소가 앉아서 배추를 씹고 있었다. 조용한 골목에 더 조용한 책방이 생긴 뒤, 골목에는 예쁜 음식점과 카페가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책방 영업이 끝나고 하나 더 있는 겉문까지 닫으면, 창문 없는 책방은 어둠에 잠긴다. 바깥에서는 파란 벽면에 책 한 권이 세워져 있다. 책 모양으로 만든, 책방의 겉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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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원형
할머니는 타래에서 실을 뽑으며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나는 그 노래를 기억해본다. 그러면 할머니는 지긋이 바라보시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간 실. 슬슬 풀려가는 실. 친친 감겨가는 실. 무언가 허술해졌고 그만큼 불룩해지고 할머니의 노래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저 옮겨갈 뿐. 그 얇고 가는 사이. 아가.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 같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본다. 창밖에는 늙은 나무가 있었고 그것은 아슬하게 서 있다. 가을이 되면 저 위태로운 각도의 잎들을 모두 벗고 중심의 방향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쯤. 그렇겠지. 그렇겠구나.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 같다. 그런 노래였나. 그래. 그랬구나. 그랬던 거였구나. 머리를 만져주는.
📖유희경의 시, <문학과사회> 가을호(143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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