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국립국어원에서는 국어 생활에서 생기는 궁금한 점을 해소해주기 위해 ‘온라인 가나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 만지는 일이 업이라, 가끔 이곳을 열어볼 일이 생깁니다. 최근 여기에서 이런 질문을 봤습니다. “공산전체주의의 뜻에 대해 알려주세요.” 국립국어원은 이렇게 답합니다. “온라인 가나다는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을 기준으로 답변을 드리고 있습니다. (…) 문의하신 ‘공산전체주의’는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아 의미를 안내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조그셔틀을 돌리다 라디오 주파수가 딱 맞았을 때처럼, 왠지 질문을 올린 사람이나 답변을 단 사람 모두가 느끼고 있을 당혹감 같은 게 제게도 정확하게 수신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공유한 그 당혹감이라는 게, 누군가 발신했던 낱말의 의미를 제대로 수신할 수 없다는 상황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은 참 역설적이었지만요. 위정자들과 그 주변에서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폭포처럼 쏟아내는 ‘아무말’들이 곳곳에서 일으키는 파열음이 갈수록 커져만 갑니다. “홍범도 빨치산” 타령은 어느새 “이순신은 대한민국 사람 아닌 조선 사람”이란 지경까지 갔습니다.
인문학자 김경집은 <어른의 말글 감각>(김영사)에서 말과 글을 ‘만진다’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빨리감기’의 시대, 스스로 시간을 두고 낱말을 섬세하게 만지는 일은 우리에게 그동안 잃어버렸던 생각의 주도권을 되돌려준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충분히 만져진 뒤 나온 낱말은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겠죠. 우리에게 당혹감만 안겨주는 저 말들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왔을까 궁금해집니다. 거기에는 ‘만지는’ 마음과는 다른, 도대체 어떤 마음이 스며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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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한계와 문제를 나날이 절감하는 이즈음입니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이렇게까지 나라가 엉망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새삼 놀랍기만 합니다.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라는 책 제목은 그렇게 절망하고 놀라는 이들에게 솔깃하게 다가옵니다. 지은이 최태현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는 민주주의에 내재한 역설과 한계를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대의민주주의의 속성상 선거로 뽑힌 대표자는 그를 뽑은 이들의 이익과 바람을 모두 충족시키기 어렵습니다. 대의제에서 오히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대표되지 않는가”의 문제라는 지적이 날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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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해결해야 할 문제를 취사선택하거나 거버넌스를 빌미로 민간에 책임을 떠넘기는 식으로 제 역할을 피해가려 합니다. 문제가 산적하고 복잡할수록 강력하고 영웅적인 지도자를 갈망하게 마련인데, 그렇다고 해서 독재자에 가까운 이를 지도자로 선택하면 민주주의는 그만큼 후퇴하게 됩니다. 민주주의에서 손쉬운 해결책을 기대해서는 곤란합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지은이는 민주주의를 복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민주주의의 마음’과 ‘작은 공(共)’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그가 보기에 민주주의는 제도와 원칙 이전에 마음의 문제입니다. 사랑과 상상력, 슬픔 같은 마음의 결들은 여느 민주주의 관련 책에서 접하기 어려운 것들인데, 이 책에서는 그것들이 핵심을 이룹니다. 일상적 삶에 밀착한 소집단에서 그런 민주주의의 마음을 펼치는 데에서부터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키는 일은 가능하다고 지은이는 간곡하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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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현 교수는 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교육자인 파커 J.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민주주의의 마음'이라는 모티프와 책의 제목에 대한 아이디어 등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파머는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에 나온 '마음의 습관'이란 개념을 끌어온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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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재까지 인류의 오랜 경험이 녹아있지 않은 곳은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주방이란 공간은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먹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 결정적이었는지 떠올려 보자면요. 장원철 작가는 5년 동안 남대문 그릇도매상가에서 업소용 주방기물을 판 이력이 있는데, 장사는 끝내 접고 말았지만 현장에서 습득한 지식과 경험은 고스란히 남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5년 동안의 공부를 더해 써낸 책이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입니다. 젓가락과 숟가락, 칼과 도마, 냄비, 냉장고, 식기세척기 등 온갖 주방기물들로부터 다종다양한 인류의 역사문화적 발자취를 짚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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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이 처음 등장했을 땐 핀셋 형태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애초 신에게 올리는 제사상의 음식을 옮기는 용도로 쓰이던 젓가락이 사람이 사용하는 기구가 되면서 사람의 손 형태에 적합하게 바뀐 것이죠. 각종 주방기물들은 한마디로 '먹어야겠다'는 욕망의 산물인데,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냄비의 발명입니다. 다양한 식량 자원들을 먹겠다는 욕망이 "물을 가두고 불의 힘을 견디"며 어떤 재료라도 요리해낼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낸 겁니다. 이밖에도 시시콜콜하지만 흥미로운 사실들이 풍부합니다. 볶음밥은 식용유가 풍부해지고 에나멜 코팅 프라이팬이 보급된 1970년대에서야 우리나라 국적을 얻었습니다. 얼리는 기술이 없던 옛날, 얼음은 '부동산'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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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현(43)은 자신의 어떤 작품이든 성소수자 작가의 작품으로 읽히는 게 아쉽지 않냐는 질문에 “크게 제약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고 말합니다. “그게 사실이니까요, 다만 자전적인 것들을 많이 담았던, 그간 1인칭 화자 중심에서 3인칭으로 많이 넓혀봤어요. 나의 이야기보다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혹은 우리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들 안에 성소수자도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김현은 시인이고 소설가이고 출판사 직원이고 인권 활동가이고 커밍아웃을 한 게이입니다. 대학 다닐 즈음 이미 성소수자란 사실을 알았을 텐데 2017년 설 정식으로 직접 고백을 들은 부모는 또 울었다고 했습니다. “원망보다는 아들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마음”으로 시인은 짐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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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첫 소설집 <고스트 듀엣>은 연애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연인의 관계는 익살맞고 애틋하고 안타깝고 귀합니다. 이런 특색을 각기 소설이 나눠 띤다는 게 아니라, 11편 단편들이 이 모든 기운을 어지간히 다 담아냅니다. ‘작가의 말’마따나 “증오와 살육”의 시대인데 말이지요. 특히 이 소설들 주인공에겐 멸시와 차별이 내리쬐는 시대, 작정한 듯 그 주인공들의 ‘달달한’ 연애를 예찬하는 겁니다. 부모의 슬픈 마음이 없도록, 누구도 슬퍼할 수 없게 그런다고 짐작해봅니다. 날 선 입담으로 스러진 이들을 위한 위무, 나아가 김현식 대항적 만담이지요. 읽고 보니, 연애는 연대이고, 연대는 연애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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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시인은 2017년 영국 영화감독 켄 로치의 작품과 사유를 끌어와 자신의 지난 삶을 펼쳐보이는 에세이집 <걱정 말고 다녀와>(이부록 그림, 알마)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인터뷰를 함께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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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인가, 양육인가.’ 인간의 성격 발달에 끼치는 영향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에 흔히 등장하는 대립 구도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유전인가, 환경인가’라고 할 수 있는데, 생물학 영역에서 이 대립 구도를 새롭게 해명하는 분야로 요즘 떠오르는 학문이 후성유전학입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무어가 쓴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는 지난 20년 사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 후성유전학을 소개하고 이 학문의 발견들에 담긴 함의를 두루 살피는 책입니다. 이 책이 주장하는 핵심은 생명체를 둘러싼 환경 안에서 생명체가 겪은 경험이 유전자와 함께 작용해 생명체의 형질을 만들어낸다는 것, 또 이 형질이 유전적인 방식으로나 비유전적인 방식으로 후대에 대물림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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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성유전학의 발견은 19세기 프랑스 생물학자 라마르크가 주장한 ‘후천적으로 획득된 형질의 유전’ 학설을 떠올리게 합니다. 라마르크의 학설은 20세기 초에 유전자 돌연변이가 개체 변이의 원인이라는 유전자 결정론의 비판을 받고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후성유전학 연구는 유전자 결정론이 틀렸으며 라마르크 학설이 설득력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책은 유전학에 일어나는 일대 변혁을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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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난주에 소개드렸던 <기계 속의 생명>(바다출판사)이란 책을 기억하시는지요? 이론물리학자가 물리학과 생물학의 최신 성과에 기대어 '정보'란 핵심 개념으로 생명의 본질을 추적하는 이 책에서도 후성유전학의 성과가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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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부제가 내용을 미리 알려줍니다. '세계는 왜 여성에게 맞지 않을까'. 세계가 여성이 아닌 남성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남성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보다 더 문제인 것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우리의 인식 체계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독일의 작가 레베카 엔들러는 <사물의 가부장제>에서 언어부터 공중화장실, 옷, 인터넷, 자동차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실질적인 사물들이 얼마나 남성중심적으로, 그러니까 가부장제에 입각해 설계되어 있는지 탐구합니다. 공공장소를 아무리 찾아봐도 남성용 소변기밖에 없어서 노상 방뇨를 해야 했던 여성의 실제 사례는 이 '가부장제 디자인'의 일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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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강도의 교통사고를 당한 남녀를 비교했을 때 여성이 중상을 입을 확률은 남성보다 47% 더 높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동차 산업은 수십년간 177㎝, 체중 75.5㎏의 젊은 남성의 체형을 가진 마네킹으로만 안전실험을 해 왔기 때문이죠. 도로나 광장의 이름, 더 나아가 과학 법칙의 이름은 죄다 남성의 이름들로부터 따왔을 뿐, 여성의 이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사무실용 회전의자들에도 모리츠, 보리스, 팀 등 남자 이름들만 붙습니다. 이와 같은 성별 편향은 축구화에, 자전거 안장에, 속옷에, 영화에… 우리를 둘러싼 그 모든 것들에 다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인류의 절반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세계 속에서 신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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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에는 가부장제, 곧 성별 편향뿐 아니라 다양한 편향들이 반영됩니다. 남성을 '정상'으로 삼은 디자인뿐 아니라 비장애를 '정상'으로 삼은 디자인도 '맞지 않는' 사람들의 고통을 유발합니다. 사라 헨드렌의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김영사)에서는 기술과 장애의 연결을 위한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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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아이 '쪼마'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동네에 삽니다. 너무 가까워서였을까요. 새끼 양 한 마리가 그만 구름 속으로 쏙 들어가버립니다. 새끼 양을 쫓아 구름 나라로 들어간 쪼마는 쌍쌍 구름, 달토끼 구름, 정원사 구름, 물고기 구름 등 여러 신기한 구름들을 만납니다. <구름 나라의 쪼마>(이야기꽃)는 김용철 화가가 20년 전 티베트 히말라야를 여행하며 본 하늘과 구름, 고원의 양치기 아이를 보고 지은 이야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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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한 시절과 함께할 수 있다면
오롯서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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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심란하던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왔다. 여러 상황으로 떠나는 분들도 계시고, 사정상 발길을 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또 새로이 찾아 주시는 분들도 계시질 않은가.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만고의 진리를 새삼 깨닫는 중이다. 그렇게 만남과 이별 앞에서 평온함을 찾고 나니 이제는 서점을 찾으셨던 모든 분들의 한 시절에 오롯서점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점을 연 지 이제 2년이 지났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오롯서점이 누군가의 한 시절과 함께할 수 있다면 큰 기쁨일 것이다. 그런 누군가를 기다리며 오늘도 서점은 열려 있다. 오롯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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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친구에게
열두 살에 죽은 친구의 글씨체로 편지를 쓴다.
안녕. 친구. 나는 아직도
사람의 모습으로 밥을 먹고
사람의 머리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너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구나.
냉동실에 삼 년쯤 얼어붙어 있던 웃음으로
웃는 얼굴을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
너만 좋다면
내 목소리로
녹음을 해도 된단다.
내 손이 어색하게 움직여도
너라면 충분히
너의 이야기를 쓸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답장을 써주기를 바란다.
안녕. 친구.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난 네가 좋다.
📖신해욱의 시집 <생물성>(문학과지성사)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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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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