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지난해 8월 발표한 ‘출판문화산업 진흥 계획’(2022~2026)에서 “수요 확대와 인프라 혁신으로 출판산업 성장의 발판을 확보”한다는 목표 아래 여러 추진전략들을 제시했습니다. 저출산·고령화로 전반적인 독서인구가 양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수요 자체를 확대하는 것, 곧 사람들에게 책을 더 많이 읽히는 게 핵심입니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은 “문체부 장관은 출판문화산업의 진흥에 필요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국가·지방자치단체가 “지역서점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이에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규정도, “양서 권장 및 독서 진흥 등 출판수요 진작을 위한 사업”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직무라고 정한 규정도 있습니다. 법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뒤집는 정부의 행태를,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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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수상자인 미국 기자 이언 어비나의 <무법의 바다>는 뉴욕타임스 연재 기사를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그는 이 책을 쓰느라 무려 40개월에 걸쳐 85번의 비행으로 세계 40개 도시를 누비는 40만 4천㎞의 취재와 오대양과 부속해 20곳을 넘나드는 1만 2천해리의 여정을 답파했다고 하네요. 힘들고 거친 환경에서 의식주가 두루 부실했고 때로는 목숨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했지만, 그렇게 열정과 노력을 바쳐 쓴 책은 현장감과 긴박감이 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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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꿈과 낭만적 상상의 무대로 바다를 표상하곤 합니다. <로빈슨 크루소>나 <모비딕> 같은 소설들은 고난과 모험으로 포장된 낭만적 바다 이미지를 한껏 부추긴 바 있습니다. <무법의 바다>에 그려진 것은 그런 낭만의 바다와는 거리가 멉니다. 노예 노동과 밀항, 폭력과 살인, 불법 어로, 폐기물 투기, 포경선을 쫓는 민간 활동가들, 공해상에서 이루어지는 임신중지 시술….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장과 사건들을 접하다 보면, 우리가 즐기는 식탁 위의 해산물들을 다시 보게 됩니다. 예컨대 일본과 한국에서는 메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빨고기(또는 칠레 농어)는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어획량이 제한되어 있는데, 각국의 무관심 속에 이를 불법으로 포획하는 천둥호를 추적해 나포하려는 민간 조직 시셰퍼드 요원들의 활약이 박진감 넘치게 펼쳐집니다. 한국 기업인 사조오양 소속 원양어선들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과 침몰 사고 이야기도 상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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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에서 일하며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언 어비나는 현재 바다의 환경과 인권, 노동에 대한 탐사보도를 하는 비영리 저널리즘 단체 '무법의 바다 프로젝트'(theoutlawocean.com)를 이끌고 있습니다. 국내 방송사 <SBS>가 이 단체와 협업해 만들고 있는 콘텐츠들을 소개합니다.
🐟이 단체는 유럽으로 가려는 이주민들을 체포해 난민수용소로 보내는 리비아 해안경비대와 유럽연합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목표물로부터 벗어나다: 리비아 해안경비대로부터의 이주민 구출>(Get Away from the Target)을 만들어, 2022년 에미상(뉴스/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영국 영화 제작자 알리 타브리지가 제작 및 감독한 <씨스피라시>는 바다에서 이뤄지는 상업적인 어업이 얼마나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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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대항해시대'와 그것이 낳은 근대 세계의 형성을 공부할 때, 우리는 흔히 "아시아 세계와 상업적 관계를 맺고 싶은 유럽의 열망"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이베리아반도의 항해자들은 애초 아시아를 향해 배를 몰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뚜렷하게 아프리카에 맞춰져 있었고, 그들에게 아프리카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면 커졌지 결코 줄어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태껏 우리는 왜 이런 실제 역사에 대해 잘 모르거나 경시하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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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언론인이자 학자인 하워드 워링 프렌치(컬럼비아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본 인 블랙니스>에서 근대 세계의 형성에서 그동안 은폐됐던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의 존재를 다시 살려냅니다. 이베리아반도 국가들은 황금을 찾아 서아프리카 해안을 남진하며 아프리카와 깊은 관계를 맺었고, 그 관계 속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높은 수익을 보장해주는 '상품'이 부상합니다. 바로 노예노동입니다. 인간을 가축처럼 부리는 노예노동은 유럽인이 개발한 '플랜테이션' 농업과 만나 설탕, 면화 등의 생산물로 오랫동안 유럽의 배를 불려 주었습니다. 이 단순하고도 강력한 진실은, 우리가 그동안 근대 세계의 형성에서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의 몫을 얼마나 과소평가해왔는지, 또 대항해시대나 산업혁명 같은 수사를 들어가며 유럽인의 몫을 얼마나 과대평가해왔는지 되새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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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도제도의 섬 생도맹그는 설탕 플랜테이션으로 18세기 프랑스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준 식민지였습니다. 프랑스혁명 직후인 1791년 8월 이곳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노예봉기이고, 우리가 아는 한, 자유국의 탄생으로 이어진 유일한 노예해방 운동"인 아이티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 당시부터 유럽인은 이 사건의 의미를 지워버리려 노력했지만, 자신을 형성하려는 흑인의 끊임없는 노력은 여태까지 한번도 끊긴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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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현상’이 된 지는 오래됐습니다. 건재를 확인하는 일만 반복될 뿐입니다. 마치 노벨문학상 후보로 반복 거명하며 존재를 확인하는 일처럼요. 하루키의 대표 전작인 <1Q84>(2009)와 <기사단장 죽이기>(2017)는 국내 쇄를 거듭하며 지금껏 270만부가량이 팔린 것으로 파악됩니다. 6년 만에 그가 내놓은 장편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어떨까요. 이미 국내 예약판매로만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니, 또 하나의 신드롬을 예고한다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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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1980년 세번째로 쓴 중편을 전면 개작한 것입니다. 그가 이 작품을 “송두리째” 뜯어고친 이유는 뭘까요. 소설엔 두 세계가 존재합니다. 현실 세계와 8m 높이의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죠. 인간은 제 ‘그림자’를 떼어내야 벽 안의 도시로 들어갈 수 있고, 가면 바깥 현실로 나오기 어렵습니다. 현실세계의 기억을 망각하게 되고, 꿈을 꿀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누구든 그 도시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루키는 그림자와 꿈을 기표로 이 두 가지 세계를 맞세우고 횡단하며 독자가 추구할 삶의 가치와 형질을 묻고자 합니다. 의지로써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운명처럼 선택되어지는 것들 사이, 소설 속 수도 없이 반복되는 낱말로서 그림자와 꿈은 한 발음에 읽힐 테지만, 뜻은 저마다 서서히 또 수없이 달라질 법합니다. 이 구현, 이 깊이가 바로 나이 일흔이 넘어 가능했던 모양입니다. ‘하루키 장르’의 시작과 완결을 한 작품에 품은 채 당시 31살 작가는 올해 일흔넷이 되고 이달 말이면 또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거명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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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 이론물리학자 폴 데이비스(77)가 쓴 <기계 속의 악마>는 바로 얼마 전에 출간된 스웨덴 이론물리학자 울프 다니엘손이 쓴 <세계 그 자체>(👉기사보기)의 확장판 같은 책입니다. 다니엘손의 그 책도 이론물리학자로서 생명과 인간 의식의 세계까지 물리학으로 설명해보려고 하는데요, 데이비스의 이 책도 똑같은 야심을 보여줍니다. 물리학으로 해명하는 생명의 수수께끼가 이 책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데이비스의 책은 그 내용의 밀도와 주장의 새로움에서 다니엘손의 책과는 사뭇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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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는 생명이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를 ‘정보’에서 찾습니다. 생명체는 단순히 물질 덩어리 몸이 아니라 그 복제와 재생을 담당하는 프로그램인 정보가 더해져 있다는 것인데요. 데이비스의 획기적인 주장은 그 정보가 우주 물질에 이미 내장돼 있었고, 그 물질에 내장된 정보가 생명에 친화적이어서 생명의 탄생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또 데이비스는 정보의 정체를 해명해 가는 과정에서 다윈의 ‘무작위적 돌연변이에 의한 자연선택’ 이론을 부정하고 라마르크의 획득형질설을 연상시키는 주장을 하는데요, 물리학과 생물학의 접점에서 흥미로운 접점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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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도 마약의 위험이 조금씩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2018~2020년 단 2년 사이에 국내 마약 사범 수는 50% 가까이 증가했고, 2015년까지 잠잠했던 대마초 사범 수는 2022년 4배 넘게 급증했다고 합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15년 동안 20만 명의 환자를 진찰해 온 의사 양성관은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마약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 찬찬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금 시기에 꼭 필요한 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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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드러나듯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1부에서는 '마약 하는 마음' 곧 사람들이 어떻게 마약을 시작하고 중독되며 파멸해가는지 살핍니다. 2부 '마약 파는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구조, 곧 마약의 생산-유통-판매-소비를 둘러싼 실태를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법을 진단합니다. 마약은 애초 치료제로, 진통제로 쓰이기 시작했으나, 20세기 들어 의학 지식과 의료 기술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마약류의 효능보다 폐해가 도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마약보다 더 고부가가치 상품은 없다"는 말에서 보듯 부패한 정권과 가난한 나라에서 생산돼 부유한 나라에서 소비되는, 단단한 마약 산업은 그 폐해를 기하급수적으로 키웠습니다. 지은이는 이처럼 '고위험 고수익'인 마약 시장의 성격을 '고위험 저수익'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마약 중독자를 '범죄자' 아닌 '환자'로 보고 처벌보다 적극적인 치료를 하는 것이 그 방법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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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번역인생, 슬럼프는 한순간도 없었다"
번역가 강주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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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귀 한국외대 교수(영미문학문화학과)는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교사와 시인"이 되길 꿈꿔왔다 합니다. 그렇게 시를 사랑하다 보니, 시를 전문적으로 옮기는 사람도 되었습니다. 우리 시를 영문으로 옮기기도 하고, 영문 시를 한국어로 옮기기도 합니다. 둘 다 똑같이 어렵지만, 둘 다 똑같이 "재미있고 매력적"이라는 그의 말에서, 시에 대한 사랑이 흘러 넘칩니다. 아름답고 예뻐서가 아니라 "삶의 진창에서 피어난 언어이자 해석을 기다리는 미완의 언어"이기에, 그는 시로부터 '돌파할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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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직접 꼽은 주요 작품들의 표지. 왼쪽부터 44명 근현대 한국 시인들의 작품을 영문으로 옮긴 <The Colors of Dawn>(하와이대출판부), 강은교 시인의 <바리연가집>을 영문으로 옮긴 <Bari's Love Song>(PARLOR ORESS), 루이즈 글릭의 시집 <야생 붓꽃>(시공사), 앤 섹스턴의 시집 <밤엔 더 용감하지>(민음사) 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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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상적인 이야기들 중 여러분의 즐거움이 하나쯤은
환상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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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손을 떠난 이야기는 독자의 몫입니다. 책이 저에게 읽히는 순간부터, 이 이야기는 이제 제 것입니다. 등장인물의 모습과 목소리, 사건의 연출, 장소와 분위기마저 작가가 의도한 바 있더라도 상상은 제 머릿속에 달린 일입니다. 오독마저 독자의 권리입니다. 이 터무니없이 커다란 자유 앞에 어떻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요?
‘환상문학’은 장르문학을 위한 공간입니다. 에스에프, 미스터리, 판타지, 스릴러, 로맨스, 호러 등 장르적 문법으로 현실을 비추는 책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실 장르문학이 가지는 어떤 기준점이나 경계선, 정의들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다만 즐거운 독서를 하실 수 있도록 나름의 키워드를 선정해 취향을 찾아가실 수 있도록 소개를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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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 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백석의 시를 현대어 정본과 해설로 되살린 <백석 시, 백편>(태학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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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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