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미국의 식물생리학자 루이스 지스카(66)는 자신의 책에서 과거 어느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카메라 앞에 선 그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면 벼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하자, 제작진은 ‘이제 됐다’며 철수했답니다.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면 벼 생태계에서 잡초가 더 빨리 성장한다”는, 중요한 말은 잘라먹고요. 그 촬영분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는 식물의 먹이가 늘어나는 것이니 오히려 이로운 일’이라 주장하는 영상 ‘푸른 지구는 계속된다’(The Greening of Planet Earth Continues, 1998년)에 쓰였답니다.
지스카는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먹이”라는 명제 자체는 과학적 사실이지만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는 것은 작물보다 잡초를 더욱 왕성히 키우고 작물 내 단백질 함량을 낮추는 등 결코 ‘이로운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꼼꼼하게 논증합니다.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먹이”란 말은 과학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당연히 뒤따라야 할 수많은 질문들을 의도적으로 묵살하기 위해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정치적 주장’일 뿐입니다. 그 뒤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여전히 자유롭게 내뿜고 싶어하는 거대한 화석연료 산업계의 이익이 있습니다.
24년 동안 미국 농무부에서 일해왔던 지스카는 2019년 자신의 연구와 관련 논문 게재를 가로막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항의하는 뜻으로 사임했고, 지금은 대학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책의 원제는 ‘Greenhouse Planet’(온실 행성)인데, 우리말 제목을 잘 지었습니다. “정치는 어떻게 과학의 팔을 비트는가”(한문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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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은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을 비롯해 여러 도시에서 20년 넘게 생활한 장남주씨가 쓴 책입니다. 지은이에 따르면 독일 베를린 시내에만 공식 기념물이 1만2천여 개에 이른다고 하네요. ‘베를린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은 그 가운데 나치 시절 흑역사에 대한 반성을 담은 기념물들(1권)과 1990년의 독일 통일을 전후한 역사와 관련된 기념물들(2권)로 크게 나누어 독일의 ‘기억 투쟁’을 돋을새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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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철저히 반성하고 그로부터 현재와 미래에 대한 교훈을 끌어내려는 노력에 감탄과 부러움의 마음이 듭니다. 그와 함께, 같은 전범국이면서도 전쟁 범죄와 식민 통치 시절의 잘못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데에만 급급한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를 비교해 보게도 되구요. 독일에서도 자신들의 과거사를 반성하고 비판하는 일은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숱한 반발과 논란을 거치며 지금의 ‘반성하는 나라’ 독일이 있기까지 그 나라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지나온 발자취는 일본은 물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슈타인마이어 연방 대통령은 2020년 아우슈비츠 해방일 75주년 추모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일어난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고 넘어가야 미래에 다시 저지를지도 모를 잘못을 미리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저들은 언제나 깨닫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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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한겨레> 사진기자는 전쟁과 학살의 현장들을 찾아다니며 사진과 글로 그 기억을 더듬는 작업('김봉규의 사람아 사람아')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그중 베를린 편을 소개합니다. 르완다부터 네덜란드, 폴란드, 독일, 체코, 캄보디아, 국내로 이어지는 전체 여정을 함께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쟁이나 학살 등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다크 투어'라 합니다. '다크 투어'의 정신이 담긴 책을 한 권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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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카라바조'란 이름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16세기 바로크 회화의 씨를 뿌린 이탈리아의 화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의 포스터에도 카라바조의 그림('뱀에 물린 청년')이 쓰일 정도로 서양미술사에서 카라바조의 위상은 대단합니다. 과연 무엇이 그를 이렇게 대단한 화가로 만들었을까요? 미술사학자 고종희 한양여대 명예교수가 쓴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는 큰 판형의 그림들과 함께 여러분을 카라바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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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그림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테네브리즘'이라 불리는 극단적인 명암법입니다. 카라바조는 르네상스 명암법을 종합한 티치아노, 밀라노에 머무르며 빛의 효과를 실험하고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여러 선배들의 그림을 '모방'하면서 이를 과감하게 변형하는 가운데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 갔습니다. 특히 지은이가 주목하는 것은 그의 회화와 당시 개신교와의 경쟁 구도 가운데 벌어졌던 가톨릭개혁 운동 사이의 관계입니다. "주름진 얼굴, 더러운 피부, 마디진 손가락, 병자의 손발"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카라바조의 작품는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려던 "가톨릭개혁 운동의 정신을 시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카라바조의 작품들 속에 많이 나타나는 '맨발' 역시 이런 차원에서 풀이할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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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가 번역되는 과정을 상상해볼까요. 김이듬의 시집 <히스테리아>에 담긴 ‘사과 없어요’입니다.
“아 어쩐다, 다른 게 나왔으니, 주문한 음식보다 비싼 게 나왔으니, 아 어쩐다, 짜장면 시켰는데 삼선짜장면이 나왔으니, 이봐요, 그냥 짜장면 시켰는데요, 아뇨, 손님이 삼선짜장면이라고 말했잖아요, 아 어쩐다, 주인을 불러 바꿔달라고 할까, 아 어쩐다, 그러면 이 종업원이 꾸지람 듣겠지, 어쩌면 급료에서 삼선짜장면 값만큼 깎이겠지, 급기야 쫓겨날지도 몰라, 아아 어쩐다, 미안하다고 하면 이대로 먹을 텐데, 단무지도 갖다주기 않고, 아아 사과하면 괜찮다고 할 텐데, 아아 미안하다 말해서 용서받기는커녕 몽땅 뒤집어쓴 적 있는 나로서는, 아아, 아아, 싸우기 귀찮아서 잘못했다고 말하고는 제거되고 추방된 나로서는, 아아 어쩐다, 쟤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고, 그래 내가 잘못 발음했을지 몰라, 아아 어쩐다, 전복도 다진 야채도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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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 어쩐다, 어쩌지, 어쩔…만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혀끝에 달랑거립니다. 이 시집을 영문 번역한 <Hysteria>는 2020년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받았습니다. 근 10여년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한 번역과 번역가의 가치를 새삼 돋을새김할 만합니다. 이 책 <K 문학의 탄생>의 요지이겠습니다. 출발어 원전에 밀착한 번역(충실성)이냐, 도착어 현지에 근접한 번역(창조성)이냐 번역론을 두고 서구에서 다툼하고 학습해온 역사는 깁니다. 우린 근 10여년 ‘압축성장기’를 거치듯, 충실한 번역에서 창조적 번역으로 지평을 넓혀가는 중입니다. 한국문학의 지평이 그렇게 함께 넓혀지는 중이란 걸 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소설, 시를 번역해온 이들의 직접 경험담, 한국문학번역사의 개관 등으로 알찹니다. 아, 그래서 김이듬의 저 시는 어떻게 상을 받았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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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에 충실하게 옮겨야 하냐, 우리 말로 읽기 쉽도록 옮겨야 하냐 등 번역은 그 자체로 논란이 많은 작업입니다. 국내 대표 번역가인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영문학)의 책 <번역가의 길>(연암서가)에서 번역가의 현실과 고민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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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레크비츠(53)는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독일 사회학자입니다.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문화의 변동을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인데요, <단독성들의 사회>는 레크비츠 저서 가운데 국내에 처음 번역된 책입니다. 레크비츠의 넓은 학문적 시야가 잘 드러난 저작이자 날카로운 사회학적 통찰을 확인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레크비츠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는 핵심 테제를 책머리에 이렇게 제시합니다. “후기근대에 들어와 보편성의 사회논리가 특수성의 사회논리에 지배권을 내주는 사회적 구조 변경이 일어나고 있다.” 레크비츠는 그 특수성의 사회논리를 ‘단독성’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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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비츠가 말하는 단독성이란 보편성에 대립하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의 독특성을 뜻합니다. 이 단독성이 21세기 서구 사회에서 보편적 현상이 됐으며 지구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 레크비츠의 진단입니다. 단독성은 개인의 취향과 소비에서부터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방면에서 발견된다는데요, 이렇게 단독성이 주류가 된 사회를 가리키는 말이 ‘단독성들의 사회’입니다. 그런데 이 단독성들의 사회에서 단독적 주체들은 과잉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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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19세기~20세기 중반 여성참정권운동 등 유럽에서 시작된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치 '물결'처럼 멀리 퍼져나갔다고 하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물결 서사는 마치 페미니즘의 단일한 기원이 있다 여기고, 그 중심에 백인이자 교육받은 여성 선구자들을 배치하는 시각을 만들어냅니다. 페미니즘이란 말에 복수형 s를 붙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국의 역사학자 루시 딜랩은 <페미니즘들>에서 이런 경향을 비판하며 페미니즘의 역사는 실로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시각이라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자유와 해방에 관한 지구사'(부제)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적절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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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사'라고 해서, 시간의 흐름 순서대로 쓴 책은 아닙니다. 지은이는 꿈, 생각, 공간, 사물, 모습, 감정, 행동, 노래 등 8가지 키워드를 통해 서로 위계적으로 배치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엮어나갑니다. 예컨대 '사물'을 보면, 대중자본주의 속 새로운 사물은 여성의 지위를 '소비자'에 단단히 묶어놓는 것만 같지만, 어떤 사물들은 여성의 정치적 주장에, 페미니즘적 사고의 전달에, 다른 페미니스트를 알아보느느 데, 페미니즘의 꿈을 널리 알리는 데 유용하게 쓰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고정된 중심 없이 여러 페미니즘'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대화'로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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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 페미니즘'들'이라면, 그 다양한 투쟁을 부르는 억압적 구조 역시 '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영국 역사학자 조애나 버크의 책 <수치>(디플롯)는 성폭력 역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문화적으로 구성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구사'를 펼쳐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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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떠들석하게 사람들의 관심을 붙잡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를 모델로 삼고 있죠. 그런데 정작 우리는 우리 자신의 뇌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밥을 먹지 않으면 뇌가 피곤해진다고?>(푸른숲주니어)는 초등학생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뇌에 관한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책입니다. 실제 사례를 드는 친절한 설명과, 뇌의 구조와 기능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배치한 삽화가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얼핏 어려워 보이는 뇌과학을, 이 책을 펴놓고 아이들과 함께 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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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초의 이상향 바라타리아, 책의 영지로
책방 바라타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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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가 최종목표인 한국의 교육시스템 안에서 청소년이 교재나 학습지, 추천 도서가 아닌,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청소년이 어린 시절 하루키처럼 원하는 책을 고를 수 있도록 해보자는 취지로 ‘미래로 보내는 미리 계산한 책, 미미책’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뜻있는 어른들이 청소년에게 보낼 책을 골라 결제를 하면 ‘미미책’이 서가에 놓이게 되죠. 책을 선물한 어른이 보내는 메모와 함께요. 그러면 책방을 방문한 청소년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책을 골라 갈 수 있어요. 책방 문을 연지 일년이 넘어가는 현재까지 110여명의 어른들이 200여 권의 ‘미미책’을 서가에 남겨 주었고, 이 중 120여 권이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도착했답니다. 주인 부부는 앞으로도 ‘미미책’ 서가가 미래에 대한 격려와 배려로 계속 채워지기를, 청소년들은 이곳에서 위로와 추억을 가져가기를 기대하고 있죠. 혹시 모르잖아요. 20년쯤 흐른 후, ‘미미책’을 골라간 친구 중에 노벨 문학상을 받는 세계적인 작가가 나올지도요. 그 때쯤 우리 부부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되어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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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
후두두둑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 마을버스가 서둘러 정류장에 들어왔어. 사람들은 우산을 접지도 펴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버스에 오를 준비를 했지. 그때 교복을 입은 오빠가 가만히 버스 줄 밖으로 비켜서는 거야. 다른 차를 타려나 보다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기다리던 사람들이 버스에 다 오를 때까지 한참 동안 우산을 높이 펴 들고 서 있더니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 오르는 거야. 그것을 본 만원 버스 속 사람들은 한 발짝씩 자리를 옮겨 오빠가 설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어. 마을버스는 걷는 사람들에게 빗물이 튀지 않게 더 천천히 움직였지. 나는 그날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거야.
📖김봄희의 동시집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권소리 그림, 상상)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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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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