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오늘 소개드릴 책들 가운데 하나인 인류학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세계 끝의 버섯>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중 북미 태평양 연안 오리건주 캐스케이드산맥 숲에서 유독 송이버섯이 많이 자라게 된 이야기를 간단히 들려드릴까 합니다.
19세기 백인들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들이 본 것은 거대한 폰데로사소나무들이었답니다. 과거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주로 ‘화전’을 했는데, 이것이 다른 나무들보다 불에 강한 폰데로사소나무가 자라는 데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은 폰데로사소나무를 대규모 벌목해 목재 산업을 일으켰고, 이는 산림청 설립 등 산림 자원을 관리하는 정책의 발전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당시 산림감독관들은 산불을 엄금하는 한편 나무를 한번에 몽땅 베어낸 뒤 다시 심는 정책을 폈는데, 뜻한 바와 다르게 이는 폰데로사소나무가 사라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산불을 금지하자 불에 강한 폰데로사소나무 대신 다른 수종이 그 자리를 대신해버린 겁니다. 그 대표적인 수종이, 폰데로사소나무와 반대로 불에 약하지만 불탄 뒤엔 빽빽하게 다시 자라나는 로지폴소나무입니다.
숲은 과거의 매력을 잃고 폐허가 되어버렸지만, 산불 금지 덕에 과거보다 오래 살게 된 로지폴소나무는 뜻하지 않게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냅니다. 소나무의 잔뿌리에 기생하는 송이버섯 곰팡이는 적어도 40년 이상 된 소나무에서 버섯을 맺는데, 이곳 로지폴소나무들이 불에 안 타고 오래 살게 되자 이전과 달리 송이버섯을 잔뜩 맺게 된 것이죠. "몇 가지 실수를 했다. …그리고 송이버섯이 등장했다." 누구의 의도도 아닌, 인간-비인간이 함께 만들어낸 이 생존의 풍경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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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은 참 이상한 존재입니다. 북미 서부 연안의 숲에서 많이 자라는 송이버섯은 주로 일본에서 선물용으로 팔립니다. '글로벌 공급사슬'을 타고 태평양을 건널 때에는 영락없는 자본주의적 상품이지만, 채집되는 쪽과 소비되는 쪽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인위적으로 재배할 수 없기에 채집만이 가능한데, 채집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계의 '노동' 관련 규율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주된 소비처인 일본에서 상업적 이익보다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송이버섯을 쓰는 모습은 '상품 경제'보다 '선물 경제'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이른바 '비인간' 담론을 선도하고 있는 인류학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은 2015년 저작 <세계 끝의 버섯>에서 이 송이버섯을 따라가며 “안정성에 대한 약속이 부재하는 삶”을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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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비인간은 혼자 살 수 없으며, 살기 위해 나와 다른 존재와 마주치고 협력해야 합니다. 협력은 나 자신의 변형도 피할 수 없는 '오염'이기에, 거기에서 다양성도 피어오릅니다. 지은이는 안정성과 확정성에 기반한 단일한 약속에 안주하기보다는 불안정하고 불확정적인 상황 속에서 서로를 오염시킬 '잠재적인 협력자'를 찾아내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생존 전략이라 역설합니다. "우리 것인 줄만 알았던 통제된 세계가 실패했을 때, 통제받지 않은 버섯이 삶의 선물이자 길잡이가 되어 준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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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로웬하웁트 칭은 같은 대학에 있는 도나 해러웨이와 함께 독창적인 차원의 '비인간' 담론을 만들어온 학자로 손꼽히며, <세계 끝의 버섯>은 국내에 처음 번역되어 나온 그의 저작입니다. <문화일보>의 기획 기사와 이를 묶은 책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에 그가 소개된 바 있습니다.
🐟'비인간'에 대한 관심과 여기서 비롯한 이분법 해체는, 오래된 인간중심주의뿐 아니라 생태의 부분만을 포착하여 이상화하는 '반쪽' 접근을 깨뜨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함께 참고할 만한 다른 책 기사들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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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기 전 '올드 상하이'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공간입니다. <자유의 도시, 올드 상하이>는 20세기 전반기 중국 상하이에 관한 문화적 기억을 다룹니다. 지은이인 중문학자 김양수(동국대 교수)는 그 시기 상하이를 규정하는 핵심으로 '내셔널리즘으로부터의 자유'를 꼽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 외세의 조차지라는 특성상 국민국가의 통제와 억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분위기가 올드 상하이 고유의 문화를 빚어냈다는 것입니다. 지은이는 한국과 일본, 중국의 문인과 지식인들, 미국 언론인들이 남긴 작품과 기록을 매개 삼아 대략 한 세기 전 상하이로 독자를 데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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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는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이 구현된 현실을 상하이에서 목격했다죠. 그와는 반대로 주요섭과 심훈, 유진오는 국경을 넘어서는 계급모순과 독립투쟁 및 혁명의 연대를 소설로 썼습니다. 일본 언론인 오자키 호쓰미는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공산주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기꺼이 조국을 배신하고 처형의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안 감독의 영화로 유명해진 소설 <색, 계>의 작가 장아이링도 흥미롭습니다. 소설에서 젠틀하게 묘사되고 영화에서는 심지어 매력적으로 그려진 이선생은 일본 꼭두각시 정권의 특무를 이끄는 인물로 "암살왕, 살인마"로 불리고 있었죠. 중국에서는 매국노를 미화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장아이링 자신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그에 맞섰습니다. 이래저래 흥미진진한 인물과 사건들이 명멸하는 한 세기 전 상하이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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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펴자마자 중반까진 말 그대로 급류에 휩쓸리듯 빨려 들어간 소설입니다. 이 즐겁던 독서 시간대 바깥에서 전개되는 세태는 아이들에야말로 정말 휘몰아치는 급류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미등록된 영아들이 몇이라 하고, 학대로 사망한 영유아 어린이가 또 몇이라 하고, 맞고 방치되고 굶주린 아이들의 모습이 또 어떠하다고들 합니다. 2019년 출간된 미국 작가 케빈 윌슨의 장편소설 <신경 좀 꺼줄래>는 어린이들이 지상에서 필요로 하는 돌봄의 자세와 윤리에 관한 여러 층위의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진부한 서술 같지만, 작품의 발상과 상징, 전개는 실로 기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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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화가 나고 겁을 먹으면 화로처럼 안에서 불타오르는 몸뚱이를 지닌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숨겼다 때로 발산하는 화염은 이들의 부정할 수 없는 존재감과 어른 세계에 대항할 수 있는 실질적 힘을 상징합니다. 아름답고 강한 것에 부복하기 바쁜 어른 세계에서, 스스로를 태워내는 불이야말로 공포스러운 것이겠지요. 다만 그 불은 보이지 않으므로 그 아이들 또한 보이지 않는다, 치는 부조리한 시대를 소설은 발칙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사태와 심리를 눈앞에 재현하듯 작가의 필치가 참으로 거침없습니다. 누가 언어는 사고를 담는다 했던가요, 말은 사고를 허무는 세찬 물입니다. 이것이 소설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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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웁살라대학 교수 울프 다니엘손은 암흑에너지·끈이론·우주론을 연구하는 이론물리학자입니다. 일반인들에게 물리학의 세계를 알리는 대중적인 물리학 책을 여러 권 낸 저술가이기도 합니다. 스웨덴왕립과학한림원 회원으로서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데도 관여합니다. <세계 그 자체>는 다니엘손이 2020년에 펴낸 책인데요, 물리학의 세계를 포괄적으로 안내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물리학을 철학적 사유와 대면시킴으로써 물리학자들이 자주 빠지는 잘못된 세계상을 드러냅니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부터 20세기 현상학자 메를로퐁티, 분석철학자 힐러리 퍼트넘까지 여러 철학자들이 이 책에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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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손은 물리학자들의 잘못된 세계상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세계 그 자체'를 가능한 한 투명하게 보여주려 합니다. 이를테면 '실재'와 '수학'을 혼동하는 것이 물리학자들이 저지르는 착각 가운데 하나라고 다니엘손은 말합니다. 근년에 유행하는 '평행우주'(평행세계)라는 우주론적 아이디어가 수학과 실재를 혼동한 데서 나온 발상이라고 합니다. 미셸 여(양자경)가 주연한 최근의 할리우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그 평행우주론을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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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일본에서 간토(관동)대지진이란 참사가 일어난 지 100년째 되는 해입니다. 간토대지진은 자연재해뿐 아니라 조선인 학살극, 사상 최악의 '제노사이드'였습니다. 무려 6천명가량의 조선인들이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 군경과 자경대에 의해 마구잡이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 세기가 지나고 있는데도, 일본 정부는 사과는커녕 무시와 은폐에 급급합니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오랜 시간 객원교수로 일했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가 쓴 <백년 동안의 증언>은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증언들을 통해 양국 작가와 시민들이 지난 100년 동안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하고 극복하려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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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은이는 일본 시인 쓰보이 시게지의 시 '15엔 50전'을 우리말로 옮겨 실었습니다. '쥬우고엔 고쥬센'(15엔 50전) 속 일본인 특유의 탁성을 제대로 발음해내지 못하면 조선인으로 간주해 학살했던 실제 사례에 기댄 이 시는, 조선인학살을 기록하고 그 본질을 묻는 '증언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일본 사회가 천황을 정점으로 한 삼각형 수직구조(縱社會, 다테사회)인 점에 주목합니다. 이 종속적 구조를 따르지 않는 자는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됩니다. 일본 정부와 사회는 노골적으로 극우화하고 있지만, 지은이는 삭제됐던 '과거의 기억'을 복원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희망으로 나아가 보자고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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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100년을 맞아, 이와 관련한 책과 인물에 대한 좋은 기사들이 꽤 나왔습니다. 몇 가지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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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책은 적어도 세 권 이상
소설가 정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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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겐 여러 가지 의미의 '첫 책'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 행보가 다채로울수록 첫 책'들'은 더욱 다양해질 수 있겠습니다. 동유럽 문학을 꾸준히 번역했고, 대학 강단에서 가르쳤고, 초창기 웹진에서부터 작품 활동을 펼쳐온,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로도 올랐던 소설가 정보라처럼요. 그는 2000년께 웹진에 투고한 단편 '죽은 팔' 덕분에 '작가'로 어딘가에 이름과 작품을 내는 경험을 처음 했다고 합니다. 외할머니 때문에 쓰게 된 장편 '호'는 2008년에 디지털문학상을 받았는데, 실제로 책이 출간된 건 올해였습니다. 그의 이름을 달고 처음 출간된 단행본은 2010년 <문이 열렸다>(파란미디어)였다 하고요. 지금도 "매번 쓸 때마다 처음 소설 쓰는 것 같은 막막함을 마주한다"는 그의 말이, 되레 더 믿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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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가 첫 책 이후에 쓴 자기 책들을 꼽아봤습니다. 왼쪽부터 <죽은 자의 꿈>(2012), <저주토끼>(2017), <아무도 모를 것이다>(2023), 그리고 번역책인 <우리는 아우슈비츠에 있었다>(2011)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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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을지로 자석'
책방 그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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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에 가끔 들르던 을지로 직장인이 있었어요. 오랫동안 포스트잇에 그려온 일기를 우리만 보기 아까워 책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책방 에스엔에스(SNS)에 번역 시를 올려주던 손님도, 본인 캐릭터로 재미난 만화를 그려온 손님도, 시장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웃 상인도 손님으로 만나서 작가가 되는 과정을 함께 하며 지금은 책방의 자랑이 되었지요. 어느 날은 장국영 팬이라며 ‘장국영’으로 ‘아무튼 시리즈’를 쓸 수 있다던 손님께 꼭 읽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결국 <아무튼, 장국영>은 출간이 되었고, 이 책 11쪽에 그래서에서 책이 시작된 이야기를 보고, 멀리 강원도에서 찾아온 아무튼 시리즈의 애독자는 지금까지 단골 손님으로, 친구로 만나고 있다면 믿겨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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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당신
저녁이 어두워서 분홍과 연두를 착오하고
외롭다는 걸 괴롭다고 잘못 적었습니다 그깟
시 몇 편 읽느라 약이 는다고 고백 뒤에도
여전히 알알의 고백이 남는다고 어두워서 당신은
스위치를 더듬듯 다시 아픈 위를 쓰다듬고,
당신을 가졌다고도 잃었다고도 말 못하겠는 건
지는 꽃들의 미필이라고 색색의 어지럼들이
저녁 속으로 문병 다녀갑니다 한발 다가서면
또 한발 도망간다던 당신 걱정처럼 참 새카맣게
저녁은 어두워지고 뒤를 따라 어두워진 우리가
나와 당신을 조금씩 착오할 때 세상에는
📖천서봉의 시집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문학동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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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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