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미국의 페인트회사 셔윈윌리엄스는 1940년대에 살충제인 디디티(DDT)를 여기저기 칠할 수 있도록 만든 제품 ‘페스트로이’를 만들었고, 짤막한 영화로 이를 광고했습니다. ‘ 디디티, 모든 곳에 뿌립시다’(DDT, Let’s Put It Everywhere)도 그중 하나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페인트통에 담긴 디디티를 붓으로 문짝과 바닥에 바르거나 스프레이로 온 집 안에 살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디디티의 해로움을 잘 알고 있는 요즘 사람들이 보면 기겁을 할 일이지만, 영상 속 사람들은 그저 발랄하고 해맑기만 합니다.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등 디디티의 위험에 대한 잇단 경고에 힘입어 1972년 미국에서 디디티는 사용 금지되었습니다. 씁쓸한 것은, 디디티를 ‘모든 곳에 뿌리라’고 했던 화학회사들은 정작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디디티는 특허가 이미 만료되어 여러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생산하는 바람에 별로 큰 이익이 안 됐답니다. 디디티 퇴출은 유력 기업들에게 되레 더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는 다른 화학물질들을 만들어 파는 계기를 제공한 셈이죠.
1970년대 초반 농업화학기업 몬산토가 개발한 글리포세이트가 대표적입니다. 인체에 미치는 해로움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글리포세이트가 뿌려졌습니다. 1995년과 2007년에 미시시피 삼각주를 따라 채취한 표본에서 공기 표본의 86퍼센트, 빗물 표본의 77퍼센트가 글리포세이트를 함유하고 있을 정도였다 합니다. 세계보건기구는 2015년에야 글리포세이트를 발암물질로 지정했습니다. 그저 발랄하고 해맑은 우리의 모습에, 미래의 사람들 또한 기겁을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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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꿇고 대지에 입을 맞추는 방법은 수백 가지가 있습니다. 집으로 다시 돌아갈 방법은 수백 가지가 있습니다."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는 이런 시를 남겼다고 합니다. 우리를 먹여살리는 모든 것은 땅에서 나옵니다. 땅속 수많은 미생물의 작용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땅은 정말로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땅을 갈아엎고, 그 위에 화학물질을 뿌려댑니다. <대지에 입맞춤을>을 쓴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작가 조시 티켈은 이를 두고 "우리는 우리가 가진 식량 생산 시스템으로 말 그대로 우리 자신을 죽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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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뒤 독일의 화학지식과 미국의 기계 설비가 만나 오늘날 대규모 식량생산을 가능케 한 '녹색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제초제, 농약, 유전공학, 옥수수·콩·밀·쌀의 단작, 합성 질소, 좁고 사방이 막힌 가축 비육장, 경운 등 거대 돈벌이 사업”은 우리를 죽이고 있습니다. 화학물질은 토양 속 미생물들을 죽이고, 땅을 갈아엎는 경운은 땅속 식물의 뿌리를 둘러싼 네트워크를 파괴합니다. 만약 자연의 순환이 시키는 대로, 다양한 작물의 재배와 가축의 방목이 어우러진 유기농 무경운 농업(재생농업)으로 나아간다면, 농부는 수익을, 우리는 건강을 되찾고 다시 탄소를 머금게 된 땅은 기후위기 극복에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 스스로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고 나서야 한다고 지은이는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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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에 입맞춤을>은 같은 이름으로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배우 우디 해럴슨이 내레이션을 맡은 이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대지에 입맞춤을'이란 제목은 토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활동을 벌이는 비영리단체 'Kiss the Ground'에서 비롯했습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으로 땅과 농업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환경공학자 맥스 아일은 <민중을 위한 그린 뉴딜>(두번째테제)에서 농업의 중요성과 함께 '기후 부채' 해결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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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탄생'이라고 하면 군주제의 쇠퇴, 공화주의의 부상, 국민국가의 성장, 민주주의의 진보 등이 떠오릅니다. 영국 역사학자 린다 콜리는 "그런 식으로만 접근하면 논의가 지나치게 협소해지고 잘못된 길로 접어들 수 있다"며 색다른 접근법을 제안합니다. 전쟁과 같은 폭력적인 사태가 헌법의 제정과 확산을 촉진했다는 관점입니다. 왠지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닮은, <총, 선, 펜>이란 제목이 붙은 그의 책은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도서국가, 아프리카 등 여러 대륙을 포괄하여 헌법 제정의 역사를 펼쳐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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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선, 펜은 각각 무력(전쟁과 혁명), 전함(항해을 통한 지리적 확장), 출판인쇄술(헌법의 문자화와 보급)을 가리킵니다. 전쟁은 전례없이 그 규모가 커졌고, 각국의 통치자들은 그 부담을 감당하기 위해 국가 내부의 가용자원을 대규모로 동원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높은 세금과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대신 선거권 같은 특정한 권리를 주는 체제의 계약이 헌법으로 명시된 셈이죠. 이는 왜 근대 헌법이 남성에게만 시민권을 주었는지 알게 해주는 지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헌법은 이리저리 '베끼기'를 통해 널리 퍼져나갑니다. 제국주의 국가들뿐 아니라 압박받는 약소국들 역시 성문헌법을 통해 자국민과 영토를 결속하고 보호하려 했던 역사가 이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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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도 다른 염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아는데, 인간은 왜 그러질 못하지요?"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49)가 2020년 9월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다음 말로 조금 더 구체화합니다. "지도상의 언어적 말소로 언어의 배신을 처음 경험하게 됩니다. 지도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우는 일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어요." 올해는 이스라엘이 건국 선언한 지 75주년이 됩니다. 이 말은 곧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의 오래된 터전에서 쫓겨나 떠돈지 75년째란 얘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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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사소한 일>에서 아다니아 쉬블리는 거대한 세계사적 담론에서 소거되거나 소외된 소소한 ‘사실들’, 가령 일상의 불안과 공포, 불의를 제 언어로 포착하려 합니다. 작렬하는 햇볕과 엄습하는 어둠 사이 스민 차별, 억압의 진실이 그럴 때 드러난다는 거죠. ‘진실’은 디테일에 있습니다. 소설 속 1949년의 비극은 소설 속 오늘의 비극이 맞습니다. 가해의 뒷면과 피해의 앞면조차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집니다. 폭력과 억압의 상대성을 함의할 텐데, 그보다는 다시 접어 25년, 또 접어 50년 뒤에도 그대로일 공포의 데칼코마니적 회귀성으로 독후감은 더 송연해집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비극은 어제치가 아닌 내일치가 등사된 것입니다. 작가가 “나의 문학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를 이제 들어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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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옹프레(64)는 플라톤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거의 모든 기성 철학을 가차 없이 공격하는 프랑스 철학자입니다. 도발성 강한 언어를 신랄하게 퍼붓기에 ‘니체를 따르는 반란의 철학자’라고도 합니다. 옹프레는 책을 많이 쓰는 다산성의 작가이기도 한데, 이번에 번역된 책 <예술의 이유>는 옹프레가 특유의 반역적인 시선으로 읽어낸 서양 예술사이자 예술 읽기의 길을 안내하는 예술감상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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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아주 많은 도판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많은 도판을 들고 옹프레는 구석기 시대 라스코 동굴벽화에서 시작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을 거쳐 중세 기독교와 르네상스, 그리고 19세기 말까지 서양 예술사를 단거리 선수처럼 주파한 뒤 20세기 이후 현대 예술의 허실을 해부하는 데 공을 들입니다. 주장을 요약하면 현대 예술에 사기꾼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옹프레는 미술시장과 수집가들의 공모 속에서 오늘날 가장 각광 받는 예술가가 된 대표적인 경우로 제프 쿤스와 데이미언 허스트를 꼽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진짜 예술가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이 물음의 답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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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옹프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서광사)에서 철학자들을 그린 예술 작품들을 풀이하는 방식으로 2500년 서양 철학과 사상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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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민지 감독의 <버블 패밀리>(2017)는 한국 작품으로는 최초로 제14회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제목에서 보듯 거품처럼 일어났다가 순식간에 꺼져버린 가족의 부동산 흥망사를 다룬 작품이었죠.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은 마 감독 자신이 이 다큐멘터리를 글로 풀어쓴 책입니다. 마 감독이 부모의 부동산 흥망사를 취재하게 된 계기는 대학 시절 강의에서 내준 구술생애사 과제였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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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이던 2000년, 갑자기 중산층에서 하층민으로 전락했던 배경과 까닭을 궁금해하던 그는 이참에 부모님을 밀착 취재해서 비밀을 캐내기로 했답니다. 그 취재 결과, 울산의 대기업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가 돌연 상경해서 이른바 ‘집장사’에 뛰어들었고, 당시 늘어나는 서울 인구와 주택 수요 바람을 타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을 벌었다는 것, 그렇게 술술 잘 풀리던 아버지의 부동산 사업이 뜻밖의 암초를 만나 좌초하는 바람에 집안이 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사람들의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 구조가 있다는 것, 부모는 물론 지은이 자신의 욕망이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추어 왔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됩니다. 한 가족의 부동산 흥망성쇠를 통해 땅과 집을 둘러싼 우리 사회 욕망의 민낯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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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마민지 감독은 어떻게 영화를 구상했고, 그의 다음 행보는 또 어떨까요? 마 감독의 과거 인터뷰를 찾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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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제일 좋아하는 아이가 일로 바쁜 엄마 대신 아빠와 함께 어린이대공원에 놀러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둘 다 깊이 잠이 든 사이, 어느새 버스는 동물 승객들로 만원이 됩니다. 알고 보니 호랑이 결혼식이 열리는 결혼식장으로 가는 버스라네요. 선아와 아빠는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동물들과 어울려 즐거운 한때를 보냅니다. 마법 같던 시간은 잠깐 사이 사라져버렸지만, 선아는 "아이스크림보다 호랑이보다 아빠가 좋다"고 합니다. 국지승 작가의 그림책 <아빠와 호랑이 버스>(창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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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고 싶은 소나무 숲과 책의 향기
소나무책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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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부가 ‘소나무책방’ 간판을 보고 우리 책방에 들렀다. 작은 오두막에 책이 가득하고, 책방지기의 집필 책상이 놓인 공간을 한참 둘러보고 나온 부부는 약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책방에 와서는 뭘 어떻게 해야 되나요?” 계산대도 없고 카드체크기도 보이지 않아서 책을 파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 보다. 소나무책방은 당연히 책을 파는 곳이다. 독서모임이나 인문학 강의, 북토크 등의 행사도 연다. 소나무책방의 첫 행사는 다가오는 8월26일 토요일 오후 4시에 열리는 소설가 이수경의 북토크다. 2022년에 첫 작품집 ‘자연사박물관’으로 주목받은 이수경은 올해 두 번째 작품집 ‘너의 총합’과 장편소설 ‘마석, 산 70-7번지’를 출간했다. 문을 연 지 넉 달이 채 안 되는 소나무책방의 첫 행사인 만큼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책과 함께 자연 속에서 휴식과 위안을 얻을 분들의 방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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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는다
양말에서 실이 나온다.
그럴 수 있다.
양말은 실이다.
구멍은 실이 아니다.
구멍을 들여다본다.
구멍이 작다.
구멍이 커진다.
양말에서 실이 나온다는 말.
실이 나오는 양말을 그러니까 실이 양말에서 나오면
응.
누구는 구멍을 계속하려고 한다.
구멍이 계속된다.
📖김뉘연의 시집 <문서 없는 제목>(봄날의책)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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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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