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우리는 ‘작지만 강한 나라’, 인구나 영토 등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국력은 강한 나라란 개념에 익숙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대국들 사이에 낀 지정학적 운명 아래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되자는 주장은 정치 성향을 떠나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명제입니다.
제임스 브라이딩의 <너무 작아서 실패할 수 없는 국가>(에피파니)는 핀란드, 싱가포르, 아일랜드, 덴마크 같은 작은 국가들의 전략을 탐구한 책입니다. 지은이는 “더 작고, 더 민첩하고, 덜 이질적인” 작은 나라가 국민에게 더 나은 교육, 평등, 경제적 부를 제공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 주장합니다. 국가 규모가 작을수록 외부 환경에 더 크게 노출되기 때문에 더 분산적인 사회 시스템, 높은 개방성, 교육과 혁신 등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너무 작아서 실패할 수 없는 국가’(TSTF·Too Small To Fail)라는 정의 자체입니다. 얼핏 서로 같은 말 같지만, ‘작지만 강하다’와 ‘너무 작아서 실패할 수 없다’ 사이에 어떤 간극이 느껴집니다.
작은 나라의 ‘비밀 소스’ 가운데 하나로 꼽힌 ‘겸손’에서 그 간극의 정체를 가늠해봅니다. 지은이는 ‘나’의 취약함을 인정하는 대신 ‘우리’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도록 만드는 출발점으로 겸손이란 가치를 강조합니다. 겸손해야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협력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작지만 강한 나라’라면서도 은근슬쩍 ‘작음’보다 ‘강함’에 더 방점을 찍으면, 비교 우위만을 따지는 경쟁 논리 아래 ‘나’는 결코 ‘우리’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해지는 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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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에 대항해 직선제 민주주의를 쟁취한 6월항쟁이 어언 36년 전의 일이니, 이제 민주화운동은 자동적으로 '과거사'로 여겨질 만합니다. 그런데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는 이유 때문에 아직도 '반국가단체'라는 멍에를 짊어진 채 고국에 자유로이 발걸음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한국 국적 재일동포들이 만든 사회단체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겨레 기자 출신 김종철 작가는 <야만의 시간>에서 '반국가단체 만들기에 희생된 한통련의 50년'을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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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진 한국 현대사 속에서 일본에 남게 된 우리 동포들은 둘로 갈라진 조국의 상황에 따라 총련(북)과 민단(남)으로 갈라졌는데, 민단 세력 중에는 독재정권이 들어선 본국의 민주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개혁파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박정희 정권에게 쫓겨 망명 생활을 하던 정치인 김대중과 결합하여 1973년 만든 단체가 바로 '한통련'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공안 세력을 앞세워 눈엣가시였던 이들을 간첩으로 몰고, 급기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기에 이릅니다. 전두환 신군부 역시 이를 활용해 김대중을 내란음모 혐의로 잡아넣을 수 있었죠. 형식적 민주화가 이뤄진 뒤 민주화운동 관련 '과거사'들은 하나둘 바로잡히기 시작했지만, 한통련은 여전히 반국가단체라는 규정 아래 차별과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한통련을 방치하고 있는 한 '야만의 시간'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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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한겨레> 기자로 일할 당시 한통련를 비롯한 재일동포의 민주화운동에 대해 취재해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습니다. 기사를 통해 당사자의 발언 등 더 현장감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민주화운동 막후 조율사였던 김정남과 한통련(당시는 한민통) 핵심 인물인 배동호 사이 얼굴도 모른 채 오간 비밀 서신 등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한통련의 반국가단체 오명을 벗겨줄 핵심 기관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5.18민주화운동에 북한 개입" 등을 주장하는 극우 인사가 위원장이 되는 등 기관의 설립 취지를 스스로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우려만 키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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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사회에도 동성애가 있나요?” 이 질문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동물 행동학자로 평생 살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라고 합니다. 성소수자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람들 중에는 "동성애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면서 마치 자연에서는 동성애가 없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자연에서 일어나는 ‘동물 동성애’에 대한 연구를 집대성해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 출간됐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생물학자이자 언어학자인 브루스 배게밀이 쓴 <생물학적 풍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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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동물 섹슈얼리티에 대한 최초의 백과사전이라고 불릴 만큼 동물 동성애에 대해 폭넓고 깊게 다룹니다. 1999년에 출간된 이 책은 미국에서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았던 ‘소도미법’ 폐지 판결(2003년)과 인도 대법원의 동성애 비범죄화 판결(2018)에도 인용될 만큼 논거가 탄탄합니다. 200년간 진행된 동물 동성애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톺아본 이 책은 기존 연구의 문제점도 짚고, 동물 동성애를 있는 그대로 관찰해 서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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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대중화에 앞장서 온 최재천 교수는 유튜브로 대중과 활발하게 소통해오고 있는데, 구독자들의 댓글로 질문을 받아 두 차례에 걸쳐 '동물 동성애'를 다룬 바 있습니다.
🐟동물 동성애에 대해 확장된 과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이른바 '소도미법'은 여러 나라에서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군형법에는 아직 관련 조항(제92조 6항)이 남아 있어 "폐지" 권고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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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가 ‘시다의 꿈’을 시로 발설한 지 올해 40년이 됐습니다. 기억하시는 분 계실까요?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으로/ 장미빛 꿈을 잘라/…” 1983년입니다. 그의 시가 담긴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이 나온 건 1984년입니다. 그리고 약 100만부를 한국 독자들이 사보았습니다. 조선시대 야사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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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 40년’의 계보를 드물게 잇는 당대 시인 중 한명으로 유현아가 있겠습니다. 그의 시집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단어는 ‘소풍’입니다.
“꼭대기로 소풍 가요/ 우리가 딛고 걷는 바닥은 아무 데도 없거든요/ 저기 교묘하게 죽어 있는 바닥들이 보이잖아요/ 우리의 바닥들은 바닥을 치고 위로 더 위로 올라가죠// 이제 혁명의 노래도 위로 올려 보내요/ 이제 투쟁의 기다림도 위로 올려 보내요/ 이제 죽음의 상징 따위도 위로 올려 보내요/ 정교하지 못한 거짓말도 위로 올려 보내요/…”(‘소풍’)
지난 5월말 전남 광양제철소 앞 고공농성 중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주저앉고 망루에서 끌려 내려온 노동자의 핏빛 소풍이랄까요. 그럼에도 소풍을 떠날 수밖에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지상에선 사라지는 것투성이라 그렇습니다. 지상에선 응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증언이 바로 유현아의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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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1906~1975)는 국내에 잘 알려져 있는 정치철학자입니다. 아렌트의 정치철학 저작은 여러 종 있는데, 그중에서도 아렌트의 정치적 사유의 마지막을 이루는 저작이 <칸트의 정치철학>입니다. 이 책은 20여년 전 ‘칸트 정치철학 강의’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절판된 이 책을 아렌트 전공자인 번역자 김선욱 숭실대 교수가 제목을 바꾸고 번역을 수정해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의 하나로 다시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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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는 애초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총괄하는 저작을 ‘정신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기획하고 ‘사유’, ‘의지’, ‘판단’을 주제로 삼아 3부작으로 써낼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1975년 아렌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남으로써 이 기획은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원고가 완성돼 있었던 ‘사유’와 ‘의지’는 아렌트 사후에 책으로 출간됐지만, 제3부를 이룰 ‘판단’은 집필을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도 아렌트의 ‘판단 이론’의 윤곽을 알려주는 강의 노트가 남아 있었는데, 아렌트의 조교를 지낸 로널드 베이너가 이 노트를 엮고 해설 논문을 덧붙여 펴낸 것이 <칸트의 정치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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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페트로스키는 베스트셀러 <연필>을 비롯해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책이 사는 세계>, <공학을 생각한다> 같은 책으로 한국에도 많은 독자를 거느린 작가입니다. 공학자인 그가 지난 6월14일 81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네요. 공학적 지식과 인문적 향기가 어우러진 그의 글을 그리워할 독자들에게 그가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지난해에 낸 책 <물리적 힘>의 우리말 번역본이 선물처럼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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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자기력, 마찰력, 탄력, 항력… 책은 온갖 힘을 다룹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중력일 텐데,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 지구의 중력에 붙들려 살아간다”는 문장에 중력의 무게(!)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페트로스키는 어린 시절 경험과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에 얽힌 추억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곁들여 친근성을 더합니다. 어린 페트로스키에게 중력은 “강하고 조용한 비밀 놀이 친구”였다죠. 탁자에서 뛰어내리거나 공놀이를 하거나 그네를 탈 때 중력은 항상 그와 함께했습니다. 중력 덕분에 침대에 붙어 편하게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 슬리퍼를 신는 일에서부터 부엌 냉장고를 열 때,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을 때, 옷을 입을 때, 자동차 핸들을 조작하거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에도 적절한 힘을 적당하게 구사해야 합니다. 크고 작은 힘을 둘러싼 이야기를 유려하게 전개하면서 페트로스키는 말합니다. “힘은 이렇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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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번역인생, 슬럼프는 한순간도 없었다"
번역가 강주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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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헌 번역가는 노엄 촘스키,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묵직한 인문과학서 번역에서부터 톨스토이와 오스카 와일드 같은 고전, <습관의 힘> 같은 자기계발서, 종교서적 등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30여년 동안 쉬지 않고 우리말로 옮겨온 베테랑 번역가입니다. 번역가로서 필요한 자질로 외국어 실력, 한국어 실력에 더해 성실성을 꼽은 것이 인상적입니다. 뜻밖에도 그는 우리 사회에서 번역가가 홀대받는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책 표지에 저자 이름과 역자 이름이 나란히 병기되는 나라는 흔치 않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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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직접 꼽은 주요 작품들의 표지. 왼쪽부터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김영사), <문명의 붕괴>(김영사), <어제까지의 세계>(김영사),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의 기억>(한길사) 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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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결국 내가 치유받았던
책방 느리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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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을 하면서 여러 가지 추억이 있지만 그중 한 가지만 꼽아보자면요, 단골손님 중 “공주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지역으로 직장을 얻어 이사를 하게 되어 책방에 오기가 힘들어졌다, 느리게 책방이 마음의 위안이 되는 공간이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전해준 분이 계셨어요. 그럴 때 책방 하길 잘했구나 생각해요. 이번 글을 쓰며 드는 마음이, 책방의 시작은 손님들에게 위로와 쉼이 되는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었는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가장 치유받고 위로받은 사람은 바로 나였구나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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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의 기사
굴뚝에서 내려와, 꼬마야. 나와 함께 걷자. 하늘에는 구름의 웃음. 하늘에는 무無. 굽이치는 무. 흔들리는 잎사귀들. 미지근한 빗방울의 감촉. 기차의 지나감. 내 웃음의 지나감. 내려와 꼬마야. 하늘과 뒤섞이자. 나의 투구를 너에게 줄게. 나의 당나귀를 줄게. 하늘에는 영원. 나부끼는 바람의 길들. 나와 함께 걷자. 네 죽음은 거기 두고. 벚꽃 채찍을 줄게. 빗방울 박차를 줄게.
📖서대경의 시집 <굴뚝의 기사>(현대문학)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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