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서울국제도서전을 두고 불거진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사이의 갈등이 점입가경입니다. ‘국고보조사업인데 수익금 보고를 누락했다’며 문체부는 2일 출협을 서울경찰청에 수사 의뢰했습니다. 문체부의 문제 제기에 출협이 ‘장관 해임’ 촉구로 맞서자, 문체부가 아예 ‘전면전’을 벌이겠다고 천명한 모양새입니다. 👉기사보기
어디 출판계뿐이겠습니까. ‘방송장악’을 시도했던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던 이동관씨는 방송통신 분야를 관장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로 지명됐습니다. 이 후보는 “언론은 장악될 수도 없고 또 장악해서도 안 된다”면서도 “선전·선동을 하는 ‘공산당 신문·방송’을 언론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굳이 덧붙였습니다. 윤석열 정부 2년차에 곳곳에서 나고 있는 이런 파열음들을 들으며, ‘장악할 수 없다면 무너뜨린다’는 포퓰리즘의 전략을 새삼 체감합니다. “전문성과 경험을 완전히 무효화하면, 결국에는 실제로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도 누구나 말하는 상태가 될 것”(<파시스트 되는 법>)인데, 이것이야말로 누군가의 천국일 테니 말입니다.
아이돌을 둘러싼 공론장을 분석한 책 <망설이는 사랑>을 읽으며, 성마른 정의 관념이나 약아빠진 이해관계의 소용돌이에 붙들리지 않으려 ‘망설이는’ 태도가 가능하다면 그 중심엔 사랑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출판계의 오랜 열망이 담긴 도서전도, 언론인들이 강조해온 가치를 새긴 공영방송도,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결국 무언가에 대한 사랑을 동력 삼아 여태까지 존재해왔던 것이겠죠. 모든 걸 아예 무너뜨리겠다는 저 권력 공장에도 과연 무언가에 대한 사랑이란 게 존재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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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의 지은이 윤여일은 1990년대를 문제적인 시대로 파악합니다. 지은이는 '동아시아'를 한 시야에 넣고 담론과 사상을 파고들어 온 사회학자입니다. 그 시기에 국외적으로는 사회주의권이 무너졌고, 국내적으로는 최초의 문민정부가 탄생했습니다. 최초의 정권교체 역시 그 시기에 있었고, 초고속 경제성장과 소비 지상주의는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로 일거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구제금융 이후 경제가 회복되었다고는 해도, 그 사태를 계기로 도입된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논리는 지금까지도 우리 삶을 옥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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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1990년대에 명멸한 주요 계간지들을 자료로 삼아 당시 한국 사회의 이모저모를 톺아보며 그것들이 지금 현실에 어떤 빛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지를 헤아립니다. 문학, 문화, 사상, 세대, 디지털, 젠더, 생태, 대중 등으로 항목을 나누어 당시 잡지들의 기획과 특집에 비친 사회상을 추출합니다. 작가·작품 중심주의를 앞세워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문학동네>, 하위문화를 진지한 논의 대상으로 삼은 <문화/과학> <상상> <리뷰>, 안티조선운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인물과 사상> <아웃사이더>,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에 새삼 절실하게 다가오는 생태적 사유를 선구적으로 제시한 <녹색평론> 등이 다시 소환됩니다. 구제금융 결과 도입된 신자유주의의 생존과 경쟁 논리는 다수 대중에게 몰락에 대한 공포를 심었고, 1990년대의 그런 위기와 불안은 2020년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책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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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윤여일은 앞서 2010년대를 조망한 책 <물음을 위한 물음>(갈무리)을 펴낸 바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부터 월스트리트 점거, 후쿠시마 사태, 박근혜 집권, 세월호 사태, 탄핵 등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꾸준히 작성해왔던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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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이든 서양이든 동성혼을 반대하는 이유는 다양할 텐데, 많고 많은 이유 중에서 한국에선 어째서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반대 구호가 쓰이게 됐을까요?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우리의 일상에 어떤 혐오와 차별이 숨겨져 있는지 파헤쳤던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다문화학과)는 새 책 <가족각본>에서 한국의 가족 시스템이 기대고 있는 차별적인 구조를 까발립니다. 핵심은 '성별 분업에 따른 역할극'에 있습니다. 한국의 가족 시스템은 집안일을 하는 역할을 '며느리'에게 부여하고, 이 배역은 여성만이 맡을 수 있다고 정해놓고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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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가족각본'이 있을까요? '동성커플은 출산을 할 수 없으니 결혼해서는 안된다', '장애인, 한센인, 혼혈아 등 어떤 사람들의 출산과 출생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에겐 엄마와 아빠가 있어야 한다' 등 온갖 가족각본들은 우리 가족제도가 궁극적으로 가부장제를 유지하기 위한 성별 위계와 분업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 각본에 어긋나는 존재, 그러니까 '남자 며느리'같이 퀴어한 존재가 등장할 때, 우리는 이런 역할극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 되묻게 됩니다. 우리가 충실해야 할 것은 각본이 아니라 본질일 것입니다. 과연 가족의 본질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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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000매 정도의 초고를 이미 썼다는 문학평론가 이윤옥은 그 뒤 6년을 더 들여 이 책을 내놓았습니다. 취재를 시작한 지는 주인공이 타계한 해부터니 꼬박 15년입니다. 이달 나온 <이청준 평전> 얘기입니다. 이유를 알만합니다. 이청준이 감춰온 또 다른 ‘이청준’이 많았던 까닭입니다. 이청준은 여러 차례 이윤옥에게 평전을 부탁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쓰는 사람의 상상력이 대상의 상상력에 지면 안 된다. 그러면 그 평전은 실패하고 만다. 부디 네 상상력이 내 상상력을 이겨서 내가 꾀한 모든 자기합리화를 벗겨 내 맨얼굴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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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청준에게 ‘문학적 지배욕’을 일으킨 여성 현영민의 존재를 드러내고, ‘서편제’ 작가인 그가 그 여성 때문에 한때 클래식에도 심취한 사실도 소개합니다. 1965년 사상계 신인문학상 당선 소감의 일부는 거짓이고, 그 밖의 능청스런 거짓말의 내막도 밝힙니다. ‘추리’가 더해져 가능한 일이고,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이청준의 일기, 편지, 초고와 출간본 사이 인물 추적, 때로 엇갈리는 증언들을 ‘추적’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윤옥의 상상력이 끝내 이청준의 상상력을 넘지 못한 대목도 있지요. 이청준은 2004년 예술원 회원 심사에서 탈락한 뒤 “비인간적 OOO들의 자리인 줄 알았다면 진작에 사양했어야” 했다고 경멸(그해 6월14일 일기)하면서도 2005년 예술원에 입성합니다. 해석 불가의 대목인 것이죠. 이청준을 경애하는 오래된 마음으로 이윤옥이 접근한 ‘진실적 평전’의 모양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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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스스로 자신의 평전을 써달라고 부탁했을 만큼, 이윤옥 작가는 작가 이청준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꼽힙니다. 그는 2017년 출간된 34권짜리 '이청준 전집'에 꼼꼼한 서지비평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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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사유 특성으로 흔히 수학적 사유가 거론됩니다. 수학의 엄격한 논리적 사유가 서양의 전통 철학을 낳았고 이 철학에 기초해 근대 물리학이 탄생했으며 물리학의 수리적 사유가 모델이 돼 다른 분과 학문들의 과학적 사유를 이끌었다는 것이죠. 요컨대, 수학과 논리학의 사유 형식이 근대 유럽의 세계지배를 떠받친 정신적 힘이었다는 얘깁니다. 이 수리논리적 사유를 ‘동일성 사유’라고도 부를 수 있는데요, <지식의 기초>는 이 동일성 사유의 역사를 드넓게 조망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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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함께 쓴 데이비드 니런버그와 리카도 니런버그는 부자 사이입니다. 두 사람이 협업으로 3000년에 걸친 서양 ‘동일성 사유’의 역사를 수학‧철학‧종교‧역사‧과학‧문학을 관통해 개관하는 것이 이 책입니다. 기나긴 사유의 과정을 따라가며 동일성 사유를 집요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일성의 반대편에 선 차이(다름)를 무작정 찬양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닙니다. 동일성의 사유든 차이의 사유든 극단에 치우치면 온전한 사유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동일성과 차이의 이 동시성을 아는 것이야말로 앎의 기초이며 지혜에 이르는 길임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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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아이돌 산업 등을 다루는 책은 대체로 팬덤 등 이 '성공한 문화산업'의 핵심 비밀을 탐구하거나, 성상품화, 노동착취 등 그 구조적으로 부정적인 이면을 파헤치곤 합니다.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는 작가 안희제가 쓴 <망설이는 사랑>은 '아이돌-팬 중심의 공론장'을 다루는 책이라 할 수 있는데, 접근하는 태도와 방식이 굉장히 새롭습니다. 지은이의 핵심 관심사는 팬덤에 대한 분석도, 아이돌 산업의 비밀도, 온라인 공론장의 효과도 아닙니다. 그는 관심경제의 네트워크가 빠른 속도로 작동하고 있을 때, '타자'를 생각하느라 선뜻 거기에 참여하지 않고 "망설이는" 팬들의 마음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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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관심이 화폐가 되는 관심경제 속에서 아이돌은 '논란'이라 불리는 처형대에 올라갑니다. 스스로 도덕적 존재라 자임하는 대중은 자신들의 도덕적 기준에서 일탈한 아이돌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며 관심경제 밖으로 퇴출시킵니다. 사이버렉카-알고리즘-온라인플랫폼-대중-언론-팬덤 등이 참여하는 네트워크는 옳고 그름을 정해둔 채 '정의 구현'을 향해 내달립니다. 그러나 아이돌에 대한 사랑을 쉽게 놓을 수 없는 팬들은 이 속도에 동참하지 않은 채, 망설이는 상태로 자신만의 윤리적 분투를 이어갑니다. 성상품화나 노동착취 같은 구조적 문제부터 논란이 된 사태의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까지, 망설이는 이들이라서 가질 수 있는 감수능력이야말로 더 나은 공론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지은이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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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생 일본 작가 우사미 린은 소설 <최애, 타오르다>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논란'(일본에선 炎上, 곧 비난과 비방이 타오른다고 표현합니다)에 휩싸인 아이돌 멤버를 '최애'로 삼는 여성 팬에 대한 이 소설은, 어쩐지 <망설이는 마음>의 분석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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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3년 12월30일,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 기후 등을 이기지 못한 인류는 전 우주의 안녕과 평화를 지키는 '우주평화단'의 결정으로 멸종합니다. 20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우주평화단은 오징어 박사에게 다시 회복된 지구에서 살아갈 새로운 종에 대한 연구를 맡깁니다. 아래로 길게 펼칠 수 있도록 만든 아트북 <2053년 이후, 그 행성 이야기>는 실험체들이 살고 있는 8층짜리 '코스모빌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불을 끄고 깜깜한 곳에서 책을 펼치면, 과거 인간의 무분별한 포획이나 기후위기로 멸종된 코스모빌라 거주자들의 정체를 야광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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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이름인 ‘시홍서가’의 ‘時紅’에는 ‘시간이 무르익다’ 또는 ‘시간이 꽃을 피운다’는 의미를 담았다. 성장도 성숙도 늙음도 그렇게 시간의 물결에 맡겨 저절로 되어지는 일이라 생각했다. 책방은 나에게 ‘일’이 아니라 ‘춤’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다. 좋아서 하는 일인데, 그저 혼자만의 자족의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라는 점이 또한 감사하다.
(…)
“책방이 없는 동네는 전기가 없는 동네보다 어둡다.” 한 책방 방명록에 남긴 류시화 시인의 메모다. 이 책방 시홍서가가 있어, 내가 사는 우리 동네가 ‘가고 싶은 동네’ ‘아름다운 동네’ ‘환한 동네’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책방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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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밭으로 굴러갈까 봐
수박은 천하장사
발로 차면 발이 울고
떨어뜨리면 폭탄이다
조심조심 차에 모신 수박님
계곡으로 놀러 간다
화나면 나까지 끌고
수박밭으로 굴러갈까 봐
안전벨트 매 주고
계곡물에 빠뜨리러 간다는 말은
안 했다
쉿!
📖김금래 동시집 <우주보다 큰 아이>(하꼬방 그림, 국민서관)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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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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