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최근 발표한 ‘2023 한국출판연감’을 펴보니, 위기에 처한 우리 출판계의 현황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2019~2020년부터 본격적인 하락세가 뚜렷합니다. 출협에 납본된 신간 발행 종수는 2020년 6만5792종이었는데 2021년 6만4657종, 2022년 6만1181종으로 줄었습니다. 신간 발행 부수는 2019년 9978만3643부였는데 2022년 7291만992부로 떨어졌습니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아동’을 제외한 모든 분야가 전년에 견줘 발행 종수, 부수 모두 줄어들었습니다.
2022년 기준으로 작성된 통계라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출판계에서는 “단군 이래 출판 불황이 아닐 때가 없었다지만, 올해 상반기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세대의 유입 없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기만 하는 독서 인구, 움츠러드는 산업의 규모에 반비례하여 오르기만 하는 인건비와 재료비, 출판문화의 전반적인 위상 하락에 따라 영상 등 다른 산업으로 넘어가는 숙련 인력들…. 이제 롤러코스터의 하강 구간처럼 내려갈 일만 남은 걸까요.
이 같은 사면초가 상황에서 위기 극복을 도와야 할 정부까지 위기의 요인으로 등장했습니다. 세종도서 사업부터 서울국제도서전에 이르기까지 문화체육관광부가 연일 ‘출판계 때리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잘못된 일이 있다면 바로잡아야겠지만, 대통령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듯 ‘이권 카르텔’에 대한 무리한 규정 등 내용을 들여다 볼수록 그 목적과 방법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기 힘듭니다. 5년짜리 정권의 눈으로 이미 누란지위에 있는 ‘백년지대계’를 흔들어대는 일만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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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 순간, 여러분은 어떤 모습일까요? 또 여러분의 묘미명은 무엇으로 하고 싶으신가요? 서양화가 박수근은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라는 묘미명을 남겼고,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 살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재치 있고 익살스러운 문구의 묘비명을 남겼지요.
내 부고를 내가 직접 쓰자고 주장하는 기자가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유일하게 부고 전문기자로 일하는 제임스 알(R). 해거티 기자인데요. 지난 7년간 800여명의 부고를 써왔다는 해거티는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에서 자신의 전문성과 경험을 살려 ‘부고 잘 쓰는 법’에 대해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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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먼 일이고, 생각조차 하기 싫으신 분은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해거티의 책을 읽어보면 부고를 써본다는 것은 지나온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또 삶에서 내가 정말 이루고 싶은 것이 뭔지, 왜 그것을 이루고 싶은지 등과 같은 질문을 하는 인생의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시간이더라고요. 해거티는 부고는 인생 이야기라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이 인생 이야기를 잘 쓰기 위한 방법으로 어떤 것들을 제시했는지 살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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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訃告)는 영어로 오비추어리(obituary), 이를 줄여서 오빗(obit)이라고 합니다. 2016년에는 <뉴욕타임스> 부고 담당 기자들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오빗>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역사적 인물들의 부고들만 따로 모은 <뉴욕타임스 부고 모음집>(인간희극)이란 책도 있습니다.
🐟이처럼 영미권 언론은 부고에 무척 신경을 많이 쓰는데, 아마도 "인생이 이야기가 된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영역이기 때문일 겁니다. 반면 우리 언론에서 부고는 그리 중요하게 취급되지 못하며, 특정 직업군의 유명인들 위주로 작성되곤 합니다. 그마저도 유가족 중심으로 작성되기 때문에 고인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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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교종교학자로 꼽힙니다. 한때 가톨릭 수녀였던 그는 서로 달라 보이는 여러 종교들이 사실은 동일한 '황금률'을 가지고 있음을, 곧 비참한 이 세상에서 '네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는 것이 모든 종교의 핵심 메시지임을 발견하고 이를 가다듬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1993년작 <신의 역사>는 그를 대표하는 저작으로 손꼽힙니다. 국내에선 1999년 처음 출간되었는데, 누락된 원문을 되살리고 오역 등을 바로잡아 이번에 전면개역판으로 새롭게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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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아브라함의 세 종교', 곧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신의 탄생 배경과 위대한 사상가, 철학가, 신학자들이 어떻게 신을 사유하고 상상해왔는지 탐구합니다. 장구한 '신의 역사' 속에서 신은 절대자이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존재 가치와 의미는 변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19세기 이후 "신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경향(무신론)이 커지고 있고, 오늘날 종교는 근본주의의 모습으로 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근본주의는 "신으로부터 후퇴"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이 시대에 걸맞은 신 개념을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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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은 수많은 저작들을 써왔고, 상당수가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또 다른 대표작으로 꼽히는 <축의 시대>(교양인), <카렌 암스트롱의 바울 다시 읽기>(훗), <신의 전쟁>(교양인)을 함께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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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단 하루의 이야기라는 것인데 작중 인물의 수도, 분량도 만만칠 않습니다. 작가 본인조차 한겨레에 말하길,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는 원고 1880장짜리 650여쪽의 장편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1946년 9월16일 화요일 단 하루의 부산으로 작가 김숨은 독자들을 데리고 갑니다. 원폭 피해, 강제징용, '위안부' 조선인으로 “먼 데”서 아주 “먼 데”로 떠나 제 고향이 아닌 또 먼 부산으로 겨우 돌아온, 그조차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한명한명씩 호명합니다. 중국 노동자, 돌아가지 못하거나 조선인 남편을 따라 돌아온 일본인 여성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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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사람들’, 급기야 “나도 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는 이들인 것이죠. 작가는 “해방 뒤 귀환선을 타고 온 이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공백처럼 지워져 있었다”며 “돌아오고, 돌아오지 못한 분들, 역사에서 그렇게 지워져 있는 분들을 복원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1946년 9월 어느 하루의 시간은 고약해서 소설 속 흐르지 않는 듯합니다. 해가 저물지 않을 듯 고통은 바통을 이어 달릴 뿐입니다. 그렇게 ‘삶’이 오늘에 닿는 거죠. 이 슬픈 소설은 슬픔의 감정만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가해와 피해가 뒤섞인 세계, “(여러 작중 인물 중의) 말똥, 쑥국과 같이 무사히 삶을 살아내고 지금까지 살아가도록 한 이들”의 대서사시로 흐르고 흐르고 흐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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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계의 관심이 점차 중앙아시아, 유라시아로 쏠리고 있는 것은, 그동안 세계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정주 농경문명과는 다른 '역사 단위'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합니다. 동양사학자 정재훈 경상국립대 교수는 그동안 <위구르 유목제국사>(2005), <돌궐 유목제국사>(2016) 등을 써내며 관심을 받아왔는데, 이번에 유목제국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는 <흉노 유목제국사>를 펴내어 유목제국을 다룬 3부작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유목제국은 세계사에서 왜 중요할까요? 아니, 그 이전에 우리는 유목제국에 대해 제대로 알고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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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중국에서 전국시대가 펼쳐지고 농경문명이 도시국가를 이뤄 확장하는 가운데 그들과 다른 생존 양식을 가진 세력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원전 3세기 본격적으로 등장한 흉노는 한때 한나라와 대등한 지위를 인정받을 정도로 세력을 키웠고, 오랫동안 장성 주변의 목농복합지대를 두고 한나라와 각축을 벌였습니다. 지은이는 두 세력 사이의 생활 공간과 그에 얽힌 정치적 의미를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되살려내고, 무엇보다 '문명'의 반대편에 있는 '야만'이 아니라 다원적이고 복합적이었던 유목제국의 특성을 짚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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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삼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세상을 구한 남자>입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국가가 아니라 세계와 인류 전체를 구한 스파이라니, 도대체 어떤 활약을 펼쳤기에 그런 이름을 얻었을까요? 영국의 언론인 겸 작가 벤 매킨타이어가 쓴 책 <스파이와 배신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이 바로 그 다큐멘터리의 원작이기도 합니다.
올레크 고르디옙스키(1938~)는 아버지와 형이 옛 소련 첩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인 집안에서 성장해 자연스럽게(?) 그 역시 KGB 요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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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그와 동시에 영국 첩보기관인 비밀정보부(MI6)의 이중 첩자로 10년 넘게 활동하며, 그 일환으로 1980년대 초 미국과 소련 사이에 고조되었던 핵전쟁 위기를 넘어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KGB 내부 자료를 빼돌려 영국과 미국 최고 지도자들에게 전달하고 그들로 하여금 소련을 향한 강경책을 유화적 태도로 바꾸도록 한 것이 “세상을 구했”다고 지은이는 평가합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소속이지만 KGB에 포섭된 이중 첩자의 밀고로 정체가 탄로나 모스크바로 소환된 고르디옙스키가 MI6의 비밀 작전에 의해 핀란드와 노르웨이를 거쳐 영국으로 탈출하는 대목은 스파이 소설 못지 않게 박진감이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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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치열한 미술 현장, 비평가로 증언하려
미술사학자 유홍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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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90년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로 희대의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작가로도 자리매김했습니다. 그의 첫 책은 군부독재 상황에서 작가 정신을 표현하고 현실을 담아내는 진짜 미술을 하려는 젊은 미술가들의 움직임을 포착해 1986년 펴낸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열화당)입니다. 이처럼 시대를 증언하려고 했던 미술비평가는 "진정한 민족미술은 미술사에 기초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젊은이들을 위한 공개강좌를 열었고, 강좌와 연계되어 펼친 답사 활동이 바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되었다 합니다. 올해 출간 30년을 맞은 이 시리즈는 3권을 더해 전15권으로 마무리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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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가 첫 책 이후에 쓴 자기 책들을 꼽아봤습니다. 왼쪽부터 <화인열전>(2000), <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2018),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2012~2022), <안목>(2017)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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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수프'라는 책 한 권
책방 돌멩이수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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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수프 상호명은 <돌멩이 수프>라는 책 제목입니다. 제가 많이 좋아하는 이 책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마법책입니다. 가난한 마을에 이방인이 들어와 먹을 것을 요청하지만 아무도 내어주지 않아요. 그 이방인은 낙담하는 대신에 돌멩이로 수프를 끓이기 시작하는데, 냄새를 맡은 마을 사람들이 각자 재료를 조금씩 준비해 수프를 맛있게 끓여서 다같이 배불리 먹는 이야기입니다. 돌멩이 수프는 혼자가 아닌, 다 함께 끓여서 다같이 맛있게 먹는 수프랍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파트와 학교 사이에 있는 이 상가에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하는 ‘돌멩이수프’라는 아지트를 만드는 게 저의 목표였어요. 이제 8개월차가 되는 돌멩이수프는 ‘돌숲 어린이 멤버십’과 성인 독서 모임 슬로우리딩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저의 바람은 돌숲이 동네 분들에게 동네 책방을 넘어서서 집 앞 책방으로 다가서는 것입니다. 돌숲을 이용하는 손님이 책방 문턱을 넘어서서, 문을 스스로 열고 들락날락 해주길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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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살고 고구마
밤에 부엌에 서서 혼자 고구마를 먹는데 앞으로 몇 년은 쩝쩝대는 소리처럼 뻔하겠다 싶은 것이죠 너가 뭔가를 잘못한 건 아니에요 각자가 포기한 만큼 우리 인생은 보답을 받고 있거든요 밤에 부엌에 서서 두 개째 먹으면서 뭉친 모래도 아니고 사람이 허물어질 리 없는데 몸의 가장자리 붙들고 산다 느끼거든요 삶은 고구마쯤 먹는데 식탁에 앉기도 뭐하고 쥐죽은 듯 넓어지는 밤 창밖이나 바라보니 인생 알아서 굴러간다는 말 실감하거든요 멍청하게 서서 가슴을 치다가 너를 잃고 싶진 않아요 너 잃고 혼자서 먹어보는 고구마가 궁금할 뿐 밤에 부엌에 서서 세 개째 삼키면서 인간들 참 무섭다 하루에 열 번씩 화내면서 좋은 날 모자 쓰고 산책하고 얼굴은 별로 주름도 없는 것이죠 그러다 사랑하는 너 죽으면 나의 인생 제멋대로 구르겠네 생각하고 있거든요 너가 언제 삶았는지 모를 열 개쯤 남은 고구마 앞에서
📖김상혁의 시, 계간지 <문학동네>(2023 여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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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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