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밀란 쿤데라(1929~2023)는 40년 가까이 언론 매체 등에 절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발적 실종자’로 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프랑스 저널리스트 아리안 슈맹의 <밀란 쿤데라를 찾아서>(뮤진트리)는 쿤데라의 생애에 대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맥락들을 드러내어 줍니다.
체코 출신으로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 이 작가를, 단순히 ‘어둠을 피해 빛을 찾았다’는 식의 서술로는 제대로 설명해낼 수 없습니다. 비밀경찰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프랑스에 온 쿤데라를, 프랑스 언론은 ‘공산주의에 저항하는 참여 지식인’으로 못 박았습니다. 성공작 <농담>(1967)은 그저 “스탈린 시대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증언”으로 소개됩니다. “거대한 오해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참여 지식인’에 대한 환호는 점차 잦아들고, <향수>(2000)부터 그의 책은 프랑스 아닌 외국에서 먼저 출간이 됩니다. 슈맹은 쿤데라가 체코뿐 아니라 ‘자유 프랑스’에서도, “어디에서도 평안을 느끼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그 대신 1963~1968년 체코를 회상하며 “그건 다른 공산주의였다”고 옹호하는 쿤데라의 아내 베라의 말이 인상 깊습니다. 이미 1963년께부터 체코 지식인들은 소련 체제에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쿤데라 자신은 1967년 작가회의에서 “문학에 본래의 지위와 존엄성을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연설을 합니다. 이들이 모색했던 새로운 가능성은 1968년 ‘프라하의 봄’으로 폭발했으나, 소련 군대의 발빠른 진압으로 결국 무산되고 맙니다.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그 가능성의 이름은, 바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였습니다.
|
|
|
식민지배와 분단, 전쟁과 냉전을 거쳐오며 한국은 오랫동안 '진보정당'의 불모지대였습니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는 꾸준히 시도됐고,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며 진보정당의 새 역사를 썼습니다. 노회찬은 진보정당 운동과 건설의 핵심 주역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정치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라는 현실을 바꾸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이루길 꿈꿨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실사구시'의 태도로 가장 현실적인 길을 기획하여 제안한 '직업전투원'이자, 사회적 약자들의 옆에 서서 구체적인 언어로 소통할 줄 알았던 유능한 대중정치인이었습니다.
|
|
|
<노회찬 평전>은 노회찬 5주기를 맞아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이 기획하고 이광호 작가가 써서 펴낸 책입니다. 노회찬이란 인물을 입체적으로 복원하여 "안타깝게도 중도에 부러져 미완으로 끝난 그의 삶을 가능태 혹은 지향점의 형태로 우리 곁에 다시 불러낼"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스스로 삶을 중단한 노회찬은 유서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진보정당의 '장기집권'이란 그의 꿈은 어떤 조건 아래에서, 언제쯤에나 이뤄질 수 있을까요?
|
|
|
🐟많은 사람들이 노회찬에게 '왜 기성 정당으로 가서 정치를 하지 않느냐' 물었지만, 노회찬은 "진보정당이 없는 정치를 생각한 적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도대체 진보정치란, 또 진보정당이란 어떤 의미이기에 그랬을까요? 진보정치에 해박한 이론가 장석준(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이 쓴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서해문집)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노회찬 평전>은 한국 진보정당 운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한데, 이를 '상자'로 담은 여러 글 가운데엔 노회찬의 오랜 동지 이재영(1967~2012)과 오재영(1968~2017) 두 사람에 대한 글도 있습니다. 각각 진보정당의 `영원한 정책실장', '영원한 조직실장'이라 불렸던 이들입니다. 이들의 삶을 보여주는 글 세 편을 함께 공유합니다.
|
|
|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읽고, 책을 읽지 않는 문화를 걱정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여성의 책읽기는 18세기만 해도 위험한 것으로 간주됐습니다. 성별이분법적인 사고관이 지배적이었던 그 시기엔 육아와 집안일에 힘을 쏟아야 할 여성이 집안일을 제쳐 놓고 책에 빠지는 것이 비도덕적이며 위험한 짓이라고 여겨졌던 것이지요. 글을 배우고, 책을 읽고, 배우는 행위는 여성해방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성들은 책을 읽으며 깊이 생각하게 되고, 질문하게 되고,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됩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공상과학 소설 <화씨 451도>에서 소방대장 티비가 책에 빠져있던 몬택에게 말한 대사처럼 여성에게 “책은 장전된 총과 같”은 것이지요.
|
|
|
여기 한국 여성의 독서 문화사를 통시적으로 고찰한 책이 있습니다. <위험한 책읽기>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독서가 한국 여성을 어떻게 ‘위험한 사상가’로 만들었는지를 살펴봅니다. 한국 문학과 문화를 동아시아 젠더적 관점으로 연구해온 허윤 국립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썼습니다. 허 교수는 여성에게 순결과 정조를 강조하던 젠더 규범이 여성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해체되고 “내가 김지영이다”라고 말하는 페미니스트 독자군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지는지 살펴봅니다. 각 시대별 여성 독서를 둘러싼 풍경을 넓게 조망한 이 책은,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독서 계보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
|
🐟독서문화사를 젠더적 관점으로 읽어내는 것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연구 주제이기도 합니다. 국문학자 김윤경의 <문학소녀의 탄생>(책과함께)은 전체 여성 독서문화사의 흐름 가운데에서도 1950년대 등장한 '문학소녀'에 집중합니다.
|
|
|
어떤 소설이건 말미 이런 ‘작가의 말’ 보신 적 있을까요. “제목 보면 알겠지만 대충 쓴 소설이다. 대충 써도 이 정도는 쓴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이 소설에는 내 글 실력의 37%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내 글 실력의 56% 이상이라도 쓰는 날에는 기성 작가들이 설 자리가 줄어든다. 선배 작가들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글 실력을 숨긴다.” 작품 속에선 ‘한국 소설의 오래전 죽음’을 선언하고, “기존의 소설은 식상하다”는 작가 본인의 것으로 보이는 주관을 거듭 밝힙니다. 와, 전두엽이 아려옵니다. 202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예 허성환 작가의 단편 ‘전두엽 브레이커’가 구성된 방식입니다. 그의 의도대로이겠죠.
|
|
|
“한국문학의 낡고 고루한 흐름에 반전을 꾀하기 위해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를 해체하고 또한 그 두 영역의 특성이 융합을 이루도록 돕기 위”해 2022년 1월 출범한 웹북 플랫폼 스토리코스모스(대표 에디터 박상우 작가)가 그간 발굴해 작가와 함께 다듬으며 소개해온 소설들 가운데 10편을 선별해 처음 단행본으로 엮었습니다. ‘전두엽 브레이커’가 소설집의 표제작이 아니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소설로부터 가장 멀리에 김솔의 ‘걷는 여자, 걷는 남자’가 있습니다. 죽지 않은 순문학의 도리는 이런 것이라고 김솔이 말합니다. 이제 같이 읽어보실까요.
|
|
|
이창재 프로이트정신분석교육원 원장이 쓴 <신화와 정신분석>은 정신분석학의 개념과 방법을 도구로 삼아 한국‧중국‧일본 신화를 포함해 전 세계의 주요한 신화를 해석한 책입니다. 이창재 원장은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정신분석학으로 관심을 돌려 30년 가까이 이 분야를 연구해왔습니다. 신화 해석의 대가로는 20세기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꼽히는데, <신화와 정신분석>은 캠벨과 유사한 방식으로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분석학 개념을 기본으로 삼아 신화를 해석하되, 멜라니 클라인이나 자크 라캉 같은 현대 정신분석학의 해석 방법도 참조합니다.
|
|
|
프로이트와 융은 정신분석학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묶이기는 하지만, 두 사람의 무의식 이해는 크게 다릅니다. 두 사람의 길이 갈리는 결정적인 지점은 무의식의 원초적 힘을 가리키는 ‘리비도’를 어떻게 보느냐에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범성욕설로 불리는데, 그 핵심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있습니다. 반면에 융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 곧 리비도를 성욕에 한정하지 않고 보편적인 생명 에너지로 보았습니다. 지은이는 두 사람의 관점을 조합하면 고고학자가 유적을 탐사하듯 신화의 무의식적 지층을 깊이 파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
|
|
옛 유고 연방 보스니아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소설 <드리나강의 다리>에서 이슬람 현자 알리호자는 다리가 천사의 날개에서 유래되었다는 우화를 들려줍니다. 태초에 세상은 평평하고 부드러웠는데 이를 시샘한 악마가 손톱으로 땅의 표면에 깊은 상처를 냈다죠. 강과 계곡으로 나뉘어 왕래를 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긴 하느님이 천사로 하여금 날개를 펼쳐 다리 역할을 하게 한 것이 다리의 시작이었다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영국 시인 존 밀턴의 <실낙원>에서 다리는, 사탄의 꼬임에 빠진 인간들의 오만의 징표로 그려집니다.
|
|
|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에서 이탈리아어와 비교문학을 가르치는 토머스 해리슨이 쓴 <다리 위에서 니체를 만나다>는 다리에 얽힌 인류사와 문화, 상징 등을 두루 살핀 ‘다리의 인문학’이라 할 법합니다. 출발부터 천사와 악마의 각축장이었던 다리는 삶과 죽음, 타락과 구원, 경계와 초월 식의 양면성을 지니게 되었고, 종내에는 연결과 분열이라는 극단적인 모순을 드러내게도 되었다죠. 니체는 인간 자체를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인 다리로 보았습니다. ‘다리-인간’으로서, 인류사와 함께해 온 다리의 역사와 함의에 함께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요.
|
|
|
"베르베르를 전담하고요, 고양이를 사랑합니다"
번역가 전미연 |
|
|
<개미>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프랑스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작가의 역량뿐 아니라 번역의 역량도 한몫 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베르베르는 "내 책이 한국에서 많이 팔리는 것은 번역 덕분"이라며 번역가와 인세 계약을 해달라고 출판사에 부탁했다 합니다. 이렇게 베르베르를 '전담'하는 전미연 번역가는 지난 25년 동안 유명 프랑스 작품 70여권을 번역해낸 베테랑 번역가입니다. 번역에만 매달리는 단조롭고 규칙적인 일상에서 그의 또다른 일은 체부동과 통의동 골목 길고양이 30여마리를 챙기는 일이라 합니다.
|
|
|
번역가가 직접 꼽은 주요 작품들의 표지. 왼쪽부터 아멜리 노통브의 <두려움과 떨림>(열린책들), 에마뉘엘 카레르의 <나 아닌 다른 삶>(열린책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꿀벌의 예언>(열린책들), 알렉시 제니의 <22세기 세계>(황소걸음) 순서. |
|
|
어떤 이에게 유일무이한 공간이 되기 위해
바다숲책방 |
|
|
"우리 책방은 어느덧 어떤 이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책방의 의미는 손님 각자가 이곳에서 겪는 유일무이한 경험에 의해 정의됩니다. 진지하게 책을 읽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독서모임의 공간이며, 즉석에서 글을 쓰고 아직 덜 완성된 글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소개하는 글쓰기모임의 공간, 평소에 잘 만날 수 없었던 작가의 이야기를 집중하여 들을 수 있는 공간, 복잡하고 바쁜 일상에서 잠깐 떨어져 나와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고요하게 책을 보며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 독서 취향이 비슷한 책방지기와 가볍게 책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다음에 읽을 믿을 만한 책을 추천받기도 하는 공간."
👉기사보기 |
|
|
피크닉
겁도 없이 혼자 여기까지 왔니
여자가 물었다
호수를 들여다보면
수면에 돌을 던지고 싶어져서
김밥을 가져왔어요
나는 대답한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밥알을 조금씩 뜯어
물속에 던진다
동생은 잘 있고?
네
부모님은 건강하시지?
네
파문이 넓게 퍼지고
수면이 흔들리는 동안
가라앉는데 왜 떠오르는 것 같은지
묻지 못하고
개미를 눌러 죽이며
고개를 숙인다
다음엔 시내에서 보자
여자가 말한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주머니 속의 편지를 펼쳐보고 싶어서
간지러워
간지러워
전력으로 페달을 밟는다
📖백은선의 시집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문학동네)에서 |
|
|
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
<한겨레>를 정기구독하시면, 매주 토요일 아침 충실하게 만들어진 북섹션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후원회원 '벗'으로 함께해 주시면,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
|
※ 반복적으로 전달되다보니 반올림(#)책이 스팸메일이나 프로모션함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용하시는 전자우편 서비스에서 반올림책 bookbang@hani.co.kr을 주소록에 추가해주시면 반올림(#)책을 더 쉽게 챙겨볼 수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