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거짓말은 다른 정치 전통에서는 볼 수 없는 파시즘만의 특징이다.” 아르헨티나 출신 역사학자 페데리코 핀첼스타인은 <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호밀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정치와 거짓말은 본래 가깝다지만, 지은이는 파시즘은 “조직화된 거짓말”을 특징으로 삼는다고 규정합니다. 이념적 목표와 욕망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참된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파시즘의 본질적 공통점이랍니다.
오늘날의 포퓰리즘을 민주적 시대에 맞게 파시즘을 변형한 ‘포스트 파시즘’이라 보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선거 같은 이성적이고 절차적인 중재에 크게 기대지 않았던 과거 파시스트들과 달리, 포퓰리스트들에겐 “지도자의 이데올로기적 진실에 대한 대중의 확인 절차”로서 선거가 중요합니다. 선거에서 승리해야 ‘유일한 국민의 대표자’ 행세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포퓰리스트 지도자는 먼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선거에서 이긴 뒤엔 ‘이제 신성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는 듯 또다시 거짓 주장들을 늘어놓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포퓰리스트들은 “역사에 대한 전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지은이는 짚습니다. 과거 파시즘의 역사적 맥락을 잇고 있기에, 그들은 파시스트 독재였던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감추는 대신 이를 ‘진짜 역사’로 미화하고 윤색하는 데 나선다는 겁니다. 그동안 숱한 말들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우리나라 대통령은 최근 ‘반국가 세력’이란 말을 꺼내 들었습니다. “우리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에 대한 비판이 왜 단순한 형용사의 사용이나 욕설 정도로 그치고 마는지 그 이유를 자문해봐야 한다”는 지은이의 경고가 새삼 날카롭게 다가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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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씨앗을 기업 네 곳이 장악하고 있고, 세계 치즈 생산의 절반이 한 곳에서 제조한 박테리아와 효소로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바나나도 1500가지 이상의 품종이 있지만 캐번디시라는 품종만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온 세계가 먹는 것이 갈수록 똑같아지고 있고, 세계 음식의 다양성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라져가는 음식들>은 영국 <비비시>(BBC) 기자이자 음식 저널리스트인 댄 살라디노가 10년 넘게 전 세계를 누비며 이 세상에서 ‘멸종’되어가고 있는 음식들을 취재하면서 쓴 책입니다. 한국의 ‘연산 오계’도 소개됩니다.
이 책은 음식과 관련한 정치경제·사회문화사를 다루는데 놀라운 통찰력을 제공해주지요. 저자에 따르면, 지난 150년 동안에 일어난 음식의 변화가 그 이전의 100만 년 동안 일어난 것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20세기 이후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직시하고, 미래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
🐟음식다양성은 '생물다양성'으로부터 나옵니다. 음식다양성, 생물다양성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두 편을 함께 소개합니다.
🐟북극점에 가까운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에 있는 국제종자저장고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종자 은행으로, 세계 각국에서 맡긴 100만종 이상의 종자가 보관되어 있어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 불립니다. <세계의 끝 씨앗 창고>(마농지)는 이곳의 의미와 모습을 사진과 함께 만나보게 해주는 책입니다. |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게이 프라이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블랙 프라이드'가 있다면, '미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매드 프라이드'도 가능할까요? 이른바 '정신장애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정체성 찾기 운동은 오늘날 인정투쟁의 최전선이라 할 만합니다. 정신과 의사 모하메드 아부엘레이 라셰드가 쓴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는 주류 사회규범이 자행하는 차별과 낙인에 저항하면서 생긴 정체성과 인정의 문제, 그리고 '사회적 수용성'을 섬세하게 따져보는 책입니다.
광기를 정체성으로 인정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미쳤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정체성 형성 능력을 손상시키는 요인으로 간주된다는 점입니다. 지은이는 '치료'라는 의학적 모델로 가지 않더라도, 광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것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이는 길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광기의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주관적인 경험을 어떤 문화적 레파토리('매드 서사')로 가다듬는 것이 관건이라 합니다. '화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리 사회가 광기와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지은이의 태도가 무엇보다도 값집니다. |
🐟'정신질환' 규정은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규범의 영향을 받습니다. '비정상'이라 낙인 찍고 기피하던 우울증이, 90년대 말 일본에서 '사회적인 병'으로 새롭게 규정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만합니다.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사월의책)에서 자세히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정신을 치료한다'는 '의료화'를 거부했던 60년대 '반정신의학 운동'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1993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매드 프라이드' 축제는 2019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열리고 있습니다. 당시 첫 매드 프라이드 행사를 조직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공유합니다. |
“4·3 관련 중단편 세 편을 쓰고 ‘아 이제 됐다’ 부채의식은 이걸로 갚고 순문학을 해보자 했어요. 그런데 그게 안 돼요. 밤에 악몽을 두 번이나 꾸는데 고문당하는 꿈이에요. ‘순이 삼촌’ 쓰고 보안사 끌려가 당했던 것과 같은 악몽을, 매우 고통스럽게요. 근데 고문 주체가 4·3의 영령이더라고요. 날 불러서 ‘네가 뭐했다고 벗어나려는 거냐, 매우 쳐라’….그래서 ‘안 되겠구나’ 4·3이 내 일생의 화두가 되고 영령의 명령이니 (희생된) 3만 원혼께 바치는 공물을, 중단편 썼으니 장편으로 제대로 써보자 해서 쓰게 되었습니다."
설사 역사가가 제 몫을 다 하더라도 문학가의 사명은 끝나지 않습니다. '순이 삼촌'으로 제주 4·3의 금기를 깼던 소설가 현기영(82)은 장편소설 <제주도우다>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4·3 청춘의 사랑, 슬픔과 분노, 원통함이 표정으로 생생히 되살아나 때로 ‘1인극’을 보듯 했습니다. 3500매 분량의 소설을 4년간 썼을 때의 그의 표정도 상상이 됩니다. ‘4·3 제주’의 문학적 구원에 헌신해온 기나긴 여정의 대단원입니다. “역사는 3만의 피해 통계로 쓰지만, 문학은 3만의 개개 사건으로 보는 거예요. 3만의 개개인에 피를, 뼈를, 눈물을, 삶을 부여해 다시 살리고 당시 그곳에 투입해야 사건의 진상이 드러납니다.” |
<신 앞에 선 인간>은 서양 중세철학 전문가 박승찬 가톨릭대 교수가 서양 기독교 문명의 정신적 틀을 만든 초기 500년의 역사를 인물의 사상을 통해 들여다본 저작입니다. 책은 이 시기 기독교 사상의 성숙에 큰 기여를 한 사상가로 다섯 사람을 꼽습니다. 기독교를 보편종교로 일으켜 세운 사도 바울로, 플라톤 철학을 이어받아 신플라톤주의 체계를 만든 플로티노스, 그리스 철학을 바탕으로 삼아 기독교 신학의 큰길을 연 오리게네스, 앞 시대 사상을 종합해 중세 신학의 거대한 구조물을 세운 아우구스티누스, 고대 로마 세계의 마지막 철학자 보에티우스가 주인공들입니다.
지은이의 관심은 유대 문화에서 나온 변방의 종교인 기독교가 로마 세계의 정신을 지배하던 그리스 철학과 만나 융합하는 과정을 살피는 데 있습니다. 플로티노스 “신은 충만한 일자”라고 했고 오리게네스는 “신도 고통받는다”고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나라’에 관해 쓴 <신국론>에서 ‘땅의 나라’ 곧 현실의 나라를 매섭게 비판했습니다. “정의가 없는 왕국이란 거대한 강도떼가 아니고 무엇인가?” 하고 물었죠. 강도떼가 다스리는 나라를 참된 나라로 만드는 일, 그것이 지상에서 신의 뜻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보았습니다. |
한국과 중국, 한국인들과 중국인들 사이에 갈수록 오해와 편견의 벽이 높아만 가는 듯한 이즈음입니다. 중국인 아내와 결혼해 중국에 살고 있는 김유익이 쓴 <차이나 리터러시>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혐한’(한국 혐오)과 ‘혐중’(중국 혐오)이 거울처럼 서로를 되비추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은이는 중화권 도서 서평 형식을 통해 중국의 이모저모를 설명하고, 한국인들이 지닌 중국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자 합니다. 중국의 청년 인터넷 애국주의자들을 일컫는 ‘소분홍’(小粉紅)이 혐한 분위기를 주도하지만, 그것이 중국 사회의 다수 여론인 것은 아니라고 지은이는 강조합니다.
우리 쪽의 ‘혐중’에는 두 나라의 역사적 관계에서 비롯된 르상티망(원한)의 감정이 작용한다고도 분석합니다. 중국을 경쟁국으로 보기보다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간주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가 나서서 반중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추상적 중국이 아니라 중국의 ‘지역’과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게 지은이의 결론입니다. |
만들어진 인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소설가 은희경 |
 | 오늘날 한국문학을 이끌어온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은희경 소설가의 첫 책은 <새의 선물>(문학동네)입니다. 지난해 100쇄를 찍었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은 작가는 절에 들어갔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머릿속에 독자도 없고 자기검열도 없"는 절방 속 소설 쓰기가, 그렇게 온종일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게 커다란 호사였다고 회고합니다. "만들어진 인생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첫 책에 흐르는 에너지였다고도 돌아봅니다. 첫 책부터 지금까지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그대로인지, 작가의 발자취 그 자체가 독자들에겐 선물 같습니다. |
 | 은 작가가 첫 책 이후에 쓴 자기 책들을 꼽아봤습니다. 왼쪽부터 <타인에게 말 걸기>(1996),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2014), <빛의 과거>(2019), <장미의 이름은 장미>(2022)입니다. |
19살에 이룬, '책과 함께하기' 꿈 책방 모랭이숲 |
 | "책방을 여는 건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한 과거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2022년 11월16일, 19살 때 책방 ‘모랭이숲’을 열었다. 모랭이숲의 ‘모랭이’는 ‘모퉁이’의 충청도 방언이다. 책방이 자리한 마을의 이름에서 따왔다. 책방을 꾸리다보니 이 공간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인 ‘숲’처럼 느껴졌다. 둘을 합쳐 모랭이숲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추가로, <빨강머리 앤>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이제 전 길모퉁이에 이르렀어요. 그 모퉁이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가장 좋은 것이 있다고 믿을 거예요.”(루시 모드 몽고메리, <빨강머리 앤>) 당시 책방을 준비하며, 당장 내일조차 전혀 예상되지 않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럼에도 앤의 말처럼, 그 너머에 가장 좋은 것이 있다 믿으며 발걸음을 내디딘 마음이 녹아 있기도 하다." 👉기사보기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용수는 내 친구, 어릴 적에 자주 놀았다 골목에 온종일 나와 있었다 주말 아침에도 용수가 있었고 저녁의 귀갓길에도 용수가 있었다 용수를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잠자리도 잡고 돌도 던졌다 여우비 맞으며 술래잡기하던 날, 나는 용수가 나를 찾지 못했으면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후로 용수를 다시 볼 수 없었고 지금도 맑은 날에 비가 내리면 그때가 떠오른다 누가 내게 첫사랑에 대해 물으면 나는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황인찬의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문학동네)에서 |
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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