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지난 일요일 막을 내린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큰 아쉬움을 하나 남겼습니다. 도서전의 홍보대사인 '얼굴' 가운데 한 사람으로 위촉된 소설가 오정희 작가가 박근혜 정부 때 "블랙리스트 가담자"였다는 문제 제기(👉기사보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가 불거진 뒤 오 작가는 '자진 사퇴'했지만, 곳곳에 크게 인쇄된 그의 얼굴은 도서전 내내 여전히 도서전을 대표하고 있었습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활동을 종합한 백서를 펴고 문제로 지적된 ‘2015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내용을 집중적으로 봤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주관으로 역량 있는 문학인이 창작에 전념하도록 연간 1천만원을 100명에게 지원하는 2015년 사업(959건 지원)에서, 심사위원들이 3단계 심의를 진행하는 동안 문화체육관광부는 끊임없이 윗선에서 받은 ‘배제 대상자’ 명단을 하달했습니다. 이들이 잘 걸러지지 않자, 결국 예술위 위원들이 나서서 선정 인원을 아예 70명으로 축소해버리는 방법으로 대상자들을 걸러냅니다. 문학 분야 예술위원이 바로 오 작가였습니다. “문학 분야 오OO 위원, 심사위원 5인 대상 설득 작업중”이라는 기록과 진술들은 그가 당시 어떤 일을 했었는지 드러내어 줍니다.(👉백서 보기)
“오OO가 2015~2016년 2년간 예술위 밖으로 아무 잡음도 내지 않고 예술위 위원직을 수행했을 때 우리는 이미 그가 블랙리스트 실행의 협력자라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백서에서 노이정 연극평론가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문화예술을 키우는 우리 사회의 공공성은 무관심과 방조 속에서 은밀하게 파괴됩니다. 그리고 그 파괴의 현장은 권위 있고 화려한 얼굴 뒤로 감춰집니다. ‘책의 축제’에서, 이보다 더 절박하게 이야기 나눠야 할 주제가 또 있었을까요?
|
|
|
1920~30년대 한반도는 일제강점기 아래 식민지이기도 했지만, 서구 문물을 급속도로 받아들이며 자본주의적 소비문화가 빠르게 확산됐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소비문화의 정점으로 꼽히는 백화점이 경성에 다섯 곳이나 성업했다죠.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는 근대 건축의 실내 재현에 전문가이기도 한 미술사학자 최지혜가 당시 백화점에서 팔았을 법한 온갖 근대 물품 130여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일종의 '박물지'입니다. 식품부·생활잡화부(1층), 화장품부·양품잡화부(2층), 양복부(3층), 귀금속부·완구부·주방용품부·문방구부(4층), 가구부·전기기구부·사진부·악기부(5층) 등 층별 구성부터가 재밌습니다.
|
|
|
근대 위생 관념의 도입에 따라 치약과 칫솔이 생필품이 되었고, 악어 껍질 핸드백 같은 사치품은 그때에도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외제 만년필의 홍수 속에서 국산 반도 만년필은 '애국 마케팅'을 펼쳤는데, 조선물산장려운동이 한창이던 시대 배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책에서 언급한 당시 신문기사처럼, 백화점은 예나 지금에나 우리의 소비력을 잡아먹는 '근래의 요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
|
🐟암울한 식민치하로만 여겨졌던 1920~1930년대 경성은 언젠가부터 '모던 경성'이라는 말을 통해 그 중층적이고 역설적인 근대성으로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미술평론가이자 목수인 김진송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1999), 만문만화로 근대의 모습을 조명한 신명직의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2003), 신문광고로 본 근대의 풍경을 담아낸 김태수의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2005) 같은 책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지은이 최지혜는 백 년 전 경성에 살던 서양인의 옛집 딜쿠샤의 실내를 재현하고 복원해, 그 내용을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혜화1117)이라는 책으로 펴낸 바 있습니다.
|
|
|
기후 변화로 아마존 열대 우림이 파괴되고 있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마존 열대 우림이 '지구의 허파'가 아니라 북부한대수림이야말로 지구의 진짜 허파이고, 또 북극권이 점점 초록색으로 바뀌는 현실을 꼭 반길 일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지구의 마지막 숲을 가다>를 쓴 벤 롤런스입니다. 북부한대수림은 유라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의 냉대기후 지역을 띠모양으로 둘러싼 침엽수림으로, 지표면의 5분의 1을 덮고 지구상 모든 나무 중 3분의 1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
|
|
지은이는 4년 동안 수목이 생존할 수 있는 극한의 선인 수목한계선을 따라 스코틀랜드, 노르웨이,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란드 등 6곳을 여행하며 생태 환경과 지역살이를 관찰했습니다. 나무들이 북쪽으로 진출하면서 영구동토층이 녹아 큰 재앙이 닥칠 거란 지적에, 당장은 급한 일로 생각하지 않았던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문제가 ‘나의 문제’로 다가올 것입니다.
|
|
|
🐟추상적으로 다가왔던 기후변화의 위기는 이제 전세계 곳곳에서 구체적인 현실로 실감되고 있습니다. 산에서는 빙하가 녹고 바다에서는 산호초가 사라집니다. <지구를 위한 비가>(경희대출판문화원)은 지구 곳곳의 기후붕괴 현장을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
|
|
―이번 소설집이 마지막이라고 후기에 쓰셨는데요.
“소명처럼 작품을 썼습니다. 할 얘긴 다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냥 소설집만 마지막이란 얘기가 아니셨네요?
“소설을 다 아울러 얘기한 것인데요, 건강도 한동안 안 좋았습니다. 그런데 또 좀 나아지니 아직 더 쓰고 싶은 게 남았단 생각도 드네요. 하하.”
―이번 작품, 젊은 독자들은 관심이 덜할 주제입니다.
“네, 맞아요. 하지만 분단 문제의 비극성 늘 강조해왔고 영원한 진행형이니까요. 지금도 전쟁의 악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간 작품에선 (그 문제에 대한) 해석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 왔어요. 이번엔 제 생각을 좀 더 직접 넣는 방법으로 썼습니다. ”
―등단 60돌이 됐습니다. 작품들 많지만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을까요?
“자주 질문 받아왔지만 꼽기가 곤란하지요. 그래도 고르라면 <우상의 눈물> <아베의 가족>이 아닐까요. 독자들도 많이 평가해준 작품들이라서요.”
|
|
|
12년 만에 새 소설집을 펴낸 작가 전상국(83)과의 짧은 인터뷰였습니다. 그는 중·단편 9편을 묶은 <숨>을 “생애 마지막 소설집”이라 소개합니다. 여러 작품으로 한국전쟁의 그늘을 관통하여 이제 무관심할 법도 한 지금의 독자들 앞에 재조명시키려는 데서 정좌한 외곬의 노 작가가 그려집니다. 그렇게 주제에 있어 1963년 등단작 ‘동행’과도 만나 60년을 수미쌍관 해내는데, 중편 ‘굿’이 특히 돋을새김 됩니다.
|
|
|
연금술이라는 말은 과학의 빛이 들기 이전 옛 시대 인간의 기괴한 욕망이 빚어낸 헛된 꿈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연금술은 황금을 만들려는 신비주의적 망상이기만 했던 것일까요? 연금술과 근대 과학혁명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요? 미국의 과학사학자 윌리엄 뉴먼의 <프로메테우스의 야망>은 서양 연금술의 역사를 찬찬히 되밟아 연금술에 대한 통념을 깨뜨리는 책입니다. 특히 이 책은 중세 말기 스위스 의사였던 연금술사 파라켈수스의 저작을 살펴 연금술이 오늘날의 ‘생명복제’와 유사한 꿈을 꾸었을 보여줍니다.
|
|
|
파라켈수스는 인공의 방법으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그 인공 인간을 호문쿨루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동안 몇몇 페미니즘 과학사가들은 융과 엘리아데의 연금술 논의를 이어받아 연금술사들이 자연을 거룩한 여성으로 숭배했다고 보고 연금술의 세계관이 반자연적인 가부장적 과학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뉴먼은 파라켈수스의 연금술이 철저한 남성우월주의에 입각해 자연을 복속시켜야 할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뉴먼의 탐사를 통해 연금술의 이미지는 거의 반대로 뒤집힙니다.
|
|
|
넷플릭스는 인터넷으로 콘텐츠를 송출하는 새 시대를 열었고, 우리는 OTT 서비스를 통해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들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도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영화 <로마> 등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콘텐츠들을 통해 재미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의 역사와 문화까지 공부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두 기자가 의기투합해 쓴 <넷플릭스 세계사>는 그런 길잡이가 되어줄 만한 책입니다. 20편의 콘텐츠를 통해 그 배경에 녹아있는 세계사 이야기를 펼칩니다.
|
|
|
블루스 가수 마 레이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를 통해서 미국 인종차별의 역사를, 드라마 <더 스파이>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준동분쟁의 역사를 새겨보는 식입니다. 이 책은 넷플릭스로 한정하긴 했지만, 사실 이 세상 모든 콘텐츠가 각자의 시대상을 담고 있겠죠.
|
|
|
바다보더 더 넓은 행과 행 사이를 누빈다
번역가 장성주 |
|
|
장성주 번역가는 한때 다니던 출판사를 때려치우고 항해사가 되어 배를 타려고 했었답니다. 국비 항해사 교육 과정에서 떨어진 뒤 출판사 선배로부터 온, "번역 한 권 해보라"는 전화가 그를 번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 책이 SF 문학의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의 대표 단편집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이라는 데에서, 또 2019년 유영번역상을 수상하게 해준 책이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SF 작가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이라는 데에서, 그가 번역가로서 걸어온 길이 어떤 길인지 한번 짐작해볼 수 있을까요? "바다를 누비는 것도 좋았겠지만, 글의 행과 행 사이도 바다보다 더 넓다"는 그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
|
|
번역가가 직접 꼽은 주요 작품들의 표지. 왼쪽부터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황금가지),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황금가지), 토머스 새비지의 <파워 오브 도그>(민음사), 옥타비아 버틀러의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비채) 순서. |
|
|
책에만 갇히기 싫어… 서점이자 서점이 아닌 곳
이것은서점이아니다 |
|
|
"우리는 슬프고 아픈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오늘의 기분을 나누고, 시를 읽다 울고, 음악을 듣다 춤을 출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비슷한 결의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들과 함께 현재의 안부와 미래의 안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3년 전 우리는 그게 무엇이 됐든 뻔하게 서점만은 하지 말자며 푸하하 웃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한 달 차 서점지기가 되어있다. 뻔한 전개는 싫었으나 결국 우리는 서점이어야 했다. 책으로 가득 찬 집에 사는 것이 꿈인 사람과 책을 읽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 만났기 때문이었다. 대신 책에만 갇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했다. 서점이면서 서점이 아니기로."
👉기사보기 |
|
|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날이 무거워진다 철학은 넘치고 수학은 숨은 수를 다 찾아낸다 새들은 부러질 나뭇가지로 날아가지 않는다 모기 문 곳이 아직은 가렵다 나는 오랫동안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가르친 대로 살지 못했다 아이들도 커가면서 배운 대로 살지 않았다 나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괴로워했다 사람이 이러면 안 되는데 생산과 소비의 겸허를 잊었다 생태와 순환의 교란자들 모두 어디 갔는가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이상하였다
📖김용택의 시집 <모두가 첫날처럼>(문학동네)에서 |
|
|
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
<한겨레>를 정기구독하시면, 매주 토요일 아침 충실하게 만들어진 북섹션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후원회원 '벗'으로 함께해 주시면,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
|
※ 반복적으로 전달되다보니 반올림(#)책이 스팸메일이나 프로모션함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용하시는 전자우편 서비스에서 반올림책 bookbang@hani.co.kr을 주소록에 추가해주시면 반올림(#)책을 더 쉽게 챙겨볼 수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