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퀴어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는 자신의 ‘스탠드업 쇼’에서 “‘젠더 노멀’인 사람들은 성별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과잉 반응한다”고 꼬집습니다. 인간 사회는 유난히 성별, 특히나 서로 다른 두 가지 성을 양 극단에 놓는 이분법적 구분에 집착합니다. 성은 남성 아니면 여성 둘 중 하나만을 타고나며 둘 사이에 공통점은 없고 온통 다른 것들만 있다는 상상, 과연 합리적일까요?
이런 이분법에서 벗어나 그저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갖은 차별·배제·혐오를 헤쳐온 퀴어들은 그런 상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명민하게 읽어내고, 때론 그것을 농담으로까지 승화시킵니다. 퀴어 예술가 ‘이반지하’는 새 책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이야기장수)에서 ‘부치’(남성적 성향을 지닌 레즈비언)에게 자궁이란 무엇인가 탐구합니다. “소개팅하고 있는데, 눈앞에 있는 ‘펨’(여성적 성향을 지닌 레즈비언)한테 나 지금 생리 터졌다고 생리대 빌려달랄 수는 없잖아.” 여성이라는 의학적·법적 규정과 달리 한평생 남성으로 살았고, 결혼 뒤에는 직접 아이를 임신·출산하는 등 아예 성별 이분법 자체를 거부하는 <논바이너리 마더>(오렌지디)의 지은이 같은 이들도 있습니다.
최근 생물들의 성 세계를 다룬 책 <암컷들>(웅진지식하우스)에서 봤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수컷으로 태어났으나 환경에 따라 암컷이 되는 흰동가리 등 자연 속 성은 결코 이분법으로 고정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간 역시 수정된 하나의 세포에서 나왔고, 서로 다른 점보다 서로 같은 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니 ‘남녀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왔다’ 따위의 흰소리는 이제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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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23일 `우리 시대의 거악' 전두환씨가 숨지자, 사람들이 너무 안타까워했습니다. 무고한 식민을 학살한 그가 사죄도 반성도 없이, 공동체가 내리는 형벌도 받지 않고, 사라졌기 때문이지요.
소설가 정아은은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게 아쉬워할 거면 33년 동안 우리 사회는 뭘 했지?’ 그의 이런 질문으로 시작된 책이 논픽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전두환이라는 문제적 인물을 좀더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왜 우리 사회가 그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는지 파고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200개에 달하는 주석이 달린 이 책은 작가가 참고문헌 100여 권을 조사하고 전두환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한 뒤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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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5·18은 나와 무관하다”고 주장했지요. 2017년엔 <전두환 회고록>까지 내고요. <전두환 회고록>을 읽고 안되겠다 싶어 책을 낸 분이 있습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일보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전두환의 학살 장면을 목격했던 나의갑 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입니다.
🐟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이름없는 시민군 ‘김군’을 영화로 조명했던 강상우 감독은 영화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김군을 찾아서>라는 책으로 풀어낸 바 있습니다. 강 감독은 “많은 경우 기록은 가해자의 편이다. 기록된 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소각된다. 누군가는 살아남은 생존자의 기억과 그 사이의 개연성과 무수한 정황만을 제시하는 불완전한 자료들에 의존해 진실을 찾는 지난한 작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군’은 광주 어디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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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사람들>은 케지비(KGB) 요원으로 시작해 2000년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 푸틴 현 러시아 대통령이 어떤 방식으로 힘과 권력을 만들어왔는지를 살펴본 책입니다.
이 책은 <파이낸셜타임스>의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일했던 영국 저널리스트 캐서린 벨턴이 저널리스트 특유의 집요한 취재를 통해 푸틴과 현대 러시아의 실체를 촘촘하게 추적했습니다. 공산권의 멸망, 러시아의 민주화와 옐친의 부상, 올리가르히(신흥재벌)의 성장과 몰락, 그리고 밑바닥부터 올라온 푸틴과 그의 케지비(KGB)·마피아 동료들의 이야기까지 다룹니다. 900쪽에 달하는 벽돌책이지만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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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국의 작가’ 필립 로스가 세상을 떠난지 정확히 5주년이 됐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이 남일같지 않은 단 하나의 세계 작가를 꼽자면 아마 로스여야하지 않을까요.
노벨문학상에 가장 접근시켰던 것으로 보이는 <포트노이의 불평>(1969) 등을 통해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아도 싸움이 찾아오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던, 특히 유대인 독자와 페미니스트로부터 비판 받았던 하지만 때마다 반박하며 맞선 작가. 급기야 평론가들이 “로스의 소설보다는 로스에 관해 집요하게 쓰”게 한 작가. <미국의 목가>(1997)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1998) <휴먼 스테인>(2000)으로 조합된 ‘미국 3부작’ 등을 통해 미국 사회 혼돈상과 뒤틀린 개별적 삶들을 정교하게 들춘 강박주의의 작가. 그럼에도 국내 아직 소개되지 않은 필립 로스의 소설이 있었군요. 2020년 HBO 드라마(<미국을 향한 음모>)로도 제작 방영됐던 원저 <미국을 노린 음모>입니다.
대체역사물로서 60년도 지난 과거를 ‘가정’함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이유는 실제 그럴 수 있었다는 역사적 가능성 때문입니다. 더 올돌한 이유는 그 가망을 시현한 이가 바로 필립 로스이기 때문이겠습니다. 대서양을 최초로 무착륙 단독 횡단 비행해 미국의 영웅이 된 찰스 린드버그가 1940년대 루스벨트를 꺾고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됩니다. 친나치 파시즘을 옹호하는.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일까요. 로스는 이 상상이 너무도 “자연발생적이고 즉각적인” 것이었다고 말하는데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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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다쓰루(73)라는 일본 철학자가 있습니다. 철학‧정치‧종교‧교육‧예술을 아울러 전방위 저술 활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치다의 철학적 작업은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의 철학을 바탕으로 삼는데요. <레비나스, 타자를 말하다>는 레비나스 제자를 자임하는 우치다가 ‘스승’의 철학에 대해 말하는 책입니다. 레비나스는 유대인으로서 프랑스에서 활동한 철학자입니다. 타자를 철학적 사유의 주제로 삼아 ‘타자의 윤리학’을 세운 사람이기도 하지요.
이 책에서 우치다는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사유를 원용해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을 재해석합니다. 특히 눈여겨볼 것이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를 해석하는 우치다의 새로운 눈입니다. 우치다는 레비나스의 ’타자’를 ’죽은 자’로 이해할 때 레비나스 철학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죽은 자야말로 주체인 내가 가 닿을 수 없는 ’절대적 외부자’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으로서 가족과 동포를 홀로코스트에 잃고 살아남은 레비나스 삶의 이력을 보면 우치다의 해석에 수긍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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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들이 해마다 지구의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먼 길을 오가면서도 길을 잃거나 낙오하지 않고 떠났던 자리로 돌아오는 메커니즘은 경탄스럽습니다. 미국의 탐조가이자 조류학자인 스콧 와이덴솔이 쓴 책 <날개 위의 세계>는 자신이 참여한 탐사와 연구 경험을 바탕 삼아 철새들의 이동에 얽힌 비밀을 파헤칩니다. 주로 미국이 무대이지만, 중국 황해 연안과 키프로스, 인도 등 세계 곳곳의 철새 경유지들 역시 발로 답사합니다.
책에는 한국의 새만금방조제 이야기도 나오는데, 좋은 얘기는 아닙니다. 이 방조제가 생기면서 전 세계 붉은어깨도요 총 개체 수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7만 마리 이상이 자취를 감추었다죠. 이 숫자가 해마다 새만금을 찾아왔던 붉은어깨도요 수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새만금방조제와 같은 인위적인 지형 변화와 기후 변화, 별빛을 가리는 도시의 불빛들, 살충제 살포로 인한 새들의 먹이 감소, 새를 사냥해 먹는 인간들의 식문화 등이 철새들의 운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합니다. 자연과 생명의 리듬을 좇으며 지구의 이곳저곳을 연결하는 철새들의 지혜를 우리 인간 역시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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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는 대목에서 독자도 눈물흘려준다면…
번역가 노수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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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도쿄대학대학원 연구생 과정을 밟았던 노수경 번역가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번역하면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네요. 그런데 어떻게 중견 번역가의 길을 걷게 됐을까요?
그는 주로 강상중 도쿄대 교수와 작가 브래디 미카코의 책을 번역했습니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가들이지요. “작가에게 빙의해서” 작업을 한다는 그는 “내가 저자의 글을 읽으면 뭔가 전해져서 눈물을 흘리고 그걸 나만의 언어로 바꾸면서 또 한번 울게 되는데, 그 대목에서 독자들도 함께 느끼고 눈물을 흘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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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직접 꼽은 주요 작품들의 표지. 왼쪽부터 강상중의 <구원의 미술관>(사계절)과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사계절), 브래디 미카코의 <아이들의 계급투쟁>(사계절)과 <여자들의 테러>(사계절) 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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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공유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독서모임, 나를 표현하고 스스로를 삶의 주체로 세우며 상처를 회복하는 책쓰기 모임, 개인의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자아존중감을 향상하는 보드게임·퍼즐·드로잉 등 취미 소모임,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고 소통하는 즐거움을 찾는 마을공동체·마을미디어 활동… . 글한스푼에서 하는 모든 일들은 참여하는 모두가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돕는 일이며, 이는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게 만들어 아이들이 현재를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할 책을 소개하고, 글한스푼을 통해 따뜻한 마을 그리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일. 이것이 내가 책방을 하는 이유,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이다.
책방을 둘러보면 구석구석에 숨겨진 책방지기의 메리 포핀스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온갖 마법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지만 결국 스스로의 문제는 자신의 선택으로 해결하도록 돕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돌볼 줄 아는 메리 포핀스는 책방지기의 또 다른 직업인 사회복지사로서의 롤모델이다. 그리고 책방을 찾는 모두가 메리 포핀스가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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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밀물진다
밀물은 하염없이 밀려와
밀물이다
왜 오는지도 모르게 밀려오는 게 밀물이다
오로지 앞으로만 달려오는 게
밀물이다
어이쿠, 고꾸라져도
다시 일어나 달려오는 게 밀물이다
밀물에 이는 거품
첫 파도에 올라타고 온 사람
비록 거품일지라도
꽃소금 첫 밀물로 왔다 간 사람
📖장옥관의 시집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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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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