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성난 사람들>(Beef)이란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셨는지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두 운전자가 서로 난폭 운전을 하는 ‘로드 레이지’ 사건을 배경으로 삼은 블랙 코미디입니다.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 여기는 두 남녀가 ‘로드 레이지’로 얽히고, 복수를 주고받으며 상황은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닫습니다. 남성은 일감도 제대로 구하기 어려운 건설 도급업자, 여성은 화초 장사로 제법 성공한 사업가로 둘의 사회경제적 처지는 극과 극입니다만, 내면에 어두운 분노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 모두 동양계 미국인이라는 설정입니다. 영화 <미나리>로 유명한 배우 스티븐 연이 연기한 남성은 한국계, 코미디언·배우·작가인 앨리 웡이 연기한 여성은 중국·베트남계 미국인으로 나옵니다. 그 성격과 형태는 다르지만 두 사람이 품고 있는 어두운 분노와 자기 혐오가 ‘가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런 배경에서 이해됩니다. 남성의 경우 미국 정착에 실패한 부모를 다시 미국으로 모셔와야 한다는 책임감에, 여성의 경우 경제적으론 성공했지만 정서적으로는 실패한 결혼생활을 재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있습니다.
다만 <성난 사람들>은 여태껏 미국 대중문화에서 소수자를 재현해온 전형성에 기대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인종적으로 소수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문학시장이나 헐리우드에서 특정한 편견 아래 제한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현실을 깨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습니다. 누구도 부여하지 않은 책임감 아래에 본모습을 감춰온 두 사람이 ‘찌질하다’ 싶을 정도로 통제할 수 없는 분노를 맘껏 쏟아내며 망가져 가는 모습에는 ‘동양계’라는 납작한 규정을 뛰어넘는, 어떤 보편성이 있습니다.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인간의 입체적인 형상, 미국 사회에서 이 작품이 열렬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비결은 아마도 이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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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이탈>은 2005년 4월25일 일본에서 여객 철도가 탈선하면서 107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참사를 다룬 논픽션 작품입니다. 당시 <고베신문> 기자였던 마쓰모토 하지무가 사건 발생 초기부터 사건이 발생한 지 9년이 지난 시점까지 유가족 모임의 주축인 아사노 야사카즈를 밀착 취재했습니다. 인물을 중심으로 영화처럼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저널리스트의 현장 취재와 풍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재난 참사의 사회화’라는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전달합니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참사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현재진행중’입니다.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앞두고 있지만 희생자추모공원 조성 사업은 첫 삽도 뜨지 못했고요. 서울시는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서울광장에 차려놓은 합동분향소를 철거하겠다며 유가족에게 변상금을 부과하는 통지서를 보내기도 했지요. 국민의 목숨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국가와 정부에 존재의 이유를 묻고 싶은 요즘입니다. '사회적 참사'를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할 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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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이탈>은 사회적 참사의 충격이 참사를 제대로 보기 위한 분투로 이어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책은 참사를 사회화하는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책들을 다시 소환해봅니다.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를 부른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은, 기관사로 하여금 비상 브레이크 사용을 주저하게 만든 철도 회사의 기업 문화('일근교육')입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만든 영상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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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는 모호하고 모순적이며, 그들의 행동은 불확실합니다. 여덟살 때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은 카밀라 팡(31)은 이런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 외국어 습득처럼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는 명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과학으로부터 돌파구를 찾아냈고, 결국 생물정보학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과학은 "잠겨 있는 세상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은 팡이 어떻게 과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는 에세이로, 2020년 영국 왕립학회에서 최고의 과학책으로 꼽힌 책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군중의 움직임으로 종종 멜트다운(통제력을 잃는 상태)에 빠졌던 그는 분자동역학으로부터 '대중에 휩쓸리지 않는 법'을, 단백질로부터 다양한 인간 성격 유형을, 공명과 간섭으로부터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법을 찾아냅니다. 지은이는 과학과 삶으로부터 "실패하는 실험을 즐기라"는 것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경로는 제각기 다르겠지만, 우리 모두는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복잡한 일에 능숙해지고자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그 누구든 자기 존재에 대해 사과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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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고딕 이론'에 따르면 "전체 계(系)는 개인 간의 모든 변동성을 포함"합니다. '정상'은 협소하고 비과학적인 규정일 따름이죠. 신경다양인들의 경험을 담은 또 다른 책으로, 일본의 문학 교수 요코미치 마코토의 <우리는 물속에 산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의 <차이에서 배워라>를 함께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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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쓴 스위스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78)가 16년 만에 내놓은 소설 제목은 <언어의 무게>입니다. 보이지 않는 매듭이 두 작품을 이어 <언어의 무게> 또한 웅숭깊고 아름답습니다. 본래 철학교수였던 지라 철학적 사유를 장편 서사의 요긴한 나룻배 삼아 독자의 승선을 요구하기에 그의 소설은 현학적입네 외면받을 법도 합니다. 그러나 두 작품을 옮긴 전은경 번역가는 작품에 너무 빠져들어서 "100권만 팔려도 좋다 싶은 마음으로" 번역을 했답니다.
존엄과 희열은 일탈한 세계에서 구해지는 것이며, 이 세계로 가기 위해선 낯선 언어, 미지의 언어가 필요합니다. <언어의 무게> 주인공 레이랜드가 아내를 잃은 데 이어 시한부 판정을 받으며 밟아가는 행로입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이후 '작가행 열차'에 오르는 철학교수의 일탈을 같이 만나보시죠. 아,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이어 <언어의 무게>에도 '프라두'란 이름의 작가가 이정표처럼 등장합니다. 하지만 모든 프라두는 창작된 인물이란 거, 그러니까 메르시어를 앞서 간 분신이란 점. 진짜 작가인지 검색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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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모스는 <증여론>(1925)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모스의 다른 학문적 성취를 가리는 그림자 구실을 하기도 했습니다. <증여론>이 모스의 학문과 동일시된 탓에 모스의 다채로운 학문 활동이 합당한 조명을 받지 못한 것이죠. 모스 전공자라면 자못 아쉬운 일일 텐데, 이런 아쉬움을 떨쳐내겠다는 각오로 국내 모스 연구자들이 모스 사상을 조망하는 ‘마르셀 모스 선집’(전 6권)을 기획하고 그 첫 번째 책으로 <몸 테크닉>을 번역해 내놓았습니다.
모스가 1921~1934년 사이에 프랑스심리학회에서 발표한 네 편의 강연문을 묶은 것인데, 모스 사회학의 근본 구도를 확인할 기회를 줍니다. 인간을 신체적-심리적-사회적 차원이 한 덩어리를 이루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는 발상이 흥미롭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이한 죽음’을 분석한 글도 눈길을 끕니다. 금기를 위반한 사람에게 집단이 ’너는 죽을 것이다’라고 암시를 보내면 암시를 받은 사람이 시름시름 앓다고 진짜 죽는다고 하는데, 그 메커니즘의 핵심에 있는 것이 집단 암시를 내면화하는 피암시자의 자기 암시라고 모스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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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 지혜의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종적 특성이 우수한 지능에 있다는 취지에서 현생인류를 그렇게 부르지요. 그런데 그처럼 뛰어난 지능이 곧 오만과 파멸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책이 있습니다. 독일의 고고유전학자와 언론인이 함께 쓴 <호모 히브리스>는 오만함을 인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듭니다. ‘히브리스’(hybris 또는 hubris)라는 그리스어는 인간의 오만함을 가리킵니다.
지은이들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3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에서부터 21세기 현재까지 인류의 진화와 발달 과정을 설명합니다. 인간이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 같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진화의 승자가 된 데에는 특유의 지능과 적응 능력이 있다죠. 그러나 지은이들은 또한 경고합니다. 바로 그 지능 때문에 인간은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켰고 핵무기와 같은 자기파멸적 수단을 출현시켰다고요. 인간이 네메시스라는 응징과 복수의 운명을 피하려면 이제라도 절제와 겸손의 미덕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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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과학기술에 힘입어 네안데르탈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과 오늘날 고인류학이 이룬 성취를 잘 전달해주는 책으로, 영국 출신 고고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리베카 랙 사익스가 쓴 <네안데르탈>을 함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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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이 심장에 머물 수 있게 번역하고 싶어요
번역가 조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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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분류학과 식물분자유전학을 공부한 조은영 번역가는 여태까지 50여권의 과학책을 우리말로 옮긴 8년차 번역가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부족하니까"라며, 설거지하며 드라마 보는 시간을 빼놓고는 원고를 보고 고치는 것을 '무한 반복'할 정도로 번역에 매진한다고 합니다. "어려운 과학책은 쉽게, 쉬운 과학책은 재미있게" 옮긴다는 것이 그의 모토. 팩트를 다루는 과학책들이지만, "독자의 심장에 머무는 책도 작업하고 싶다"는 그의 번역에는 그 자신이 자연에 느꼈던 경이로움이 서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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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직접 꼽은 주요 작품들의 표지. 왼쪽부터 제니퍼 애커먼의 <새들의 방식>(까치), 로버트 맥팔레인의 <언더랜드>(소소의책), 발레리 트루에의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부키), 사라 헨드렌의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김영사) 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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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지게차 배우고 온 주인이 책 팔고 있습니다
쑬딴스북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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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 좋은데 책방 뒤에서 고기나 한번 구워 먹자. 목련 지기 전에.’ 증권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래. 돈 버느라 고생 많으니 고기는 네가 사와. 책방 뒤편이야 새와 동네 고양이들 놀이터이니 언제라도 환영이다. 어느 고기인들 문제인가. 막걸리에 목련잎 담가 고기 구워서 한잔하자. 친구야, 요즘 많이 힘들지. 그래도 연봉 1억 넘은 네가 힘들면 책방 주인은 다 죽어야 한단다.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봄볕은 따듯하고, 탄이는 꾸벅꾸벅 졸고, 나도 헤밍웨이를 읽다가 곁에 둔 채 같이 꾸벅꾸벅 존다. 아내는 지민이 또 올지 모른다고 혼자 열심히 무언가를 주문하고 있다. 또 오지 않을 것 같으니 무리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데 내버려 둔다. 실핏줄 터진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으니. 그래. 책방이지. 맞아. 나 책방 주인이었어. 오늘도 책 팔아야지. 그러다 또 안 팔리면 뭐 어때, 김치 쪼가리에 막걸리나 한잔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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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예쁜 종아리
오르막길이
배가 더 나오고
무릎관절에도 나쁘고
발목이 더 굵어지고 종아리가 미워진다면
얼마나 더 싫을까
나는 얼마나 더 힘들까
내가 사는 동네에는 오르막길이 많네
게다가 지름길은 꼭 오르막이지
마치 내 삶처럼
📖황인숙 시집 <내 삶의 예쁜 종아리>(문학과지성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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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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