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으로 유명한 영국의 어린이문학 작가 로알드 달을 두고 벌어진 논쟁이 흥미롭습니다. 퍼핀출판사는 달 작품들을 개정하며 “모욕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deemed offensive) 내용들을 삭제하거나 고칠 거라고 했다가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예컨대 “뚱뚱하다”(fat)를 “거대하다”(enormous)로, ‘남자’(men)를 ‘사람’(people)으로 바꾼다거나 ‘미친’(crazy), ‘하얀’(white), ‘검은’(black) 같은 수식어들을 삭제했다고 합니다. 이에 ‘터무니없는 검열’이라는 입장과 ‘문학도 시대와 함께 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 엇갈렸죠.
문학도 시대와 함께 진화해야 하며, 이를 위한 적극적인 행위도 필요합니다. 다만 작가가 직접 참여하지 않은 방식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굳이 원문을 고쳐 쓰지 않더라도, 진화의 ‘우아한’ 방식들이 많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린다 수 박은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1932)을 ‘다시 쓰는’ 방식으로 진화시켰습니다. 백인 소녀 대신 <초원의 연꽃>(2020)의 주인공이 된 중국계 이민자 소녀는 차별과 혐오를 표면으로 드러내고 이에 당당히 맞섭니다. 개별 작품을 ‘살균’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가 품은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눈이겠죠. ( 👉기사보기)
퍼핀출판사는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겠다 합니다. 원작에 손대지 않은 ‘로알드 달 클래식 컬렉션’을 개정판과 함께 출간해, 독자들에게 선택권을 주겠다는 것이죠. <황금 나침반>의 작가 필립 풀먼은 트위터에서 이렇게 핵심을 찔렀더군요. “(문제가 있는 작품이라면) 왜 절판되게 놔두지 않지? 아, 물론 돈 때문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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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소를 도축하고 판매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근데 실제로는 지배층 중심으로 사람들은 쇠고기를 많이 먹었고, 쇠고기 장사는 큰 이익이 됐답니다. 서울의 경우 국가가 성균관 재정을 떠맡고 있는 노비인 반인들에게 쇠고기 도축과 판매를 예외적으로 허용해줬는데, 불법인 것은 마찬가지라서 단속기관에 영업허가세를 내야 했다고 합니다. 단속기관들은 열심히 거둔 영업허가세로 공식적인 보수가 없는 말단 직원들의 삭료를 주고요.
뭔가 총체적으로 엉망진창인 상황인데, 조선을 지배한 사족체제는 이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는 사실이 가장 암울합니다. 독특한 소재의 조합을 통해 과거를 입체적으로 그려낸 한문학자 강명관의 새 책 <노비와 쇠고기>입니다. “법 혹은 제도와 현실과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고민하기보다 방치해두는 것이 사족체제의 유일한 대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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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은 <조선의 뒷골목 풍경>(2003), <열녀의 탄생>(2009) 등 탄탄한 연구를 기반으로 삼는 한편 대중들이 쉽게 읽고 즐길 수도 있는 저작들을 여럿 써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글쟁이'로 꼽히는 학자입니다. 그에 대한 몇 가지 기사를 함께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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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들 그리 산을 좋아하고 그토록 오르려 하는지, 단지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대답만으론 어쩐지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스스로 산악인이자 작가인 로버트 맥팔레인은 불과 28살이었던 2003년 <산에 오르는 마음>이란 책을 펴내어 큰 상들을 여럿 받을 정도로 주목받았습니다.
독특하고 다양한 테마들을 품고 있는 이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인간은 도대체 왜 산에 매혹되는가'일 겁니다. 황량하고 위험한 산의 특징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으로 여겨지게 됐는데, 지은이는 그 역설을 이렇게도 말합니다. "산의 꼭대기를 향해 여행하는 사람들은 반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반은 소멸—자아 망각—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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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거기 있으니까"는 영국의 등반가 조지 맬러리가 한 말입니다. 그는 1924년 동료 앤드류 어빙과 함께 에베레스트 북벽 등정에 올랐으나 돌아오지 않았고, 75년 뒤에야 시신으로 발견되어 '과연 등정에는 성공했는지' 등 숱한 미스터리를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일본 작가 우메마쿠라 바쿠는 이 '맬러리 미스터리'를 소재로 삼아 산악소설 <신들의 봉우리>를 썼고, 이 작품은 만화로도 만들어졌다 최근 프랑스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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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등단 9년차에 접어든 소설가 박지음의 두 번째 소설집 <관계의 온도>를 놓고, 임인택 책기자는 "대체로 잊혀지려는 지난 '오늘'들을 환기시키고, 끝끝내 체감시키려는 데 있어 피할 수 없는 방식"으로서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변신'에 주목했습니다.
작가의 작품들은 시종 뒤틀린 현실과 과거사에 깊숙이 개입합니다. 여순사건, 5·18 광주, 이주 여성, 장애인 딸과 그 어머니 등 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현실들을 다루며, 9편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끊임없이 또 다른 자아로 옮겨가고 이는 이 세계를 감각할 수 있게 해주고 그 본질을 드러냅니다. "나는 그런 분들께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내 삶의 대부분을 소진했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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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성서에 대한 연구 방법으로 주목 받았던 것은 '역사비평', 곧 성서 텍스트 뒤의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는 방법이었다 합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역사비평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설화비평' 연구가 고개를 들었는데, 이야기를 편집하는 방식에 깃든 당시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설화비평적 성서 읽기의 관건이 됩니다.
벨기에 출신 성서학자 장 루이 스카가 쓴 <처음 만나는 구약성서>는 이 설화비평 연구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텍스트의 한 장과 그에 대응하는 역사적 사실을 하나씩 대조하는 방식과 달리, 설화비평 연구는 성서를 일종의 교향곡으로 바라보라 주문합니다. "이야기들은 물음을 통해 독자에게 길을 제시하고 안내할 뿐"이고, 답을 찾는 것은 독자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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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출판문화는 참으로 대단합니다. 아마 거의 모든 출판인들이 이 서술에 동의할 겁니다. 번역 혁명으로 일찍부터 근대적인 출판을 시작하기도 했지만, 전후에도 '출판왕국'이라 부를 만한 '출판의 시대'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와나미쇼텐, 헤이본샤와 더불어 일본 인문·학술 출판의 3대 ‘메카’로 꼽히는 미스즈출판사에서 일하며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한 가토 게이지는 이러한 '출판의 시대'를 일궈낸 전설적인 편집자로 꼽힙니다. 그가 쓴 회고록 <편집자의 시대>는 뛰어난 편집자들이 당대의 주요 사상과 지식을 소개하며 사회 전체의 지적 성장을 이끌던 그 시대로 우릴 데려갑니다. 한국의 출판편집인 이승우(도서출판 길 기획실장)가 그의 뒤를 뒤좇으며 썼습니다. "아직도 '편집자의 시대'임을 믿는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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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내내 아팠습니다, 그리고 20년
시인 진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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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철학자 진은영의 첫 책은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입니다. 자신의 첫 책이 탄생하게 된 계기로 시인은 자신의 20대에 앓았던 질병 속에서 배운 '에포케의 미학'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현상을 제대로 체험하려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관념이나 판단들에 괄호를 치고 에포케(epochē)를 실행"해야 하죠. 그때까지 너무 당연하고 무해해보였는 자신의 생각과 신념에 괄호를 치자, "마음의 고요한 어둠 속에서 시인이 되고 싶다는 열정이 작지만 환하고 순한 반딧불이처럼 날아올랐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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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시인이 첫 책 이후 자신의 책 네 권을 더 꼽았습니다. 왼쪽부터 <우리는 매일매일>(2008), <훔쳐가는 노래>(2012),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공저, 2019),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2022)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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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드마고는 2015년 남원시 산내면에서 여성주의 문화단체 ‘문화기획달’의 활동공간이자, 마을 여성들을 위한 창작·교육 공간으로 출발했다. 이후 조직을 재구성하며 ‘협동조합마고’를 창립하고 3년 전 활동지를 남원시청 옆으로 옮기면서, 살롱드마고를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으로 다시 열게 되었다. ‘살롱’은 과거 유럽에서 문학가와 예술가, 철학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사교활동을 하는 장이었는데, 주로 귀족 여성이 공간의 주인이거나 모임을 주도했다고 한다.
‘마고’는 지리산 여신의 이름으로, 신성한 창조주로서의 힘을 상징한다. 우리는 살롱드마고가 그 이름들의 유래처럼 지역 여성들이 만나고, 공부하고, 각자의 재능과 창조성을 발휘하면서 함께 힘을 나누고 성장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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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쓰는 연애편지
나는 편지를 쓰려고 해
잠깐, 세상의 까만 골목과 골목들에 안약을 좀 넣을게 떨어트리고 깜빡일 때마다 바뀌는
군청빛
보랏빛
희미하고 푸른
오렌지빛
바다와 강, 아스팔트 웅덩이, 논과 밭에 누워 노는 매 순간 다른 햇빛의 보석들
이제 아침이다
내 몸엔 이제 세는 것도 불가한 쓰레기들이 매분 매초 축적되고 있고 매일 아침 오직 한 문장만 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언제나 완성할 마음이다
📖강지이 시인, <창작과 비평>(2023년 봄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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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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