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영국의 작가 닉 혼비가 쓴 책 <피버 피치>에서 읽었던 대목들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스널 에프시(FC)의 팬인 작가는 자신의 축구 사랑(더 정확하게는 아스널 사랑)의 역사를 가감없이 담아냈는데, 개중에는 ‘뭐,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광적인 애착’을 드러내는 대목들이 있거든요. 이를테면 이런 식. 축구 중계를 보다가 여자친구가 기절했는데 꼼짝도 않고 동점골이 터지기를 기도한다거나, 가족들마저 모든 가족 모임 일정을 축구 일정에 맞춘다거나…. 이기고 있는 상황인데도, 바로 전 경기에서 마지막 몇 초를 남기고 동점을 허용한 일 때문에 후반전 라디오 중계를 듣지 않는 등 각종 징크스들은 그저 애교에 가깝습니다. 경기에 너무나 ‘진심’인 나머지, 텔레비전 화면에 잡힌 관중석 속 자신의 얼굴은 언제나 시종일관 굳어 있었단 이야기에는 헛웃음마저 나옵니다.
이토록 광적인 집착 뒤에는 작가의 강박증이 있습니다. 편안하게 즐기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나 아스널(더 정확하게는 아스널 홈구장인 하이버리)에 진지했던 이유에 대해 작가는 말합니다. “내게 꼭 필요했던 것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행이 마구 몰려오는 곳, 가만히 서서 근심에 사로잡힌 채 풀이 죽어 있을 곳이었다.” 이를테면 아스널 사랑은 내면의 우울을 잠시 꺼내어 바람을 쏘이게 만드는 일이었다는 겁니다.
이 책이 자신의 "강박증을 어떻게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시도에서 쓴 작품"이라며, 작가는 결국 자신이 “애정이 무관심과 비애 그리고 아주 지독한 증오로 주기적으로 바뀌는 감정의 사이클을 모두 견뎌내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이 이번 월드컵을 대표하는 말로 떠오른 것을 보면서, 이제 한국 사회도 어떤 지독한 강박증을 지나온 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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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생태계는 생산과 소비, 분해의 사이클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모양새를 보면, 오로지 생산과 소비만이 그득합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분해되지 않은 채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기괴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일본의 농업사학자 후지하라 다쓰시는 <분해의 철학>에서 그동안 생산과 소비라는 관점에만 매몰된 데에서 벗어나 '분해'라는 관점으로 이 세상을 톺아보자고 제안합니다.
온 자연계는 분해를 통해 물질을 순환시키는 항연을 벌이고 있으며, 인간 역시 다른 생명과 다름없이 '먹는 일'로서 여기에 참여하는 '분해자' 가운데 하나란 겁니다. 성장에 매몰된 인간 문명에 대한 성찰에 짙게 깔려 있습니다. 또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 프뢰벨의 나무블럭 장난감, 카렐 차페크의 미래소설 등 다채롭고 흥미로운 소재들로부터 자신의 사유를 전개시키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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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하라 다쓰시는 농업, 음식, 독일현대사 등을 연구해온 학자입니다. 나치의 환경정책 등 그의 연구 이력을 보면, <분해의 철학>이란 책이 어떤 맥락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아래 다쓰시의 저작들 가운데 <전쟁과 농업>, <트랙터의 세계사>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있습니다.
🔗나치 독일의 유기농업(2012)
🔗나치의 주방(2013)
🔗급식의 역사(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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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노벨 평화상은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에게 주어졌습니다. 마리아 레사(59)가 올해 내놓은 회고록 <권력은 현실을 어떻게 조작하는가>는 독재정권, 그리고 독재정권이 활용하는 소셜미디어에 맞서 진실을 알리기 위해 그가 어떤 투쟁을 벌여왔는지 보여주는 책입니다.
애초 소셜미디어를 통한 참여형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믿고 이를 적극적으로 주도했던 레사는 두테르테 대통령 집권 이후 정권이 소셜미디어를 장악해 조직적으로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고 진실을 은폐하는 새로운 현실에 맞부닥치게 됩니다. 오늘날의 저널리즘은 우익 포퓰리즘 정권의 부패와 폭력은 물론 이를 방조하는 소셜미디어의 무책임과 위험성도 고발하고 비판해야 할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최재봉 책기자가 꼽은, "우리가 가는 길을 당신들도 가게 될 수 있다"는 레사의 말이 섬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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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레사는 올해 9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초청으로 방한해 특별 강연을 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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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문학계의 거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위화가 여태껏 펴낸 장편소설은 의외로 다섯 편뿐입니다. 지난해 새로 내놓은 장편소설 <원청>이 나오기까지도 무려 8년이 걸렸는데, 이 소설은 중국에서 150만부 이상 팔리는 등 역시나 큰 인기를 구가했다고 합니다.
소설은 청나라 말기 1900년대 초반을 시대적 배경으로, '물의 도시'인 원청(文城)이란 곳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절망 속에서도 꿋꿋이 삶을 이어나가는 인물들을 그려냅니다. "청말의 관군 북양군과 국민혁명군 간 전쟁, 토비의 창궐에 치 떨리는 공포와 궁핍을 겪고, 그러든 말든 수해로 폭설로 대지는 곤죽이 된 진흙밭이라 해도 지나칠 게 없던 때, 의 민초들 이름을 하나하나 애써 부르는 듯한 이 소설"(임인택 책기자)은, 출판사가 표현한 대로 위화의 첫 전기(傳奇)소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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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리하르트 바그너는 수많은 지식인들도 매혹시켰는데, <마의 산>으로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토마스 만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바그너와 우리 시대>는 만의 장녀가 아버지가 1902년부터 1951년 사이 썼던 글들 가운데 바그너를 주제로 삼은 글들만 모은 책입니다. 바그너 50주기를 맞아 발표한 글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난과 위대함'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에 매혹됐었는데, 뒤이어 니체가 쇼펜하우어 철학에 빠진 채로 바그너에 매혹됐고, 바로 그 패턴이 토마스 만에게서 반복됐습니다. 고명섭 책기자는 이 책이 "바그너 음악에 대한 토마스 만의 경탄 모음이라 불러도 좋을 책"이라 썼습니다. 바그너에 대한 비판도 물론 있지만, 그런 비판마저도 비판의 가면을 쓴 찬양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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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분출한 '미투' 운동은 감춰졌던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등 많은 것들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것들도 많습니다. 저명한 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은 2021년 펴낸 <교만의 요새>에서 오랫동안 외면하고 은폐해 온 성범죄의 밑바닥에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이를 자행하는 권력을 비호해 온 법과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습관적으로 자신이 타인들 위에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교만'이라 합니다. 교만은 성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원인이며, 그에 대한 법적 처벌까지 가로막는 원인이라는 것이죠. 이 때문에 '미투'는 법 밖에서 보복이 가능하다는 감정으로만 남아서는 안되며, "완전한 성평등을 향한 화해는 법적 책임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지은이는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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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 하면 소와 함께 푸른 초원을 거닐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드는 낭만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생활인일 터, 유목 생활이 그리 만만할 리 없습니다. 더군다나 기후위기와 무분별한 개발, 혐오와 차별 등은 유목민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화가이자 그림책 작가가 지은 <세상 모든 유목민 이야기>는 몽골 유목민, 사하라 사막의 투아레그인 등 일곱 유목민의 역사와 생활방식을 친절하게 소개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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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책방지기로서 혹은 자영업자로서 많은 시도를 했다. 책과 전혀 상관없던 일을 해왔기에 처음에는 배우고 경험해보는 것에 집중했지만, 그 후에는 지속할 수 있는 책인감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마을신문에 책을 소개하고, 납품을 위해 도서관을 다니며 조사하고, 도서 유통을 분석하고, 세무신고를 직접 하며 경험한 것을 정리하고, 지원사업 기획서를 만들고, 인터뷰하고, 떨어지고, 선정되고, 정산하면서 이런 과정을 정리한 매뉴얼로 만들었다. 이를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
책방지기로서 조금은 부족하지만, 독서모임 운영자가 되고 싶기도 하다. 아직도 독서모임을 진행할 때 어색함이 있지만,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환경, 과학, 심리학 등)를 선정해서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좋은 책을 소개하는 작은 동네책방을 지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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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가지똥
은이가 웃었다.
준이가 말했다.
왜 웃어?
은이가 말했다.
저 꽃이 먼저 웃었어.
은이가 웃으면 자꾸 웃을 일이 생긴다.
준이가 말했다.
무슨 꽃인데?
은이가 말했다.
몰라.
은이는 모르지만 좋은 아이다.
준이도 좋은 아이가 됐다.
은이 때문이라면 바지에 똥을 싸도
좋은 일이다.
📖김률 동시집 <내 마음을 구경함>(문학동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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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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