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독일의 복잡계 과학·전염병 모델링 전문가 디르크 브로크만이 쓴 책 <자연은 협력한다>(알레)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자연과 사회 현상을 규명하려는 복잡계 과학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테마 가운데 하나는 ‘집단행동’으로, 지은이는 새나 물고기 떼 같은 자연 속 움직임뿐 아니라 대규모 압사 등 비극적인 결과를 낳곤 하는 사회 속 인간의 집단행동도 함께 살핍니다. 독일 물리학자 디르크 헬빙은 시뮬레이션 연구를 통해 보행자들의 밀도가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군중이 무질서한 액체처럼 움직이면서 강력하고 불안정한 압력을 일으킨다는 ‘군중 난류’ 이론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지은이는 헬빙이 만든 모델이 “상황이 임계점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예측 정보를 전달”하기에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보행자 밀도가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손을 쓰면 군중 난류의 발생 자체를 막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서 “대규모 군중을 제어할 때는 도무지 가능하리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희한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비상구로 대피 인원이 몰릴 경우, 비상구 앞에 기둥이나 벽 하나만 세워도 군중이 두 갈래로 나뉘어 대피 속도가 빨라지므로 군중 난류가 형성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최근 정부가 ‘이태원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인공지능과 지능형 폐쇄회로텔레비전, 드론 같은 첨단 디지털 기술들을 활용하겠다고 발표한 내용을 듣고 기가 막혔습니다. 과연 이 참사가 그런 기술들이 없어서 벌어졌던 일인가요?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인 저녁 6시께부터 시민들의 신고로 끊임없이 경보는 울렸건만, 국가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던 것이 핵심 문제 아니던가요. 책임지지 않는 정치권력을 연구하는 복잡계 과학은 어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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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흑인들이 거리에서 사회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던 것이 랩과 힙합의 기원”, “힙합은 본질적으로 사회 비판적인 예술”…이란 말은 사실과 거리가 있지만, 힙합에서도 정치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심도 있게 발전시킨 흐름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20세기 미국의 '급진적 흑인운동'이 있습니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인종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혁명가들이 분투했고, 힙합은 선지자인 그들을 되새기며 노래했습니다. 말컴 엑스, 마커스 가비, 휴이 뉴턴…. <검은 턴테이블 위의 영혼들>은 힙합 음악을 통해 본 미국 급진적 흑인운동의 주요 인물과 사건을 펼쳐 보여주는 책입니다. 국내 저자가 쓴 책이라 더 의미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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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힙합 그룹 퍼블릭 에너미가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항의하며 31년 전 자신들의 히트곡을 새로 리믹스해서 낸 'Fight the Power'를 들어보시죠.
🐟검은 턴테이블 위의 영혼들>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도 풍부하게 소개합니다. 최원형 책기자는 랭스턴 휴스와 로레인 한스베리, 두 인물에 특히 흥미를 느꼈는데요, 한스베리의 대표작 <태양속의 건포도>는 국내에도 출간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에 영향을 준 '할렘의 셰익스피어' 휴스의 경우, 시집은 없지만 단편선이 출간되어 있네요.
🐟'흑인 민족주의' 영향을 받은 힙합 음악가들은 반유대주의나 '모범 소수자'인 한국인에 대한 폭력적인 적대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주류 가게 한인 주인의 총격으로 숨진 10대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의 죽음에 분노한 투팍은 한국인에 대한 흑인들의 약탈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과격한 가사들을 쓰기도 했죠. 그런데 그의 사후 발표된 곡 '써그즈 맨션'(Thugz Mansion)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Little LaTasha sure grown/ Tell the lady in the liquor store that she's forgiven, so come home"(어린 라타샤가 다 컸어/ 그 주류 가게 아줌마한테 용서 받았다고, 그러니 집으로 가라고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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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단편 소설 '도둑맞은 가난'(1975)에는 부자들이 이제 가난까지 탐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동을 준거로 삼아 자신이 노동할 수 없는 빈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그 자격을 획득하라고 하는 빈곤-복지 시스템은 빈곤에 낡은 경계석을 세우려고 하지만, 오늘날 "경계 없는 불평등"의 시대에 실제 빈곤에도 아무런 경계석이 없습니다.
인류학자 조문영(연세대 교수)은 자신의 20여년 빈곤 연구를 집성한 책 <빈곤 과정>에서 이처럼 빈곤을 규정하고 관리하고 있는 통치와 산업을 문제 삼습니다. 그리고 빈곤을 '과정'으로 파악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취약한 존재가 세계 속에서 진정한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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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전체를 읽지 않았어도,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모금이 입천장에 닿음으로 지난 기억들이 펼쳐지는 아주 길고 긴 찰나"(임인택 책기자)에 대해선 알고 계실 겁니다. 바로 19~20세기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입니다.
프루스트 전공자인 김희영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지난 10여년간 민음사에서 펴내온 이 작품의 한국어판 번역본을 최근 완간해냈습니다. 이로써 국내 독자들은 전문가의 손길로 번역된 '스완네 집 쪽으로'(1913),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1919), '게르망트 쪽'(1920), '소돔과 고모라'(1922), '갇힌 여인'(1923), '사라진 알베르틴'(1925), '되찾은 시간'(1927) 일곱 편(전체 13권) 전부를 우리말로 만나볼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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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85)는 오늘날 "가장 고전적인 언어로 가장 급진적인 사유를 감행하는 철학자"(고명섭 책기자)라 할 만합니다. 바디우는 자신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존재와 사건>(1988)을 펴낸 뒤 이를 해설하고 보충하는 성격의 <철학을 위한 선언>(1989)을 펴낸 바 있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대표작인 <세계의 논리>(206)을 펴낸 뒤에는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선언>(2009)을 펴냈습니다.
바디우 저작들의 이 관계들을 잘 살핀다면, 여론과 대립하는 '진리', 기존의 지배적 질서를 뚫고 나와 새로운 보편성을 창출하는 '사건', '주체' 등 바디우의 사상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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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에 관한 글도 쓰고 연극도 하는 김원영 변호사, 독서 교실에서 어린이와 함께 책을 읽는 김소영 작가,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코다'이자 영화를 만드는 이길보라 감독, 동물 복지를 공부하는 최태규 수의사. EBS 라디오 방송은 일상의 낱말 하나씩 공통으로 제시하고, 이들 네 명은 각자의 시각으로 그 낱말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일상의 낱말들>은 16개의 낱말에 대해 그들이 쓴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커피, 양말, 아침, 책, 텔레비전, 게으름, 기다림, 서늘함, 안녕…. "이들의 마음에 ‘투척’된 낱말들은 어떻게 이들이 살아온 삶과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저마다 고유한 냄새와 빛깔을 만들어 냈을까요?"(최윤아 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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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라디오에서 네 명의 작가는 본인이 쓴 글들을 직접 읽기도 했습니다. 수어통역과 함께, 이들의 목소리도 직접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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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그림책이 아직 친숙하지 않던 시절인 1989년, 출판사에 다니며 유아잡지를 만들던 엄혜숙 번역가는 자료실에서 외국 그림책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곧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지금 그는 그림책을 만들고 펴낼 뿐 아니라 번역과 창작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그림책에 매혹된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학에 입학한 1980년, 어린이책 출판사에 입사한 1987년…. 세상은 온통 회색빛으로 우중충했어요. 그날 출판사 자료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처음 만난 그림책 세상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죠. 그게 위로가 되었던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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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서 삶의 축을 바로 세우는 사람
생각을담는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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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없는 날의 책방은 조용하다. 가까운 베이커리 카페와 체험 카페들이 주차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래도 이곳까지 찾아와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이는, 창가에 혼자 앉아 책을 읽다 가는 이는 어제와는 다른 내일을 살아간다. 매주 독서모임을 하는 이들과 글쓰기를 하는 이들은 마음의 풍경을 넓히고 깊이를 더한다. 물론 겉모습이 달라질 리도 만무하고, 유명 관광지처럼 다녀왔다고 자랑할 것도 없다. 그러나 스스로는 안다. 살아갈수록 흔들리는 삶의 축을 바로 세우고 있는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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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의 거리
나는 꽃을 주었지만 그대가 받는 것은 가시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온기를 주었지만 그대는 얼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귀하게 여기는 소중한 것을 주었더라도 그대에게는 그것이 쓰레기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거리는 변질을 부릅니다
여기에서 혹은 저기에서라는 말에는 독재가 있습니다 에서의 주인을 버립니다 그대와 나 사이에 있는 거리를 싹둑 잘라서 담습니다 에서의 거리마저 지우고 그대 앞에 나를 놓습니다
📖이대흠 시집 <코끼리가 쏟아진>(창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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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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