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젠틀맨 또는 ‘영국 신사’라는 말은 점잖고 품위 있는 남성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용어와 그 의미망은 어떤 발생 배경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의 책 <매너의 역사>는 영국을 중심으로 서양 예법의 발생과 변화를 서술합니다.
서양 예법의 출발은 역시 유럽 문명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서양 예법의 이론적 출발을 이룬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의 <성격의 유형들>은 예의 바른 행동의 사례를 설명한 책으로 서양 예법서의 진정한 시원에 해당한다네요.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를 거쳐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와 존 로크, 대니얼 디포 등 서양 예법의 역사를 수놓은 인물들과 그들의 조언들이 이어집니다.
서양 예법의 역사에 관한 기존 연구로는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1939)이 꼽힙니다. 그러나 이 책은 르네상스기에서 17세기까지로 범위가 한정된데다 주로 프랑스의 궁정 예법에 치중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매너의 대명사와도 같은 영국식 예절의 수립과 확산을 다루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지은이는 지적합니다. 부를 기반으로 출현한 신흥 중간계급이 영국식 매너의 표준을 확립해 가는가 하면 기존 귀족층이 그들을 상대로 구별 짓기에 나서면서 형성된 복잡한 규범들이 어떻게 부딪치며 새롭고 조화로운 예법으로 수렴되어 가는지를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오면 매너의 강제성이나 계급적 구별 짓기로서 쓰임은 희미해졌지만 오히려 사회적 자본으로서 매너의 역할과 의미는 더 강해졌다는 게 책의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