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엄마의 말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을 우리에게 남기고 간 작가 박완서(1931~2011)의 단 하나 역사소설이 있습니다. 이번주 개정판으로 나온 <미망>입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는 뜻의 한자어죠. 구한말부터 일제 거쳐 분단 때까지를 배경으로 송상 전처만의 가족사 통해 되살리고자 한 건, 제 고향 개성 쪽의 풍토입니다. 마을을 고루 적시던 시내(‘나깟줄’)를 좋아한 작가의 회고(산문집 <두부>)로 보면, 상인들 바지런은 청결하고 겉치레는 마다하는 습속과도 닿습니다. 앉은 자리 풀도 안 자라는 족속이라 누군간 했겠지만요.
작가가 맨 나중 꼽은 개성 기질이 “저항 정신”입니다. 5전 들고 비누 심부름 간 아이가 신장개업한 일본인에게서 덤까지 두 개를 가져오자 그 어미가 돌려보내 조선인 가게서 하나만 사오게 했다는 일화, 그러니 일본 상인들이 개성엔 발을 못 붙였다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 따위가 근거죠. 개성서 맞은 1945년 해방일, 목숨 걸고 숨겨왔을 비단 원단이 변색된 채, 사괘에 태극까지 바느질된 채 휘날리는 집집의 태극기를 보며 14살 박완서는 “개성이 내 고향이라는 게 자랑스”러워지고, 한편 일장기에 먹을 써 태극기를 급조한 자기네가 부끄럽다 했으니, 작가에게 <미망>은 “내 귀향의 방법이자 고향에 바치는 헌사”였습니다.
<미망> 연재 중인 1988년 작가는 남편과 아들을 잃습니다.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 하다 1990년 <미망>은 기어코 완결되었으니, ‘고향’은 그 고통마저 달래고 박완서를 불러낸 것이라 하겠습니다.
최근 여기저기서 근거입네 진실입네 학자연하며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뒤집고 조롱합니다. 누군가에겐 오염된 ‘고향’의 기억이 되고 말 터, 미망의 미래 그게 두려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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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자유와 민주, 평등을 향한 열망이 뜨겁게 불타오른 연대였습니다. 변혁의 주체로서 민중에 주목하고 그들에 관한 담론이 활발하게 쏟아져 나오기도 했죠. ‘민중’이라는 말은 진보와 좌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망이 늘 그러했던 것은 아닙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 통치 당국이 ‘경찰의 민중화’ ‘민중 보건’ 같은 말을 썼고 1930년대 전시체제에서는 ‘총후 민중’ ‘반도 민중’ 같은 표현으로 식민지 백성의 전시 동원을 합리화했습니다. 해방 뒤에는 좌익이 ‘인민’이라는 말을 즐겨 쓰면서 ‘민중’은 우익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1960년대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민중의 재발견이 이루어지면서 이 말은 다시 진보적 맥락을 지니게 됐고 그것이 1980년대의 민중주의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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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민중의 실제 삶은 어떠했을까요. 사회학자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가 쓴 <민중은 이야기한다>는 1980년대에 나온 <뿌리깊은나무 민중자서전>(전20권) 등 20세기 민중 구술 자서전을 일차 자료로 삼아 민중의 삶을 재구성합니다. 그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민중을 특징짓는 양대 요소는 가난과 노동입니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고 교육 혜택도 받지 못한 민중은 몸을 쓰는 고된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했고 가장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부업 전선에 뛰어들었음에도 상시적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닥치는 대로 임시적인 일들을 하거나 우연히 접하게 된 작은 기술을 ‘천직’으로 삼아 평생 매달리기도 했죠.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성차별이라는 또 다른 억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고통과 소외에서 벗어나지 못한 민중이 정치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이고 체제 순응적이라는 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입니다. 지은이는 그것이 우리 사회를 짓누른 냉전 이데올로기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식인들이 민중에 투사한 기대와 이상이 현실과 어긋난 양상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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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수의 전작 <근대의 가족, 근대의 결혼>입니다. 사회학자인 저자의 접근법이 잘 드러나 함께 볼 만합니다. 당시 신문, 잡지 등의 주요 기사를 샅샅이 인용하며 저자는 근대의 정신과 문물이 급속히 밀려들던 식민지 조선에서 결혼과 가족 제도가 어떤 파란을 겪고 변천했는지 살핍니다.
🐟민중에 대한 탐구야말로 문학의 소명이기도 했습니다. <민중을 기록하라>는 전태일 분신 이후를 취재한 소설가 박태순의 글 ‘소신(燒身)의 경고’에서부터 2009년 용산참사를 다룬 시인 윤예영의 글 ‘용산으로 이어진 길, 가깝고도 먼’까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다룬 작가들의 르포 20편을 엮은 책입니다.
🐟<20세기 한국민중의 구술자서전>은 포항제철 노동자, 인천항 목수, 남대문 노점상, 화교 등 일흔을 넘긴 20명 ‘필부’들이 직접 ‘구술’한 삶으로 구성됐습니다. 토씨, 몸짓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투리까지 그대로 옮겼습니다. 기왕의 역사(서)가 놓치거나 소흘히 다룬 ‘생동하는 시공간’을 재현하는, ‘민중의 역사’를 도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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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018년 10월 한겨레가 주최한 아시아미래포럼의 개막식 기조 강연자였습니다. 피케티는 먼저 묻더군요. “왜 민주주의는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했는가”, “불평등이 더 심화하는데도 왜 정치적 대응은 미온적인가”, “왜 불평등 심화가 저소득 집단의 강력한 재분배 요구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가”…. 불평등을 테제로 한 세계적 지성답게, 글로벌 누진세 강화에 이어 ‘정치적 대응’을 피케티는 해법으로 제시해왔습니다. 그런 피케티가 이번 신간에선 이렇게 말합니다. 18세기 말 이후로 규모가 제한적이긴 해도 “평등을 향한 장기적인 흐름”만큼은 계속되고 있다고요, “인류의 진보는 기정사실”이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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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책 제목이 ‘불평등의 역사’가 아닌 <평등의 짧은 역사>인 까닭입니다. 다만 책 제목 ‘짧은’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보는 했지만 그 역사는 매우 짧고, 1980년대부터 세계 곳곳에서 ‘소유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피케티의 분석과 그에 따른 문제의식은 말그대로 ‘짧은’이 ‘짧았던’으로 전락할 가능성까지 경고하는 듯합니다. ‘공익을 위해서만 불평등을 허용’하는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가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도구”라는 인식엔 변함이 없지만, 동시에 ‘소유의 재분배’만으로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불평등이 사회·역사·정치적 산물인 탓이고, 경제수준이 같더라도 나라별로 불평등에 대응하는 제도는 천지차이라 국가간 불평등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다분히 “출신에 상관없이 권리와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원칙론을 넘어, 각국의 현실 아래 실효를 담보, 검증할 수 있는 지표와 절차가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그 전제가 바로 ‘깨어있는 시민의 적극적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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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출간 이후 3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세계 250만부 이상이 팔린 <21세기 자본>으로부터 6년 뒤 피케티가 더 강력하게 불평등 체제를 분석, 비판한 책입니다. 분량도 더 늘었습니다. 역사학, 정치학, 이데올로기론을 포괄한 독특한 경제서적, 그래서 제목도 <자본과 이데올로기>입니다.
🐟2018년 10월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주최 한겨레)에서 토마 피케티가 진행한 기조강연 영상입니다. 직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말합니다. “ILO라면 모를까, 나머지 국제기구는 죄다 보수적이다. 입으로는 불평등에 관심 있다고 떠드는데, 진짜 관심이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실질적인 정책 변화가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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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은 일단 ‘갈 데까지 간다’고 소개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풍자와 익살, 언어유희, 자연법칙을 넘어선 격물로 능청스럽고 수다스럽지요. 그런 품새가 과도해 되레 “촌스러워”질 대목도 있겠는데요, 사실 작가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닌 듯합니다. 작가가 김홍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 등단 이래 장편 ‘스모킹 오레오’, ‘엉엉’, ‘프라이스 킹!!!’ 등에서 진전해 온 식이고, 이번 ‘작가의 말’마따나 김홍이 뭔가 골라 “쓰는 게 아니”고 김홍을 “누군가가 찾아오는 것”이라니 말입니다. 그의 새 소설집 <여기에서 울지 마세요>에 수록된 ‘바과, 사나나’ 속 구절대로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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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유수는 삶이 끝나는 방식에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NG(엔지) 모음으로 끝나는 삶과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삶. 전자가 훨씬 유쾌한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다소 촌스러워질 위험이 없지 않다. 본인들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 여기 “삶” 대신 “소설이 끝나는 방식”으로 바꿔도 좋겠단 얘기지요. 2019~23년 단편 10편이 엮인 김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의 특징입니다. 일부는 전작들의 번외처럼 결부되곤 하니, 응당 유머와 엉뚱함을 빼곤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달리기 고통으로 쾌감에 이름)가 있다면 글 쓰는 이의 라이터스 하이(Writer’s high)도 있을 텐데요, 김홍의 ‘하이’ 상태는 정말이지…. 그럼에도 이 작품을 유머, 기발 둘로만 등대 삼기엔 글 바닥에 함정이, 의뭉이 많습니다. 작중 인물들은 일단 ‘쓸쓸’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해고당하고 사기당하고 파산하고, 급기야 신체가 떨어져 나갑니다. 포악한 투기 자본 세계에 감각이 포위된 형상이지요. 김홍의 문법은 이 맥락에서 인물과 사태에 대한 연민과 동정, 분노, 패배주의를 차단합니다. 되레 주체적으로 이 세계에서 ‘사라짐’을 시현하는 이들의 반전으로 ‘갈 데까지 갑니다’. 함께 가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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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는 ‘유대인의 지혜서’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탈무드는 유대교의 법전에 관한 주석서입니다. 탈무드의 뿌리가 되는 그 법전이 <미쉬나>(미슈나)인데, 이 법전 전체를 번역하고 주해한 책 <미쉬나>(전 6권)가 우리말로 나왔습니다. <미쉬나> 전체 번역·주해는 동아시아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입니다. 유대학과 히브리어학을 전공한 연구자 9명이 4년을 꼬박 들여 함께 작업한 결과입니다. <미쉬나> 번역·주해 연구책임자인 최창모 전 건국대 중동연구소 소장은 번역 작업을 마치고 출판을 준비하던 중 갑작스런 병환으로 세상을 뜨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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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민족은 서양 중세 이래 ‘책의 민족’이라고 불렸습니다. 이때 ‘책’이 가리키는 것이 ‘구약성서’와 ‘미쉬나’와 ‘탈무드’입니다. 구약성서의 앞부분 ‘모세오경’의 계율을 법전화한 것이 미쉬나이고, 미쉬나를 해석하고 확장한 것이 탈무드입니다. 미쉬나의 텍스트가 성립한 것은 로마제국의 강압 정책으로 고대 이스라엘이 해체되던 기원후 1~3세기입니다. 이 전집에는 미쉬나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지식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최중화 부산장신대 교수의 ‘미쉬나 길라잡이’도 함께 묶여 독자를 미쉬나의 세계로 안전하게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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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키메리즘’이라는 용어를 아시나요? 그리스 신화에서 사자의 머리, 염소의 몸, 뱀의 꼬리를 한 ‘키메라(chimera)’를 차용해 만든 과학 용어인데요. 내 몸 안에 다른 사람에게서 온 세포를 갖고 있는 현상을 ‘마이크로 키메리즘’이라고 합니다.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나’라는 고유의 디엔에이를 갖고 있는 ‘개별적 존재’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현대 과학이 밝혀낸 것에 따르면, 나라는 존재는 ‘자기’와 ‘비자기’가 뒤섞인 존재입니다. 바로 마이크로 키메리즘때문입니다. 그렇다면 DNA 확인 검증은 과연 만능일까요? 저자는 말합니다. “디엔에이 지문 하나로 정체성을 밝힐 수 있다는 견해를 학설에 올리기엔 우리 생물학은 너무 부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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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있는 외래 세포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산모에서 태아로 또는 태아에서 산모로 이동하는 세포들입니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는 모두 마이크로 키메라”라고 말합니다. 또 먼 할머니 세포가 엄마의 장기에 저장됐다가 태반을 통해 아래 세대에게 건너가기도 하고, 장기 기증자의 세포나 성적 파트너의 세포들도 내 몸 안에 들어와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해요. 너무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과학 저널리스트 리즈 바르네우가 쓴 <마이크로 키메리즘>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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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 꽉 막힌 고속도로 상황을 피해 누구나 한 번쯤은 밤에 여행을 떠나는 경험을 합니다. <50번 고속도로 환상여행>에 등장하는 가족도 그렇습니다. 캄캄한 어둠을 뚫고 엄마와 아빠, 딸이 차를 타고 강릉 바다로 향합니다. 어른들 표정엔 설렘이 묻어 있고, 뒷좌석에 앉은 아이는 하품을 해댑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드디어 50번 고속도로에 진입합니다. 환한 대낮엔 보이는 것이 많아 주의집중력이 분산되지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는 보이는 것이 많지 않으니 감각이 더 살아나기 마련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빛 하나 없는 산속을 우리 차만 달릴 때 느끼는 그 이상야릇한 기분을 작가는 그림으로 잘 담아냈습니다. 50번 고속도로에서 이 가족들은 어떤 경험을 할까요? 여행 전이나 여행 중 아이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 <50번 고속도로 환상여행>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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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샀던 장소와 기분, 그날의 공기까지 떠올라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순간이요. 저는 그것이 좋아 서점에서 책을 사던 사람이었습니다. 책을 많이 알지도 못하고 많이 읽지도 않지만, 책과의 추억 쌓기를 좋아하던 사람이요. (…) 그렇게 뒤늦게 오랜 시간을 거쳐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된 터라 책방을 열게 되었을 때 이 작은 책방을 통해 나와 같은 사람이 생겨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재미의 첫걸음에 함께 기억되는 공간이길 바랐습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안녕, 책’이라는 이름을 지었지요. 가볍고 다정한 책방이길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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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동 고모
그녀는 고통 속에서 살았다 열여섯부터 예순아홉까지 (여성) 노동자 아니면 (여성) 해고 노동자로 살아온 그녀에게 고통은 공기와도 같았다 고통과 함께 밥 먹고 고통과 함께 잠들고 고통과 함께 출근했다 한 명의 남편과 네 명의 자식들마저 그녀를 떠났을 때도 고통만은 그녀의 곁을 지켰다 사람들은 고통이 그녀를 병들게 했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고통을 파먹으며 여태껏 살아남았다고 했다 한번 물어봐요 일생 억척스럽게 살아남느라 고통스러웠는데 고통이라면 지긋지긋하지 않아요? 열여섯부터 예순아홉까지 여성 노동자 아니면 여성 해고 노동자로 살아온 그녀는 말했다 일생 함께 울어 준 것도 웃어 준 것도 고통인데 이제는 피붙이 같다고 했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여성)은 두고 가도 고통만은 함께 가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안현미의 시집 <미래의 하양>(걷는사람 시인선 101)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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