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하면 소인국과 대인국이 떠오릅니다. 걸리버는 소인국과 대인국 말고도 다른 두 나라를 더 여행했는데, 그건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걸리버 여행기>를 '걸리버 유람기'(1909)란 제목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했던 육당 최남선도 소인국('알사람 나라 구경')과 대인국('왕사람 나라구경')에 해당하는 부분만 우리말로 옮겼었죠. 네 개 나라가 모두 등장하는 완역본은 1990년대에나 국내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걸리버가 여행한 네 개 나라는 각각 릴리퍼트, 브롭딩낵, 라퓨타, 후이늠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하늘에 떠 있는 나라인 '라퓨타'(Laputa)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라퓨타>로도 좀 알려져 있죠. 발음하기도 어려운 '후이늠'(Houyhnhnm)은 아마도 네 나라 가운데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가장 떨어지는 나라가 아닐까 합니다. 이곳은 말(馬)들이 사는 나라인데, 스스로를 '후이늠'이라 부르는 이 말들은 "이성에 그늘진 부분이 없"습니다. 거짓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는, 우정과 박애로 서로를 대하는 품위 있는 종족입니다. 반면 같은 섬에 있는 '야후'는 이와 정반대로 사악하고 추악한 종족인데, 인간과 똑 닮았습니다.
이쯤 되면 조너선 스위프트가 '후이늠'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을지, 읽어보지 않으셨어도 대강 짐작이 가실 겁니다. 후이늠을 존경해 후이늠처럼 되고 싶었던 걸리버는 자신의 세상, 곧 야후들의 세상으로 돌아온 뒤 미친 사람처럼 살게 됩니다. 너무 암울한 결말 아니냐고요? 소설가 김연수가 최남선을 뒤따라 '다시 쓰기'를 시도한 <걸리버 유람기>( 👉기사보기)에서는 조금 색다른 결말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무려 <홍길동전>의 홍길동이 등장한답니다! 게다가 이 책을 따라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 오시면 더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도서전은 오는 26일부터 5일 동안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립니다.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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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복지를 위한다면서 돼지를 애지중지 키워서 잡아먹는 건 괜찮고?”
<돼지 복지>의 지은이 윤진현 전남대 교수가 종종 듣는다는 말입니다. 농장 사육 돼지의 복지 문제가 전공이라는 소개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죠. <돼지 복지>는 핀란드에서 동물복지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동물복지에 관한 사람들의 무지와 오해를 해소하고자 쓴 책입니다. 동물복지 개념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났는지, 핀란드와 한국에서 윤 교수 자신이 목격하고 경험한 돼지 복지의 현실과 개선 시도는 어땠는지, 한국에서 농장 사육 돼지의 복지를 향상시키자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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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교수가 처음 돼지 농장을 방문한 것은 동물자원학부 학생이었던 2004년 5월이었답니다. 당시 목격한 돈사의 열악한 환경은 학생 윤진현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좁고 숨막히는 환경에서 본능을 억누른 채 고통받는 돼지들의 신음과 절망을 묘사한 대목은 독자 역시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이런 곳에서 몇 달씩 갇혀 사는 돼지들은 어떤 마음으로 견뎌내고 있을까?’ 당시 품었던 이 질문이 그로 하여금 머나먼 핀란드로 유학을 떠나고 <돼지 복지>와 같은 책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몸을 뒤집기도 힘들 만큼 좁은 우리에서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이는 기계로 취급되는 어미 돼지, 마취도 없이 행해지는 새끼 돼지의 거세와 꼬리 자르기, 항생제 남용으로 슈퍼 박테리아의 온상이 되는 돼지들… 이런 어두운 현실을 뚫고 최소한의 돼지 복지를 위해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비록 가격이 비싸더라도 동물복지 인증 돼지고기를 소비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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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동물복지 활동가이자 작가인 루스 해리슨(1920~2000)은 <동물 기계>(1964)라는 책을 통해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동물복지 논의의 토대를 다진 바 있습니다. <돼지 복지>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되는 책입니다.
🐟지난 2020년 돼지 농장에서 직접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경험했던 이정규 당시 <한겨레21> 기자의 '현장' 기사를 함께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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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악의 폭력으로 꼽히는 제2차 세계대전은 흔히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일본의 군부가 일으킨 것처럼 이야기됩니다. 그러나 2차대전, 독일과 소련 근현대사 등을 깊이 연구한 역사학자 리처드 오버리는 최근작 <피와 폐허>에서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히틀러, 무솔리니 등은 원인이 아니라 위기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2차대전이 일어난 진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요? 지은이는 1차대전 이후 독일, 일본, 이탈리아가 기존 제국주의 열강인 영국, 프랑스 등과 경쟁하며 '영토를 바탕으로 한 제국'을 새롭게 추구한 것이 '장기 2차대전'의 실체라고 분석합니다. 두터운 두 권의 책으로, 인류 최악의 폭력을 냉정하고 치밀하게 분석해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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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세 추축국이 '민족'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국민적 결속을 이루고, 이를 총동원하여 제국으로 나아가고자 발버둥친 궤적을 쫓습니다. 한마디로 이들은 나라 밖에서 영토와 자원을 확보함으로써 자기 민족의 생존을 유지한다는 목표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었고, 강력한 기성 제국주의 열강들과 경쟁하기 위해 이들은 식민지와 본국 사이에 일관된 통제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며 차별과 폭력을 한층 확대했습니다. 그렇다고 연합국 쪽에서 벌인 전쟁이 '선한 전쟁'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전후방, 군과 민간의 경계 등이 따로 없이 국가 전체를 동원하는 '총동원전' 뒤에는 제국의 시대를 대체한 '국가'의 시대, 그리고 거대한 '피와 폐허'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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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나치 독일 등을 깊게 연구한 리처드 오버리는 히틀러와 스탈린, 그들이 지배한 독일과 소련 체제를 비교 분석한 책 <독재자들: 히틀러 대 스탈린, 권력작동의 비밀> 등을 펴낸 바 있습니다. 다만 2차대전을 통사로 써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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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훈(76)의 신작 에세이 제목은 <허송세월>입니다. 5년 만의 산문집, 소설 <하얼빈> 이후 2년 만의 책인데, 전후 작가는 아팠고 좀더 늙었습니다. 팩스로 서면 인터뷰를 했는데, 그가 보내온 원고지 석 장에 담긴 여섯 질문에 대한 여섯 가지 답변엔 더덜이 없습니다. 제목인 ‘허송세월’의 함의도 그러합니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2000년 에세이 <자전거 여행>과 견주자니, 그땐 가서야 보이고 쓰이던 것들이 이젠 보이므로 가고 쓰게 되는 지경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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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감만 추리건대, 새와 생사, 일산 호수공원, 밥, 부고, 장례, 병고, 입원 등 직접 경험에서의 고백부터 그가 여전히 동경하는 청춘과 여실히 포용하는 말로(末路), 똥바가지 같은 근현대 물건들, 지금껏 쓴 소설의 여적, 글쓰기, 언어관, 나아가 당대 저출산과 산재 사망, 사회적 참사, 이념 과잉 따위 현안에 이르기까지 김훈은 ‘김훈대로’ 씁니다. 대개 안다고 허세를 떨 때 김훈은 모른다고 ‘허세’를 부리지요. ‘모른다’와 ‘안다’의 경계를 근위하는 그 문장들은 여태 삼엄해 보입니다. 그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 심장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졌고 24시간 만에 깨어났다는군요. 죽음 없이 그의 문학을 말할 수 없었는데, 이제 죽음 없이 김훈을 말할 수 없겠습니다. 그렇다고 이 산문집의 명도를 어둡게 예상할 필요 없습니다. 죽음은 한 주제일 뿐, 책 어느 한 대목도 염세나 비관과 거리가 멉니다. ‘허송세월’이 자조가 아니듯 말입니다. 되레 웃고 말 대목, 그의 호기심, 청춘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합니다. 다음 책을 기대해도 될까요? 답변대로라면, 김훈은 계속 연필 깎고, “金薰(김훈)” 새겨진 원고지에 글 씁니다. “…세상의 목줄들이 헐거워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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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의 학술 정본인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 메가)의 첫 한국어 번역본(전집 제2부 제3권 제1분책과 제2분책)이 출간( 👉기사보기)된 이후 3년 만에 두 번째 번역본(전집 제1부 제10권)이 나왔습니다. 메가판은 그동안 국내 번역본의 저본으로 통용되던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집’(MEW, 메프)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핵심은 엄밀한 문헌학적 고증을 거쳐 텍스트 자체를 애초의 모습 그대로 복원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술을 빠짐없이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는 데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 전집 제1부 제10권>에서도 문헌학적 엄밀성과 저술 복원의 정밀성에 들인 공력이 그대로 확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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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제1부 제10권>은 1849년 7월부터 1851년 6월까지 2년 동안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저술 가운데, 사적인 편지를 뺀 모든 글을 연대순으로 묶었습니다. 마르크스가 쓴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 계급투쟁’, 엥겔스가 쓴 ‘독일 제국헌법투쟁’과 ‘독일 농민전쟁’ 같은 중요한 문헌이 들어 있습니다. 문헌들이 작성된 시기는 마르크스가 유럽의 반혁명 물결에 떠밀려 런던으로 망명한 때와 겹칩니다. 1849년 8월 런던에 도착한 마르크스에게는 일생에 가장 궁핍한 시기가 닥쳤고 경찰의 감시와 압박이 일상을 짓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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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고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라 웃으면 안 되는데 책을 읽다 포복절도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2018년 <고기로 태어나서>( 👉기사보기)로 한국출판문화상(교양부문)을 받았던 한승태 작가가 최근 펴낸 < 어떤 동사의 멸종>이라는 책 얘기입니다. 르포 작가, 체험 작가로 불리는 한승태 작가가 이번엔 미래 사회에 사라질 것으로 전망되는 직업들만 골라 그 직업세계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저자는 대체 가능성이 90퍼센트 이상인 직업 가운데 가능한 한 평범하고 역사가 오래된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콜센터 상담사, 택배 물류센터 상하차 직원, 뷔페식당 요리사, 빌딩 청소부가 그가 택한 직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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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태 작가의 책을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작가의 글은 ‘블랙 유머’ 코드가 가득합니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전하지만, 성실하고 촘촘하게 기록한 글들을 읽고 나면 부조리한 사회 구조도 보이고 모순덩어리인 인간과 우리네 삶도 보입니다. 타인의 삶에 무관심하고 심드렁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승태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사는 삶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수고 속에서 지탱되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독자에게 어떤 감각을 살아나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면, 한승태 작가의 이번 책은 그런 책에 해당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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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는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안네 프랑크와 가족들이 나치를 피해 은신했던 '안네 프랑크 하우스'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프리센그라흐트 운하 옆에 있습니다. 1635년에 지어진 이 오래된 집은 오늘날 평화를 이야기하는 박물관이 되어 있죠. <운하 옆 오래된 집>은 '안네 프랑크 하우스'의 400년 역사를 살펴보며 '기억한다'는 것이 가진 힘을 되새기는 그림책입니다. 전쟁과 폭력은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기억함으로써 조금씩 평화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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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최남단, '지구시민'을 위한 책방
어나더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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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책을 매개로 하는 책방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입문수업’을 시작으로, 글쓰기 프로그램 ‘한문장 한마음’, 제주신화기행 ‘꼭꼭 숨어라 제주신(神)을 찾아라’, 지역의 환경단체와 함께한 북토크 ‘제주바다, 우리가 사는 곳’, 100세 넘은 해녀삼춘과 그림책을 만들었던 ‘어르신 그림책방’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이외에도 난민, 젠더, 환경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기사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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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이의 하굣길
어디까지 왔어?
저요? 지금 나뭇잎까지 왔어요
나뭇잎은 너무 많잖아
아니요, 그런 나뭇잎 말고 제가 있는 나뭇잎이요
이제 어디까지 왔어?
벽돌까지 왔어요
벽돌은 너무 많잖아
아니요, 그런 벽돌 말고 중학생 닮은 벽돌이요
벽돌 어디가 중학생을 닮았을까?
이제 꽃 있는 데까지 왔어요
꽃이 피었구나?
네, 꽃이 피었어요
너무 많은 세상에서
단지 집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믿음으로
아이가 엘리베이터 앞이라고 할 때까지 묻는다
어디까지 왔어?
묻는 동안 아이는 떠나지 않는다
📖이소연 시집 <콜리플라워>(창비시선 503)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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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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