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문명이 불러온 ‘읽기’의 사각지대를 걱정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인 어린 세대가 보여주는 낮은 문해력이 대표적인 사각지대로 꼽힙니다. 반대편에는 정돈된 활자와 잘 짜여진 책으로 지어진, 높은 문해력의 세계가 있습니다. ‘읽기’는 흔히 도파민 중독의 세계를 벗어나 이 세계에 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되곤 합니다. “디지털 매체가 망쳐버린 뇌를 책 읽기로 치유할 수 있다.” 어쩐지 약 처방 같습니다.
난독증, 과독증, 실독증 등 신경다양인의 여러 ‘읽기’ 경험에 주목한 책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런 단순한 서사가 갖고 있는 앙상함을 돌아보게 해줍니다. 전형적인 방식의 읽기 경험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수치심을 느껴야 했던 난독증 독자들은 책 읽기를 악몽으로 기억합니다. 반대로 과독증 독자들은 글을 통째로 외워버릴 정도로 읽는 데 집착하지만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실독증, 기억상실, 치매 등으로 그동안 읽어왔던 방법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책은 그럼에도 이들이 나름대로 ‘읽기’를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글을 뒤죽박죽으로 읽거나, 구두점에만 집착하거나, 글자를 코로 문질러야 하거나… 이 모든 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그들만의 ‘읽기’ 방식이라는 겁니다.
혹시라도 ‘에이, 그런 건 읽는 게 아니지’라는 생각을 했다면, “그럼 당신에게 ‘읽기’란 과연 무엇이냐”는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과연 님은 이 질문에 만족할 만한 답을 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답은 다른 사람들, 특히 신경다양인들의 답과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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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이 했던 ‘치의자득’(의문을 갖고 스스로 깨우치다)이라는 말을 마음에 품고 살아온 한 연구자가 있습니다. 미술사학자 최열입니다. 그는 ‘조선은 실경화가 없는 나라’라는 인식에 의문을 갖고 실경화를 볼 수 있다면 어디든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지난 30년을 보내고 이제 그는 이렇게 말할 자신이 있다고 합니다. “조선은 실경화의 나라, 실경화의 천국”이라고요. <옛 그림으로 본 조선>은 그 30년을 총망라한 책입니다. <옛 그림으로 본 서울>(2020), <옛 그림으로 본 제주>(2021)를 잇는 '옛 그림으로 본' 연작 시리즈의 완결편으로, 모두 세 권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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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가볼 수 없는 금강산과 관동팔경 등 명승지가 많은 강원도의 옛 그림들을 각각 한 권의 책에 담았고, 나머지 지역인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지역의 옛 그림들을 모아 별도 한 권으로 구성했습니다. 이번 책 출간을 계기로 최열 선생을 인터뷰했습니다. 152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집필하고 30년동안 실경화를 연구해온 그가 꼽는 최고의 실경화는 누구의 어떤 작품들일까요? 또 그림을 잘 보고 읽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아름답고 흥미진진한 조선 실경화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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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미술사를 주로 연구해온 최열 선생은 이중섭과 박수근, 김정희 등의 평전도 써왔습니다. 그는 이런 평전들을 쓰며 기존 학계에서 의심없이 받아들여지는 것들에 의문을 품고 고증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집요하고 치열한 그의 면모를 다른 저서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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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의 뇌는 읽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읽기의 뇌과학' 연구에 일가견이 있는 매리언 울프는 <책 읽는 뇌>에서 뇌가 읽기를 배우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잘 보여준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읽기를 당연하게 여기고, 읽는 행위에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전형이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한마디로 읽기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을 해보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실제로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읽기'를 어떻게 정의내릴 것인지 뚜렷한 합의는 없다고 합니다. 미국의 영문학자 매슈 루버리의 책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지점을 지적하고, '읽기'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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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언 울프가 <책 읽는 뇌>에서 그랬듯, '읽는다'는 게 뭔지 따져보려면 '읽지 못하는' 경험을 더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은이는 매리언 울프가 주목했던 난독증뿐 아니라 과독증, 자폐인의 독서, 실독증, 공감각적 독서, 치매 등 '신경다양인'들의 다양한 사례를 분석합니다. 신경다양인이란 뇌신경의 차이로 '신경전형인'과 다른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컨데 난독증을 지닌 경우 글씨가 춤추듯 움직이거나 순서가 뒤죽박죽 되어 읽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죠. 지은이는 전형적인 '읽기'와 다르지만 신경다양인들 역시 저마다 읽기를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데 주목합니다. “읽기와 읽기 아닌 것의 경계”를 구분할수록 “읽기라는 용어의 범위를 넓히는 예외적인 사례를 더 많이 발견할 뿐”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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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인 매리언 울프는 '읽는 뇌'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로 꼽힙니다. <책 읽는 뇌> <다시, 책으로> 등 그의 책들도 함께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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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생 중국계 미국인 작가 C 팸 장을 취재하면서 흥미로웠던 건 한국계 미국인 작가 권오경과의 접점입니다. 권 작가 나이는 공개되지 않은 터, 이력으로 추정하면 둘에겐 아마도 밀레니얼 세대와 함께, 아시아계 여성 작가, 아시아 여성혐오와 차별에 적극 대항하는 행동주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C 팸 장의 데뷔작 추천글에 권오경의 것이 포함되고, 2023년 두번째 소설 <Land of Milk And Honey(우유와 꿀의 땅)> 출간 행사에 권오경이 대담자로 함께합니다. 권오경이 첫 소설로 베스트셀러가 됐던 <인센디어리스(The Incendiaries)>가 2019년 7월 독자들과 만날 때 대담자가 C 팸 장이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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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탐독한 소설 <그 언덕에는 얼마나 많은 황금이>는 이러한 맥락 가운데 있습니다. 단순히 중국계 이주민의 이야기가 아니란 것이지요. 소설은 황량하지만 호기심을 일으키고, 아름답지만 처연한 이미지와 은유들로 가득합니다. 바로 19세기 미국 서부 개척시대 신화와 전설을 형해화하며, 그 시공간에서 지워졌던 중국계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그리는 방편입니다. 출간된 해 소설은 부커상 예심(롱리스트)에 오르는 기염을 토합니다. 그때 작가는 말했습니다. “평범함 속에서 거룩함을 찾도록 가르치는 책들을 읽으며 자랐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 책들 속에서 저나 제 가족 같은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다는 걸. 바다를 건너 다른 생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민자들보다 더 장대하고 영웅적인 이야기가 있을까?” 당연히 이 소설이 영웅 서사일 리는 없습니다. 멸시와 천대, 기만과 박탈로 점철된 중국계 이주노동자 가족의 악착하고 지고한, 그러나 무엇 하나 이뤄지지 않는 욕망사이고, 그것이 이제는 서사되고 기억되어야 한다는 게 작가의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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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은 한국 교회의 성차별주의 벽에 부닥쳐 한국을 떠난 뒤 2006년부터 미국에서 ‘펜을 저항과 변혁의 무기로 삼아’ 활동하고 있는 여성 신학자입니다. <철학자 예수>는 기독교, 특히 한국 기독교의 반시대적 교리가 예수를 배반했다고 비판하고, 사랑·용서·환대·정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새로운 눈으로 읽어냄으로써 낡은 교리의 감옥에서 예수를 구출하려는 작업입니다. 이 책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낯설게 하기’ 기법입니다. 예수를 철학자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구세주·메시아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깨고 예수를 새로이 발견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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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차원에서 이 책은 예수를 소크라테스와 비교하는데, 지은이가 특히 주목하는 것이 그 두 사람이 ‘묻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소크라테스가 물음을 던져 무지를 일깨웠듯이 예수도 지치지 않고 질문했습니다. 신학자 마틴 코펜하버가 계산한 바로는 복음서의 예수는 모두 307번의 질문을 했고, 183번의 질문을 받았으며, 이 183번의 질문 가운데 답변한 것은 3번뿐이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흔히 예수가 ‘답’이라고 말하는데, 지은이가 보기에는 예수야말로 ‘질문’입니다. 예수는 무수한 질문으로 지혜를 찾은 사람, 그래서 철학자 곧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불러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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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져 나오는 과학책들 가운데에도 어떤 흐름 같은 게 있습니다.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최근 눈에 자주 띄는 것은 '진화의 불완전함'을 역설하는 책들입니다. 흔히 진화는 적응을 만들어내는 정교한 시스템으로 '완벽한 자연'을 떠받치고 있는 듯 여겨지지만, 그런 인식에는 인간중심주의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죠. 영국 생물학자 앤디 돕슨이 쓴 <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도 이런 계열에 속하는 책입니다. 생태 시뮬레이션을 연구하는 학자답게 다양한 사례들을 가지고 진화의 기이한 측면을 짚어내는데, 무엇보다 쉽사리 마침표를 찍지 않고 한층 더 파고들어가서 진화의 전체적인 실체를 드러내는 데 뛰어난 실력을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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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선택은 계획이 없고, 앞을 내다보지 않으며, 최종 목적지가 막다른 골목일지라도 유기체의 유전자에 즉각적인 이득만 안겨준다면 해당 형질에 보상한다.” 곧 “진화는 목적이 없고, 수동적이며, 비도덕적”입니다. 유전자의 이득을 위한 무작정의 보상은 종과 종 사이, 개체와 개체 사이, 종과 개체 사이, 심지어 유전자와 개체 사이에서 다양한 상호작용을 만들어냅니다. 물속에 살지만 언제든 익사할 수 있는 고래처럼, 그 상호작용의 결과물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깔끔한 성공작인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진화에는 너덜너덜한 실패기가 더 어울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있는 그대로 볼 때, 인간이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따져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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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는 주로 맑고 단정한 느낌의 동요로 만들어져 불립니다. 그런데 힙합의 정서를 담아, 동시를 랩으로 만들어 부르면 어떨까요? 아니, 아예 랩으로 불리기 위해서 쓰여진 동시가 있다면? 신민규 시인의 동시집 <나이지리아 볼펜>은 곳곳에서 랩의 라임으로 시의 운율을, 랩의 펀치라인으로 동시의 말놀이를 가져오며 랩과 동시를 결합합니다. 일부만 봐도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지금 저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에요?/ 사각형님이 평행사변형 가면 쓰고/ 애를 놀라게 해서 그런 거잖아요/ 사각형님은 잠시 침묵하다 말했어요/ 밑변과 높이만 알면 나랑 똑같아"('어려운 형님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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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만한 책을 짓고, 쓰는 감각을 돕는 곳
생각의뜰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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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저는 졸업 후 방송구성작가, 출판편집자, 강사, 프리랜서 에디터 등 전공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해왔습니다. 환경이 바뀌고 내 안의 가치가 부딪힐 때마다 일터를 옮겼고 자존감이 낮아져 스스로 자책하던 때도 많았어요. 그런데 그 점들이 선이 되고 면이 되어 지금의 제가 생각의뜰채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살게 되니 일종의 사명감을 느낍니다. 종이책이 모형으로 팔리는 시대, 인공지능과 각종 미디어가 범람해서 도파민 중독으로 집중력이 흐려진 시대에 ‘읽고 쓰는 사람’이 빛을 발하게 될 거라는 확신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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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초잎에 숨다
저 파초잎 아래라면 내 마음을 숨길 수 있겠다
초록이 누적된 길고 널따란 잎을 세워
휘청거리는 몸 감출 수도 있겠다
바람이 파초잎을 찢어놓고 갔다
파초잎 긴 손이 햇빛을 잠재운다
삽목된 마음은 물 빠짐이 지나쳐
뿌리 내리기 쉽지 않다
얼룩도 무늬도 없는 파초잎
잡고 누르면 가느다란 소리를 내며 실처럼 갈라지는
그 소리에 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가
저 파초잎 그늘이라면 내 마음을 숨기기에 알맞다
📖조용미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문학과지성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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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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