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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조지(1839~1897)는 ‘토지공개념’으로 유명한 미국의 정치경제학자입니다. ‘토지 소유에 따른 지대(rent)는 사회 전체가 나눠가져야 한다’는 그의 학문적 경향은 흔히 ‘사회주의는 아니지만 진보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곤 합니다. 참여정부 정책실장이었던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과거 보수언론의 집요한 사상검증을 이야기하며 “사회주의자가 아닌 ‘헨리조지주의자’로 분류되는 바람에 ‘빨갱이’ 딱지를 면했다”고 밝히기도 했죠.
중국계 역사학자 메이 나이는 <중국인 문제>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헨리 조지의 면모를 들춰냅니다. 필라델피아 태생이지만 젊은 시절 ‘골드러시’의 바람을 타고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에 왔던 그는 자본이 ‘값싼 중국인 노동자’라는 이윤을 독점하는 결과로 노동의 몫이 자본에 견줘 항구적으로 줄어들 것을 걱정했답니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한 그의 결론은 존 스튜어트 밀처럼 ‘백인과 중국인이 동등한 수준의 임금을 누려야 한다’는 쪽이 아니라, ‘이민자를 배제해야 한다’는 쪽으로 흘렀습니다. 그에게 인간은 단지 개별 노동자가 아니라 가족·국가·인종 등에 따라 분할되는 존재였고, 그중 “가장 미천한 중국인”들은 평등권을 누릴 자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은이는 헨리 조지가 “독점이라는 문제를 방정식에 도입함으로써 인종주의적 주장에 계급적 이해관계라는 알리바이를 부여”했으며, “이러한 이해관계는 19세기 후반에 점차 중심적인 것이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오늘날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 왜 노동자 계급이 이민·이주를 적대시하는 인종주의적 태도를 보이는지, 그 뿌리를 뜻밖에도 헨리 조지로부터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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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인종이나 성 또는 신체적 특징을 들어 차별적 표현을 하지 않는 언어 규범을 주로 가리킵니다. 그런 말을 일컬어 ‘PC(Political Correctness) 언어’라고도 하죠. 진보적 성향을 지닌 이들 사이에는 이것이 일종의 상식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차별적 표현을 피하며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언어 생활이라니 바람직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정치적 올바름을 진보의 이름으로 비판하는 책이 있습니다. 권위 있는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워싱턴 지국장 르네 피스터가 쓴 <잘못된 단어>가 그 책입니다. 피스터는 이 책에서 잘못된 단어를 피하고자 하는 강박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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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잘못된 단어를 쓰는 바람에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칼럼 연재를 중단당한 이들, 예정되었던 강연회가 취소된 이들의 사례가 여럿 나옵니다. 문제는 이런 식의 ‘입막음’이 사회 전체의 발전과 진보에 기여하는 대신 분열과 퇴행으로 이어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전통적인 미국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백인 노동자 계급은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에 매달리는 민주당에 위화감을 느끼며 떨어져 나가고, 목소리 큰 근본주의자들이 득세하면서 침묵의 문화가 자리 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흥분과 분노에 불을 지피고 편 가르기를 상업 전략으로 삼는 인터넷 소셜미디어들, 인터넷 여론에 떠밀릴 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의 분열적 상업 전략을 따라가는 기존 언론 역시 책임이 크다고 지은이는 지적합니다.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 나가는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되살려야 한다는 게 지은이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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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계 미국인인 사회운동가 아사드 하이더가 2018년 펴냈던 <오인된 정체성>(두번째테제)은 미국 사회 내부에서 제기하는 정체성 정치에 대한 사려 깊은 비판을 담아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로베르트 팔러는 <성인언어>(도서출판b)라는 책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집착을 '성인언어'라는 표현으로 비판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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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식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고, 그 중심에 한국이 있습니다. 최근 케이(K)-팝과 케이(K)-드라마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식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도 폭증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난해 발표된 ‘미슐랭 가이드 뉴욕 2023’에 등재된 식당 71곳 중 한식 식당은 11곳이나 됐다고 해요. 이렇듯 한식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식의 에이(A)부터 제트(Z)까지 모두 담은 <한식문화사전>이 출간돼 눈길을 끕니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같은 한식 전문가뿐 아니라 국문학자 이종묵 서울대 교수 등 문학, 민속학, 미술사학 등 여러 방면의 전문가들이 저자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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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84쪽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한식‘문화’를 집대성한 책입니다. 기존 한식 관련 책이 재료와 요리방법 중심이라면, 이 책은 재료나 요리방법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그 음식의 유래나 그 음식과 관련한 문학 작품이나 미술 작품을 살펴보는 등 문화적 맥락까지 살핍니다. 한식이라는 ‘렌즈’를 통해 한국의 다양한 문화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책인 것이지요.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먹었다는 ‘가리찜’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석류탕은 석류와 관련이 있을까요? 장똑똑이를 먹으면 똑똑해지는걸까요? 풍성한 상차림 같은 한식문화 이야기의 세계로 이 책이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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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열풍과 함께 영문 한식 책 해외 출간도 이어지고 있답니다. 그 소식을 전한 기사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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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명문가로 결국 친일파에 합류한 윤치호(1866~1945)는 일기에서 “현순 목사 같은 사람이 임시정부를 수립한 몽상가들과 함께 일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그는 정치선동가보다는 복음 전도사로 조선인들에게 훨씬 더 많이 기여할 수 있을 텐데”라고 썼습니다. 현순(1880~1968) 목사의 장녀는 현앨리스, 현앨리스의 동생은 현피터입니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입니다. 현앨리스의 아들(정웰링턴)은 체코에서 의사가 되었다 당국의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자살하고 말았죠. 세대 작가 가운데 드물게 역사적 인물을 형상화 중인 박서련 작가의 신작 장편은 이 가운데 현앨리스를 주인공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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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름 현미옥(1903~1956?). 미국에서 태어난 첫 한인계 여성인 그는 미국과 조선, 중국, 일본 등을 오간 진취적인 코스모폴리탄이었습니다. 박서련은 현앨리스에 관한 기록 가운데 유달리 흐릿한 1928~29년에 특히 주목합니다. 1920년대 초 상하이에서 현순, 박헌영 등을 따라 ‘코뮤니즘’을 “제일의 아름다움”으로 체화한 여성으로 ‘어떤 이유’에서 조선에 들어와 ‘어떤 이유’로 카페의 마담이 된 전후의 시기입니다. 조선 최초로 “마담이 끽다점의 페르소나가 되고, 얼굴로서 끽다점을 대표하는 시대”를 연 이가 바로 현앨리스입니다. 그와 카페를 운영한 5촌 당숙이자 영화감독이던 이경손(1905~1977)을 통해 되살아나는 현앨리스의 비극적인 그러나 기품 있는, 그러나 또 흔들리는 삶. 당시 끽다점 이름 그대로의 제목 <카카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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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랩은 종교 간 경계를 넘어 인문적 영성을 탐구하고 알린다는 목적으로 2023년 벽두에 출범한 민간기관입니다. 이 기관에서 ‘종교문해력 총서’(전 5권)를 내놓았습니다 마인드랩에 참여하고 있는 종교 연구자들이 종교문해력을 키우자는 목표를 내걸고 집필한 종교 입문서 모음입니다. 종교문해력이란 종교를 ‘믿음’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이성적 ‘이해’의 문제로 볼 줄 아는 능력을 뜻합니다. 종교문해력이 커질 때 종교와 종교 사이, 종교인과 비종교인 사이 대화의 길이 넓어진다는 것이 집필자들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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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영(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의 종교학 안내서 <내 안의 엑스터시를 찾아서>, 강성용(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의 불교 안내서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 정경일(성공회대 신학연구원 교수)의 기독교 안내서 <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박현도(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의 이슬람 안내서 <이슬람교를 위한 변명>, 장진영(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소장)의 원불교 안내서 <소태산이 밝힌 정신개벽의 길>이 총서를 이루는 책들입니다. 특히 인도 고전학 연구자 강성용의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은 입문서라고 하기에는 밀도가 높은 편이어서 따로 주목을 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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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들어 태평양을 건너는 등 집단적으로 장거리 이주를 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본격화되고, 자본주의 체제가 전지구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같은 지역들은 금을 찾아 사람들이 몰려드는 ‘골드러시’를 촉발했는데, 중국인들과 미국-유럽인들 사이의 대규모 접촉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뤄집니다. 그쪽이나 이쪽이나 돈 벌기 위해 이주해오기론 마찬가지 처지인데, 과연 백인들은 자신들이 닦아온 ‘자유주의’의 원칙과 정신을 잘 발휘했을까요? 백인들은 온갖 이유를 갖다붙이며 중국인들을 자유주의의 ‘예외’로 두고 싶어했고, 이 난감한 문제를 ‘중국인 문제’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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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민자 가정 출신의 미국 역사학자 메이 나이는 <중국인 문제>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 남아프리카 트란스발 등의 지역을 배경으로 중국인 이주민들의 역사와 ‘중국인 문제’의 발발 및 전개 과정, 의미 등을 톺아봅니다. 지은이는 ‘중국인 문제’가 불거지는 데에는 정치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캘리포니아주 초대 주지사인 존 비글러가 보여주듯, 중국인은 ‘자유노동’이 아닌 강제노동(‘쿨리’)을 한다고, 이들이 백인 노동계급에게 위협이 될 거라 왜곡하고 과장하는 정치적 ‘수’(手)가 성공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또 ‘중국인 문제’는 단지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중요한 일부였다고도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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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변방 시대, '비매품'이었던 첫 책
동화작가 이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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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문학 외길을 걸어온 이금이 작가는 올해 '어린이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안데르센상 최종후보에 올랐습니다. 그림책 작가 이수지가 이 상을 받은 바 있으나, 글 부문에서 국내 작가가 최종후보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금이 작가는 올해로 등단 40년을 맞았습니다. 그가 펴낸 첫 책(<다리가 되렴>)은 '계몽사아동문학상'을 받은 작품인데도 출판사에서 전집에 끼워주는 비매품으로 나왔었다는 이야기에서, 과거 "국내 창작동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나 인식이 얼마큼 낮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금이 같은 작가가 그런 관심과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40년 동안 얼마큼 노력하고 또 노력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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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가 이후 쓴 자기 책들을 꼽아봤습니다. 왼쪽부터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첫 출간 1994), <너도 하늘말나리야>(1999), <유진과 유진>(2004),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2016)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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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기차역 한편에, 유쾌한 책방이
능내책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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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곳에서 책방 열 생각을 했어요?” 책방을 시작한 지 반년. 그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책방 앞에는 마땅한 인도도 없이 굽이진 찻길만 있고, 주변은 상가도 주택가도 없는 허허벌판이다. 게다가 전철역도 없이 버스정류장만 덩그러니 있으니 의아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 의아함에 가득 찬 시선과 질문이 기분 좋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황량한 기차역 한편에 쓰러져가는 낡은 건물. 책방을 한다면 그런 곳에서 하고 싶었다. 쓰러져가는 낡은 건물은 아니지만, 시골 귀퉁이는 맞으니 소망의 절반은 이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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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죽
흰,
창호지 내음새
창호지 내음새가 나서
울음 둘레 같은 것도 있다
느리게
빈산이 걸어와 비치고
산의 뒤편으로
울긋불긋 꽃마을도 숨었다
마알간 숨 아래
외던 경(經)처럼
흰 죽 한 그릇
젓던 손은 시리고
싸락눈이 와서
흐린 발자국도 생기는
흰,
길
📖장석남의 시, <유심>(2024년 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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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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