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에드먼드 포셋은 <보수주의>에서 보수주의가 자유주의와 타협하고 적응한 끝에 자유주의가 주도했던 ‘자본주의적 근대’를 소유하게 됐다고 주장합니다. 포셋이 말한 ‘타협과 적응을 잘 해낸’ 보수주의의 역사적 사례 가운데 하나로 19세기 영국 보수당을 꼽을 수 있을 텐데, 지은이는 특히 ‘더비’ 에드워드 스탠리(1799~1869)와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1881)로부터 ‘솔즈베리’ 로버트 개스코인-세실(1830~1903)로 이어지며 영국 보수당이 근대 정당으로 자리를 잡는 흐름에 주목합니다.
보수당은 보수주의 정당이면서도 되레 선거권 확대 등 자유민주주의 제도의 강화를 심화시켜, 국교회·농업·시골에 애착하던 영국 보수주의를 근대 자본주의의 도시와 산업 환경에 맞도록 적응시켰습니다. 더비, 디즈레일리, 솔즈베리는 보수당을 이끄는 동안 선거법 개혁을 주도해 선거권을 확대했고, 노동자 재해 보상 제도를 도입하는 등 사회적 고통 경감에 나섰습니다. 고정관념 속 보수주의와는 사뭇 다른 모습 때문에 디즈레일리 등에는 ‘진보적’ 보수주의란 수식어가 붙기도 합니다.
역사적 흐름에 따라 변화 자체는 불가피하다는 것을 받아들였던 보수주의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변화는 누군가에게 혜택을 주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손상을 줄 것입니다. 이때 변화를 밀고가는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손상 입은 존재들을 발견해내고 이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보수주의의 가장 특출난 역량 아니겠습니까. 디즈레일리는 중산층의 이야기를 듣는 “완벽한 귀”를 가졌었다고도 평가받는데, 이 ‘완벽한 귀’야말로 보수주의의 유일한 존재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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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보수주의'라고 하면 사회 변화에 무작정 반대부터 하고 보는 경향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보수주의에 과연 내용이랄 것이 있느냐는 비판도 종종 제기되죠. 보수주의자 스스로도 보수주의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러나 보수주의가 근대를 이뤄온 중요한 한 축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습니다. '좌파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영국의 정치 전문 언론인 에드먼드 포셋이 쓴 <보수주의>는 서구 주요 나라에서 나타났던 보수주의를 '역사적 전통'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입니다. '자본주의적 근대'를 추동한 자유주의를 반대하기 위해 시작됐다는 풀이에서, 그의 분석은 '보수주의=무작정 반대'라는 직관과 어느 정도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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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이를 체스 게임이 비유합니다. 자유주의가 먼저 백을 잡았고, 보수주의가 그걸 막겠다며 흑을 잡은 셈이죠. 중요한 건 흑을 잡았던 보수주의가 체스판을 장악했다는 사실입니다. 보수주의는 선거제도 등 자유주의가 제시한 근대의 제도 앞에서 저항이냐, 타협이냐 하는 갈래길에 섰고, 타협에 나선 보수주의는 정치권력을 획득하며 아예 그 자유주의적 제도의 주인이 되어버립니다. 지난 세기 중도우파(보수주의)와 중도좌파(우파 자유주의)는 서로 경쟁을 벌이며 서구 주요 나라들의 정치권력을 양분하게 되죠. 문제는 보수주의는 본질적으로 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나왔고,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보수주의의 흐름 역시 면면히 이어져왔다는 사실입니다. 2010년대 이후 미국 트럼프 당선, 영국 브렉시트 등 '강경우파'가 전세계 곳곳에서 득세하고 있는 현실은 바로 이 '저항하는 보수'의 전통 위에 서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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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포셋은 '정치 3부작'으로 <보수주의>에 앞서 <자유주의: 어느 사상의 일생>(글항아리)을 먼저 펴낸 바 있습니다.
🐟영국은 일찍부터 보수주의가 대표 정당을 통해 근대 정치체제에 안착한 나라로 꼽힙니다. 서양사학자 이태숙 경희대 교수가 근대 영국 헌정사에 나타났던 주요 논쟁들을 파헤친 <근대영국헌정: 역사와 담론>(한길사)을 함께 소개합니다.
🐟역사학자 티모시 롬바르도는 <블루칼라 보수주의>(회화나무)에서 1960~1970년대 필라델피아 시장을 역임한 프랭크 리조란 인물을 통해 트럼프주의의 뿌리를 톺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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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자인 강명관 부산대 명예교수가 새로 낸 <이타와 시여>는 조선 후기 문학에 나타난 이타적 행위의 묘사와 그 의미를 탐구한 책입니다. 조선 후기 한문 단편소설들과 실존인물에 관한 기록 등 서사물들을 통해 이타와 시여(조건 없는 순수 증여)가 어떤 배경과 맥락에서 나타나고 기록, 전승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가령 동래 상인 김성우는 국경 무역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그 돈을 오로지 남들을 위해서만 쓴 인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스스로는 “겨우 끼니를 때우고 몸만 가렸을 뿐, 한 뼘 땅뙈기를 일구지도, 한 자 집을 짓지도 않”고 “오직 궁한 사람을 구제하고 급한 사람을 돕는 것만 일삼았을 뿐이었”고, “자신의 이목이 미치는 한, 혼기를 놓치거나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양식이 바닥난 나그네가 있으면, 친하거나 소원하거나를 따지지 않았고 또한 도와주었노라 생색을 내는 법도 없었다”고 어느 기록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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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뿐만 아니라 최순성과 김유련 같은 인물들 역시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타적 시여에 열의를 보였습니다. 이런 실존인물들의 사례뿐만 아니라, 조건 없는 시여가 나중에 뜻하지 않았던 보상으로 되돌아오는 이타-보상담이 조선 후기 문학에 유난히 많이 나타난다고 강명관 교수는 짚습니다. 그 배경이 궁금한데요, 당시 전쟁과 기근, 전염병 등으로 피폐해진 민중의 삶이 이타-보상담이라는 낭만적 상상력을 불러냈다는 것이 강 교수의 해석입니다. <흥부전>의 두 주인공 흥부와 놀부가 각각 당시의 민중과 수탈 사족을 대신하며, 놀부의 재산을 다른 이들이 나눠 갖는 결말이 공유와 공생을 향한 민중의 염원을 보여준다는 설명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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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신작’을 기사로 다루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세월호가 가라앉은 그 다음 날 작가도 생을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추모될 때마다 마르케스도 이어 떠올리는 문학팬들이 있을 법합니다. 소설 <8월에 만나요>는 “절대 출간 말라”는 부친의 유지를 깨고 두 아들이 출간시킨, 마르케스의 미발표 유작입니다. 출간 전부터 찬반 논란이 일었는데, 사후 10주기가 되는 올해 작가가 태어난 3월6일을 기해 전 세계 30개국에서 일제히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소설 일부가 처음 정체를 드러낸 때가 1999년이니 25년 만의 일입니다. 그사이 절필 선언, 찾아온 치매, 미발표 유작에 대한 편집자의 부정적 평가와 작가 사후 전문가들의 반박 등이 소설처럼 전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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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소설의 시간’이 필요하겠습니다. 남매 자녀를 둔 결혼 27년차 중상층의 여성 아나 막달레나 바흐가 주인공입니다. 원숙미 가득한 마흔여섯살, 매해 8월16일마다 교사였던 어머니의 무덤을 찾습니다. 카리브해 어느 섬, 초라한 공동묘지. 납득을 못했던 곳. 하지만 그 이유가 서서히 드러납니다. 애도의 여정이 돌연 욕망과 쾌락을 “게걸스럽게” 탐닉하는 경로로 변이되는 배경과도 맞물립니다. 제 욕망을 직시하며 ‘나다움’(“다른 여자, 즉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에 이르려는 바흐는, 이전까지 마르케스의 마지막 작품으로 불린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과 여러모로 대칭됩니다. 아흔살 노인 남자의 노골화한 성적 욕망을 그려 도덕적 비난을 샀던 2004년 작품입니다. 하지만 <8월에 만나요>의 공개와 함께 두 작품이 서로를 ‘미러링’하며, 각 소설은 물론 작가의 세계관도 더 입체화합니다. 그 내막을 캐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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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가 죽어간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나라 밖 기관(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조차 한국에서 독재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어쩌다가 우리 민주주의는 이렇게 된 걸까요? 철학자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민주주의의 위기’ 원인을 철학적으로 살핀 책을 냈습니다. <영성 없는 진보>는 우리 진보 정치 진영의 ‘정신적 상황’, 특히 ‘영성의 상실’을 민주주의 위기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합니다. 지은이가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진보 진영’에서 찾는 이유는 먼저 이 책이 평생 진보 진영에서 활동해온 지은이 자신의 반성과 성찰을 담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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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과거 민주노동당에서 분화한 진보신당에 합류해 강령 기초 작업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런 경험을 포함해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 진보 정치를 겪으며 ‘영성의 부재’가 진보 정치를 실패로 이끌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둘째로 지은이가 진보 정치에 위기의 원인을 묻는 것은 “이 나라의 보수 정치에는 전체의 선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는 정신 자체가 없으므로 믿음이나 영성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정부를 탄생시킨 이른바 ‘보수 세력’은 극복의 대상이기에 아예 논외로 하겠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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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피부로 만든 책, 성인 키만 한 책, 세상에 이런 책이 있다고?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은 글자보다도 책에 실린 흥미롭고 신기한 이미지에 먼저 눈이 갑니다. 희귀한 책 사진만 둘러봐도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에게 살짝 이미지를 보여주며 “세상에 이런 책도 있대~”라고 말해보세요.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이가 책에 관심을 보일지도 모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기이하고 발칙하고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책들만 모아 소개한 책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주제의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책을 보는 내내 “세상에, 이런 책도 있어?” “와~ 이런 책도 있네” 하고 감탄사를 쏟아내며 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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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서적상 프랭클린 브룩-히칭의 아들인 영국의 작가 겸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에드워드 브룩-히칭이 썼습니다. 첫돌을 넘겼을 때부터 아버지 손을 잡고 고서를 구하려 경매장을 드나들었던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10년 가까이 전 세계 도서관과 경매장을 돌고, 고서 전문 판매업자들의 상품안내서를 살펴왔다고 하네요. 이상한 책들을 모으는 것이 취미인 그가 소개하는 이 세상의 별의별 책들 구경하러 한번 가보실까요? 책에 소개된 '이상한 책' 가운데 두 가지만 사진으로나마(갈라파고스 제공) 먼저 맛보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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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를 위한 기도문이 빼곡히 새겨진 해골. 저자는 이 해골을 ‘책이 아닌 책’으로 분류했습니다. 1895년 영국의 군인이자 작가였던 로버트 베이든 파월이 이끈 아샨티(현재의 가나) 탐험대가 수집한 유물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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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학자이자 상인, 요하네스 클렝커가 높디높게 만든 ‘클렝커 아틀라스’. 영국 왕 찰스 2세에게 왕위 복위를 기념해 바친 선물이랍니다. 높이 1.76m, 너비 2.3m인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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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속에서 세상 귀엽게 노는 고양이라도, 그 집에 가보면 다람쥐 꼬리가 한가득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고양이는 과연 어떤 '미스터리'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고양이 맥스의 비밀>(열린어린이)은 앨리스와 마틴 프로벤슨 부부와 함께 사는 우람한 얼룩무늬 고양이 맥스에 대한 그림책입니다. 맥스는 밤이 되면 슬그머니 기어나가 들판에서 놀다 오는데, 책은 상상력을 더해 맥스뿐 아니라 농장의 여러 동물들에게 깊은 애정의 눈길을 보냅니다. 생생한 붓 터치로 그려진 '아날로그 그림책'의 정수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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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숲 속에 자리잡은 그림책의 낙원
이루리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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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루리북스에서는 이루리 볼로냐 워크숍, 이루리 스토리 워크숍, 이루리 에세이 워크숍, 이루리 번역가 워크숍, 그림책 활동가 워크숍 등 다양한 워크숍이 진행된다. 그밖에 그림책 연극 놀이 워크숍, 그림책 큐브 교육지도사 워크숍, 그림책 감성 놀이 지도사 과정 등 다양한 그림책 강좌가 열리고 있다.
더불어 이루리북스는 맛집 거리 한가운데 있다. 동경암, 역전회관, 남해바다, 미스터리브루잉, 정정 등 쟁쟁한 맛집들이 줄지어 독자를 기다린다. 이루리북스에서 그림책을 실컷 본 뒤, 맛집에서 밥을 먹고 경의선 숲길을 걸어보라! 이곳이 천국이고 이것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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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빈집 33
한국의 밤은 휘황하다.
모든 불빛이
화려한 옷을 걸치고
요염한 밤에도
선글라스를 쓴다.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짙은 화장이 너무 취해
모두 활개친다
고향의 밤은 캄캄하다.
누가 베어 간 코가
두만강으로 흘러가며
검정 물고기로 웅크린다.
독한 배갈을 마셔도
밤바람이 너무 시려
칠흑 길 끝 빈집으로 가며
입이 얼어
노래도 못 부른다.
📖연변 태생 전은주의 첫 시집, <빈집에서 겨울나기>(천년의시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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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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