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사회학자 김찬호가 최근 펴낸 <베이비부머가 노년이 되었습니다>를 보면, 독서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가 소개됩니다. 일본의 엔에이치케이(NHK) 방송국이 2018년 방영한 프로그램의 내용인데요. 이 방송국은 ‘건강 수명을 좌우하는 생활습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갖고, 노인 40만명을 대상으로 10년 이상 추적한 생활습관 등 다양한 빅데이터를 모아 분석했습니다.
조사 결과, 놀랍게도 건강한 노인들이 공통으로 가장 많이 가진 생활습관은 운동이나 좋은 식습관이 아닌 독서였다고 합니다.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인간관계가 풍부하고 심리적 안정감이 높았는데, 이것이 건강으로 이어진 것이죠. 또 책을 좋아하는 노인들은 책읽기 모임에 참석하느라 몸을 많이 움직이고 도서관에 드나들며 일정한 운동량을 유지했다고 해요. 또 일본에서 건강 수명이 가장 긴 지역은 야마나시라는 소도시였는데, 이 지역의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인구당 도서관 수와 학교 사서의 배치율이 전국 1위였다는 것입니다. 국내 도서관에 가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거나 신문이나 잡지를 보는 광경을 자주 봅니다. 앞에 소개한 조사결과를 참조한다면, 도서관을 찾는 그 어르신들은 도서관을 찾지 않는 어르신들보다 훨씬 건강한 노년을 보내고 계시겠죠.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민생이라는 말이 흘러넘칩니다.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것도 민생 때문이고, 김포를 서울시에 편입하는 것도 민생 때문이라네요. ‘건강과 독서의 상관관계’를 알고 나니, 진정한 민생 정책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독서와 도서관 정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현 정부의 ‘독서와 도서관 정책’은 어떨까요? 지난해까지 59억이 배정됐던 독서문화증진 사업 예산은 올해 통째로 삭감됐고, 국립중앙도서관장은 1년6개월 동안 공석 상태입니다.
양선아 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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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1918~2000)을 아시는지요? 언어학자인 그는 해방 뒤 월북해서 북한 어문정책의 토대를 놓은 인물입니다. 경성제대를 거쳐 도쿄제대 대학원을 다녔으며 김일성종합대 창립 교원이자 그 대학 초대 도서관장을 지낸 그는 초창기 북한의 어문정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두음법칙을 없애고 ‘노동’ ‘녀자’ ‘리론’ 등으로 표기하도록 한 철자법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더 나아가 ‘감’을 ‘ㄱㅏㅁ’ 식으로 풀어 쓰는 ‘가로쓰기’를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한글학자 주시경의 제자인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김일성대학 초대 총장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낸 김두봉이 그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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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50~60년대에 남쪽 출신자들과 연안파 등에 대한 숙청 바람으로 김두봉이 몰락하고, 김수경 역시 대학 교수에서 중앙도서관(인민대학습당) 사서로 ‘좌천’ 당합니다. 그에 앞서, 6·25 전쟁통에 아내와 네 자녀와 헤어져 이산가족이 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비판적 코리아 연구’를 표방하는 일본인 연구자 이타가키 류타 도시샤대 교수의 책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은 언어 천재 김수경의 굴곡진 삶과 그의 언어학적 업적을 나란히 서술한 ‘대위법적 평전’입니다.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도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북한 학자의 평전을 일본 학자가 이만한 규모와 밀도로 썼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지금까지 쓰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쓰이지 않을 작품”이라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극찬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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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타가키 류타 교수는 한국의 마당극에 흥미를 느껴 대학교 4학년 때부터 한국어를 배웠다고 합니다. 2002년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가 북한에 다녀온 뒤로 일본 사회에서 북한을 악마화하는 흐름이 거세졌는데, '다른 방식으로 북한을 연구해볼 수 없을까' 고민이 김수경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원저가 나왔을 당시 지은이의 인터뷰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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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사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周)나라가 은(殷, 또는 상(商))나라를 뒤엎은 이야기입니다. 폭군 주왕과 달기의 주지육림으로 대표되는 폭정과 이를 견디다 못해 강태공을 포섭해 거사를 일으켜 상나라를 몰락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주나라 문왕 등이 이야기의 주역이죠. 그런데 중국의 주목받는 젊은 역사학자 리숴가 쓴 책 <상나라 정벌>은 이런 상식을 대차게 뒤엎습니다. 대강의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핵심적인 사실 하나가 다릅니다. 이 책은 상나라가 다른 부족의 인간을 사냥해 인신공양제사를 지내는 것을 나라의 핵심으로 삼는 신정국가였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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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은허 발굴 등 고고학적인 연구 성과를 근거로 이런 사실을 추리해냅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살인, 인신공양, 식인 등이 성행했던 상나라는 어떻게 끝을 맞이했고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지은이는 상나라의 하수인이었던 주족이 상나라를 멸망시킨 은주혁명(殷周革命)으로부터 새로운 화하문명이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알려진 바와 다르게 주나라 문왕은 인간을 사냥해 상나라에게 바치던 인간사냥꾼이었고, 이를 견디다 못해 자신의 사냥 대상이었던 강족과 동맹을 맺어 반역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역경>은 반역의 성공을 점치기 위한 텍스트였다고 하네요. 혁명이 성공한 뒤 어떻게 인간사냥보다 객관적인 도덕률이 앞서는 체제로 전환되었는지, '과거 지우기'는 어떻게 자행됐는지 등 그 내용이 충격적인 주장인데도 촘촘하고 잘 짜여진 스토리텔링이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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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력이 곧 소설이니, 먼저 훑어봅니다. 1972년생 프랑스의 실뱅 테송. 탐험 여행가이자 여행 작가로 명망이 높습니다. 스무살 무렵부터 20여년 고행에 가까운 여행을 거듭했습니다.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히말라야 넘어 인도까지 7천㎞에 이르는 슬라보미르 라비츠의 탈출 여정이나 러시아에 패퇴한 나폴레옹 군대의 퇴각길을 좇고, 중앙아시아 3천㎞의 초원을 말 타고 가로질렀습니다. 아마추어 고고학자로 아프가니스탄 등지도 다녀왔습니다. 2010년 겨울부터 바이칼 호숫가 낡은 오두막에서 여섯달 혼자 지내기도 했고요. 이때 에세이(2011)는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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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라 할 텐데, 테송은 2014년 8월 10m 높이에서 떨어져 스무 군데 부러지고 의식을 잃습니다. 열흘 만에 코마에서 깨어났습니다. 마침내 다시 일어섰고 이후 제 나라를 도보로 횡단해 또 책을 쓰고, 그것도 영화가 되었네요. “걸음으로써 고통을 벗어난다”는 그의 말은 선험이 아니라, 몸이 터득한 아주 명징한 진리이겠습니다. 그가 2009년 처음 펴낸 단편집이 <노숙 인생>입니다. 하룻밤 방랑길에서 그를 만났다면 들었을지도 모를 이야기처럼, 15편 이야기는 죄다 빠르게 전결(얽히고 맺음)이 됩니다. 대부분 파국으로 직진하면서 인간과 자연, 삶과 삶의 불공정한 관계를 압축적으로 갈파합니다. 현대 육식 산업사를 실로 간결히, 농밀하게 꼬집은 ‘돼지’, 제국주의와 이슬람 원리주의가 배태한 불행을 매복된 지뢰에 빗댄 ‘동상’, 오지에 깔린 아스팔트 도로가 가져다준 참사를 다룬 ‘아스팔트’ 등 마치 그곳에서 모두 목격한 자가 쓴 ‘소설적 르포르타주’ 같아 강렬하고 여운도 깁니다. 그해 공쿠르상 단편부문을 수상한 이유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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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사이에 등장한 한반도 개벽사상은 민중 주체의 종교운동으로 전개됐다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동학-증산교-원불교로 이어지는 이 개벽사상·개벽종교에 대한 연구 성과는 그동안 상당히 축적됐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개벽사상과 종교공부>는 이 한반도 개벽사상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심화하는 차원에서 기획된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더 나아가 이 책은 부제(‘K사상의 세계화를 위하여’)가 가리키는 대로, 한반도 개벽사상이 세계 곳곳의 변혁운동에 도움이 되는 세계적 사상으로 도약하는 데 어떤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지 논의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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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바탕이 된 것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유튜브방송 ‘백낙청TV’에서 2023년 한 해 동안 진행한 세 편의 ‘종교 공부’입니다. 백낙청 교수가 사회를 맡고 관련 연구자들이 함께해 해당 종교를 놓고 사회자와 더불어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이 세 편의 ‘종교 공부’를 기획하는 데 계기가 된 것은 2021년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의 <동경대전> 출간을 기념해 ‘창작과비평’에서 백낙청·도올·박맹수(원광대 명예교수) 3인이 함께 한 ‘특별좌담’입니다. 이 책은 그 특별좌담을 서두에 배치했는데, 책 전체를 아우르는 서론이자 전체 논의의 핵심을 관통하는 벼리 구실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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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바탕이 된, 백낙청, 도올, 박맹수 세 사람이 동학과 <동경대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특별좌담 영상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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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한국이나 ‘꼰대’들은 비슷한 행동과 전략을 취합니다. 꼰대들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꼰대질’을 합니다. 또 20~30대 젊은 청년들을 바라볼 때 ‘요즘 젊은 애들은…’이라고 말하며 그들을 싸잡아 어떤 특성이 있다고 성급하게 일반화해버리지요. <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비디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해나 주얼이 미국 사회의 꼰대가 젊은 청년들을 싸잡아 부르는 멸칭 ‘눈송이’에 관한 담론을 해부한 책입니다. 눈송이라는 말을 누가 언제부터 어떤 의미로 쓰기 시작했는지부터, 그런 호칭을 둘러싼 정치사회적·문화적 맥락을 짚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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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눈송이 담론 분석을 읽다 보면, 한국 사회의 ‘엠지(MZ) 세대론’과 많이 겹쳐 보입니다. 기성 세대들은 ‘엠지가 개인주의적이다, 프로불편러가 많다’는 식으로 쉽게 일반화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입니다. 청년에게는 ‘꼰대’들의 특성과 전략을 알려주고, 기성 세대들에게는 ‘세대론’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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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전 연구로 쌓은 한국학 기초
고전학자 박희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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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병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고전에서 찾을 수 있는 사상, 문학, 예술을 통합적인 방식으로 연구해온 고전학자입니다. 박지원, 홍대용, 최한기, 이인상 등 구체적인 인물을 통해 자신의 연구를 집적한 결과물로도 유명합니다. "역사 속에 부상하는 새로운 주체 및 체제에 균열을 내거나 저항하는 하위주체들에 대한 탐구"를 담은 그의 첫 책 <한국고전인물연구>(1992)는 그의 '인물전' 연구의 방향을 담은, 첫 이정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은이 스스로는 그 바탕에 "문예사회학" 공부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인물전 연구 이후 전기소설, 사상사/예술사에 대한 관심을 거쳐 '통합인문학'에 이르게 된 여정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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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병 교수가 이후 쓴 자기 책들을 꼽아봤습니다. 왼쪽부터 <한국의 생태사상>(1999), <운화와 근대>(2003), <능화관 이인상 서화평석>(2018), <한국고전문학사 강의>(2023)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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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을지로의 이런 풍경은 베냐민이 그려낸 19세기 파리를 환기시킨다. 베냐민은 한때 자본주의가 가장 빛나던 곳에서 낡고 버려진 공간으로 전락한 파사주를 들여다본다. 그곳에서 베냐민은 어떤 병폐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역설적이게도 그 안에 잠재된 희망을 보려고 했다. 세운/청계상가가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파사주라면, 을지로에 자리 잡은 소요서가는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둘러보면서 기억하려고 한다. 모두가 소요할 수 있는 곳에서, 어떤 희망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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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강
한강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봄비에 불어난 강물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잘린 손들이
둥둥
떠내려오고 있었다.
눈을 의심해 몇 번을
씻고 보아도 잘린 손들이
강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물에 벌써 퉁퉁
불어 버린 것들도 있었다.
선거철만 지나면 나타나는
이 해괴한 현상을
사학자들은 어찌 기록할 것인가?
📖이재무의 시집, <고독의 능력>(천년의시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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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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