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미국의 거대 서점 체인 ‘반스앤드노블’은 한때 스타벅스 커피, 음반, 게임, 장난감 등 ‘책이 아닌 것’들을 팔면서 자본력을 앞세워 ‘골목상권’에까지 공격적인 확장을 시도했는데, 이런 상황은 영화 <유브 갓 메일>(1998)의 배경으로도 쓰인 바 있죠. 그러나 아마존 등 인터넷서점의 전성기가 찾아오면서 반스앤드노블 역시 매출이 반토막 나는 등 위기에 빠졌고, 2019년 헤지펀드에 매각되고 맙니다. 그런데 그게 끝은 아니었습니다. 새 최고경영자(CEO)가 된 영국의 서점인 제임스 던트의 지휘 아래 반스앤드노블은 올해 30개 매장을 새로 열기로 하는 등 10년 만에 다시 확장을 꾀하고 있다고 합니다.
“위대한 서점은 그것이 존재하는 공동체의 반영”이라는 철학 아래, 던트는 서점의 운영을 각 점포에 맡기고, 그동안 본사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출판사로 하여금 ‘매대 진열’에 돈을 내게 했던 거래도 하지 말도록 했습니다. 진열과 재고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된 서점들은 지역별 특색에 맞게 공간을 꾸려나갔는데, 이것이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인 핵심 요인이 됐다 합니다. 국내에서도 조명받고 있는, ‘동네책방’(독립서점)들이 찾아낸 길과 다르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에즈라 클라인이 반스앤드노블의 부활을 두고 “독립서점의 적이 아닌 동맹”이라 평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던트가 강조하는 것은 온라인 세계에선 찾을 수 없는 경험, 한마디로 ‘우연한 마주침’(serendipity)입니다. 사람들이 그저 무의미하게 스쳐지나기만 했던 ‘경계 공간’이었던 곳도, 의미 있는 만남이 피어나는 ‘제3의 장소’로 바뀔 수 있습니다. 책이 그렇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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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전담법인'이 성행한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이들은 '특화된 전문가'로서 자신들이 어떻게 성폭력 가해자의 무혐의, 기소유예 등을 이끌어냈는지를 '성공 사례'로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영업을 뛰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김보화가 쓴 <시장으로 간 성폭력>은 이 같은 성폭력 사건의 '법시장화' 현상을 파헤치고 이를 담론으로도 풀이하는 책입니다.
여성운동은 불균형한 성별 권력관계 등 성폭력 사건의 구조적인 배경을 지목하고 공공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으나, 국가의 '신자유주의 통치 전략'에서 비롯한 법시장화는 이를 법정 속 개인들 사이의 다툼으로 치환시키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그속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은 개인이 행사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은' 것으로 잘못 읽혀져, 피해자에게 피해자 자격을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재피해자화' 현상이 일어났다고도 짚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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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의 해결이 '사법화'되면서,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활동 역시 법정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에서 '연대자'가 된 지은이가 성범죄 관련 사법 시스템을 조목조목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동녘),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n번방' 사건에 대한 방청연대 기록 <그래서 우리는 법원으로 갔다>(봄알람)를 함께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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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과 정신을 나누는 이원론, 마음이나 의식 같은 것은 인간에게만 있다는 인간중심주의의 영향력은 아직도 강력합니다. 그러나 물질과 정신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으며 '나'를 느끼는 주체성 역시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숙련된 다이버이자 과학철학자 피터 고프리스미스는 <후생동물>에서 바다와 뭍에서 만난 동물들로부터 '마음의 진화와 생명의 의미'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동물 역시 자아와 다른 존재를 구별하는 '경험 같은 것', '마음 같은 것'을 지닌다고 합니다. 그저 종별로 다양한 모양새를 띨 뿐인데, 중요한 것은 그들 사이에 어떤 우열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정원을 공유하며 함께 진화하고있는 동료들일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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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등단한 작가 강석경은 '과작'의 작가입니다. 이번에 그가 펴낸 <툰드라>는 1986년 펴냈던 <숲속의 방> 이후 37년 만에 내놓은 소설집입니다. 책에 실린 8편 작품들도 1987년 발표한 '석양꽃'부터 가장 최근의 '툰드라'(2022)까지 무려 35년에 걸쳐 있어, 기나긴 시간을 품고 있는 영구동토란 제목대로 30년을 훌쩍 넘는 한 작가의 문학적 여정을 하나로 꿰어 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 여정엔 욕망을 버리지 않되 갖지도 않는다는, 불교적 세계관의 구도(求道) 같은 것이 있습니다. 임인택 책기자는 "특히 여성의 주체적 의지는 이 30여년 여정에서 더 부드럽게 더 단단해지는데, 마치 <숲속의 방>을 지배한 '위계적 기후'를 거둬내고 소양(<숲속의 방> 등장인물)의 땅을 다져내는 제의 내지 구도의 길로도 보인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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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조지 스타이너는 세속화한 근대 세계에서는 고전 비극들이 이뤘던 성취를 더 이상 바랄 수 없다며 '비극의 죽음'을 말한 바 있습니다. 마크르스주의와 기독교 사상을 자기 사유의 두 축으로 삼고 있는 영국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비극>에서 '비극의 죽음'에 맞서며 비극이라는 예술 양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고 말합니다.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가 희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해서 고통과 슬픔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주어진 운명에 고뇌하는 귀족 영웅은 없겠지만, 현대 세계에선 누구에게나 주어진 욕망의 보편성이 가장 평범한 사람들을 비참에 빠뜨립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비극론을 총망라하며, "세상에 넘쳐나는 비참을 이해하게 해주는 눈이자 인간의 자기 파멸 위험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고명섭 책기자)으로서 비극의 의미를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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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민중·통일의 벗 백기완(1932~2021)이 떠난지 벌서 2년(2월15일)이 됩니다. 2주기를 맞아 백기완노나메기재단이 펴낸 <기죽지 마라>는 모두 38명의 글을 엮었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필자들의 면면부터가 백기완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쌍용차, 기륭전자, 세종호텔, 유성기업, 용산, 세월호, 반올림, 김용균….
"해고와 죽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투쟁, 용산과 세월호 참사, 농성과 오체투지 등에 백기완은 늘 함께했고 말과 행동으로 힘을 불어넣어 주었"(최재봉 책기자)고, 사람들은 "제 기억 속에서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을 떠올릴 때면 백기완 선생님이 그 자리에 함께하십니다”(세월호 참사 단원고 고 오영석 군의 어머니 권미화) 등으로 그를 기억합니다. 강인한 투사이자 자상한 아버지 같았던 그의 면모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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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노나메기재단은 백기완 선생의 뜻과 한살매(일생)을 기억하고 널리 알리고 계승하고자 설립한 비영리 재단법인입니다. 이사장을 맡은 신학철 화백으로부터 '백기완 기념관' 설립 등 앞으로 재단이 할 일들에 대해 자세히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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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여우를 '멸종위기 야생동물 Ⅰ급' 동물로 몰아간 이유 중 하나는 목도리 털을 얻기 위한 사람들의 '여우 사냥'이었다 합니다. 그림책 <여우 목도리>에서도 어른들은 여우 목도리를 갖기 위해 날마다 숲에서 여우를 사냥하고, 결국 숲 속에서 여우가 사라지게 만듭니다. 따뜻하게 여우를 보듬은 두 아이의 마음을 통해, 우리는 과연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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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곳
출판스튜디오 쓰는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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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서점의 안온함이 좋았다면 지금은 책 속에 옹골지게 담긴 활자의 생기가 좋다. 각고의 시간을 들여 작가님들이 깎아낸 글들의 쨍쨍한 고유함이 좋다. 누군가 용기 있게 들려준 당신의 인생이 고맙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아지랑이 같던 말들을 잡아 글이 되는 시작점에 우리 책방이 있다는 그 사실이 쿵 하고 마음을 울린다.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 굳이 책으로 출판하지 않더라도 오늘의 나의 이야기를 매일매일 출판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쓰는 만큼 후련해지는 게 글쓰기가 아니던가. 오늘 쓰인 또 한 줄의 문장이 우리를 어디로 끌어당길지 알 수 없기에, 우리 책방은 오늘도 글 쓰는 이들을 위해 부지런히 책방 문을 열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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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바다
오래전 궁전을 죽은 사람처럼 업고 불화하던 풍문을 떠나보내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음역을 가진 새가 미완성 등대에 앉아 일몰의 노래를 부르네 이명처럼 웅웅대던 새벽이 왈칵 눈앞에 쏟아지면 어둠이 몸속 뒤꼍으로 한 페이지 물러나네 병든 안개는 영영 썩지 않을 나무의 객석으로 들이쳐 거미줄 친 얼굴을 만지네 수정되지 못한 슬픔은 뜬눈으로 지하 창밖에 몸을 던지네 폐멸된 어둑서니들이 오래전 그을린 미래를 밤눈으로 드로잉하네 끝과 시작 사이에서 생장하는 삼동의 나무 한 그루에 귀를 대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네를 미는 소리가 들리네 어쩌면 우리의 그 겨울이 될 수도 있었던 전소의 해변
📖김유태, <현대문학> 2023년 2월호(현대문학)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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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반올림(#)책은 어떠셨나요?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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